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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9일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박원순식 당선은 정치적 퇴행"이라는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인터뷰 내용을 반박하는 글을 실은 바 있다. 이에 조성복 한림대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이 채 교수의 "시대착오적 대중정당론"을 반박하는 글을 보내왔다. 조 연구위원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나 홀로식 선거운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사회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강력한 대중정당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편집자말]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박원순보다는 안희정 모델이 정치발전에 더 기여"라는 <오마이뉴스> 인터뷰 기사(관련기사 : "박원순보다는 안희정 모델이 정치발전에 더 기여")를 반박한 채진원 교수의 글(관련기사 : "박원순 당선=퇴행? 시대착오적인 대중정당론")을 재반박하고자 이 글을 쓴다. 여기서는 박상훈 대표와 채진원 교수의 글을 가능한 한 다시 언급하지 않고 쟁점을 둘러싼 내용에 한정해 의견을 개진하겠다. 

박원순에겐 '시민이 시장이다'라는 구호밖에 없다?

재선에 성공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일 오후 시청 기자실에서 2기 서울시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서울시정 2기 청사진 밝히는 박원순 시장 재선에 성공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일 오후 시청 기자실에서 2기 서울시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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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은 지난 임기 시정활동을 통해서 나름 다양한 성과를 거두었다. 서울시 부채를 줄이고, 은평 뉴타운의 미분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찾아가 숙박을 하며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심야버스의 도입, 심야택시의 안전도모, 24시간 편의점 심야안전장치(무선비상벨 시스템) 설치 등이 기억이 난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잘한 일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업적들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다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 다만 그런 일들이 서울시장으로서 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었는가는 의문이다. 만일 그런 일들을 서울시의 직원들이나 구청장, 시의원 또는 구의원 등이 했다면 굳이 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장이라면 단순한 부채감소가 아니라 예산의 배분이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지, 서울시의 주택정책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심야버스나 심야택시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방안은 무엇인지, 젊은이들이 밤을 새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도록 할 수는 없는 것인지 등 더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과제들을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고민은 성과가 없을 경우 표시가 나지 않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꺼릴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훌륭한 정치인이라면 반드시 이를 해야 한다. 바로 그러한 것들이 우리 사회에 시급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시 비정규직 문제의 경우 단순히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비정규직이 왜 생겨나고, 이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떤 이해관계들이 조정되어야 하는지, 제도적으로 어떤 장치가 필요한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통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다면, 그러한 성공사례를 다른 지자체에도 전파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진정한 대권 주자가 되어 대한민국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과제를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제도적 장치로 마련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그런 일들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해서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매번 제2의, 제3의 박원순 시장이 나올 것이라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박 시장이 그러한 제도적 개선이나 더 근본적인 과제를 고민하고 해결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인구 1000만의 서울시를 운영하는 일은 이미 그 규모면에서 유럽에 있는 많은 선진국들보다도 큰 규모로 하나의 국가를 경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서울시장은 그에 걸맞은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혼자서 또는 소수의 팀만으로 어렵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정당의 여러 조직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박 시장은 이번 선거에서 나홀로 선거운동을 선택하였고 이를 실천하였다. 하지만 서울시장이 되면 "시민이 시장이다"와 같은 일반적인 구호 이외에 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민들이 이야기를 듣겠다는 것은 알겠으나 이 역시 포퓰리즘 정치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아무리 부지런히 돌아다닌다고 한들 1000만 서울시민의 의견을 모두 들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물리적으로도 곤란한 일이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식이 되지 않으려면, 그러한 것들이 제도화되어야 하며 그에 따라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역할을 하는데 가장 적합한 곳이 바로 정당이라고 본다.

많은 시민들, 강한 대중정당 열망하고 있어 

채진욱 교수는 광범위한 시민참여를 보장하는 약한 정당론자인 안철수와 박원순 노선의 상대적 성공을 들어 대중정당론이 시대적 한계에 달했다고 언급하면서 시민참여형 네트워크정당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먼저 기존의 정당들이 대중정당의 면모를 제대로 갖춘 것이었는지 묻고 싶다. 기존의 정당들이 대중정당으로서 잘 작동하고 있었는데,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네트워크정당으로 가야한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여야 정당들은 진성당원을 가진 대중정당으로 발전하지 못했고, 또 그것을 개선할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그것을 대신할 대안으로 시민후보의 등장을 반긴 것이라고 본다.

독일에서도 네트워크정당이라 할 수 있는 '해적당'이 만들어져 온라인상에서 붐을 일으키면서 단시간 내에 일부 지역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2013년 총선에서는 불과 2.2% 득표에 그쳐 연방하원진출이 좌절되었다. 즉, 독일의 강력한 대중정당들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박원순 시장과 안철수 새정치연합 대표.
 박원순 시장과 안철수 새정치연합 대표.
ⓒ 유성호·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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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박원순의 정치를 과연 성공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안철수 붐은 일반 시민들이 기득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존 정치권에 불만을 가지면서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들의 정치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대중정당의 건설, 선거제도의 개선으로 영호남 중심의 양당제에서 더 다양한 계층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다당제로의 전환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안철수는 국회의원 축소, 기초단체 정당무공천 등 정반대 방향으로 가다가 결국 민주당과 통합하였다. 이후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이 오르고 있는가? 안철수 개인의 지지율이 오르고 있는가? 국민의 뜻은 그것이 아니었다는 반증이다.

필자는 많은 시민들이 자신들이 직접 정치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대중정당을 열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교회의 활발한 활동을 지켜보면 알 수 있다. 그러한 것들은 그렇게 하도록 법으로 제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자발적으로 자신의 돈을 들고 와서 즐겁게 그렇게 하는 것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정치공간에서 제대로 자리만 마련된다면 각각의 당원들에 의한 지역정치가 충분히 활성화될 수 있고, 동시에 유능한 정치인들이 자라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기득권을 가진 여야의 기존 정치인들은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매번 정치개혁을 말하지만 되돌아보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그러한 도전들이 달갑지 않은 것이다. 그냥 이대로 있으면 자신이 다시 할 수 있는데, 굳이 내부경쟁자를 육성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부의 경쟁과 견제가 무서운 것이다.

그동안 국가정보원이나 검찰 같은 권력기관을 외부에서 견제하는 일이 가능했던가를 돌아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매번 내부의 이의제기로 문제점들이 드러나지 않았던가. 또 새누리당의 당내경쟁을 보면 본선보다 훨씬 더 치열함을 알 수 있다. 바로 뒤에서 경쟁자가 따라온다고 생각하면, 부정이나 비리를 저지를 수 있겠는가? 안철수의 새정치에 열광했던 국민들도 바로 이러한 것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그러한 멍석을 까는 정치인이 제대로 된 리더십을 가진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박원순의 서울시장 당선도 느슨한 정당의 승리하거나 시민단체만의 승리라고만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온 국민에게 충격을 준 세월호 사태와 정몽준 후보의 잘못된 네거티브 전략 등에 의한 반사이익의 효과가 크다고 본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강력한 정당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하고 있으니까 선거에서 거리를 둔 것이지, 애초에 약한 정당을 추구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앞으로의 정치행보에서 정당 없이 홀로 가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노무현의 국민참여경선은 정치의 퇴화였다

끝으로 정당과 시민사회를 연계하는 시민참여형 네트워크정당에 관한 문제다. 기존의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대중정당을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네트워크정당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하는데, 먼저 왜 기존의 정당이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구조인지를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당원들에게 아무런 권한과 역할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당대표가 중앙에서 모든 것을 독점하는 철저한 하향식 체제이기 때문에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당내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이다. 지역의 당원들이 지역의 대표자를 뽑고, 다시 그들이 모여서 중앙의 지도부를 뽑도록 하면, 당은 자연스럽게 수평적이고 개방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또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정치, 즉 완전국민경선제도의 제도화를 말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정치의 퇴화이다. 노무현 후보선출 당시의 국민참여경선제도도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민주당이 부실했다는 증거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제도는 정치인을 대중스타화 또는 연예인화해 결과적으로 정치를 희화화하기 때문이다.

선진국 어디에도 여론조사를 통해 공직선거의 후보를 결정하는 곳은 없다. 국민의 뜻에 따라 정치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방법이 여론조사를 통해서 모든 것을 결정하겠다고 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와 반대로 각 정당은 각각의 사안들을 토론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거쳐 당론을 확정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투표를 통해 선택받아야 한다.

진성당원이 활성화되지 않는 변화된 시대상황이란 인식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에게 진성당원이 활성화된 적이 과연 있었던가? 당원이 늘지 않는 것은 시대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당원들에게 권한과 역할을 제대로 준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들러리나 세우는데 누가 정당의 당원이 되고자 하겠는가? 바로 이를 개혁하는 것이 새정치라고 생각한다. 독일 녹색당의 당원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태이후 주 선거에서 처음으로 사민당에 앞섬으로써 대중정당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할 수 없는지 궁금하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절차적 민주화의 달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의 여러 가지 갈등은 완화되거나 해소되기보다도 점점 더 확대되고 심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우리사회의 어떤 집단이 나서서 해결할 수 있겠는가? 어떤 뛰어난 개인이 할 수 있을까? 사회단체가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정치의 영역이고, 정치가 제대로 기능하고 작동할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다양한 의견들을 반영하는 정당 간 협상과 타협을 통해서만이 사회갈등을 해소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원의 권한과 역할을 명확하게 보장하는 강력한 대중정당이 만들어져야 하고, 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정치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와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그들은 그러한 정당 내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다양한 분야에서 정부의 관련분야를 견제하고 견인할 수 있는 전문 인재로 성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더디 보이지만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하여 나아갈 때에야 비로소 세월호 침몰, 총기난사 사건 등에서 드러나는 총체적 난국에 처한 대한민국을 다시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조성복 박사는 1986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하다가 1997년, 30대 중반에 독일로 유학을 갔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베를린과 뮌스터에서 독일어를 공부했으며,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쾰른 및 듀이스부르크-에센 대학교에서 정치학 등을 공부했다. 2007년 쾰른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이후 베를린 한국대사관에서 전문연구관으로 일하다가 귀국했다. 국회 등에서 근무하다가 현재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있다. 또한 2013년부터 한독정치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태그:#박원순, #박상훈, #채진원, #최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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