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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사람이 들끓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언제나 사람이 들끓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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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어가고, 경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면 평범한 시민은 무엇이 이득일까. 모든 사람의 소득이 정확히 3만 불이 된다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대한민국이 그토록 바라던 선진국이 되고, 서울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세계적인 도시가 된다.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잘 먹고, 각자 원하는 좋은 집에서 지내는 이상적인 사회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수치상으로는 한국이 단군 이래 가장 잘 사는 시대라고 하지만, 현실적인 체감으로는 가장 불평등한 사회가 됐다. 물론 세계의 많은 사회도 이러한 현실에 처해 있다. 이 현실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 개인들을 모아놓고 보면 그 문제는 당연히 사회 문제로 귀결된다.

현재 세계 여러 도시에서는 인터넷이 없고, 비행기가 없던 과거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사회적 문제가 일어난다. 그중 하나가 난민에 대한 것이다.

저항해야 쉽게 철거 당하지 않는다. 베를린 오라니엔 광장의 난민캠프를 유지하라.
▲ 난민들을 지지하는 플래카드 저항해야 쉽게 철거 당하지 않는다. 베를린 오라니엔 광장의 난민캠프를 유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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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 수없이 들었지만, 정작 제대로 느껴본 적은 없는 이 개념은 과거에는 지위가 높은 개개인에게 주어진 개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에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도시와 국가에도 의무를 부여한다.

선진국은 각종 국제기구에 가입하여 자연스럽게 국제사회의 규율과 여론에 떠밀려 좋건 싫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게 된다. 그 실천은 대기업 회장이나 잘 사는 개인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국가가 한다. 당연히 그 자원은 국민의 피땀과도 같은 세금으로 충당된다.

내전, (정치적) 탄압, 회복 불가능한 자연재해 등으로 국가를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을 임시로 혹은 영구적으로 받아들이는 난민 프로그램은 그런 노블레스 오블리주이면서 동시에 인류애를 실천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다.

대한민국도 수많은 난민이 있다

사실 대한민국에는 이미 수많은 난민이 있다. 북한에서 넘어온 난민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인데, 그들을 난민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단순 탈북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난민이 많은 나라임에도 한국인에게 난민이라는 개념은 굉장히 생소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수치상으로 점점 잘 사는 나라가 된다면 북한 난민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의 난민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몰려오게 될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점점 늘고 있는 현 상황만 보더라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문제는 단지 자국에서 성공한 사람들만이 몰려오는 것이 아닌, 돈이 필요한 사람, 실패한 사람, 쫓겨난 사람, 성공하고 싶은 사람, 외로운 사람,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사람,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 등 기존의 사회 구성원만큼이나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새로 유입된다는 것이다. 한국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상황 속에서 예상할 수도 없는 다양한 사람들을 맞이해야 한다.

어떤 인간도 불법적인 사람은 없다.
 어떤 인간도 불법적인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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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가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와 국가의 입장에서 실천해야 하는 선진국의 의무와도 같다. 난민들은 영구적으로 아니면 적어도 임시로 그 땅의 누군가가 오랜 세월 힘겹게 땀을 흘려가며 지불한 세금을 통해 삶을 영위하게 된다.

제일 아이러니한 상황은 아마 대한민국같이 경제력은 높지만, 빈부격차가 심한 사회 구조 속에서 쉽게 일어날 것이다. 정작 자국민은 집도 없는 사람, 밥 먹을 돈 없는 사람, 수입이 변변치 않은 사람이 많고 집이 있어도 생활환경이 열악하고, 밥도 끼니를 때우는 수준으로 사는 사람이 많은데도, 다른 나라에서 온 난민들은 그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되고, 내 수입 이상으로 보조금을 받게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사는 독일 베를린만 보더라도 난민들을 위해 시민 스스로 임대주택을 구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또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난민에게 언어 교습과 직업을 제공한다. 그들을 위한 세금이 아까울 수도 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렇게 사용되는 세금은 이미 어려운 국가들을 위해 사용되는 공적 원조금과 별반 차이가 없다. 작년에는 세금의 일부인 약 1조 8천억 원(약 17억 달러)이 공적 원조로 투자되었다.

유엔 권고안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약 5배 이상 공적 원조금을 증대해야 한다. 즉, OECD 등의 회원이 되고, 경제가 성장할수록 기본적으로 남을 위해 무상으로 지원해야 하는 책임이 커지는 것이다. 물론 이 돈이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없다. 어떠한 단체에 낸 성금과 기부금이 이상한 데 쓰이거나 아니면 아예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경제 위기 여파로 국민들이 힘든 스페인과 그리스 역시 공적 원조금을 내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생긴다. 이 두 나라에도 끊임없이 난민이 몰려오고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은 규모와 관심의 차이가 있을 뿐 대한민국에서도, 독일에서도 그리고 공적 지원을 하는 모든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

독일, 공적원조 규모 세계 3위지만 난민 문제 심각

베를린 오라니엔 광장 난민 캠프.
 베를린 오라니엔 광장 난민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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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공적원조 규모가 세계에서 3위(약 141억 달러)에 달하는 국가다. 무서운 사실은 이미 대한민국의 8배에 가까운 공적원조금을 내고 있는 독일도 유엔 권고안에 따르면 지금보다 약 2배의 공적원조금(우리나라가 내는 지원금의 약 16배인 약 28조)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 공적원조금을 떠나서 독일 도시에는 난민들이 많다.

지난 4월 9일 수요일, 모든 베를린 신문과 매체 1면에는 오라니엔 광장의 아프리카 난민 임시 캠프장 철거 소식이 나왔다. 추방도 아닌 불법적인 난민 캠프를 철거하는 것이 이토록 주목 받은 이유는 다양했다.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라는 젊은이에게 인기 만점의 동네이자 녹색당 등의 진보적 정당 활동이 활발한 지역구에 위치한 난민 캠프라는 점이 한몫했을 것이다.

철거가 주목받은 이유 중 하나는, 경찰들이 혹은 용역업체가 각목과 방망이를 들고 와서 때려 부순 것이 아니라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난민이 스스로 철거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난민이 스스로 임시 캠프를 철거하는 상황에서 시민들과 각종 단체가 철거를 반대하며 철거하지 말고 계속 지내라고, 방해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물론 난민들이 스스로 철거했지만, 그 철거 과정에서 난민들끼리의 분쟁이 일어나는 등 실질적으로 난민과 정부 간의 협상이 그리 매끄럽게 결정된 사항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최종 철거에 앞서 1200명의 시민들이 모여서 철거를 막으려고 노력했으나, 결과적으로 오라니엔 광장에 있던 난민 캠프는 완전히 해체됐다.

지난 1일, 베를린 오라니엔 광장에서 열린 거리 시위의 모습.
 지난 1일, 베를린 오라니엔 광장에서 열린 거리 시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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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난민 캠프가 있던 자리는 '난민을 지키자'는 메시지를 담은 시설물과 현수막이 남아있다. 난민들은 정부와 약속한 임시 숙소인 호스텔에서 한 달간 지냈지만, 결국은 시간이 지나 스스로 살 장소를 찾아했다.

사실 철거하는 대가로 베를린 시 내무부의 한 여당의원은 난민들과 시 정부 협상 시 안정적인 주거권과 상담치료, 독일어 수업 등을 제공하는 데 동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철거한 후에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난민들을 다시 빈 학교 건물에서 지내게 됐다.

한동안 조용해졌던 이 문제가 다시금 각종 매체에 기사로 실렸다. 경찰의 난민 강제 퇴거 작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퇴거 명령이 내려진 사실이 알려진 뒤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과 각종 단체는 학교 주변에 진을 치고 강제퇴거를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다수 난민들은 경찰력에 의해 강제로 퇴거됐고, 다시 도시 외곽의 난민 캠프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난민이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것을 막은 악의적인 조치였다.

이에 시민들은 조를 짜서 난민을 지키기 위해 학교 근처 구역을 막아 놓은 경찰 펜스 앞에서 숙식하며, 24시간 경찰들을 감시하고 난민의 목소리를 널리 알리고 있다. 도시 곳곳에서 난민들을 위한 바자회를 열었고, 거리와 광장에서는 수천 명이 모여 난민들의 강제퇴거 및 추방에 반대하는 시위를 했다.

지난 1일에도 베를린 학생과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약 2000여 명이 거리를 행진하는 시위가 있었다. 하지만 동일한 날, 더 이상 철거작전은 없을 것이라고 했던 시 정부의 타협안으로 평화가 감돌던 지역구에서는 다시금 강제퇴거 명령이 집행됐다.

난민들이 남아있는 학교 근처 거리에서 시위하는 시민들의 모습.
 난민들이 남아있는 학교 근처 거리에서 시위하는 시민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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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강제퇴거작전을 피해 학교 지붕에 남아있는 난민들은 SNS 등을 통해 "Humanität(인도주의, 박애)"를 외쳤다.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임시 캠프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더 열악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한 독일 기사는 난민들 고향의 삶의 수준이 끔찍한(katastrophal) 즉, 재앙 혹은 파국적인 상황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지난 몇 개월간 난민을 내쫓기 위한 시 정부 그리고 지역구 노력과 난민을 지키기 위한 시민들과 시민단체들의 노력은 끊임없이 마찰을 빚었다.

난민들을 지키기 위해 시위하는 시민들의 모습.
 난민들을 지키기 위해 시위하는 시민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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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그리고 독일이 모든 난민들을 수용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베를린은 이미 평범한 시민이 살기에도 점점 팍팍해지고 있기 때문이고, 저렴한 주택이 극심하게 부족해지고 있는 상황이니까 말이다.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이주의 자유와 국경 없는 세상도 쉽게 이뤄낼 수 없다. 누구 한쪽의 편을 들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모르는 척 내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이 모든 사건이 한국 사회도 언젠가는 맞닿게 될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 알겠지만, 난민들이 지내던 지역은 베를린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지역이고 동시에 녹색당의 심장과도 같은 지역구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난민이 요구했던 작은 인권조차도 지켜주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두고 언론은 "녹색당의 정치적 자살"이라고 평을 내리기도 했을 정도였다. 정부에게 속은 채 자신의 지역구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난민들을 도와주지는 못하고 오히려 난민 추방 작전을 실행한 장본인이 바로 녹색당이었기 때문이다.

양극화 심해질수록 약자 보호하고 지원하는 의무 높아져

시민들은 밤낮없이 난민 추방을 막기 위해 농성을 이어나갔다.
 시민들은 밤낮없이 난민 추방을 막기 위해 농성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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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단 한 번이라도 우리집 앞에, 출근길에 그리고 직장 앞에 처음 들어본 나라에서도 온 난민이 캠프를 차려 사는 모습을 상상한 적이 있는가? 자국민인 거지조차도 못마땅해하고 자국민인 노숙자가 집 앞에 숙식하는 것도 상상 못 하는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더이상 단순히 수치상으로 잘 사는 사회와 선진 도시가 되는 것만을 꿈꾸면 안 된다. 게다가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역으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지원해야 하는 의무가 높아진다. 잘 산다는 것의 책임에 기초적인 준비는 되어 있나 스스로 물어야 한다.

못 먹고 못 입는 불쌍한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엄청난 기부금을 보낼 수는 있지만, 우리 집 앞에서 못 먹고 못 입은 채 텐트를 치고 사는 노숙자와 난민의 권리를 생각할 수 있는 사회인가 묻고 싶다.

이 기사의 결론은 난민을 받아들여야 선진국이 된다는 것이 아니다. 또한 못사는 사람들을 도와줘야 선진국이 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 전 세계적으로 선진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범국가적인 문제를 받아들일 기초적인 준비가 되어 있느냐 묻고 있다.


태그:#독일, #베를린, #난민, #시민,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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