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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이나 공동의 위험이나 곤경이 발생했을 때, 도움이 필요하다고 여건상 도울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데도, 특히 자신이 상당한 위험에 처하지도 않고 다른 중요한 의무들을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돕는 것이 가능한데도 그러지 않는 사람은 최고 1년의 징역형 또는 벌금형에 처해진다." 
- 독일 형법 323조 C항

사이코패스 또는 소시오패스들이 저지르는 범죄의 잔학성은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범인(凡人)으로서는 묘사의 솜씨가 달리기도 하거니와 표현하자니 끔찍한 정서상의 이유가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진화(?)하는 동안 발생하는 여러 가지 병리현상은 한 세기 전의 사회학자이자 <자살론>의 저자이기도 한, 뒤르켐이 지적한 대로 그 사회에 속한 개인에 의해 적극적으로 표출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이나 지독한 소외감, 극단적인 풍요와 빈곤과 같은 환경의 외피를 입고서 말이다.

'2011 독일 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스릴러'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 <눈알사냥꾼> 표지 '2011 독일 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스릴러'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 (주)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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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계의 수은주가 삼십 대 후반을 무시로 넘나드는 요즘의 막강한 더위를 무색케 할 만한 소설을 소개한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눈알사냥꾼>.

저자 제바스티안 피체크는 서문을 '서문'이라는 보통의 제목대신 '경고'라는 도발적인 단어를 사용한다. 사실, 이 소설은 자신이 먼저 발표한 <눈알수집가>라는 소설과 한 시리즈라는 것이다.

다행이도 각각의 내용은 독립적이라니 서문은 그저 책 광고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사실 시작부터 자행되는 인물들의 난행을 대하면서 '경고'는 그야말로 임산부나 노약자에게 실제로 제공되어야 할 절차로 생각되긴 했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초르바흐와 알리나. 둘이 화자가 되어 번갈아 이야기를 끌어간다. 또, '사이코스릴러'라는 장르에 맞게 소설 속에는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의학적 용어에 대한 비장한 설명도 만날 수 있다. 예를 들면, '마취 중 각성' 같은 것이다.

저자, 인간사 지극히 드문 경우들 주목

"통계적으로 그 확률은 너무 희귀해서 소수점 앞뒤 자리에 영을 붙여 표현해야 한다. 0.03퍼센트. 마른하늘에 벼락이 칠 확률보다 더 낮은 수치. 그리 위협적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0.03을 만 명 중에서 셋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10만 명이 가득 들어찬 올림픽 경기장에서 서른 명이라고 할 수도 있다. 희귀하지는 하지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아무래도 저자는 인간사의 지극히 드문 경우들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극히 드문 경우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바꿔 말하자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경우로, 그래서 쉬이 무시되거나 잊혀지는 경우로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말하고 싶은 것일까.

눈알 수집가이면서 엽기적인 수술을 감행하는 소설 속 안타고니스트, 주커는 소시오패스다. 안과의사로서는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인데 반사회적 인격장애자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신기에 가까운 의술로 여자들의 눈꺼풀을 제거하는 이유로 드는 변명의 말을 들어보자.

"그 여자들은 성희롱을 당했죠. 그러고는 침묵을 지키고 그 불의의 사건을 덮어두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뇨, 그들은 가해자였습니다. 그 비겁하고 멍청한 년들은 오직 자기 자신만 생각했고, 그렇게 해서 그 후의 피해자들에게 한없는 고통을 안겨주었어요."(p.332)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잔인한 범죄가 범죄가 아닌 단죄라도 되는 양 말한다.
"난 그들이 더 이상 자신의 죄를 외면할 수 없도록 눈을 뜨게 해주죠."(p.327)

소설 <눈알사냥꾼>의 장르는 잔혹한 '사이코 스릴러'다. 한 여름에 읽기엔 그만이다. 왜냐하면, 엽기적인 성폭행 과정을 목격해야 하고, 내가 0.03%의 발병확률을 가진 끔찍한 증상의 희생자가 되지 않길 바라야 한다.

또, 각막상피줄기세포 이식수술과정을 상상해야 하며, 막판 주인공의 행동이, 중증의 환자들이 반짝 기력을 회복해 평소와 같이 활동하는 증상인 '회광반조'가 아니기를 조바심 내며 간절히 바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글 첫머리에 인용한 독일형법 323조 C항과 같은 페이지에서 저자는 마틴 루서 킹 Jr.가 한 말을 남기면서 '대중의 무관심은 죄악'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비난과 공격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침묵이었음을."

덧붙이는 글 | <눈알사냥꾼> 제바스티안 피체크 저, 영정용.장수미 옮김, (주)자음과모음, 2014년 3월 31일 발행



눈알사냥꾼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염정용.장수미 옮김, 단숨(2014)


태그:#눈알사냥꾼, #마취 중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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