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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선암사 명물 '뒤간'. 자연친화적이다.
 순천 선암사 명물 '뒤간'. 자연친화적이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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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민성대장증후군'을 달고 사는 나는 항상 불안하다. 특히 매운맛에 예민하다. 매운맛이 트렌드가 된 지금, 식당 밥을 사먹기가 두렵다. 대중적인 반찬은 그렇다 치고, 주문한 음식은 손님에게 물어보고 매운맛을 가미하면 좋으련만 매운맛이 기본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겐 조금 넣은 매운맛이 서비스지만 나에겐 독약이다. 특히 자연산 매운맛은 그런대로 견딜만한데 향신료로서 매운맛은 직방이다. 먹으면 1분 내에 신호가 온다. 그래서 이건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아니라 '과민성매운맛증후군'이 아닌가? 의아스럽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식도를 통해서 위에 들어가 상당시간은 위에 머문다. 소장을 통과하여 대장으로 내려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1분내 효과라니. 내 몸이 잘못된 건지 진단이 잘못된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나는 화장실과 3분 거리에 있어야 한다. 그 이상의 서식지를 벗어나면 불안이 증폭된다. 한방, 양방, 단방, 민간요법 지구상에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백약이 무효다. 멀리할 수 없는 당신, '증후군'과 공생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사건 사고는 한두 건이 아니다.

#1. "버스 운전 25년째인데, 당신 같은 손님은 처음이요"

께끗한 경복궁역 화장실.
 께끗한 경복궁역 화장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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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일을 보고 서울을 가야하는데 일정이 바뀌어 기차표를 예매하지 못하고 고속버스를 타게 됐다. 터미널에서 승차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뱃속은 평화스러웠다. 그래도 4시간이 넘는 버스 여행길.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할지 누가 아는가. 변기에 앉았다. 억지로 배설하려니 땀만 삐질삐질 흘렀다. 배를 훑어내려 강제로 내보내고 버스에 올랐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가 추풍령휴게소에 들렀다. 저녁을 안 먹어서 출출하다. 휴게소에서 돈가스를 시켰다. 후추를 약간 뿌렸는데 맛이 이상하다. 기대치 이상 매운맛이 느껴졌다. 망설였다. 먹을까? 말까? 돈이 아깝다. 한입 먹었다. 근데 영 자신이 없다. 그 이상은 포기했다. 예방차원에서 화장실에 들렀다. 신호가 온 것도 아닌데 배설하려니 진땀만 흘렀다.

버스에 올랐다. 휴게소를 출발한 버스가 서울을 향하여 달렸다. 어디쯤 갔을까? 뱃속이 이상하다. 참으려 해도 이상한 신호가 자꾸만 온다. 어둠속에서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 195km. 195라는 숫자가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승객들이 잠에 떨어져 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사에게 다가갔다.

"휴게소에 안 들르나요?"
"아까 들렀잖아요. 이제부터 논스톱입니다. 한숨 푹 자면 서울입니다."

자리에 돌아왔다. 적어도 2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를 달리고 있다. 눈을 감았다. 잠은커녕 더욱 정신이 말똥말똥해진다. 뱃속에서 더욱 강렬한 신호가 온다. 3분 내에 해결하라는 신호다. 기사에게 다시 다가갔다.

"제가 급하걸랑요. 버스 안에서 실례를 하면 나야 견딜 수 있지만 다른 승객들에게 민폐가 될 것 같은데 어쩌면 좋죠?"
"이 근처는 휴게소도 없어요."
"휴게소까지도 못갈 것 같아요."
"이 양반이..."

룸미러로 쳐다본다. 눈이 마주쳤다. 어이없다는 눈치다. 기사야 어이없지만 나로서는 난감백배, 위기상황이다. 룸미러를 통하여 눈총이 오고간 사이 시간이 흘렀다.

"2분 이상 경과하면 나도 어찌할 수 없어요."

나는 배를 부여잡고 있는데 기사가 레이저 눈총을 쏘아낸다. 그렇잖아도 하얀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시선을 거둔 기사가 룸미러를 통하여 승객들을 살핀다. 다행히 다들 잠에 떨어져 있다. 버스가 인적이 없는 간이휴게소에 멈췄다.

"빨리 보고 오세요."

구세주 같은 목소리다. 총알처럼 튀어나가 후미진 곳에 자리를 잡자마자 발사. 하늘을 바라보았다. 칠흑 같은 밤하늘에 은하수가 아름답다. 버스에 올랐다. 기사 왈 "고속버스 25년째지만 당신 같은 손님은 처음입니다".

#2. 백두산 물맛이 좋다는데... 입도 못 댔다

백두산 가는길에 있는 중국화장실. 덮개가 트여 있다.
 백두산 가는길에 있는 중국화장실. 덮개가 트여 있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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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가는 길. 마음이 설렌다. 하지만 나에게는 만만치 않은 여행길이다. 인생의 동반자로 삼아온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매운맛과 물갈이다. 매운 것이야 안 먹으면 되지만 물은 어찌할 것인가? 궁리 끝에 물을 가지고 가기로 했다.

가방이 2개 준비되었다. 하나는 여행에 필요한 소지품용 가방, 또 하나는 물. 촌스럽게도 2개의 가방을 들고 여행길에 올랐다. 그래도 미덥지 않아 지사제를 준비했다. 2캡슐을 복용하고 짐 속에 챙겼다.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에 기내식이 나왔다. 일절 입에 대지 않고 지사제만 복용했다. 심양에 내려 1박하는 사이 안내자가 심양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잔다. 북한에서 파견된 직원들이 있는 '랭면'집이었다. 식당에 도착했다. 한복에 김일성 배지를 단 복무원들이 사방사방하다.

"여기까지 오셨으니 '랭면'맛을 보셔야지요?"

의사타진은 요식행위에 불과하고 '랭면'을 시켜버린다. 오래지않아 '랭면'이 나왔다.

"고저 피양 '랭면'은 겨자를 듬뿍 넣어 먹어야 제맛이디요."

평안도 방언에 몸에 밴 안내자가 겨자를 풀어버린다. 한 입, 입에 대었다. 예감이 이상하다.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아니, 맛이 없어서 그러십네까?"
"아닙니다. 안 먹으려고요."
"안 먹기는요. 여기까지 와서 요렇게 비싼 '랭면'을 시켜놓고 안 먹다니요."

비싼 랭면을 강조하던 안내자가 젓가락을 들어 강제로 입속에 밀어 넣는다. 사실 심양에 거주하는 한족은 물론 조선족도 북한식당을 쉽게 들어가지 못한단다. 비싸서... 또다시 지사제를 털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도 제대로 못했으니 어디 가서 맥주나 한 잔 합시다."

안내한 곳은 한족이 운영하는 맥주홀이었다. 홀 안에는 간이 무대가 있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가곡이 흐른다. 잠시 후, 안내자가 무대로 나가 뭐라 얘기했는지 우리 가곡 '가고파'가 흐른다.

"지금 노래하는 저 가수는 **예술대학 성악과 교수인데 여기에서 알바를 하고 있지요."

자본주의에 눈 뜬 중국인들의 모습이 눈앞에 다가왔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었다. '가고파'가 끝난 다음 '아리랑'이 흐른다. 그때였다. 심한 복통과 함께 식은땀이 흐르더니만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다. 지사제 과잉 복용에 의한 급성약물 중독에 의한 복통이었다.

"나 여기에 누워 있을 테니 당신들이나 다녀오세요."

백두산 답사하고 돌아와 심양에서 합류하여 함께 귀국하자는 얘기였다. 응급실에 누운 나는 여행을 접으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와서 병원에 누워 있는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음식 먹으라는 소릴랑 안 할테니 어여 일어나 떠납시다."

동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백두산을 답사하고 돌아오는 동안, 조선족이 운영하는 이도백하에서 한 끼 식사를 한 것 이외에는 백두산 물도 마셔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3. 차도 버리고... 잊을 수 없는 '화장실 습격사건'

산성역 화장실. 해우소란 간판을 단 화장실이 이색적이다.
 산성역 화장실. 해우소란 간판을 단 화장실이 이색적이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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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민성대장증후군'을 친구삼아 동반자로 살아가는 동안 사건 사고도 많았지만 내 생애 있어서 가장 극적이고 지저분하고 드라마틱한 사건은 화장실 습격사건이다.

서울시내에서 도보로 이동할 때, 급한 볼일이 있으면 경비원이나 수위 아저씨의 눈치가 보이지만 주변 건물로 뛰어 들어가거나 지하역사로 들어가면 된다. 우리나라는 화장실 선진국이라지 않은가. 지하철 역사에 있는 화장실은 깨끗하고 쾌적하다. 하지만 핸들을 잡고 운전을 할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도로에 차를 세워놓고 들어가기도 그렇고, 주차장을 찾아 차를 주차해놓고 화장실을 찾아가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때문에 4대문 안에서 운전하려면 '네비'에 나와 있지 않은 화장실을 머릿속에 입력해두어야 한다.

차를 운전하는 사람에겐 주유소가 딱이다. 주차하기 편리하고 곧바로 화장실로 직행할 수 있다. 지금이야 지형지물이 많이 변했지만 내가 한창 운전할 때는 4대문 안에 주유소가 몇 개 있었다. 종로 3가 세운상가 건너편과 경희궁 서울역사박물관 근처에 주유소가 있었다. 을지로에는 5가 국립의료원 건너편에 그리고 퇴계로에는 대한극장 옆과 명동역 근처에 있었다. 있는 자리에서 주유소가 여의치 않으면 남산으로 올라붙어 식물원 앞이나 창경궁 앞 서울대학병원 담 옆으로 차를 몰았다.

청량리에서 마포 가는 길. 신설동을 통과했는데 뱃속에서 이상한 신호가 왔다. 예사롭지 않은 신호다. 감으로 보아 3분을 넘기지 말라는 메시지다. 즉시 '네비'를 가동시켰다. 세운상가 건너편 종묘 입구에 주유소가 있다. 교통 흐름을 보면서 시계를 작동시켜보았다. 아무리 빨리 가도 5분 이상 코스다. 동대문에서 우회전하여 창경궁 앞으로 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숭인동 사거리를 통과했는데 위급신호가 전해온다. 1분내 결정하라는 다급한 신호다. 즉각 비상 '네비'를 작동시켰다. 동대문 옆 서울성곽 언저리에 공중화장실이 포착되었다.

헌데, 버스와 승용차 할 것 없이 교통량이 많은 간선도로다. 어디에다 차를 세워 놓은 단 말인가? 그때는 성곽을 따라 낙산으로 올라가는 길도 없었다.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하지만 뱃속에서는 계속 SOS를 보내오지 않은가. 할 수 없이 길가에 차를 붙였다. 문도 잠그지 못하고 뛰어갔다. 아뿔싸. 다리를 오므리고 천천히 걸어가야 하는데 뛰어가니까 싸기 직전에 다달았다. 위기일발이다.

화장실에 도착했다. 남자용 1칸 여자용 한 칸이다. 남자용 문을 두들겼다. '똑똑' 안에서 응답이 왔다. 염치불구하고 여자용 앞에 섰다. '똑똑' 노크를 보냈다. 안에서 답이 왔다. 있다는 것이다. 다시 남자용 앞으로 돌아왔다. 다리가 꼬인다. 10초가 10분 같다. 30초나 흘렀을까? 다시 노크를 했다. 답이 왔다. 또 노크를 했다.

"왜 그래요?"

짜증 섞인 목소리가 화장실 문을 넘어왔다.

"저어, 죄송하지만 제가 급해서 그런데 잠시 교대하면 안 될까요?"

급한 거만 해결하면 금방 비워 줄테니 잠시만 교대하자고 제안했다.

"나도 금방 들어왔어요."

까칠한 목소리다. 절망이다.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차를 길가에 세워놓고 여기까지 왔는데 바지에 싸란 말인가?

'크 크 크으'

다급한데 옆 칸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젊은 처자의 목소리였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느라 목안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다. 덮개가 터져있으니 소리가 다 들릴 수밖에 없다.

"저, 정말 죄송한데요. 합승하면 안 될까요?"

예전에 이용해봤던 기억으로는 이곳 화장실은 푸세식이다. 다행스럽게도 변이 내려가는 구멍이 판자 사이에 직사각형으로 뚫려 있는데 다른 곳보다 길었다.

"뭐라구요?"

사내 목소리와 동시에 옆 칸 여자용 화장실에서 '빵' 터졌다.

"훗 훗 후윽."

웃느라 볼일을 못보고 있는 처자의 모습이 그려졌다. 문을 열어젖히고 쥐어박아 주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다. 여자가 들어있는 화장실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면 '주실 침입 및 강제추행 예비음모죄'에 걸리지 말란 법이 없다.

"같이 싸자구요."
"같이요?"

어이없다는 소리와 함께 걸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 그야말로 우주의 평화를 알리는 소리와도 같았다.

"고맙습니다."

체면을 따질 계제가 아니다. 화장실 문을 밀치고 들어간 나는 염치불구하고 바지를 내렸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있던 사내가 앉은걸음으로 앞으로 이동한다. 그 사내와 등을 맞대고 앉았다.

"나 원, 세상을 살다보니까 별일이 있구만..."

그 사내의 입속에서 푸념이 흘러나왔다. 그 사내가 뭐라 하건 말건 '푸데데덱!' 1발 발사다. 배설을 하고나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이제 살 것 같다. 하지만 시원도 잠시. 이때부터 미안한 생각이 들고 길거리에 세워둔 차 걱정에 더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다.

"저 먼저 일어날게요."
"당신 맘대로 하슈."

일어나서 바지를 올렸다. 앉은 자리에서 뒷걸음으로 자리를 이동하던 사내가 고개를 돌려 힐끗 쳐다본다.

"합승했으면 합승요금이나 내시오."

사내가 빙그레 웃는다.

"내라면 내지요."

나도 웃었다. 화장실에서 싱긋 웃어준 그 사내. 어디서 살고 있는지 한 번 만나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더러운 이야기 기사 공모글입니다.



태그:#과민성대장증후군, #화장실, #백두산, #처자, #네비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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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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