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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법원이 전교조에 대해 '법외노조' 판결을 하자 전교조 경남지부는 19일 오후 고용노동부 창원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명백한 정치적 판결"이라며 비난했다.
 1심 법원이 전교조에 대해 '법외노조' 판결을 하자 전교조 경남지부는 19일 오후 고용노동부 창원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명백한 정치적 판결"이라며 비난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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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행동권은 아예 시작 때부터 박탈당했고, 단체교섭권은 교육부의 해태로 유명무실해졌고, 이제 하나 남은 단결권마저 이렇게 아작내버렸으니 전교조는 노동3권 중 단 한 가지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조합이 되고 말았다.

오늘은 행정권력과 사법권력이 합심하여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 모두를 전교조에서 박탈해버린 날이다. 이렇게 하여 노동기본권 단 한 가지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조합 전교조가 탄생하게 되었다. 참으로 신기한 '노동조합' 아닌가. 세계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날이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김 선생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일부다. 퇴근길에 전화번호를 눌렀다. 김 선생님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의외였다. 페이스북 글에서 "대한민국 헌법에서 노동3권 보장하고 있는 33조를 오려내버리는 게 훨씬 더 쉬울 듯"하다며 분개하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잖아."
"그렇긴 하죠. 그나저나 다른 조합원 선생님들과는 얘기 좀 나누셨어요?"
"바빠서 그럴 시간도 없었어. 그런데 교감이…."
"교감이 뭐라 그래요?"
"응. 내 표정이 시무룩해 보여 그랬는지 먼저 다가와 '이렇게 돼서 어떻게 해요' 하대."
"그랬군요. 저는 선생님들과 아무 말도 나누지 못했어요."

그랬다. 어제(19일)는 아침부터 교무실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평소 누구에게랄 것 없이 이런저런 말을 던지며 출근 직후 교무실에 활기를 불어넣곤 하던 뒷자리 박 선생님도 오전 내내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소송 관련 속보 기사는 19일 오후 2시가 훨씬 지나서 뜨기 시작했다. 말다툼한 아이들 처리 문제로 학생부에 올라갔다가 그곳에 있는 컴퓨터 화면으로 재판 관련 속보를 봤다. 맥이 풀렸다. 나름대로 그간의 경과를 유심히 지켜보면서 기대한 바가 있어 더 그랬던 것 같다.

멍하니 컴퓨터 화면을 훑다가 정신을 차려 내 자리가 있는 교무실로 향했다. 인터넷을 띄워 재판 관련 기사들을 출력했다. 그사이 다른 일로 먼저 복사기 쪽에 가 있던 박 선생님이 내가 출력한 인쇄물을 대신 가져다 주셨다. 박 선생님은 나와 함께 전교조에 속해 있는 동료 교사다.

노동3권 중 마지막 남은 '단결권'마저 아작낸 재판부

박 선생님은 내게 출력물만 건네곤 자기 자리에 가 털썩 앉았다. 처음에는 박 선생님에게 일부러라도 무슨 말인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어떤 말로 나 자신부터 추슬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박 선생님의 굳어 있는 표정이 우리 마음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김 선생님 말마따나 어제 우리나라는 세계 노동운동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를 만들어냈는지 모른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권리를 하위 법 조항과 그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으로 원천 차단하는 재판부를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재판부 논리는 이렇다. 교원노조에는 현직 교사만 가입해야 한다. 해직자나 퇴직자는 가입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교원노조의 자주성과 독립성이 훼손되어 학교교육이 파행을 겪는 등 국민 전체가 큰 손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만 가입해 있어야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가 보장되고 교육제도가 유지되는 등 더 큰 공익을 담보할 수 있단다.

오지랖 넓은 재판부는 교원이 갖춰야 할 특별한 요건 같은 것들도 일러 주었다. "교원은 학생을 가르치기 때문에 윤리성과 자주성, 공공성, 전문성이 일반 근로자보다 강조된다"고 했다고 한다. 일반 노조보다 가입 자격을 제한하고 있는 교원노조법이 단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판단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현직 교사만을 교원노조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교원노조법은 1999년 제정되었다. 하지만 그 골격은 1991년 제정된 '교원지위향상을위한특별법'으로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교원노조법에서 사용하는 '노동조합'이라는 표현의 본질을 '교원단체'로 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번 재판부가 과거로 퇴행했다고 비난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판부가 교원노조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염려'해주는 점도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재판부의 주장은 교사 아닌 자가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으면 외부 논리에 휘둘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점에 터 잡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원노조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해치는 제1의 주범은 정부 아니었나. 노조활동을 하다가 해직된 교사를 계속 조합원으로 품고 있는 것은 전교조가 교원노조로서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수단일 뿐이다. 어디 생뚱맞은 데 있는 외부인을 조합원으로 끌어 들여와 노조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해직과 복직으로 점철된 전교조 역사, 노동부는 모르나

19일 저녁 대전교육청 앞에서 열린 '법외노조철회 및 전교조지키기 결의대회' 장면.
 19일 저녁 대전교육청 앞에서 열린 '법외노조철회 및 전교조지키기 결의대회' 장면.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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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해 인근 고등학교에 계신 교장 선생님 한 분에게 전화했다. 지난 시절 전교조 활동을 왕성하게 하시다가 이제는 공모제 교장이 되어 학교 관리자가 되신 분이다.

"이 선생님, 오늘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 뉴스 보셨죠?"
"네, 봤어요."
"어떤가요. 주변 지인들에게서 위로나 격려 전화 좀 하던가요?"
"그래요. 아는 사람과 통화 한 번 했습니다."
"선생님 보시기에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평소 세상 시야를 넓게 보는 이 선생님의 시원한 전망을 통해 위로를 받고 싶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사회 분위기라는 게 있었는데, 그것보다는 정권 눈치를 본 재판이었다고 봐요. 전교조가 항소한다고 했죠?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정부부처나 사법부는 자신들 논리를 변명하고 강화하기 위해서 더 노력하겠죠. 그만큼 앞으로 전교조가 우호적인 정치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재판부는 정말 정권 눈치를 봤을까. 판결 결과에 대한 언론 분석을 종합해보면 그 구체적인 근거가 뚜렷이 보이지는 않는다. 대신 재판부는 교원이 일반 노동자와 다르다는 노동부의 논리를 기계적으로 되풀이한 것처럼 보인다.

그간 노동부는 해직교원이 노조 조합원 자격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교원노조법상의 조항을 교원의 '특수성' 차원에서 강조해왔다. 일반 기업의 노동자와 달리 교육공무원인 교사는 한번 해직되면 복직하기 힘들기 때문에 해직교원에게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는 규정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수많은 해직과 복직으로 점철된 전교조 교사들의 과거 역사를 보면 노동부의 이런 주장이 얼마나 허술한 토대에 서 있는가를 금방 알게 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교사시국선언으로 징계를 당해 해직당한 교사들과 일제고사 거부 투쟁으로 해직된 선생님들 모두 복직한 상태다. 전교조 출범 당시 해직된 1500여 분의 선생님들 역시 모두 교단으로 복귀했다. 교원노조법이 문제의 조합원 자격 제한 규정 때문에 '악법'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전교조를 향해 줄기차게 '현행법'과 '법의 테두리'를 강조한다. 악법으로 비난받는 조항을 없애거나 고칠 노력은 하지 않은 채 노조활동을 하다 해직당한 노동자를 법이 좁게 규정한 노조운동의 선 밖으로 내치는 데 골몰한다.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장려해야 할 노동부가 노동자들을 옥죄는 데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하위 법 조항으로 차단하다니

지금 노동부와 재판부가 문제 삼고 있는 전교조 해직자는 모두 9명이다. 2004년 재직 당시 사립학교 관리자의 부당한 교육활동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가 파면 징계를 받고, 교장의 보충수업비 유용이나 편파적인 재단 이사진 구성에 대해 재단 퇴진 운동을 벌이다 해직된 분들이다. 정치검찰의 표적수사로 희생당한 분들도 계시다. 그런 교사들을 이번 재판부는 "부당해고된 교원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법이 규정해놓은 합법적 절차에 따라 해고를 당했으니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 노동부와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소송에서 정부 손을 들어준 반정우 부장판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법률가들이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그 법전들이 결코 하늘에서 내려온 신성불가침의 절대적인 경전이 아니라는 사실을.

법 해석을 상식과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추되, 문제가 있는 독소조항을 갖고 있다면 즉각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전교조의 법외노조 관련 판결 결과를 형식적인 법 논리나 주변의 정치적인 정황 따위로만 해석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미 국회에는 교원노조법 개정안이 올라가 있다. 교원노조의 조합원 자격 제한 규정이 독소조항이라는 최소한의 공감대는 마련되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판결은 합법 15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전교조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고등법원 항소나 법외노조 효력정지 가처분신청과 같은 법률적 대응 외에 교원노조법 개정 등 정치 활동에도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더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이 필요하다.

단식 11일째 김정훈 위원장 "목소리라도 크게 내야지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법외노조 통보 취소소송에서 패소한 가운데,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전교조 김정훈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정부의 전교조 탄압을 규탄하고 있다.
▲ 전교조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은 민주주의 후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법외노조 통보 취소소송에서 패소한 가운데,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전교조 김정훈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정부의 전교조 탄압을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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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좀 어떠세요? 혈당 수치가 떨어져 안 좋다는 얘기도 들리던데."
"몸은 견딜 만합니다. 고마워요."

어젯밤, 전교조 김정훈 위원장과 통화했다. 김 위원장은 11일째(20일 현재)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김 위원장은 내가 있는 지역(전북)의 전교조 지부장 출신이어서 더 각별한 마음이 들었다. 체격이 건장한 분도 아니어서 걱정이 많았다. 어제 재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등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본부 상근 선생님들 분위기는 어떠세요?"
"전혀 예상 안 한 건 아니어서 그런 대로 차분한 편이에요. 이번 결과에 대비하여 나름대로 준비해놓은 것도 있고요."
"주말에 대의원대회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네, 그때 가서 전체적으로 많은 얘기를 나눠야지요."

앞으로 법외노조 싸움과 관련하여 세부적인 대응 방안을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싶었다. 김 위원장의 목소리가 의외로(?) 힘차게 들렸기 때문이다.

"걱정이 많네요. 그래도 위원장님 목소리에 힘이 있는 것 같아 좋습니다."
"목소리라도 크게 내야지요."

그제야 김 위원장이 단식을 열흘 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떠올렸다. 전교조 관련 기사가 인터넷 뉴스 꼭지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늘(20일) 아침에는 1면에 김 위원장의 사진이 대문짝하게 걸린 신문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러 목소리라도 크게 내야겠다며 애쓰는 김 위원장이 안타까웠다.

전교조 반대론자들은 전교조가 과도하게 정치화해 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6만이 넘는 대중조직에 '정치주의'가 빠질 수는 없다. 진정한 의미의 정치 없이는 교육뿐만 아니라 다른 그 무엇도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전교조를 향한 그런 비판은 은연중에 정치 혐오증을 불러와 교육을 또 다른 의미의 타락한 정치에 종속시키려는 전략이다. 그런 점에서 전교조를 향한 '정치과도화 비판'은 가장 반정치적인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또 다시 지리한 법적 다툼이 시작되겠지만, 당분간 전교조는 '법외'라는 벌판에 서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그곳이 고립무원의 쓸쓸한 황무지는 아닌 듯하다.

전교조 뒤에는 교원노조에 있는 문제의 독소조항을 없애라며 수 차례나 권고한 국제기구가 있다. 그 좌우에는 전국 17개 시·도 중 13개 시도에 들어선 이른바 진보교육감과, 참교육 전교조의 길을 함께 가려는 학생·학부모·시민들이 있다. 그들이 있는 한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의 기치를 안고 묵묵히 학교 현장을 지켜가는 무명의 전교조 교사들을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스물다섯 살 전교조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법외노조, #전교조, #고용노동부, #교원노조법, #전교조 해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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