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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형 사립고가 기로에 섰다. 서울시교육청은 내달 13일까지 서울시 자사고 25곳 중에서 2009년에 설립된 14개 고교에 대한 재지정 평가 결과를 내놓는다. 결과에 따라 14곳 모두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 '일반고 슬럼화' 등을 야기한 자사고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인식이 공감대를 얻고 있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곧 칼을 빼들 것으로 보인다. 자사고 들어선 뒤 교육환경이 뒤틀린 지역 사회를 취재한 현장 기사와 일반고·자사고 교장 인터뷰를 통해 자사고 현 상황을 점검해본다. [편집자말]
김용복 배재고 교장(서울시 자사고교장협의회장)은 23일 오후 서울 강동구 고덕동 배재고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자사고를 둘러싼 비판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용복 배재고 교장(서울시 자사고교장협의회장)은 23일 오후 서울 강동구 고덕동 배재고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자사고를 둘러싼 비판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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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고등학교는 최고(最古) 사학이다. 선교사 아펜젤러가 1885년 서울 정동에 이 학교의 전신인 배재학당을 세웠다. 우리나라의 첫 근대식 학교다. 배재학당이라는 이름은 고종황제가 내려준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 시인 김소월,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 독립운동가 서재필 박사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이 학교는 최근 뜨거운 논란의 한 가운데 섰다. 이 학교의 김용복 교장은 서울시 자율형사립고(자사고) 교장협의회장으로, 자사고 폐지·축소 움직임에 반대 목소리를 부르짖고 있다. 협의회는 지난 21일 발표한 성명에서 "교육감에 대한 불복종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법적 대응도 예고한 상황이다.

반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자사고를 일반고 황폐화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6월 1차 평가를 마무리했고, 조희연 교육감 취임 이후 자사고가 공교육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곧 발표할 평가결과에 따라, 올해 평가 대상인 서울시 자사고 14곳이 모두 취소될 수 있다.

김용복 교장은 23일 오후 서울 강동구 고덕동 배재고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자사고를 둘러싼 비판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오래전부터 교실이 무너졌다는 얘기가 나왔다, 교실이 무너진 것은 학업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을 깨워서 국·영·수 공부를 시킨 탓이 크다, 직업 교육 등 이 학생들에 대한 다른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자사고를 없앤다고 일반고 황폐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목고, 일반고보다 커트라인이 높아진 특성화고(옛 실업계고)도 일반고에 영향을 미친다"면서 "친형제가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처럼, 이런 의미에서 일반고가 자사고를 비판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반고는 잘 뛰는 사람을 끌어다가 같이 걸어가자고 하면 안 된다, 국가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면서 "사학은 평범한 국민을 양성하는 곳이 아니다, 영재 교육을 맡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용복 교장은 자사고의 집값 안정 효과를 주장했다. 그는 "강동구, 성동구, 관악구에 사는 학생도 강남 지역에 있는 자사고에 지원할 수 있다, 강남 지역으로 이사 가지 않아도 된다"면서 "그러다보니 강남 지역의 집값이 안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배재고의 자사고 지정이 취소된다면, 8만 동문과 학부모들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동문들이 집단행동을 할 수 있다"면서 "시인 김소월, 주시경·서재필 선생도 일반고 전환을 반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기자와 김용복 교장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안산동산고 자사고 재지정 취소에 충격... 끝까지 가면 이긴다"

- 경기도교육청은 안산동산고를 자사고로 재지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전국에서 첫 자사고 지정 취소 사례가 나온 것이다.
"충격을 받았다. 배재고가 자사고 지정 신청을 할 때 안산동산고를 벤치마킹했다. 기독교 학교로서 교육을 잘하는 학교다. 안산동산고는 자사고의 모범이 된 곳이다. 전북교육청이 2010년 익산 남성고와 군산 중앙고에 대한 자사고 지정을 취소했지만, 두 학교는 소송에서 이겨 자사고로 남았다. 소송 등을 통해 끝까지 가면 결국 자사고가 이긴다."

- 이르면 이번 주에 서울시교육청이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문용린 전임 서울시교육감 때 실시한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 성실히 임했다. 하지만 조희연 교육감이 취임한 이후 진행하는 2차 평가는 급조된 것이다. 특히, 자사고 주변 일반고 학생들에게 '자사고가 좋아요, 나빠요?'라고 묻는 질문은 수용하기 어렵다. 자사고 재지정 평가라면 자사고를 평가해야지, 왜 다른 학교를 평가하나. 재래시장 상인들에게 마트가 생기면 어떤 영향을 받느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다."

- 자사고가 고교평준화의 근간을 깨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1974년 박정희 대통령 당시 고교평준화로 인해 사학은 특색없는 '관학'이 됐다. 3%의 인재가 97%의 사람을 먹여 살린다. 사학이 영재 교육을 맡고 있다. 사학은 개성, 다양성, 특수성을 통해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 주시경 선생, 서재필 박사, 시인 김소월이 우리 학교 출신이다. 사학은 평범한 국민을 양성하는 곳이 아니다. 사학의 특성을 인정해 달라."

- 자사고가 일반고 슬럼화 현상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교실이 무너졌다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나왔다. 교실이 무너진 것은 학업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을 깨워서 국·영·수 공부를 시킨 탓이 크다. 직업 교육 등 다른 교육을 시켜야 한다. 일반고 황폐화 문제는 원인 분석을 정확히 해야 한다. 자사고를 없앤다고 일반고 황폐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자사고가 없어지면, 자사고에 다니던 학생 2~3명 가량이 일반고 한 학급에 들어간다. 얼마나 달라지겠나."

- 일반고의 절망에 자사고 책임이 전혀 없다는 말인가.
"자사고의 영향도 일부 있을 것이다. 특목고, 일반고보다 커트라인이 높아진 특성화고(옛 실업계고)도 일반고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고에 특목고가 사촌이면, 자사고는 친형제다. 사촌보다 친형제가 땅을 살 때 배가 더 아프다. 이런 의미에서 일반고가 자사고를 비판한다. 일반고는 잘 뛰는 사람을 끌어다가 같이 걸어가자고 하면 안 된다. 국가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모두 (질이) 떨어진다. 평등도 중요하지만 수월성 교육도 중요하다."

- 일반고에서는 학기 초 자사고가 일반고의 우수한 학생을 빼앗아간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부 자사고에 그런 사례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단연코 대부분의 자사고는 일반고 학생을 빼가지 않는다. 배재고도 다른 학교의 학생을 빼오지 않는다. 학교가 오란다고 학부모나 학생이 여기에 응하겠나. 오히려 일부 학부모들이 자녀를 원하는 사립학교에 보내기 위해 자사고를 징검다리로 활용하는 경우가 있다." (같은 지역 내 고등학교 간의 전학은 불가능하지만, 자사고는 예외 규정을 적용받는다.)

- 자사고가 귀족학교라는 비판도 있다.
"우리 학교 학부모는 일반고 학부모보다 1년에 300만~320만 원 가량의 학비를 더 낸다. 한 달에 25만 원 가량이다. 이 만큼의 돈을 투자해서 교육 여건과 면학분위기가 좋은 학교에 자녀를 보낼 수 있다면, 누가 이 돈을 아끼겠나. 우리 학교는 전교생 1200명 중에서 800~900명이 자율학습실에서 공부를 한다. 방과후 프로그램도 좋다. 그러다보니 학부모들은 학원비가 덜 든다고 한다. 귀족학교라는 비판은 받아들일 수 없다. 교육 열정이 높은 학부모들의 학교가 아니겠나."

- 자사고가 고교다양화라는 취지와 달리, 입시명문을 지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영·수 수업시수가 전체의 52%로 절반을 넘는 건 맞다. 하지만 비정규 교과과정인 창의적 체험활동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다. 이를 포함하면 50%를 밑돈다. 국·영·수 수업시수가 전체의 50% 이하인 자사고는 한 학교도 없다. 반대로 말하면, 전체가 50%가 이상이라면 타당성을 갖는 것 아니겠나. 배재고는 자사고 전환 이후 서울대 진학률이 1/3로 떨어졌다. 우리가 입시명문을 지향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겠나. 또한 대한민국의 모든 고등학교는 어느 정도 입시교육을 하는 게 맞다."

- 자사고는 우수한 인재를 길러낸다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자사고에 우수한 학생이 몰리다보니 자연스럽게 좋은 대학에 가는 학생도 많은 것 아닌가.
"올해 2월에 졸업한 학생들이 처음 입학했을 때, 내신 성적 상위 10% 이내의 학생은 전체 학생의 13%였다. 일반고였다면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더 많이 올 수 있다. 그리고 재수생을 포함해 올해 3월 서울시내 주요 대학 10곳에 입학한 졸업생은 130명이다. 복수합격이나 지방분교에 간 학생을 빼더라도 최소한 30명은 좋은 대학에 갔다. 입학할 때 이런 대학에 갈 수 있는 학생은 15명 정도였다. 학교효과가 있는 것이다."

- 자사고 주변에 사는 학생들은 자사고에 가지 못할 경우, 멀리 떨어진 일반고로 통학해야 하는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있다.
"학교가 많지 않은 일부 지역의 일이다. 자사고로 인해 좋은 점도 많다. 명문학교에 배정받기 위해 굳이 이사 가지 않아도 된다. 강동구, 성동구, 관악구에 사는 학생들도 강남 지역에 있는 자사고에 지원할 수 있다. 강남 지역으로 이사 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보니 강남 지역의 집값이 안정된다. 자사고의 긍정적인 효과를 생각해야 한다."

"서울시교육청과 돈 흥정 아냐... 다만, 어려운 자사고 지원해 달라"

-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7일 자사고가 자발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할 경우, 5년간 최대 14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모집정원을 채우지 못해 재정난을 겪고 있는 일부 자사고 입장에서는 반가운 정책이지만, 서울시 자사고교장협의회는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돈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교육청과 돈을 흥정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이 14억 원을 지원한다고 했지만, 이중 시설비 7억 원을 빼면, 운영비 지원은 7억 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5년 동안 매년 1억~2억 원을 지원한다. 올해 배재고 재단이 학교에 지원한 금액만 13억 원이다. 서울시교육청의 지원은 큰 도움이 안 되는 허구라고 볼 수 있다. 자사고가 알아서하겠다는데 왜 자사고에 지원하려 하나. 그 돈으로 일반고를 지원하고, 자사고를 가만히 놔둬야 한다."

- 하지만 일부 자사고는 모집인원 미충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서울시교육청의 지원을 내심 반기는 학교들도 있다.
"배재고는 지난해 1차 모집 때 미달돼 망신을 당했다. 결국 추가 모집을 통해 모집정원을 채웠다. 끝까지 모집정원을 채우지 못한 학교는 지역 환경이 열악한 곳에 있다. 서울시교육청에 당부를 드리고 싶다. 일부 경제적으로 어려운 자사고 있을 텐데, 때려잡지 말고 일반고 전환으로 '연착륙'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을 해 달라."

- 김용복 교장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교육감에 대한 불복종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썼었나…. 정당하지 못한 평가에 의한 반대 의견을 낸 것이다. 조희연 교육감이 자사고를 대거 취소할 경우,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 조희연 교육감이 자사고를 대거 취소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8만 동문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동문들은 100억 원 모금 운동을 벌여 40억 원을 모였다. 1년 치 장학금만 2억5000만 원 가량 된다. 자사고 전환 뒤 공부 열심히 하는 재학생들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큰 것이다. 만약 배재고가 일반고로 전환된다면, 동문들이 집단행동을 할 수 있다. 배재고 동문은 세다. 시인 김소월, 주시경 선생도, 서재필 박사도 일반고 전환에 반대할 것이다."


태그:#김용복 배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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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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