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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의 김기협 저자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의 김기협 저자
ⓒ 박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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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두 달에 한 번쯤은 유시민씨를 꼭 만나는데요. 지난번에는 '어린이 참정권'의 필요성을 설명했습니다. 당신은 나보다 영향력이 큰 사람이니 이 문제를 좀 이슈화해달라고요. 유시민씨가 한참 듣더니 자기 생각도 이게 꼭 필요할 거 같다며 할 수 있는 데까지 돕겠다고 하더군요. 지금처럼 노인들의 의사만 과잉 대표되는 민주주의로는 저출산고령화나 연금문제·복지문제 등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6월 28일 오후 서울 신촌의 한 이야기 카페. 독서모임 '경연'에 참여하는 20∼30대 청년들이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의 저자 김기협씨를 만났다. 조선의 왕을 교육했던 국정세미나인 '경연'에서 이름을 따온 이 독서모임은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모든 국민들이 성군이 되는 그날까지'라는 모토 아래 평생학습과 저자와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김기협 저자와의 만남까지 벌써 94번째 독서모임을 진행했다.

다년간 중국사를 중심으로 동·서 문명사를 폭넓게 연구해온 김기협 저자는 2008년 한국사를 '국사'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보다 합리적인 역사관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밖에서 본 한국사> <뉴라이트 비판> 등의 책을 펴냈다. 그리고 2010년엔 한일합방 100주년을 맞아 망국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시각의 제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를 펴냈다.

"1910년에 망국했는데 식민지로 전락했던 한국 민족사회가 아직도 그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근대화의 수레바퀴 앞에서 유린당하고 상실되었던 전통의식을 회복하는 데 목적의식을 가져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합니다."

논의의 말문은 최근 낙마한 문창극 총리후보자의 '조선왕조 500년은 허송세월' 발언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대화는 곧이어 공공성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세도정치와 구한말 이후로 이 땅에서 길을 잃고 사라져버린 '공공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와 관련해 김 저자는 권력과 책임의 호응 여부, 즉 사회 지도층의 공공의식의 존재여부가 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임을 강조했다. 그는 사회에 건강한 불평등과 차별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차별이 있더라도 사회 구조 속에서 특권층이 혜택 못지 않게 사회 복리를 위해 공헌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외세에 안보 의지하며 공공성 사라져

김기협 저자와 참가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기협 저자와 참가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박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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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나라 특권층의 공공의식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나라의 안보를 외세에 의존해온 관행에서 찾았다. 고려 말부터 원나라에 정권 안보를 의지하기 시작하면서 민생을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특권층인 자신들이 쫓겨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사라졌다는 것.

최근 KBS 드라마 <정도전>이 재조명한 것처럼 일부 조선의 건국세력은 이 문제에 정면 도전하기도 했고, 조선 초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도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또다시 안보를 외세에 의존하는 나쁜 전통이 되살아났음을 지적했다.

그는 "구한말의 조선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그래도 매천 황현과 같은 지식인과 을사조약을 끝까지 거부한 한규설 등 유교적 소양을 제대로 갖춘 관료들에게는 공공성에 대한 원칙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선 망국 이후 일본 제국주의가 국권을 찬탈하게 되면서 특권층이 혜택은 누리되 책임은 생각지 않는 풍조에 물들게 됐다는 것. 또한 해방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진주하고 작전통제권을 미군에 이양하는 등 안보를 외세에 의존하며 공공성이 완전히 되살아나지 못했다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재정파탄 면하려면 어린이 참정권 부여해야

또 한 가지, 저자가 힘주어 강조한 것은 어린이 참정권이었다. 읽고 쓸줄만 안다면 갖난아이에게도 투표권을 줘야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이다. 투표 연령을 20세에서 19세로 한살 낮추는 데도 수십 년이 걸렸는데, 어린이 참정권이라니?

"어린이에게도 참정권을 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황당하게 들리죠? 100여 년전, 여성 참정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되돌아보면 지금 어린이 참정권을 생각하는 것처럼 황당하게 생각했어요. 당시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면 부부간의 신뢰관계가 무너질 것이라 걱정했거든요. (웃음) 지금으로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는 여성참정권이 과거엔 얼마나 황당했는지 되새기며 어린이 참정권을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이날 경연은 김기협 저자의 권유로 토론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친일, 망국의 의미, 사회 공공성을 가로 막는 장벽, 극복방안 등 여러 주제에 대해 열띤 토론이 이뤄졌다.
 이날 경연은 김기협 저자의 권유로 토론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친일, 망국의 의미, 사회 공공성을 가로 막는 장벽, 극복방안 등 여러 주제에 대해 열띤 토론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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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복지는 늘리되 세금은 더 걷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는 곧 현재 투표권을 가진 기성세대가 투표권이 없는 다음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선거할 때마다 국가고 지방자치단체고 빚을 늘이며 당장 흥청망청하겠다는 무책임한 선택으로 쏠리는 것은 인구노령화에 따른 어쩔 수없는 현상입니다. 민주적 결정장치가 목전에 이익만 바라보는 쪽으로 쏠리게 되는 것은 인구 노령화 사회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거든요."

김 저자는 우리사회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서는 어린이에게 참정권이 부여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빠른 인구노령화로 미래세대를 위한 정책보다 노인 정책이 더 우선시 되고 있는 추세라는 것.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발언권을 늘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독서모임 '경연'은 오는 7월 26일 오후 3시에 신촌 이야기카페 미플(1강의실)에서 최근 <대한민국 어디로 갈 것인가>를 펴낸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를 초청해 95번째 저자와의 대화를 열 예정이다.


태그:#김기협, #망국의 역사, #경연, #독서모임, #다준다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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