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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선터 입구에 걸린 대형전시포스터
 아트선재선터 입구에 걸린 대형전시포스터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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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센터(종로구 율곡로)는 2011년부터 신진기획자의 실험적이고 도전적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오픈 콜(Artsonje Open Call)' 공모를 시행해왔다. 이번에 7월 13일까지 열리는 '전시의 즐거움'은 공모 3번째 당선작으로 팀 포함 응모자는 75명(팀)이었다. 심사는 김성원 전시기획자와 김홍석 작가가 맡았다.

이번 전시에는 런던 센트럴 세인트마틴스 대학을 졸업하고 스위스 로잔예술대학 석사를 마친 작가 겸 기획자인 노경민과 코넬대 미술사학과, 영국왕립예술학교 큐레이팅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영국 골드스미스대학에서 시각문화와 큐레이터링 연구과정 중인 독립큐레이터 겸 기획자 문지윤이 공동으로 기획했다.

또한 이들과 동참한 작가로 1980년생으로 파리국립장식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파리 팔레 드 도쿄, 파리시립미술관, 모스크바비엔날레 등에 참가한 파비앙 지로(F. Giraud)와 1978년생으로 파리1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비평서를 낸 베느와 메르(B. Maire)가 있다.

기존의 전시방법에 문제제기

왼쪽부터 이번 전시에 참여한 파비앙 지로와 베느와 메르 신세대 프랑스작가 그리고 노경민 기획자 겸 작가와 문지윤 독립큐레이터 겸 기획자. 프랑스 작가들이 손에 흰 장갑을 낀 건 작업 중 내려와서다
 왼쪽부터 이번 전시에 참여한 파비앙 지로와 베느와 메르 신세대 프랑스작가 그리고 노경민 기획자 겸 작가와 문지윤 독립큐레이터 겸 기획자. 프랑스 작가들이 손에 흰 장갑을 낀 건 작업 중 내려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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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전시방법과 작가와 관객의 위상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 프랑스철학자 라뤼엘(F. Laruelle)은 '비철학(non-philosophy)'의 철학을 주장했는데 아트선재센터 2층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재현의 기계가 되어 버린 기존의 전시방식에서 탈피한 '비전시(non-exhibition)'의 전시라 할 수 있다.

백남준은 1963년 첫 전시에서 전시의 주인공은 작가가 아니고 관객임을 천명한 바가 있다. 그런 실험을 한 지 50년이 지났건만 지금도 그걸 실현하기 쉽지 않다. 이번에 4명의 한불 신예작가와 전시기획자가 의기투합해 작가와 관객의 거리감을 좁히고 자유로운 참여 속에 해방감과 성취감을 맛보는 전시를 기획한 것이다.

전시장은 '카메라의 방', '인터뷰의 방', '사물의 방'으로 나뉘는데 이번 전시가 기존의 전시와 다른 점은 첫째, 주제를 '사람중심'보다 '사물중심'에 두었고, 둘째, 기획자도 작가가 되었고, 셋째, 현대사물철학을 시각언어로 변형했고, 넷째, 안에서 보는 전시가 아니라 밖에서 보는 전시 등 위험하고 도발적인 시도를 했다.

더 부연하면 주제도 작가가 아닌 기획자가 정하고, 기존에 보는 사람과 사물의 불평등한 위계도 깼다. 이런 시도는 성공률은 낮으나 아직 젊은 패기와 모험정신이 넘치고 또한 예술의 본령인 아방가르드정신에 충실하기에 점수를 줄만하다.

관객에게 사변적 기회를 주는 전시

아트선재센터에서 그간 기획된 전시도록과 미술잡지와 전문서적 등이 꽂혀있는 아트센터 1층에서 한 관객이 2층 3층 전시를 다 보고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자료를 탐독하고 있다. 이번 작가들은 전시를 통해 관객에게 생각의 여지와 미적 호기심을 많이 주면 줄수록 더 좋은 전시라고 본다고 밝혔다.
 아트선재센터에서 그간 기획된 전시도록과 미술잡지와 전문서적 등이 꽂혀있는 아트센터 1층에서 한 관객이 2층 3층 전시를 다 보고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자료를 탐독하고 있다. 이번 작가들은 전시를 통해 관객에게 생각의 여지와 미적 호기심을 많이 주면 줄수록 더 좋은 전시라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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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1960년대 '누벨바그' 영화를 보면 미국의 스펙터클하고 귀결이 분명한 이야기중심의 방식과는 다르게 사변적이고 추리적인 구성 속에 영화의 전반적 흐름을 중시하면서 감독의 독특한 개성이 드러나는 영화가 많았는데 이런 영화는 대개 결론이 없다. 그런데 이번 전시도 모든 결론을 관객이 내려 보라는 방식을 취한다.

이번 작가들은 관객에게 전시를 통해서 뭔가를 보여주기보다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을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다시 말해 관객에게 '사변적 기회'를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관객이 미적 긴장감 속 자문자답해보는 그래서 전시에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해 전시의 깊이를 맛볼 수 있게 하는 게 작가들의 의도다.

또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기에 이런 점도 간과하지 않으면서 현상만 아니라 인식의 세계에도 도달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취한다.

철학적 질문을 미술의 그릇에 담다

노경민 I '이것은 무엇이다: 레이 브라시에, 요렐라 앤드류스, 파트리시아 팔기에르, 마이클 오루크, 다니엘 바버, 폴 에니스, 프란시스 할살, 크리스챤 토프너(This is : Ray Brassier, Jorella Andrews, Patricia Falguieres, Michael O'Rourke, Daniel Barber, Paul Ennis, Francis Halsal, and Christian Topfner)' 8명 철학자 인터뷰비디오작업 2014
 노경민 I '이것은 무엇이다: 레이 브라시에, 요렐라 앤드류스, 파트리시아 팔기에르, 마이클 오루크, 다니엘 바버, 폴 에니스, 프란시스 할살, 크리스챤 토프너(This is : Ray Brassier, Jorella Andrews, Patricia Falguieres, Michael O'Rourke, Daniel Barber, Paul Ennis, Francis Halsal, and Christian Topfner)' 8명 철학자 인터뷰비디오작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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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인터뷰의 방'으로 이번 전시는 철학을 읽고 예술을 만드는 방식이다. 위는 노경민 작가가 동시대 '사물의 존재'에 대해 탐구하고 주장하는 젊은 철학자 8명과 인터뷰한 걸 기반으로 만든 비디오작품이다. 과연 사물철학과 시대의 과제를 어떻게 실험미술로 코드전환하고 조형예술로 변형시킬 수 있는지 등을 묻고 있다.

그들의 담론 속에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철학자 예컨대 '기술철학'의 대가 '질베르 시몽동(G. Simondon)'과, '사변적 실재론'을 언급한 '퀑탱 메이야수(Q. Meillassoux)', '비철학'을 말하는 '프랑수아 라뤼엘(F. Laruelle)' 등의 이름도 나온다. 그리고 '상관주의(correlationism)'라는 철학개념에 대한 찬반논쟁도 등장한다.

그리고 위 화면에서 인물의 얼굴이 배제된 것은 보다 언어라는 물질성과 메시지에만 집중하도록 노경민 작가가 처음부터 그걸 염두에 두고 조치한 것이다.

이런 인터뷰 작품은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그 제작과정을 꼼꼼히 따져보면 무모할 정도의 강행군을 시도한 흔적이 보인다. 작가가 현대사물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사색과 독서, 다양한 자료와 정보수집, 철학자들과 밤샘토론 등 난관이 많았으리라.

올 3월에 '장 드 루아지' 파리 팔레 드 도쿄 관장은 홍익대 내한강연에서 자신이 기획한 전시회에 일종의 지성퍼포먼스로 철학자를 무려 200여 명 초대해 토론하는 전시를 말한 적이 있는데 요즘 유럽에서는 이렇게 철학과 미술이 만나는 전시가 하나의 트렌드(흐름)로 자리 잡고 있는 모양이다. 이번 작가들도 그 점을 언급한다.

왜 '전시의 즐거움'이라는 제목을 붙였나

사물(오브제)중심으로 연출한 전시장은 마치 '우주화' 같고 큰 '추상화' 같다
 사물(오브제)중심으로 연출한 전시장은 마치 '우주화' 같고 큰 '추상화' 같다
ⓒ 아트선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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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솔직히 시각적으로 별로 볼 것은 없다. 그리고 작품명도 찾을 수 없게 되어 있어 불편하다. 그런데 '전시의 즐거움'이란 제목이 붙은 이유는 뭔가. 이건 생각을 조금 바꿔 작품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다르게 보면 즐거울 수 있다는 가정이다. 작품명도 관객이 스스로 지워보면 더 재미있다는 뜻인가 보다.

작가의 의도 중 하나는 전시장을 하나의 큰 사물(오브제)로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전시장이 큰 그림으로 보이고 뜻밖의 공감과 울림이 올 수 있다는 의견이다. 또한 작가들은 관객이 작품을 보고 의문을 품고 물음을 많이 던질수록 그만큼 작품을 잘 감상하는 것이고 이게 바로 전시를 즐겁게 보는 첫걸음이란다.

하여간 이번 전시는 관객에게 작품 감상의 낯선 방식을 제시한다. 단발적 판타지나 가시적 현상만이 아니라 사유도 곁들인 관찰자적 관점과 철학자적 몸짓도 담고 있다.

사람보다 사물을, 안보다 밖을 중시하다

노경민 문지윤 I '몰래카메라' 설치작품 비디오 CCTV 설치 6개의 20인치 모니터 2014
 노경민 문지윤 I '몰래카메라' 설치작품 비디오 CCTV 설치 6개의 20인치 모니터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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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은 6개 CCTV가 장치된 '카메라의 방'에 있는 것으로 미리 녹화한 영상과 전시장 실시간영상을 뒤섞어 놓았다. 이건 전시를 전시장 안에서만 아니라 전시장 밖에서도 보게 하는 조치다. 이런 전시장 안팎의 시선을 동시에 보게 하는 장치를 통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전시를 보다 균형감 있게 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우리가 바로 알아차리긴 힘들지만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번 전시주제는 '사람중심'이 아니라 '사물중심'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의 중요한 철학 중 하나는 사물(오브제)을 도구로 아닌 그 자체의 고유성이 있는 존재로 봐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 서구인이 사람을 사물이나 자연보다 급을 높여 봤는데 이와는 확연히 달라진 관점이다.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물아일체'라고 하여 사람과 사물을 하나로 봤고 오히려 사람은 자연의 일부분으로 보면서 사물이나 자연을 사람보다 더 우위에 두기도 했다. 꼭 같지는 않지만 유사한 점인데 이것은 결국 서구의 가치관이 점점 동양의 가치관 쪽으로 옮겨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런 면에서 동서의 거리는 더 좁아지고 있다.

두 신예 프랑스 작가의 작품소개

파비앙 지로 & 베느와 메르(Fabien Giraud & Benoit Maire) I '고양이와 착오에 대하여(On Cats and Faults)' 3D 비디오사운드작업 HD Video, 10분41초 2014
 파비앙 지로 & 베느와 메르(Fabien Giraud & Benoit Maire) I '고양이와 착오에 대하여(On Cats and Faults)' 3D 비디오사운드작업 HD Video, 10분41초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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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사물의 방' 중 한 작품인 프랑스 작가 '파비앙 지로'와 '베느와 메르'의 공동 작품을 보자. 이 작품은 3D비디오·사운드 미디어 작품이라 난이도가 높아 보인다. 그래선가 디지털 아티스트인 루벤 코헨(R. Cohen)과 협업했고 제작기간도 길었단다.

이들도 이 작품을 할 때 사람중심의 사고보다는 사물중심에 염두에 두었단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사물은 사람이 침입할 수 없고 접근할 수 없는 그들의 고유한 영역을 가진 존재이기에 우리가 그걸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머리나 논리뿐이란다.

하여간 위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전시장은 우주공간 같고 작품은 행성 같다. 멋진 우주의 풍경화가 펼쳐진다고 할까. 두 작가는 사물의 세계가 순환 속에 만나고 작동하는 면모를 보여줘 관객이 사물의 실체와 결정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시도한 것 같다.

[12회 다음작가전 금혜원_구름 그림자 영혼(Cloud Shadow Spirit)]전

<전시의 즐거움>과 함께 아트선재센터 3층에서는 2014년 6월 14일-7월 13일까지 박건희문화재단이 기획한 반려동물을 주제로 한 30여점의 사진을 선보이는 <다음작가전 금혜원_구름 그림자 영혼>도 열린다. 위 사진은 금혜원전 오프닝행사에서 구본창 사진작가가 격려사를 하는 모습이고 오른쪽 금혜원 작가다
 <전시의 즐거움>과 함께 아트선재센터 3층에서는 2014년 6월 14일-7월 13일까지 박건희문화재단이 기획한 반려동물을 주제로 한 30여점의 사진을 선보이는 <다음작가전 금혜원_구름 그림자 영혼>도 열린다. 위 사진은 금혜원전 오프닝행사에서 구본창 사진작가가 격려사를 하는 모습이고 오른쪽 금혜원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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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생소하지만 한국사회도 이제 상실감과 우울감 등으로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다. 금혜원 작가는 이 문제를 포괄적 시선으로 다루어야 한 시점에 왔음을 알리면서 이런 반려동물의 죽음과 영혼을 기리는 태도와 방식을 주제로 한국, 일본, 미국 등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아직도 이런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반려동물에 대한 장례나 애도문제에서 극단적 반응을 보인다. 종량쓰레기에 담아 소각시키는 사람도 있고 호화장례를 치루는 사람도 있다. 이런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현상을 통해 우리사회 변화의 일면을 조명한 인류학적 성격의 사진전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에는 반려동물을 상징하는 세 단어가 들어간다. 첫째로 반려동물은 사람에게 사랑받은 순수하고 가벼운 솜털 같은 존재라고 하여 '구름(Cloud)'이, 둘째로 사람을 그림자처럼 항상 따라다나고 붙어 다닌다고 하여 '그림자(Shadow)'가, 셋째로 반려동물이 사람과 정신적 교감을 하며 영혼을 살찌우게 한다고 하여 '영혼(Spirit)'이 이번 전시제목의 표제어가 된다.

금혜원 작가는 이화여대에서 미술학부와 동 대학원(한국화전공)을 졸업하고 사진작업을 하는 작가다. 어떻게 한국화를 하다가 사진으로 바뀌었냐는 질문에는 자신은 여전히 사진으로 한국화를 그린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런 사진에도 한국화에 쓰는 유형이나 기법이 담겨있다는 대답이다.

이번 사진전도 역시 '박건희문화재단'에서 기획한 것으로 이 재단은 매년 유망주 작가를 공모를 통해 심사하여 그 기금을 작가에게 수여하고 전시도 열어준다. 기금여부에 따라 쉬는 해도 있단다.


덧붙이는 글 | 아트선재센터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3길 87 [전화]02-733-8945 www.artsonje.org



태그:#노경민, #문지윤, #파비앙 지로, #베느와 메르, #사물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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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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