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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청소년 특별면 '너아니'에 실렸습니다. '너아니'는 청소년의 글을 가감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아일랜드 여행 첫주, 어제 오늘은 부모님의 일에 동행했다. 교육연구기관인 포파스(Forfas)에서 교육 연구 매니저인 '마리'를, 교육부(Department of Education and Skills)에서 연구원 '필'을 만나는 이틀간의 인터뷰 주제는 아일랜드의 특색있는 교육 시스템 '전환 학년제'였다.

지난해까지 홈스쿨링을 하다가 처음으로 제도학교에 들어가 뉴스에서나 접하던 시험과 수능 스트레스를 받으며 한 학기동안 학업을 쫓아본 터라 교육제도 이야기가 남 이야기 같지 않게 흥미롭다.

Meeting with 'Pill'
 Meeting with 'Pill'
ⓒ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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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학년제, '아이들에게 생각할 시간 선물하자'

한국처럼 교육열이 높고, 학생들의 입시 부담이 큰 아일랜드. 1974년 교육부 장관인 리처드 버크는 아이들이 성적 부담에서 벗어나 '내가 어디 있는지', '무얼 하고 싶은지' 여유롭게 생각할 시간을 보내도록 하자는 생각으로 '전환 학년제'라는 제도를 시작했다. 지필고사를 보지 않고 꿈과 끼를 탐색하며 인성, 사회, 교육, 직업적 발달을 포함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1년의 시간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학생들에게 주어졌다.
 
진로 탐색을 위한 기간 전환학년제. 이 때 청소년들은 협업을 하며 동료 학생, 선생님, 부모님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서로 이해를 높이며 직업 체험, 봉사 등으로 어른 사회와의 괴리를 줄이면서 차츰 '소통'과 '사회성'을 키우게 되었다고 한다.

또 직업 세계를 몸으로 직접 체험하며 막연히 진로에 가졌던 환상을 버리거나, 새로운 재능과 재미있는 길들을 찾게 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고. 우리가 인터뷰 한 연구원 마리도 세 자녀들에게 전환학년제가 미래를 고민하고 부딪히는 좋은 기회였다며 만족감과 자부심을 보여줬다.
 
처음 10년간 전환학년제는 성적을 이유로 학부모들이 반대하고 많은 학교가 무관심 해 호응이 적었다고 한다. 그러자 교육부가 회람지를 발간해 일반 대중에게 모호했던 전환학년제 인식을 바꾸고,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또 교사, 학생, 학부모들 간 소통으로 차츰 일선 학교에서 호응해 확대되었다. 현재는 세계에서 모범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우리나라도 아일랜드를 모델로 '자유학기제'라는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책상에 오래 앉혀놓으면 공부 잘한다?
 
학교 기숙사의 야간 자습시간. 커피를 연거푸 두 잔 마시는 친구에게 "야, 커피 마시면 일찍 죽는다"며 충고했다. 그러자 "우리 수명 줄여가며 공부하는 거 아니었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한바탕 크게 웃었지만 이게 우리들의 농담이고 현실이다.
 
지금의 청소년 세대, 우리들. 생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부족하다. 어릴 때는 별 생각이 없다가, 좀 커서 삶에 물음을 제시할 무렵 시험과 수능이라는 체제, 대학 시스템의 꽁무니를 좇아 청소년기를 지난다. 창의성과 체험을 늘리겠다는 활동들은 되려 스펙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학교 공부와 함께 입시 도구로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되었을 뿐이다.

만날 책상에만 앉혀놓는다고 과연 공부를 잘 하게 되는 것인지, 과연 '효율'적인 것인지 모르겠다. 아일랜드에서 전환학년제는 의무가 아닌 선택인데, 전환학년제에 참여한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에 견주어 고 2부터 집중력이 높아지고, 국제학력성취도평가(PISA) 점수가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아보인다.
 
더군다나 밤을 새우고, 똥을 참아가면서까지 공부를 해야 하나? 우리들은 마치 '어른'이 되기 위해 현재를 소비하고 있는 것 같다. 청소년도 분명 지금을 살아가는 중이고, 시민 주체로서 삶을 즐기고 영위할 권리가 있다. 단순 연산과 수능 기출문제 풀이에 그치는 현 교육 시스템의 한계에, 삶을 전반적으로 보고 내일을 준비하는 한 학기가 작게나마 교육 전체를 바꾸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물론, 전환학기제를 적용하는데 교사들에 대한 체계적인 연수 부족과 역량의 미비, 학교 외부와의 협력 부족, 지역 재정 차이에 의한 교육 질 차이, 객관적 평가 기준 부족, 코디네이터에 과다하게 의존과 같은 단점들이 있었다고 필은 덧붙였다. 한국에서 자유학기제를 운용할 때 제도에 대한 이해, 교사들의 체계적인 교육, 가이드라인과 시스템의 구축이 꼭 필요하겠다(어머니는 이번 연수를 통해 자유학기제 코디네이터 역할을 준비하고 계신다).

Meeting with 'Mary'
 Meeting with 'Mary'
ⓒ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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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윤리

아일랜드는 1990년대부터 고속성장을 하며 유럽 최빈국에서 손꼽히는 부국이 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에 휘청했지만 다른 어느 유럽 나라들보다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이 나라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인터뷰 두 건을 옆에서 지켜보며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가 만난 연구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와 지식을 최대한 전달하고자 하며, 뭔가 부족한 건 없는지 끊임없이 묻고, 쟁점과 핵심에 대단히 열정적으로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이들의 모습에서 일에 대한 단순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넘어 이 사회에 배어있는 성실과 몸에 밴 직업 윤리를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을 선진국이라 부르는 것은 단순히 부만이 아니라 결국 이런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있는 모습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늘도 아일랜드 날씨는 너덧 번도 더 바뀌어 소나기를 잠시 피해 처마 밑에 들었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인사 청문회, 이곳 날씨같은 고위 공직자들의 거짓말과 비리를 보며 다시금 이 나라 연구원들의 모습을 곱씹어본다.

덧붙이는 글 | 류옥하다 기자는 열여섯 살 학생기자입니다.



태그:#자유학기제, #전환학년제,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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