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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행과 사진촬영을 통해 의뢰인에게 배우자의 외도 증거를 제공하는 전문 사설탐정이 벌어들이는 돈이 매년 유럽에서만 7400만 스위스프랑(미화 8000만 달러)에 이른다. 다른 업종은 모두 위기에 처해 회사가 도산하고 근로자들이 해고되는 가운데, 불륜 시장만큼은 엄청난 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p.227)

저자가 스위스 성인 일곱 명 중 한 명인 약 45만 명이 외도 경험이 있다는 통계와 더불어 소개한 자료다. 불륜커플이 호텔에서 반나절에 해당하는, 우리나라 모텔의 이른바 '대실'에 지불하는 비용이 자그마치 600스위스 프랑이나 한다고 하며, 어떤 호텔은 신용카드 명세서에 00식당으로 인쇄 되도록 하는 서비스까지 제공한다고도 한다.

<불륜> 책표지.
 <불륜> 책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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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스위스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불륜>의 저자는 소설의 배경을 세계 최고의 도시 스위스의 제네바로 정했다. 그런데 그가 태어난 곳은 브라질이라고 하니, 상파울로 같은 대도시의 모텔에 걸린 노골적인 간판이 떠오른다.

남녀가 엉킨 모양을 형상화한 모양의 간판은 '여긴 잠만 자러 오는 데가 아니어요'하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불륜을 저지르는 이유

"인간은 거미나 뱀을 자동차보다 더 무서워하죠?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 압도적으로 더 많은데도 말입니다. 우리의 의식이 아직도 동굴 원시인 시절, 즉 뱀이 치명적이었던 시절에 머물러 있어서 그래요.(중략) 종의 보존이 우선인 자연은 가능한 한 많은 여자를 임신시켜야 한다고 가르쳤지요."(p.249)

남자가 여자보다 불륜이라는 일탈의 함정에 빠져들기 쉬운 이유에 대한 소설 속 주술사의 설명이다. 그와 함께 저자는 주술사의 입을 통해 바람을 피우는 성인들이 배우자와의 관계가 삐걱거린다거나 일상이 불안해서가 아니라 '무료하거나 삶에 대한 열정이 부족하거나 도전할 만한 일이 별로 없어서인 경우가 더 많다'고 말한다.

일견 이해가 가지만 사실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 또한 다른 이성이 보내는 추파에 취약하기는 매한가지다. 사랑 고백도 모자라 무기 거래상이었던 여자(공교롭게도 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이름이다)에게 국가기밀까지 죄다 고백했던 인사도 있고, 학력을 속이고 대학교수가 된 여자와 로맨스에 빠진 청와대 소속의 중년 인사도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 린다의 경우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염증을 느낀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항상 바쁠 것만 같은 기자임에도 말이다.

"유리벽을 따라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며 나는 생각했어. 어디서부터 돌기 시작했는지 기억할 수 없으니 끝도 맺을 수 없겠구나. 그래서 우리가 수족관 물고기를 좋아하는 거야. 그걸 보고 있으면, 잘 먹고는 살지만 유리벽 너머로 나갈 수 없는 우리자신이 떠오르니까."

일탈이 준비된 린다의 독백이다.

불륜, '자기파괴적 행동'

여러모로 극단적인 사회에서 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프랑켄슈타인>혹은, <지킬앤하이드>의 주인공처럼 선과악의 경계에서 인격장애를 겪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절대적 희열에서 극심한 슬픔을 오가는 상태로 인해 고통 받기 쉽다는 것이다. 이는 양극성 기분장애나 히스테리로 표출되기도 한다.

일탈의 대가(代價)는 혹독하다. 이미 현재와 미래를 함께하는 배우자가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만남을 실현한 남성이나 여성이 겪어야 하는 정서적 고통이 안 그래도 우리를 괴롭히는 양극성 기분장애와 히스테리에 가중되기 때문이다.

"올 봄까지 나는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가진 모든 것이 갑자기 사라질 수 있음을 깨닫고는, 나는 분별 있게 처신하지 못하고 공황에 빠져버렸다. 이어진 것은 무기력, 무감각, 반응과 변화에 대한 무능이었다."(P.308)


일상에서 벗어나 섹스와 모험을 좇은 결과는 참혹하다. 해피앤딩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불 속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반대방향으로 걸어갔기 때문이다. 죄에 합당한 벌이 기다린다.

사랑에는 관용이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기파괴적 경향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파괴적 경향을 몸소 실천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 성인이지만 한번쯤은 구제되어야 마땅하다고 저자는 린다의 남편 입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사랑을 하면 그 어떤 것도 받아들여야 해. 사랑은 우리가 어릴 때 갖고 놀던 만화경 같은 거니까. 똑 같은 건 없고 항상 변하지.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 행복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고통받게 되어버려"(P. 303)

참고로 주인공 남녀의 직업은 기자와 정치인이다. 그런데 이들의 불륜이 직업적 관련으로 성사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이들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또 하나 소설 <불륜>에 따르면, 일탈에 대한 용서와 관용은 한 번뿐일 것으로 추측된다. 눈치 빠른 독자는 린다가 운이 좋은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불륜> 파울로 코엘료 지음, 민은영 옮김, 문학동네, 2014년 7월 25일 초판발행



불륜

파울로 코엘료 지음, 민은영 옮김, 문학동네(2014)


태그:#불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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