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방송장비를 들고 온 이들도 있었으나, 월드컵 우승 기념행사 뉴스들만이 독일 언론을 가득채웠다.
▲ 강제퇴거 저지운동 방송장비를 들고 온 이들도 있었으나, 월드컵 우승 기념행사 뉴스들만이 독일 언론을 가득채웠다.
ⓒ 신희완

관련사진보기


지난 15일 오전 7시 반, 베를린 도심은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을 한 독일 축구 대표팀을 위한 기념 행사를 기다리는 인파로 북적였다.

같은 시각 베를린 베딩 지역에서는 40년 동안 살아온 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있는 티나(Tina)씨의 강제퇴거를 막기 위해 약 150명의 사회 운동가와 이웃들이 그녀의 집 앞을 지키고 있었다.

독일에서 강제퇴거가 자세히 조사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으로, 당시 독일 전역에서 약 2만 건의 강제퇴거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강제퇴거는 그 이후로도 꾸준히 증가해 2012년에는 약 2만5000건이 발생했다.

그 해, 퇴거 명령이 있기 전 혹은 퇴거 명령이 내려졌을 때 자발적으로 집을 떠난 경우가 약 4만 건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실질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삶의 공간을 잃거나 옮기게 된 경우는 6만5000건에 달했다.  

이 같은 현상은 베를린의 집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는 점, 또한 베를린에서 집을 사들이는 외국 자본과 전문 부동산 업체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이 때문에 낮은 월세로 거주하는 세입자들은 쫓겨나고 있다.

40년간 살아온 집에서 쫓겨난 티나씨

Tina씨 집 앞에 모여있는 사람들
▲ 강제퇴거 저지운동 Tina씨 집 앞에 모여있는 사람들
ⓒ 신희완

관련사진보기


티나씨가 강제퇴거 당한 사건은 적지 않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그 이유로는 먼저, 티나씨의 강제퇴거 원인이 베를린 일자리 센터(베를린의 일자리 센터는 구직자 혹은 실직자의 기본적인 생활비용 지불을 담당하고, 그 비용에는 주거비용도 포함된다)의 행정 실수로 인한 월세 미납이었기 때문이었다.

2008년 이 집을 구매한 집주인은 이후 3번이나 관리사무소를 변경했다. 하지만 티나씨의 월세를 대신 납부해야 하는 일자리센터가 관리사무소 변경 사실을 뒤늦게 인지했고, 티나씨는 월세를 밀리게 되었다. 이와 함께 40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도 잃게 되었다.

티나씨는 지난 6월 '강제퇴거 저지운동 연합'의 도움에 힘입어 강제퇴거를 성공적으로 막았던 경험이 있었다. 이에 두 번째 강제퇴거 집행일 전날이었던 7월 14일, 경찰들은 예고 없이 나타나 티나씨 집문을 부수고 들어가 버렸다. 또한 티나씨가 자살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그녀를 정신병원으로 보내 버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티나씨는 아무 문제가 없다며 바로 퇴원조치 되었다.

마지막으로 경찰은 당일 오후 9시까지는 강제퇴거 집행의 효력이 있다는 것을 이용하여 급작스럽게 강제퇴거 작전을 실행하였다. 티나씨 집 앞에 아침부터 적지 않은 인원이 몰려 있는 것은 파악한 경찰은 사람들이 줄어든 시기인 오후 4시가 돼서야 갑작스럽게 주변 도로를 봉쇄하며 티나씨를 집에서 쫓아냈다. 이에 분노한 시민 250명은 오후 8시 거리 시위를 벌였다.

이 문제는 얼마 전 '사회적 배려 대상자가 입주를 하면 집값이 떨어진다'며 이삿집 차가 못 들어오게 막은 서울의 한 주택가 이웃들의 모습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물론 서울의 이웃들이 악마 같은 존재이고, 베를린의 이웃들이 천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오랜 세월 동안 집이라는 장소를 각각 부동산 투자 대상과 삶의 공간으로 대해온 두 도시 평범한 시민들의 극명한 의식 차이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시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의식 차이로 인해 두 도시의 이웃들은 누구를 도울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연대할지에 대한 선택이 극명하게 갈린 것이다.

시민들이 서로 연대하는 사회와 시민들이 서로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는 사회. 우리가 지향해야 하고 지양해야 하는 사회의 모습은 확연하다. 그동안 집을 거주의 공간과 삶의 공간이 아니라 투자의 대상과 재산 형성의 대상으로 여겨온 사회의 분위기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독일 여러 도시들 중에서도 베를린은 그 어떤 도시보다 집값(월세) 상승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이 큰 편이다. 그런 반감은 다양한 시위와 도시 개발을 저지하는 주민 투표의 승리로 표출되고 있다(관련 기사 : 베를린 최고의 '핫 플레이스', 왜 투표까지 갔을까). 최근 10년 사이에 베를린의 집값이 급격히 상승하며 많은 이들의 걱정을 사고 있지만, 적지 않은 시민들의 노력으로 여전히 베를린은 주요 유럽 도시들에 비해 저렴한 월세를 자랑하고 있다.

베를린에서는 다양한 시위 그리고 사회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그 시위와 운동이 베를린 시민들의 주된 의견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 중에서 강제퇴거 저지운동은 규모도 가장 작고, 주목하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다양한 시위와 운동 가운데서 가장 기초적인 사회 연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 이웃은 집행예정시간이 지나자 집에 들어가서 배드민턴채를 들고 나오기도 하였다.
▲ 강제퇴거 저지운동 한 이웃은 집행예정시간이 지나자 집에 들어가서 배드민턴채를 들고 나오기도 하였다.
ⓒ 신희완

관련사진보기


강제퇴거 저지운동에는 고리타분한 구호도, 이상한 리듬의 노래도 필요 없다. 경찰과 집행관들이 강제퇴거를 위해 집으로 들이닥치기 전까지 사람들과 함께 놀 배드민턴, 오늘 마무리 지어야 할 대학 과제, 읽을 책, 함께 나누어 먹을 음식 등 우리의 일상이 이어질 수 있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지역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한 가정을 위해 그리고 이웃을 위해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함께 팔짱을 끼고, 공권력에 대항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임시적으로 강제퇴거를 막은 후에는 세입자의 퇴거에 대한 합법 여부를 재조사하는 방식 등을 통해서 실제로 세입자가 자신의 터전에서 합법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실제로 이런 방식을 통해서 실제로 몇몇 성공 사례가 있기도 하다.

'독일 강제퇴거 저지운동 연합(Bündnis Zwangsräumung verhindern)'은 강제퇴거를 가장 잔인한 방식의 사회적 탄압이자, 사회적 불평등과 법적 불평등이 초래하는 결과라고 이야기 한다.

분명 강제퇴거는 법적으로 합법적인 조치이다. 하지만 그 어떤 합법 적인 행동도 40년의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데 정당화 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강제퇴거로 쫓겨나게 된 티나씨의 호소문을  함께 공유한다.

티나(Tina)씨의 호소문
지난 40년간 살아온 이 집에서 나는 요리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울기도 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 집에서 나의 자녀를 키웠고, 또한 나의 친구들을 초대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집주인이 월세 수익이 너무 적다는 이유로 내가 살아온 집을 잃게 되었습니다. 나는 일자리 센터가 월세 지불을 잊고 안했기 때문에 내가 살아온 집을 잃게 되었습니다. 일자리 센터는 나를 돕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집주인의 이익을 대변하였습니다. 집주인과 일자리 센터는 내가 수익을 보장하지 않고 하등의 가치도 없다고 말 합니다. 일자리 센터의 행정 실수로 연체된 월세는 심지어 제가 직접 약 5%의 벌금으로 보충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집주인, 일자리센터, 경찰의 강제퇴거작전, 행정법원, 행정관들의 거리낌 없는 조치는 나를 두렵게 하고, 나를 두렵게 만듭니다. 그들의 이러한 조치는 인간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하나의 권리를 잃게 만듭니다. 바로 그 어떤 인간이라도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의 집에서 살 수 있는 권리 말 입니다.

강제퇴거는 지금까지 1년 동안 연기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공공기관이나 보조기관은 가난한 이들을 돕지 않았습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 오히려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우리 같은 시민은 그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기에,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합니다  Basta, Hände weg vom Wed­ding, Zwangs­räu­mung ver­hin­dern 그리고 Run­der Tisch gegen Gen­tri­fi­zie­rung Mo­abit(이번 강제퇴거 저지운동에 연대를 한 베를린 시 규모 혹은 지역 규모의 사회 운동 단체들) 등의 단체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는 베를린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뿌리가 이곳에 있고, 이 나이에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새로 뿌리를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호소문 원문 주소
http://zwangsraeumungverhindern.blogsport.de/2014/07/15/statement-on-tina-s/




태그:#독일, #베를린, #강제퇴거, #사회운동, #주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베를린과 도시를 이야기합니다. 1. 유튜브: https://bit.ly/2Qbc3vT 2. 아카이빙 블로그: https://intro2berlin.tistory.com 3. 문의: intro2berlin@gmx.de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