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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지방방송 꺼!"

어릴 적에 수업을 듣다가 학우들이 잡담이 교탁에 들려오면 그때 선생님께선 이런 말씀을 하곤 하셨다. 수업에 방해되고 시끄러우니 하찮은 말 하지 말란 얘기였다. 그것은 곧 '지방방송'의 위상이 어떤지 상기시켜주는 말이기도 했다.

방송의 위상은 컨텐츠가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방송은 대부분의 편성 시간을 서울에서 제공하는 컨텐츠로 채우지만, 서울 지상파에선 지방 컨텐츠를 채우는 경우는 지방 네트워크 뉴스나 미담 소식 정도다. 서울 중심의 방송 집중화, 배분화가 진행 중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방송은 허울만 지방에 위치한 방송이란 소리를 듣곤 한다.

행정복합도시, 혁신 도시 건립 등 공공 영역에선 지방 분권을 위한 정책이 진행되고 있으나 방송에서의 지방 분권은 형식상으로만 이뤄진 건 아닌지 의문이 뒤따르는 게 지금의 방송 인프라 현실이다.

 전국 지방방송 현황(텔레비전 방송 기준)
 전국 지방방송 현황(텔레비전 방송 기준)
ⓒ 고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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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방송은 서울 컨텐츠 송신소?

현재 지방방송은 KBS와 MBC의 경우 지역 거점에 방송사를 둬 계열사로 지배 중이다. KBS 대전총국이나 부산 MBC가 그런 예다. SBS의 경우는 지배라기보다 지역에서 자체 설립한 민영방송들이 SBS와 네트워크 협정을 맺고, 컨텐츠를 교류하는 식이다. 쉽게 말해 SBS의 컨텐츠를 지역민영방송(지역민방)이 구입해 송출하는 것이다.

 95년 TBC(대구), KBC(광주), PSB(부산), TJB(대전) 개국 축하 행사. 이로서 서울과 수도권 등지에 방송 권역이 한정돼 있던 SBS는 지방에 자사 프로그램을 송출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게 된다.
 95년 TBC(대구), KBC(광주), PSB(부산), TJB(대전) 개국 축하 행사. 이로서 서울과 수도권 등지에 방송 권역이 한정돼 있던 SBS는 지방에 자사 프로그램을 송출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게 된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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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거슬러 올라가 1995년 김영삼 정부는 주요 지역 거점에 지역민방 설립을 허가한다. 이때 지역 기업들이 주주로 참여해 TJB(대전방송), TBC(대구방송), KBC(광주방송), PSB(부산방송, 이후 KNN으로 개칭)가 방송을 개시했다. 대주주는 TBC의 경우 당시 청구그룹이었고 TJB는 지역 기업인 우성사료였다. SBS와는 아무런 지분 관계가 없었으나 이들 지역 민영 방송은 개국 초기 자체 제작 편성 비율을 20%선에서 잡고, 나머지 편성은 SBS 컨텐츠를 내보냈다.

문제는 이러한 지방방송이 서울 컨텐츠의 송신소 정도로 역할의 한계점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SBS와 교류 중인 지역민방의 경우 당초 당국의 설립 인허가 취지는 지역 방송문화의 창달이었으나 SBS 컨텐츠를 많게는 전체 편성 시간의 70% 가까이를 내보내, 컨텐츠 재송신에 머무른다는 비판이 이어지는 중이다.

류한호 광주대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역민방이 지역 정체성의 구심적 역할을 하면서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기보다는 중계소 역할을 해가며 이른바 '여의도 문화'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해 오히려 지역을 서울에 종속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방송통신위원회는 고시를 통해 현재 지역민방의 자체 제작 편성 비율을 23~31%로 규정해놓고 있다. 이를 근거로 지역민방은 비율만큼 자체 컨텐츠를 내보내야 하며 SBS 컨텐츠를 방송할 수 없다. '송신소'라는 비판을 불식시키려면 자체 편성 비율을 높여야 하지만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지역민방이 자체 컨텐츠를 내보내면 SBS 컨텐츠를 보지 못하게 됐다는 이유로 해당 지역민들의 비판에 처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컨텐츠 경쟁에서 '열세'... 지역민방의 주주 챙기기 도마위

서울에서 내보낸 컨텐츠는 출연진들이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연예인들이 포진한 것은 물론이고 제작에 투입되는 인적, 물적 자원 역시 지방 컨텐츠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우위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다보니 지방 컨텐츠는 지역민들에게 외면 받기 일쑤고, 지역민방은 시청률 저하에 따른 광고 수주에도 악영향을 받고 있다. 결국 재정적 문제에 따른 컨텐츠의 질적 저하와 시청자들의 불만이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져오는 셈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지역민방은 자체 제작 편성 비율을 낮춰달라고 방통위에 요구 중이다. 비율을 낮춘 만큼 서울 컨텐츠를 편성하여 광고 수주를 높임으로써 재정 안정성을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체 제작 프로그램의 질을 한층 더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2009년 방통위 국정감사에서 당시 조영택 의원은 "지역 민방의 경영 및 제작 여건을 고려해볼 때 지역민방의 의무 제작 편성 비율이 너무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 지역민방의 무리한 주주 챙기기도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2012년 기준 JTV(전주방송)는 25억 8천만 원 가량 당기순이익을 올리면서 전체 당기순이익의 54.3%를 배당했다. 특히 JTV는 대주주인 일진홀딩스가 보유한 알피니언 메디칼시스템 계열사에 50억원을 투자한 사실이 드러났다. 알피니언은 2012년 기준 부채비율만 2644%에 달했던 기업이다. 이후 논란이 되자 일진홀딩스는 투자금 50억 원을 JTV에 반환했다.

 보통 상장 기업 배당률이 5~8%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수치다.
 보통 상장 기업 배당률이 5~8%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수치다.
ⓒ 고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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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송출권을 독점하면서 얻은 이익을 지역 컨텐츠로 환원하기보다는 대주주 회사 살리기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2012년 약 17억 원의 흑자를 낸 G1(강원방송)은 당기순이익의 37.5%, 26억 원 이상 순이익을 올린 UBC(울산방송)은 순이익의 33.7%를 배당했다. 컨텐츠에 투입할 수 있는 재원을 주주들에게 고배당으로 돌아가는 상황은 지역민이 지역민방 컨텐츠를 비판, 외면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으로 지역민방 대다수는 광고 매출액이 100~200억 대에 지나지 않아 지상파 및 종편과 비교하면 컨텐츠 제작에 있어서 상대적 열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나마 지역민방 중 광고매출과 당기순이익이 가장 많은 KNN 정도가 자체 편성 비율을 50% 가까이 설정하고,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드라마를 자체 제작하기도 한다.

지방방송의 위기를 돌파할 해법은 없나

그렇다면 지방방송의 위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우선 서울 지상파와 교류하는 지방방송의 경우, 상대적 우위에 있는 서울 지상파가 지방방송과의 관계를 일방향적 컨텐츠 공급을 넘어서 컨텐츠 제작을 협업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개선해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지방 컨텐츠를 전국 네트워크화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일례로 드라마 제작의 협업을 꼽을 수 있다. 2012년 울산 조선소를 배경으로 방영한 드라마 <메이퀸>은 울산MBC가 제작에 참여하고, 서울MBC는 기획과 인력 파견 등 제작을 도왔다. 지방방송이 제작한 드라마를 서울 공중파를 통해 송출한 셈이다. 이는 울산 명소와 경관 등을 전국으로 알리는 중요 계기가 됐다. 서울MBC 입장에서도 제작 분담을 통해 지방 촬영의 효율성을 도모하고, 새로운 볼거리를 시청자들에게 선사해 호평을 받을 수 있었다. 서울과 지방 모두 'Win-Win'한 것이다.

지방방송의 자구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그 시발점은 과도한 고배당을 자제하는 것이다. 방통위는 2011년 배당이 과도한 KNN, 광주방송, 제주방송 등 7개 지역민방에 대해서 엄중 경고한 바 있다. 당시 청주방송의 경우 74%의 배당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배당 비율을 줄이고, 그 재원을 컨텐츠 투자에 사용하여 고질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또 지방방송이 서로 힘을 합쳐 양질의 컨텐츠를 공동 제작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2012년 종영한 시트콤 <촌티콤 웰컴투 가오리>는 9개 지역민방이 공동 제작해 각 지역 배우들이 출연함은 물론이고, 재미도 괜찮았다는 평이 많았다. 그러나 지역민방을 통한 송출에 머물렀다. 아직 지역민방이 공동 제작한 컨텐츠가 서울 지상파를 통해 전국적으로 방영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공동 제작을 통해 제작 여건의 열세를 극복하고, 지방에서 서울로 컨텐츠가 역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방 분권은 행정복합도시나 혁신도시 건립 정도로 공공영역 인프라를 통해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지방언론의 발전을 통해서 지방 문화가 전국으로 번져나가야 서울과 수도권으로 일원화되는 문화 집중을 분산시키고 지역민의 소외감을 덜 수 있다. 문화를 공유하고 향유할 수 있는 배경이 갖춰져야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는 것도 주지해야 할 사실이다. 지방 분권의 연장선상에서 지방방송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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