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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기도가 늦은 시간까지 지극하게 이어지고 있어서 인지 처마 끝 풍경도 잠들지 않고 뎅그렁 거리고 있었습니다.
 산신기도가 늦은 시간까지 지극하게 이어지고 있어서 인지 처마 끝 풍경도 잠들지 않고 뎅그렁 거리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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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입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광명천지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혹세무민하지 말라며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증인과 증거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기록도 있지만 국가 기록으로 남은 사실도 있습니다. 우연이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이런저런 기적들 모두를 우연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지리산 천왕봉 동쪽 기슭 해발 1450m,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 있는 법계사는 544년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했다고 합니다. 1470년이나 되는 장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절이지만 6·25전쟁을 피하지 못해 불타고 말았습니다.

법계사는 중창에 가까운 복원불사가 이뤄져 지금에서야 여느 절과 같은 사격을 갖추었습니다. 법계사는 적멸보궁이 주 법당이고, 적멸보궁 뒤 바위 위에는 보물 제473호로 지정된 법계사 3층 석탑이 있습니다.

법계사 하루는 쏟아지는 별빛 같은 목탁소리로 시작

법계사의 하루는 새벽 4시, 도량을 일깨우는 목탁소리로부터 시작됩니다. 어느 절에서나 그 시간쯤이면 도량을 일깨우는 목탁소리가 들리지만 새벽 잠결에 들려오는 법계사 목탁소리는 무수히 쏟아지는 별빛 같습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내려다 본 산하
 지리산 천왕봉에서 내려다 본 산하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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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높은 곳에서 한여름 한밤중에 쏟아지는 별빛을 본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조금 생소한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필자 역시 2001년 7월 19일 오전 2시께, 지리산 연하천대피소에서 우연히 새벽 밤하늘을 보고 나서야 '별빛이 쏟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이 부르르 떨릴 만큼 머리와 가슴으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잡념 없이 푹 잘 잔 사람에게는 쏟아지는 별빛만큼이나 청아하게 들리는 목탁소리지만 이런저런 잡념 때문에 뒤척이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사람에게는 번쩍하고 빛나던 섬광 뒤에 들려오던 천둥소리만큼이나 잡념을 흔들어 깨우는 야단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앞서가는 목탁소리에 맞춰 뒤따라 들려오는 스님의 독경소리도 참 좋습니다. 뜻을 제대로 새기지 못해도 좋습니다. 곤히 잠들어 있는 나를 흔들어 깨우던 어머니의 손길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조금만 더 자겠다며 버티던 나를 벌떡 일어나게 하던 아버지의 호령소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지리산 천왕봉 표지석
 지리산 천왕봉 표지석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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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같은 목탁소리로 새벽 도량을 연 법계사 하루는 여느 절과 조금도 다를 게 없습니다. 새벽예불을 올리고, 사시예불을 드리고, 저녁예불 또한 말 그대로 여법(如法)하게 올리고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게 출가 본래의 뜻인 스님들, 출가 수행자가 걸어야 할 구도의 길을 솔바람처럼 따라 걸으며 물결소리처럼 탁마해 가는 스님들이 계시는 도량이니 어쩌면 당연한 풍경입니다. 

절은 발심과 귀의 그리고 복을 키워내는 텃밭

절은 절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3가지를 일구게 하는 텃밭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 첫째는 절을 찾는 이들이 부처님(가르침)을 믿고 따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싹트게 하는 텃밭 '발심처'입니다. 절을 찾아갔는데 마음이 편해지기는커녕 도리어 불편해지거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면 발심은커녕 절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할 것입니다. 씨가 있어야 싹을 틔울 수 있듯이 일단은 믿는 마음, 믿고 싶어지는 계기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니 절은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위안이 되고, 의지하고, 기대고 싶은 곳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따르게 하는 '귀의처'가 되어야 하고, 셋째는 부처님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기며 실천함으로 복을 짓게 하는 텃밭인 복전(福田)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세 살배기도 아는 거지만, 여든 살 먹은 어른도 힘든 게 실천입니다. 부처님 말씀, 부처님 가르침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고, 암송하기는 쉬울 수 있지만 어느 것 하나 곧이곧대로 실천하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기에 평소에는 실천하지 못하지만 절에서라도 육바라밀을 실천하다 보면 그 자체가 복을 짓는 일이 되고, 실천하고 행동하다 보면 어느 새 습(習)이 돼 일상에서도 시나브로 복을 짓게 되는 생활을 함으로 부지불식간 복으로 돌아올 공덕을 쌓아가는 복전이 될 것입니다.

지리산 천왕봉과 법계사
 지리산 천왕봉과 법계사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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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사까지 가는 길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평등하게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땀 뻘뻘 흘리고, 숨 헉헉 거리며 들어서는 법계사는 이미 발심처입니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을 믿고 싶은 마음이 봄비와 함께 뿌려진 새싹처럼 저절로 일어나는 게 가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때로는 부처님 말씀을 전하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를 위해 함께 기도해 주는 스님들이 계시니 법계사로 들어선 이는 이미 부처님 가르침에 마음을 의지하게 되고, 부처님 위신력에 가슴을 기대게 되는 의지처가 됩니다. 마음은 경건해지고, 몸가짐을 조심하게 되어 육바라밀을 행합니다. 어느새 복을 짓고 있는 복전 도량이 되는 곳이 법계사입니다.

산신기도가 지극한 법계사, 기도발 최고

범종 타종식이 있던 지난 6월 10일, 부처님 도량이기에 발심처가 되고 귀의처가 되고 복전으로만 생각했던 법계사에서 산신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법계사에서 올리는 산신기도는 너무도 간절하고 지극해 감명이 깊었습니다. 흐느낌만큼이나 간절하고, 몸부림만큼이나 지극한 감명이기에 산신기도를 다시 한 번 좀 더 자세히 보려고 지난 28일, 1박2일로 법계사에 다녀왔습니다. 법계사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산신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법계사 산신각
 법계사 산신각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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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 산신령이라고 하면 '미신'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산(山)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산에 따라 붙은 신(神)이나 신령(神靈)이란 단어 때문에 그럴 겁니다. 사람도 몸뚱이만 있는 게 아니라 정신도 있습니다. 그래야만 온전한 사람입니다. 이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정신이 없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에게 정신이 있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산신이나 산신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할 뿐 산에도 생명을 틔워내는 기운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산신이나 산신령이라는 말은 어떤 괴상하고 야릇한 존재를 특정하는 것이 아니라 산에 있는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기운'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힘을 상(모양)으로 표현하고 그려내다 보니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 모습이 등장했을 것입니다.

인간은 어떤 모양을 보면 마음을 일으키는 상중생(象衆生)이라고 했습니다. 불상이 부처님 자체가 아니고, 십자가 또한 예수님 자체가 아니지만 불상이나 십자가를 보며 어떤 믿음이 일어나기도 하고, 기도를 올립니다. 산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에서 '산신'을 석사 논문으로 쓴 데이비드 A. 메이슨(David A. Mason)이 지은 <산사>(한림출판사, 2003)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있는 3000여 절 중에서 2400여 곳에서 산신을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산신은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는 보편적 신앙임에도 때로는 미혹한 행동으로 터부시 되거나 치부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매년 곡우절 경에 노고단 산신제를 올리는 남악사. 화엄사 입구에 있습니다.
 매년 곡우절 경에 노고단 산신제를 올리는 남악사. 화엄사 입구에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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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의 경험에 의하면 전국을 누비며 만났던 사람(승려, 학자 등)들 중에서 산신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편견과 선입견에 의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지리산에는 산신 할머니가 마고 할머니와 마야 부인 두 분

지리산은 그 크기가 워낙 커서인지 산신 할머니가 두 분 계시다고 합니다. 한 분은 노고단 쪽에 계시고, 다른 한 분은 천왕봉에 계신다고 합니다. 노고단에 계시는 할머니는 마고 할머니입니다. 천왕봉 쪽에 계시는 산신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라는 설, 박혁거세 어머니인 선도성모 설, 고려 태조왕건을 낳은 위숙왕후라는 설이 있습니다.  

전주대학교 송화섭 교수가 '지리산의 노고단과 성모천왕'(한국도교문화학회, 도교문화연구, 제27집 2007.11, page(s): 245-278)을 통해 '천왕봉의 성모천왕상은 백의관음보살이 산신으로 응신(應身)하여 하얀 옷을 입은 여성으로 나툰' 응신불로 결론짓고 있습니다.

천상(天上)의 달을 법신(法身), 우주에 가득 찬 광명은 보신(報身), 강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화신(化身)으로 비유해 설명한다면 이 셋은 셋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셋이 됩니다. 논문은 천왕봉 산신이 이 셋 중 달그림자로 비유할 수 있는 부처님의 화신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법계사 산신각에 봉안된 천왕봉 산신할머니
 법계사 산신각에 봉안된 천왕봉 산신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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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법계사 산신각 현판
 지리산 법계사 산신각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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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문화원 향토사 연구가 조용호 또한 '지리산 산신제에 관안 연구'(동양예학 4집, page(s): 127-194)를 통해 지리산 산신 중 한 분은 '마야 부인이 다시 현신(現身)한 것이며, 마고 성모와는 별개의 여신'으로, '마야 부인은 구세주를 낳아 중생들을 교화하도록 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는 설명으로 천왕봉 산신이 마야 부인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노고단 아래쪽, 화엄사 입구에는 남악사가 있고, 남악사에서는 1969년 이래 매년 4월 20일 경 곡우절(穀雨節)을 기하여 군민의 날 행사와 함께 지리산약수제(智異山藥水祭)라는 이름으로 (산신)제례를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천왕봉에는 삼국시대부터 수호신 전통을 가진 산신, 36척이나 되는 산신 할머니가 모셔져 있었음에도 일제강점기에 훼손되고 단절된 이후부터 천왕봉 산신을 위한 산신제는 치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중단되었던 천왕봉 산신제는 현재 법계사 주지인 관해 스님이 2004년 법계사 주지로 계시기 시작하면서 지금껏 다시 지내고 있습니다.

14살에 동진 출가한 법계사 주지 관해 스님

관해 스님께서는 14살에 동진(童眞) 출가를 하셨습니다. 초등학교를 막 졸업한 14살, 아직은 부모님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 할 앳된 나이던 1971년에 승보종찰 송광사 현 방장이신 보성 스님을 은사로 구도의 삶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관해 스님께서 들려주시는 출가 이유는 진한 아픔이며 가난한 배고픔입니다. 여느 스님들 행장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불법에 깊은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고, 설화에나 나올 법한 숙명적 인연이 있어서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너무 가난하고, 아플 정도로 배가 고파서 그 가난과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출가했다고 합니다.

신도들 보다도 더 지극한 모습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는 관해 스님
 신도들 보다도 더 지극한 모습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는 관해 스님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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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에 출가 해 73년에 사미계를 받고, 75년에 구족계를 받으셨다고 하니 관해 스님께서 출가 수행자로 산 법랍은 어언 43년째이고, 열심히 공부하고 게으름 피지 않으며 일하다보니 이판과 사판을 겸한 선승이 되셨습니다. 송광사, 해인사 금산사 등에서 공부도하고 생활했지만 광주 무등산 증심사에서 10년, 화순 쌍봉사에서 13년 그리고 법계사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기간이 어느새 11년째 이니 이 세 곳에서 보낸 세월이 스님께서 보내신 수행기간 중 4분의 3이 넘습니다.

스님이 오랫동안 계시던 증심사와 쌍봉사 그리고 법계사가 갖고 있는 공통점은 지극히 가난한 절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많이 좋아졌지만 30여 년 전의 증심사는 탁발로 끼니를 해결해야 할 만큼 가난한 절이었다고 합니다. 쌍봉사 역시 대웅전이 전소 된 여파가 남아 있어 생활하기에 참으로 힘든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야 고달프고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참 좋은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가난하고 힘든 곳이니 오랫동안 머물며 공부도 하고, 마음껏 일하며 사세를 조금씩 일굴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여건이 좋은 절이었다면 서로 들어오려고 해 그리 오래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가난하고, 고단한 절이다 보니 누구의 시샘도 없이 10여 년이 훌쩍 넘도록 한 곳에 머물며 수행할 수 있는 복이 주어졌다고 하셨습니다.

산신제, 2004년부터 관해 스님이 다시 시작

쌍봉사에서 수행 중이던 관해 스님께서는 2004년 초에 법계사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10여 년 전이지만, 그때의 법계사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식수를 걱정해야 할 만큼 물도 모자랐습니다.

천왕봉 산신과 관련해 전해지는 전설이 그려진 산신각 벽화
 천왕봉 산신과 관련해 전해지는 전설이 그려진 산신각 벽화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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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들과 함께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는 관해 스님
 신도들과 함께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는 관해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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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아래 첫 산사, 천왕봉 줄기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 당시의 법계사에서는 산신제도 제대로 올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혹자는 부처님 도량에서 산신제를 지낸다고 하면 정법이 어긋나는 것이라고 시비를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산(땅)을 제대로 섬기지 않는 것은 배은망덕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관해 스님께서는 모든 생명을 싹 틔우고 키워주는 땅에 대한 고마움을 외면하는 것은 배은망덕한 일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산신제를 지내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게 아닐 것이라는 생각하고 제를 올리기 시작했다고 하셨습니다. 더구나 마야 부인이 현신한 응신불이 천왕봉 산신이라면 거리낄 것이 없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 때부터 정갈한 몸가짐으로 정한수를 올리고, 지극한 가슴으로 산신령의 위신력에 감사드리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매년 음력 5월 1일, 그동안 중단 되었던 천왕봉 산신제를 정말 간절한 마음과 기도드리는 정성으로 다시금 지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기도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산신령께서는 '믿거나 말거나'할 결과로 답을 주셨고, 1500여 년 동안 해결되지 않던 문제를 신통력을 보여주듯이 해결해 주셨습니다. 넝쿨에 달려 나오는 호박들처럼 이런 가피(加被)와 저런 호념(護念, 항상 불보살(佛菩薩)을 마음 속에 품고 선행을 닦으면, 부처님과 보살 그리고 하늘과 귀신들이 여러 가지 장애로부터 중생을 보살펴준다는 뜻)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같은 결과로 줄줄이 이어지고 있으니 법계사 산신기도야 말로 '믿거나 말거나' 한 최고의 기도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법계사에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같은 결과들이 어떤 결과로 어떻게 이어지고 있었는지가 이어집니다.



태그:#법계사, #지리산, #천왕봉, #노고단, #마야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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