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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100일째가 되었다. 4월 16일 오전 사고 발생 직후 나온 '전원구조' 언론보도가 오보로 밝혀지면서 희망은 점차 내리막길을 탔다.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는 목소리와 더불어 정치권에서 벌인 다양한 해프닝과 유가족을 향한 막말들도 잇달아 터져나왔다.

석달이 넘게 지난 지금, 여객선 세월호에 탑승했던 인원은 학생과 교사, 일반승객과 승무원을 포함하여 총 476명으로 집계되었다. 수색작업이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 10명의 실종자가 남아 있어 침몰사고의 후유증과 여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전 국민적인 슬픔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 사회적인 분위기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세월이 지나서도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그런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이런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다짐과도 같다.

그런 차원에서, 세월호 참사를 두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5명을 꼽아보고자 한다. 물론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사고를 돌이켜볼 때 가장 중심에 서있던 이들로 간추렸다. 이 다섯 명은 참사 전후에 사안의 결과를 바꿀 만한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거나, 발언과 행동 등의 행보에 따라서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때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존재가 된 인물들이다.

[이준석 선장] '탈출하라' 그 한 마디만 했다면

사고 현장에 처음 도착한 목포해경 소속 경비정 123정(100t급)의 한 직원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영상에는 승무원들이 제복을 벗고 123정에 허겁지겁 오르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이준석 선장은 속옷 차림으로 세월호를 떠나 123정에 오르기도 했다.
 사고 현장에 처음 도착한 목포해경 소속 경비정 123정(100t급)의 한 직원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영상에는 승무원들이 제복을 벗고 123정에 허겁지겁 오르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이준석 선장은 속옷 차림으로 세월호를 떠나 123정에 오르기도 했다.
ⓒ 해경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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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세월호의 선장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준석 선장은 세월호에 문제가 생긴 직후 사태파악이나 구조신고에 너무 늦었다는 의혹, 승객을 방치한 채 침몰하는 배에서 먼저 탈출했다는 혐의 등으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이는 기울어져 가라앉는 배 안에서 학생들을 출구로 안내하고 선원과 함께 구명정을 띄워 탈출을 도와야 할 선장의 의무를 지키지 않은 처사였다.

복구한 희생 학생들의 휴대전화에는 사고 당시 배 안에서 촬영한 동영상이 있었는데, 여러 영상의 촬영시각을 대조해보면 퇴선 지시를 하지 않은 선장의 실책이 너무나 컸음을 알 수 있다. 세월호가 가라앉아 거꾸로 떠오르기 전까지, 학생들을 포함한 승객들이 탈출하여 대기 중이던 해경에 의해 구조될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자리를 지키라"는 방송만 하고서 먼저 도망친 선장은 심지어 사고가 발생하던 시각에 조타실을 지키지도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다른 방에서 휴대폰을 만지며 게임이나 선박 운항과는 연관이 없는 행동을 했다는 취지의 승무원 측 증언도 있었다. 만약 그가 배를 빠져나오는 순간에라도 '탈출하라'는 지시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 한 마디였다면.

[박근혜 대통령] 대체 언제쯤 유가족 목소리에 귀 기울일지

5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을 요구하며 전날 밤부터 길거리에 앉아 항의하고 있다.
 5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을 요구하며 전날 밤부터 길거리에 앉아 항의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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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대형참사로 인해 비판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불어 그 사고가 '관리소홀'과 '규제완화' 등 미흡한 감독과 정책적 문제가 원인이라면 비판은 더욱 당연한 것이 된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가 생긴 뒤 박근혜 대통령의 반응은 어땠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참모진을 앞에 두고 비공개로 '유감스럽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그제야 대국민사과를 했다. 기자회견 당시 눈물을 보이기도 했지만, 진정성을 의심하는 여론은 잦아들지 않았다. 그마저도 사고발생으로부터 한 달이나 걸렸기에 '불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고 이후 대통령이 내린 지시는 '해경 해체', '총리 해임', '국가안전처 신설'이었다. 그러나 여론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문제를 드러낸 시스템은 그대로 둔 채 '해체'만 남발한 건 그 순간 비판의 화살을 피하려는 무책임한 대응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총리의 해임 역시 비난여론을 잠재우려는 듯한 처사였고, 국가안전처 신설도 더 강화되어야 할 안전행정부와 소방기구의 축소 및 통폐합에 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대로라면 정부는 세월호 사고로 노출된 자신의 무능에 마침표조차 찍지 못할 듯 보인다. 거듭되는 '수첩인사'와 권위적인 태도를 부디 접어두고, 지금부터라도 유가족을 비롯한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길 당부하고 싶다. 그런데 사고 당일인 4월 16일에는 도대체 어디서 무얼 했길래 대통령이 8시간 동안이나 대면보고조차 못 받았다는 말인가.

[서남수 전 교육부장관] 정부 불신에 불지른 '컵라면 사건'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16일 당일 구조된 탑승객들의 임시 보호소로 쓰인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팔걸이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다. 서 장관의 뒤편으로 체육관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안정을 취하고 있는 생존자들과 다급한 가족들의 모습이 보인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16일 당일 구조된 탑승객들의 임시 보호소로 쓰인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팔걸이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다. 서 장관의 뒤편으로 체육관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안정을 취하고 있는 생존자들과 다급한 가족들의 모습이 보인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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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수 전 교육부장관은 사고 발생 초기 현장 인근에서 기념촬영으로 무리를 빚었던 정부 관계자와 더불어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인물이다. 당시 진도체육관을 방문한 서남수 전 장관은 의전용 의자에 앉아서 탁자의 의약품을 치우고 컵라면을 먹었다. 맨바닥에 앉아 식음을 전폐하고 탑승자의 생환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바로 코앞에 두고.

물론 먼 길을 오가는 일정 속에서 잠시 시간을 쪼개어 허기를 채울 수 있다. 그런데 굳이 진료를 위해 마련된 공간에서 그래야만 했나. 서 장관의 '컵라면 사건'은 '기념사진 촬영' 논란에 연이어 발생했기에 '사안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애써 시간을 내서 진도체육관에 방문한 의도를 생각하여, 같은 시간에 불편한 환경에 놓인 유가족들을 위한 지원방안을 찾아보고 지시하려는 노력은 할 수 없었던 것일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이완영 국회의원] 국정조사 도중에 '숙면'... 변명에 막말까지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왼쪽)이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 교육부 기관보고에서 질의하고 있다.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왼쪽)이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 교육부 기관보고에서 질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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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영 의원이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새누리당 소속으로 세월호 국정조사에 참석한 이후부터다. 그는 국정조사 기관보고가 시작된 6월 30일부터 언론과 인터넷에 널리 이름을 알렸는데, 다름 아닌 '졸음' 때문이었다.

이에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모니터링 보고서에서 "(이 의원이) 다른 의원의 질의시간에 장시간 조는 모습을 보였다"라고 지적했는데, 그는 "잠깐 졸았다"고 변명하는가 하면 "별것도 아니다, 여기 들어와보라, 다 졸고 있다, 생리 현상 가지고 그러는 건(비판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 의원은 지지부진한 국정조사 진행에 유가족이 분통을 터뜨리자 "내가 당신에게 말했냐?"라고 소리치기도 했으며, 7월 2일 진행된 해양경찰청 기관보고에서 "구조는 정부가 전문성을 갖고 하면 되고 가족들과는 소통 차원에서 하면 된다, 가족들이 전문지식이 있나, 이성이 있나?"라며 세월호 유가족을 비하하는 막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사고의 진상파악을 위해 노력해야 할 국정조사에 참석한 의원이 꾸벅꾸벅 졸고 유가족에게 폭언을 일삼다니, 생리현상이나 자기정당화라 하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모습 아닌가.

[엄마부대봉사단]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있나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5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엄마부대봉사단과 탈북여성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려하자 경찰들이 이를 저지하고 있다.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5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엄마부대봉사단과 탈북여성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려하자 경찰들이 이를 저지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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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는 '특정인'이 아니라 단체를 선정했다.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 이름으로 등장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엄마부대봉사단'이라 불리는 보수단체는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했다. "우리가 배 타고 놀러 가라 그랬어요? 죽으라 그랬어요?"라는 발언에선 희생자를 모욕하고 유가족의 마음에 상처를 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유가족이 단식농성을 벌이며 추진 중인 세월호 특별법에 '의사자 지정 요구' 조항이 들어있다는 소식을 듣고 유가족에 항의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 달리 세월호 특별법에는 그런 조항이 없다. 이들의 행동에선 진상규명만을 바라는 유가족의 마음을 깎아내리면서 동시에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을 흐트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의사자 지정'은 현재 유가족이 요구하는 사항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누가 죽으라고 했냐"는 잔인한 말을 유가족이 들어야만 할까. 이들의 발언에선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도 찾아볼 수 없다. 가족을 잃은 이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모임이 '엄마부대봉사단'이라 불릴 자격이 있을까.

신뢰가 침몰한 사회, 무기력을 학습한 국민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고, 또 다른 어떤 것을 남겼다. 300명에 가까운 승객들이 뒤집힌 배 안에 갇혀 가라앉는 모습을 전 국민이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사고 이후 '사회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다. 사회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이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는 가장 기초적인 신뢰가 산산조각 난 셈이다.

그 뒤로 나온 대책에서 사고의 원인이 된 '규제완화'의 재검토와 근본적인 시스템 개혁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 타워 아니다"라는 발언이 나왔을 때는 어이가 없기도 했다. 세월호 침몰 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줄 만한 충분한 근거도 주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지금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은가.

게다가 국민적인 슬픔에 공감하고 소통하려는 시도 역시 부족하다. 보수언론과 일부 정치인들은 충격적인 사고를 겪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낸 사람들에게 따스한 말은 커녕 막말만 쏟아내 여론의 분노를 초래했다.

유가족조차 제대로 위로받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들이 어찌 슬픔을 추스를 수 있을까. 기초적인 신뢰가 침몰된 사회에서 더 이상 무엇을 믿고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비판 여론을 짓누르기보다 유가족의 심정을 공유하고, 사고원인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여 사회 전체를 고쳐나가야 할 때다. 가슴 아픈 사고가 또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태그:#세월호 참사, #박근혜 대통령,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 #서남수 전 교육부장관, #엄마부대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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