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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두식 교수가 쓴 책 <헌법의 풍경>(교양인)에는 영화 정사 장면에서의 신체 노출 검열사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오늘날 영화는 '가슴 노출 yes, 털 노출 no'의 기준을 따른다. 그 전에는 '등 노출 yes, 가슴 노출 no'의 시절이 있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섹스 신이 목 윗부분의 여주인공 얼굴만으로 처리된 때가 있었다. 김 교수는 그 시대를 '상상력의 시대'로 조롱했다.

'상상력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른바 '암흑의 시대'가 나온다. 남자배우와 여자배우가 심각한 얼굴로 상대방을 바라본다. 두 사람이 비스듬히 누우며 화면에서 사라지고 불이 꺼진다. 그러면 관객 스스로 알아서 '뭔 일이 진행되고 있나 보다'고 생각한다. '상상력의 시대'와 '암흑의 시대'는 영화에서의 신체 노출에 관한 검열당국의 잣대가 시대에 따라 얼마나 자의적으로 규정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김 교수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읽으며, 뜬금없이 며칠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고용노동부(노동부) 사이에 벌어진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소송 재판을 떠올렸다. '암흑의 시대'에서 '상상력의 시대'를 거쳐 '가슴 노출 yes, 털 노출 no 시대'로 이르는 자의적인 검열 잣대의 변천사가, 교원노조의 역사적인 당위성을 방증하는 것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법외노조 통보 취소소송에서 패소한 가운데,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전교조 김정훈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정부의 전교조 탄압을 규탄하고 있다.
▲ 전교조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은 민주주의 후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법외노조 통보 취소소송에서 패소한 가운데,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전교조 김정훈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정부의 전교조 탄압을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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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는 패소했다. '완패'라는 말을 쓴 언론이 있었을 정도로 확실하게 패소했다. 그렇다면 전교조는 '영원히' 패소하게 되는 걸까. 김 교수는 예의 책에서 최고 법원인 대법원의 입장이 현재 힘을 얻고 있는 하나의 견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하물며 행정법원의 1심 재판부가 내린 결론임에랴.

이번 재판을 담당한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 반정우 부장판사는 전교조에 대한 노동부의 '노조 아님' 통보가 적법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전교조는 법외노조가 되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재판 결과를 놓고 전교조가 '합법노조'에서 사실상 '불법노조'로 바뀌게 되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법외노조는 '불법노조'와 다르다. 법외노조는 정확히 말하면 교원노조법의 범위 밖에 있다는 말이다. 불법노조가 아니므로 전교조에 가입하거나 전교조 활동을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출범 때부터 노동기본권 온전히 보장받지 못한 전교조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된 것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과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에 근거한다. 이들 법률은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제한한다. 지역·직종·산업별노조와 같은 초기업단위 노조에는 해직자나 구직자가 가입할 수 있다. 하지만 교원노조법은 조합원 자격이 '현직 교원'에게만 있다고 규정해 놓았다. 다만 해고교원으로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한 사람은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 교원으로 본다고 했다.

전교조는 1999년 제정된 내부 규약 부칙에 부당 해고된 교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는 규정을 갖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해직교사 출신의 전교조 조합원은 9명이다(전교조 이영주 수석부위원장에 따르면, 전교조 내 전체 해직 교사 수는 23명이라고 한다). 전교조는 이들이 모두 정당한 교원노조 활동을 하다가 '부당하게' 해고되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반 부장판사는 이들을 교원노조법상의 부당하게 해고된 교원으로 보지 않았다. 형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자동으로 퇴직했거나 해임처분 소송 패소판결이 확정된 경우기 때문이었다. 교원노조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한 해고자와 구별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교원노조법상의 조합원 자격이 없는 해직교사를 조합원으로 가입시켜 놓고 있는 전교조는 노조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노동부의 '노조 아님' 통보가 적법하다는 것은 조합원 자격이 없는 해직교사가 단 1명이라도 있다면 교원노조에 수만 명의 교사가 가입해 있더라도 단결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습다.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듯이, 이번 판결은 교사의 '노동자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교사는 노동자일까, 노동자가 아닐까.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 조합원은 교사의 노동자성 여부를 가늠하는 핵심적인 잣대가 된다.

우리나라에는 앞서 말한 교원노조법이 있다. 우리 법은 일단 교사를 노동자로 보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다른 일반 노조와 달리 교원노조법에서는 조합원이 될 수 있는 교원의 자격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반정우 부장판사가 이끈 이번 재판부는 교원이 담당하는 일인 '교육'의 '특수성'을 들어 그 자격 제한 규정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교원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교원의 자격을 제한하는 것이 공익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논리가 그 근거였다.

재판부 논리에 따르면 교사는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가 아니다. 전교조는 출범 때부터 교육과 교원의 '특수성'이라는 올가미에 묶여 노동기본권을 온전하게 보장받지 못했다. 단체행동권은 꿈도 꿀 수 없었고, 단체교섭권은 현실에서 실질적인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단결권은, 전교조에 가입하려는 교사들에 대한 학교관리자들의 끊임없는 회유와 협박, 불이익 등으로 훼손당할 때가 많았다. 그나마도 이번 판결로 단결권 자체가 부정되면서 소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지금 어느 시대를 지나고 있는가

전교조의 공동변호인단 신인수 변호사는 이번 재판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판결로 인해서 우리나라 사법부와 민주주의 시계는 정확히 1988년으로 후퇴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고용부로부터 규약 시정명령을 받은 후 정해진 기간 안에 응하지 않으면 법외노조 통보를 하도록 규정한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을 비판하면서였다.

1988년 정부가 여소야대 국회를 피해 밀실에서 만든 것이 일반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이라고 한다. 이 조항은 노태우 정부 이래 지금껏 단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어 사문화한 법령이다. 우리 정부의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ILO), 오이시디(OECD) 소속 단체들도 줄기차게 폐지 권고를 해오고 있다. 신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바로 그 '악법'에 근거한 것이라며 "전 세계에 이런 법률도, 조치도 사례도 없다"고 비판했다. '사법후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방관이나 경찰, 군인들이 노조를 만들 수 없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는 우리가 보기에 '기상천외한' 노조들이 많다. 소방노조와 경찰노조, 군인노조를 가진 나라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프랑스처럼 판사노조가 설립되어 있는 나라도 있다. 소방관과 경찰, 군인, 판사는 각기 하는 일이 다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노동력을 팔아 임금을 받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형식적으로는 교사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면서도 교육의 '특수성'을 들어 교사들의 실질적인 노동3권을 박탈하는 대한민국 사법부는 지금 어느 시대를 지나고 있는가. 헌법이 보장해 놓은 노동3권을 하위법률의 조항 몇 개로 간단히 무력화하는 대한민국 사법부는 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앞서 말했듯이 반 부장판사가 교사들의 단결권을 제한하는 교원노조법상의 조합원 자격 제한 규정을 정당하다고 본 것은, 그러한 자격 제한으로 인해 달성할 수 있는 공익이 더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반 부장판사가 강조한 '공익'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학생들의 교육 받을 권리가 지켜질 수 있다는 점, 교육제도가 유지될 수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반 부장판사의 논리를 뒤집으면, 교원노조법상의 자격 제한 규정이 없다면 공익을 제대로 달성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법률가들이 중시한다는 '리갈 마인드(Legal Mind)'가 없어서일까. 나는 반 부장판사가 내세운 '공익' 논리를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전교조는 출범 이후 정부 교육정책의 부당함을 비판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부패한 사학재단에 맞서 싸우기도 했고, 극도로 제한된 정치 활동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임금 인상과 같은 교사의 '사익'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공익'을 위한 싸움의 외길을 걸어왔다. 현재 정부와 사법부가 문제 삼고 있는 전교조 해직교사 9명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출범 이후 지금까지 수천 명에 이르는 전교조 해직 교사들이 그 생생한 증인들이다.

명령 복종 가르치는 교사 있는 한, 사회 발전 없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법외노조 통보 취소소송에서 패소한 가운데,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전교조 김정훈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정부의 전교조 탄압을 규탄하고 있다.
▲ 전교조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은 민주주의 후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법외노조 통보 취소소송에서 패소한 가운데,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전교조 김정훈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정부의 전교조 탄압을 규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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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위대한 법률가이자 정치가인 키케로는 변론 중 기회가 있을 때마다 "쿠이 보노(Cui Bono)?"를 외치면서 배심원들과 군중의 주의를 환기했다고 한다. '쿠이 보노'는 '득을 보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의미의 라틴어라고 한다. 재판 당사자들 중 실질적으로 이득을 보는 자를 잘 따져야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결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한 말이겠다. 키케로의 말을 그대로 빌려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쿠이 보노?"

박근혜 대통령은 재작년 대선 국면에서 합법적인 교원노조인 전교조를 혼란을 일으키는 이념 집단 정도로 매도하기에 급급했다. 전교조에 대한 박 대통령의 적대감을 익히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월 4일 치러진 전국 교육감선거 결과 친전교조 성향의 이른바 '진보교육감'이 13명이나 당선되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박 대통령이 향후 교육정책을 펼쳐나가는 데 큰 장애물을 만난 셈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에 최근 박 대통령이 교육부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한국교원대 김명수 명예교수도 제자 논문 표절과 연구비 가로채기 등의 의혹으로 난타당하고 있다. 자초한 일이긴 하지만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최초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지르는 위기 상황에 내몰렸다.

이번 반 부장판사의 판결은 박 대통령이 앞으로 거쳐 갈 정치적 여정에 든든한 동반 자산으로 작용할 것이다. 정부 말에 고분고분 따르는 교사들이 학교에 '가만히' 있으면서 교육에만 힘쓰고, 정부가 정해 놓은 교육제도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만큼 박 대통령에게 힘을 주는 게 있을까.

예일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였던 스탠리 밀그램이 1961년부터 2년간 실시한 실험은 권위에 대한 복종의 어두운 이면을 잘 보여주었다. 밀그램 박사는 실험에서 학생 역할과 교사 역할을 맡게 된 참가자들이 단어 테스트에 참가하는 상황을 설정했다. 선생 역할 참가자들이 학생 역할 참가자들에게 단어 테스트를 해서 틀린 대답을 하면 15볼트의 약한 전기 충격을 가하고, 계속 틀릴 때마다 전압을 15볼트씩 올리도록 했다.

실험 결과, 선생 역할을 한 사람들의 모습은 경악스러움 그 자체였다. 전기 충격이 15볼트 정도였을 때 선생 역할을 맡은 참가자들은 학생 역할을 맡은 사람들의 가벼운 비명소리(가짜로 연출된 것이다)에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90볼트를 넘어가자 실험 감독자에게 "계속해도 되느냐"며 불안해한다. 150볼트를 넘기면서는 "더 이상 못하겠다"며 거부의사를 밝힌다. 학생 역할을 맡은 자원자가 고통을 실감 나게 연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자는 "이것은 실험일 뿐이라며 책임은 자신이 질 테니 계속 진행하라"고 지시한다. 선생 역할 참가자들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전기 충격 버튼을 계속 눌렀다. 전압이 300볼트를 넘어가자 그들은 별다른 고민조차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간혹 감독자에게 의혹을 표시하기도 했으나 그 빈도는 전압이 높아질수록 점점 낮아졌다.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참가자 중 65%가 450볼트까지 전압을 높였다고 한다.

나는 밀그램의 실험에서 특별히 '선생'이라는 역할에 주목한다. 대한민국의 많은 교사가 규범과 규율을 중시한다. 학창 시절부터 학업에 대한 성실함과 교사에 대한 순종을 몸에 익힌 이들이, 그 결과로 얻은 높은 성적과 학업 태도로 교·사대에 진학한다. 교직 입문 뒤에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정부 교육정책을 군말 없이 수행한다. 전교조는 그런 '선생'이 되기를 거부할 것을 다짐하면서 태동한 조직이다. "누가 우리더러 스승이라 부르는가"라고 절규하며 참스승·참교육의 길을 걸으려 했다. 인간을 대상화하는 교육을 하지 않겠다며 거친 광야에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밀그램의 실험은 인간의 '괴물' 같은 측면을 새삼 돌아보게 해주었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 인간이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으로 짜인 전교조의 참교육 정신은 '괴물 인간'에 맞서려던 전교조만의 몸부림이었다.

정부와 사법부는 교사를 보통의 노동자와 다른 부류로 규정했다. 그것은 '교직은 성직'이라는 우리 사회 한켠의 시선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가만히' 있기를 강요하고, 아이들에게 권위와 명령에 복종하기를 가르치는 교사들이 있는 한 우리 사회의 진정한 발전과 진보는 기대할 수 없다.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을 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노동하는 교사를 성직자에 빗대면서 교사에게 노동자이기를 포기하도록 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다수의 평범한 노동자가 노동자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날이 우리에게 올까.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가 아닌 교사는 언제쯤 노동자의 진정한 권리를 누릴 수 있을까.

대한민국 정부와 사법부는 노동3권의 시계를 30여 년 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법내노조였던 전교조를 법 밖으로 밀어내는 시대착오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과거로 되돌려진 노동3권의 시계는 반드시 제자리를 되찾으리라 믿는다. '암흑의 시대'에서 '가슴 노출 yes, 털 노출 no 시대'까지 오는 데 25년여가 걸렸지만, 세상은 '암흑'이 아니라 '광명'을 향해 달려온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6만 전교조 교사가 밀그램의 실험에서 우리를 경악하게 했던 그 '선생'들은 아님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전교조 법외노조화, #반정우 부장판사, #교원노조법, #노동조합법 시행령, #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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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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