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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6월 29일 용산 화상경마장(마권 장외발매소) 시범개장에 반대하는 용산화상도박경마장추방대책위 주민들의 시위
 6월 29일 용산 화상경마장(마권 장외발매소) 시범개장에 반대하는 용산화상도박경마장추방대책위 주민들의 시위
ⓒ 용산화상도박경마장추방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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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이슬도 덜 깬 이른 시각인 오전 6시 여성들의 비명 소리와 남성들의 고함 소리가 용산의 고요를 깼다. 비명의 주인공은 수녀님들이고, 고함의 주인공들은 현직 교사들이다. 그들은 왜 일요일 새벽에 비명을 질러야 했고, 왜 길바닥에 드러누워야 했을까?

한국마사회(회장 현명관)가 추진하고 있는 용산 화상 경마장(경마장 장외발매소) 때문이다. 화상 경마장을 새로 개장하려고 하는 이곳은 아파트와 주택이 들어선 주거 밀집지역이며, 불과 200여m 떨어진 곳에 성심여중·고, 원효초등학교 등 6개의 초중고와 유치원이 자리 잡고 있다.

현행 학교보건법은 학교 반경 200m내에 유해업소를 짓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화상경마장은 원효초등학교와는 210m, 성심여중고와는 230m 정도 떨어져 있다. 걸어서 5분 정도 거리다. 법으로 따지면, 10m~30m 차이로 불법이 아니라지만 학생과 학부모, 교사를 비롯한 주민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교육환경과 주거환경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는 것이다.

화상경마장으로 인한 교육권 침해는 불가피하다. 또 걸어서 5~6분 거리의 등하굣길에 위치하고 있는 경마장은 학생들의 등교권에도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성심여고의 김율옥 교장 수녀님과 성백영 교감을 비롯해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이 한목소리로 거세게 반발하는 이유다.

끊이지 않은 학부모들의 울음과 비명 소리

이날 화상경마장 기습 시범개장을 위해 동원된 마사회 직원과 문신을 한 건장한 사내들을 막기 위해서 수녀들은 몸을 던져야 했고, 교사들은 길바닥에 드러누워야 했다. 학부모들의 울음과 비명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부상자도 발생해 앰뷸런스가 출동했다. 한국마사회측은 현행법상 문제가 없기 때문에 화상경마장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마사회측은 '주민과의 합의 없이 개장하지 않겠다'던 당초 약속도 깨고 시범 운영이라는 미명 하에 기습 개장했다.

이런 일이 21세기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 그것도 학교 앞 대로변에서 벌어지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조희연 서울교육감뿐 아니라 이 지역 진영 새누리당 국회의원, 성장현 구청장(새정치민주연합), 그리고 시의원, 구의원 대부분이 용산 화상 경마장 개장을 반대하고 있다.

특히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지난달 29일 '자녀들의 교육 환경보다 경마 도박장 개장이 더 중요한가?'라는 긴급 성명서를 통해 "어른들이 돈벌이만을 위해 다른 가치를 돌아보지 않았을 때,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당할 수 있는지, 벌써 잊으셨습니까? 한국 마사회는 지금 즉시, 폭력적으로 화상경마장 입주를 강행하려는 시도를 중단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마사회를 규탄하며,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했다.

화상경마장 기습 시범개장을 강행하려는 마사회와 이를 막으려는 학부모, 교사들이 몸싸움을 벌이던 그 현장에 우원식·조경태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과 같은 당 장하나·김상희 의원 등이 나타났다. "지금까지는 아이들의 교육환경을 지키는데 교사와 학부모들이 나섰는데, 이제부터는 국회가 앞장서겠다"는 우원식 최고위원의 말을 들은 김율옥 교장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국회의원, 교육감, 시장... 모두가 반대하는데 왜?

수도한복판, 학교 바로 앞에 세워지고 있는 화상경마장을 반대하는 단체들의 기자회견. 우원식, 조경태, 장하나 등 국회의원들도 참여하여 마사회를 규탄했다.
 수도한복판, 학교 바로 앞에 세워지고 있는 화상경마장을 반대하는 단체들의 기자회견. 우원식, 조경태, 장하나 등 국회의원들도 참여하여 마사회를 규탄했다.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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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나 의원은 토요일과 일요일, 충돌 소식에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배낭을 메고 가장 먼저 나타나 김밥을 먹으면서 마지막까지 현장을 지켰다. 장 의원은 "마사회가 당장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를 따라 경마장 개장을 중단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유해시설을 학교 밖 500m 밖으로 내보내는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혀 학부모, 교사들의 박수를 받았다.

지난 1일 국회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우리 아이들의 교육환경과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사행시설에 대해 시범운영 운운하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라며 "학교 옆에 도박꾼이 들끓는 사회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라고 밝혔다. 통합진보당이나 정의당 등 다른 야당들의 입장도 비슷하다.

현재 언론들도 이 문제를 앞 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일부 언론들은 사설과 논평 등을 통하여 '학교 앞 도박장 설치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학교 교사들과 학부모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대부분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용산구 주민 25만명 중 17만명이 화상경마장 반대 서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상경마장을 시범개장한 지난 28일 인근 교회의 개신교 신도들은 기도회를 열었고, 뒤이어 신부님과 수녀님들, 가톨릭 신자들이 같은 장소에서 미사를 열어 화상 경마장 설치를 비판했다.

카지노, 경마장, 오락실 등을 관리·감독하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와 국무총리 소속 국민권익위원회는 도박장의 도시 외곽 이전과 장외 발매 비율 축소 등을 촉구하면서 사실상 용산 화상경마장을 반대하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렇게 국가기관, 정치권, 교육계,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 주민들까지 한 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는데 한국마사회는 요지부동이다.

주민들의 극한 반발에도 막무가내인 마사회

지난달 29일 벌어진 아수라장에는 문신을 한 건장한 사내들이 여럿 있었다. 이들은 욕설을 하고, 옷을 벗고 난동을 피웠다. 학부모와 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평생 들을 욕을 이틀 사이에 다 들은 것 같다, 난동을 피우는 걸 보니 도박장을 막아야 한다는 결심이 더욱 확고해졌다"라며 "저런 사람들이 학교 근처로 몰려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고 분개했다.

이제 분명해졌다. 학교 앞에 도박장을 새로 개설하는데 찬성하는 쪽은 이윤에 눈 먼 마사회와 전문도박꾼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다. 전문도박꾼들이나 도박중독자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마사회는 무엇을 믿고 저렇게 막무가내일까?

마사회는 1년 예산이 수조에 이르는 공룡 공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회장은 삼성물산 출신의 현명관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원로 측근 모임인 7인회 출신으로 알려진 그는 73세 고령임에도 34대 마사회장으로 취임했는데,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하며 대통령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이 기본인 공기업 마사회에, 공기업 운영과 관련된 어떤 전문성도 갖지 않은 현명관씨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불행이 잉태된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공기업이 사행산업으로 분류되는 화상경마장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모순으로 보인다. 도박장을 운영하는 영리 사기업도 국민 눈높이에선 달갑지 않은데 어떻게 국가가 사행산업을 추진하는 공기업을 운영할 수 있단 말인가? 국가가 러브호텔을 운영하는 공기업을 만들고, 그 공기업이 학교 앞에 러브호텔을 짓겠다는 것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잘 모르겠다.

화상경마장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 입장은 뭔가

학교 앞에 개장을 시도하고 있는 용산화상경마장을 반대하며 지난 29일 용산지역의 개신교 목사와 신자들이 기도회를 열고, 이어서 가톨릭 사제들과 신자들이 미사를 열고 있다. 학교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뿐 아니라 지역주민과 종교인들까지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
 학교 앞에 개장을 시도하고 있는 용산화상경마장을 반대하며 지난 29일 용산지역의 개신교 목사와 신자들이 기도회를 열고, 이어서 가톨릭 사제들과 신자들이 미사를 열고 있다. 학교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뿐 아니라 지역주민과 종교인들까지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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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현명관의 마사회가 박근혜 대통령의 존재를 믿고 모두가 반대하는 화상경마장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묻는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입장은 무엇인가?

지난달 29일 성심여고 김 교장은 "아이들을 데리고 청와대에 가는 것 빼고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는데 잘 되지 않아 이 지경까지 왔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교장, 교감 이하 모든 교사들이 학부모, 학생들과 한목소리로 '학교 앞 도박장은 절대 안 된다'는 직접 행동까지 하였음에도 요지부동으로 강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한탄한 말이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바로 이 학교 출신이다. 지금까지는 동창회나 학교 당국도 공개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나설 것을 요구하는데 신중한 입장이었다고 한다. 교사들은 집회에 나오겠다는 학생들을 말리는 중이라 한다. 그러나 상황이 악화되면 대통령 모교의 교사들과 학부모들, 어쩌면 대통령의 후배들이 청와대에 나타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지난 대선에서 교육환경 개선 등 수많은 교육 분야 공약을 내놓았다. 지금 이 문제를 가장 빨리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누군가 말했다. "학교 앞 용산 화상 경마장은 육지의 세월호다"라고. 세월호 참사가 이윤에 눈이 먼 어른들이 벌인 사고라면, 학교 앞 화상 경마장 역시 돈벌이에 눈 먼 기업과 도박꾼들이 빚어낸 비참한 결말이라 할 수 있다. 어른들, 특히 청와대에 있는 성심 졸업생 박근혜 대통령의 처절한 반성과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태그:#용산, #화상경마장, #박근혜,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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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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