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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동결하자고 한다. 터무니없이 비싼 대학 등록금 동결안이 아니고 OECD 22개국 중 12위밖에 되지 않는 최저임금을 내년에 또 동결하자는 것이다. 사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이미 7년째(2007-2014) 매년 최저임금을 정할 때마다 경영계는 동결안을 주장했다. 심지어 2009년에는 5.9% 삭감안을 주장하기도 했다.

최저임금제도는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여, 기업들이 노동자들에게 그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강제한 제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는 임금 결정에 있어 불리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기업의 입장에서는 가능한 적은 임금을 지급하려 하고,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길 원한다.

7년째 한결같은 동결 이유 "경영난"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하는 사용자 측과 동결로 얼어죽는 알바노동자
▲ 한여름에 내리는 눈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하는 사용자 측과 동결로 얼어죽는 알바노동자
ⓒ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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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최저임금제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1960년대부터 이런 긴장관계는 늘 존재해왔다. 최저임금이 제도화되면 기업이 인건비 부담으로 경영난에 봉착하고 국제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이유로 경영계의 반대가 거셌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났지만 기업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경영계에서는 기업들이 어려운 경영환경에 직면했고 최저임금이 인상된다면 감당할 수 없는 경영난이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업의 논리대로라면 그동안 기업에서는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유지하면서 '인건비 따먹기'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남겼다는 말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둘러보면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서울 강남 한복판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파업을 하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 하도급업체에 소속된 수리기사의 급여는 '분급'을 기본으로 한단다. '분급'은 225원이고 이는 삼성전자 제품을 수리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 수리를 준비하는 시간, 식사하는 시간 등을 전부 빼고 오로지 제품을 수리하는 시간에만 해당한다.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여 주 40시간 일했다하더라도 최저임금(2014년 5210원)조차 보장 받지 못할 수 있다.

A/S 서비스를 강조하는 삼성은 자신들의 제품을 수리하는 수천여 명 노동자들에게 일한 댓가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면서 한편으로 막대한 이윤을 남겨왔다. 그 이윤을 바탕으로 삼성 임원들에게는 평균 53억 원의 연봉이 지급됐을 것이다. 반면 지난 5월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삼성전자서비스 양산센터에 근무하던 염호석씨는 4월 급여로 41만 원을 받았다.

최저임금 인상은 분배구조 개선의 단초

기업은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당장이라도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정말 망가지고 있는 것은 최저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과 가정이다. 그래서 최저임금이 중요하다. 최저임금제도의 목표는 노동자가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임금격차를 해소하여 분배구조를 개선하는데 있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것은 단순히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자는 것만은 아니다. 사회양극화를 해소하여 경제 체질을 건강하게 바꾸고, 종국에는 사회 통합을 위한 경제적 바탕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미 많은 외국 사례에서도 확인됐듯이 임금을 올려 내수시장이 활성화되면 전체 국민경제에도 활력이 생겨 외국발 금융위기가 불시에 덮쳐도 무너지지 않는 견실하고 탄탄한 기업경영을 유지할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혈을 짜내 기업이윤을 남기던 '잘살아보세'의 철지난 구호는 이제 그만 외쳤으면 좋겠다. '이윤보다 인간'이라는 사회적 요구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듯이, 최저임금 현실화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박근혜 정부는 최저임금 문제를 기업의 윤리에만 맡기지 말고, 대통령 후보 시절 내걸었던 최저임금 현실화 공약을 즉각 실천하고 위반 사업주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 차별이 개선되고 사회구성원들이 상생하는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다. 굶주린 이웃을 두고 값비싼 고기가 내 입으로 들어간들 무슨 맛을 느낄 수 있겠는가.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부장입니다.



태그:#최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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