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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18일 JTBC <뉴스9>을 진행하는 손석희 앵커.
 18일 JTBC <뉴스9>을 진행하는 손석희 앵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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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64일째입니다. 오늘(18일)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러시아와 1:1로 비겼습니다. 붉은 악마들은 거리 응원전을 하면서도 세월호를 잊지 않았다고 하지요. 팽목항에서 저와 인터뷰했던 이호진씨의 아드님인 고 이승현 군은 축구 선수가 되기를 열렬히 원했습니다. 아버지는 축구공을 놓고 아들을 기다렸을 정도였습니다.

그 이승현 군이 그토록 하고 싶었을 응원을 온국민이 대신해서 열심히 했습니다. 남은 두 게임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온 국민이 축구 승리보다 어쩌면 더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실종자들은 아직 더 발견됐다는 소식이 없습니다. 오늘도 팽목항부터 연결하고 총리 후보자 관련 소식과 월드컵 등 다른 소식들도 모두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날 그날 메인뉴스의 방향성을 함축하는 것이 앵커의 오프닝 멘트다. 축구대표팀이 브라질월드컵 러시아전에서 무승부를 거둔 지난 18일, JTBC <뉴스9>의 손석희 앵커의 얼굴은 한층 결연해 보였다. 월드컵 열기에 세월호 희생자들과 가족들에 대한 관심이 잊힐까 노심초사하는 얼굴이었다.

"팽목항에 나가있는 서복현 기자!"를 부르는 일과도 계속됐다. "잊지 않겠다"며 세월호 참사에 대한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일도 계속됐다. 이날 JTBC는 후반부에 차범근 SBS 해설위원과의 전화 인터뷰와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구호도 등장한 거리 응원 소식으로 월드컵 뉴스를 정리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세월호 참사 소식을 비롯해 사회 현안을 집중 보도했다. 

월드컵 장사에 들뜬 지상파 3사... "해도 해도 너무해"

18일자 JTBC와 지상파 3사 톱뉴스 화면.
 18일자 JTBC와 지상파 3사 톱뉴스 화면.
ⓒ 서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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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지상파 3사는 스스로가 들떠있었다. 전국민이 월드컵에 취해있는지, 방송사가 그러한 분위기를 유도하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헌데, 전체 보도만 놓고 보면 후자라는 느낌이 역력했다. 오프닝 멘트 역시 지상파 3사가 대동단결하는 모양새였다.

"우리가 한마음으로 웃고 기뻐한 게 얼마 만인가요. 오늘(18일) 아침 거리에서, 아파트 단지에서, 또 학교와 직장에서 일제히 커져 나온 환호. 반가웠습니다. 우리 월드컵 대표팀이 러시아와 1차전에서 비록 비기기는 했지만 선제골까지 넣으면서 든든한 출발을 했습니다."(SBS)

"평가전 때와는 한결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아쉬운 무승부였지만 16강 진출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MBC)

"오늘 아침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환호를 들으면서 우리 국민이 또다시 하나가 되는 경험, 오랜만에 느끼셨을 겁니다. 우리 축구대표팀이 브라질 월드컵 첫 경기에서 아쉽게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잘 싸웠습니다."(KBS)

SBS는 30여분, MBC는 28여분 등 뉴스 전체 방송시간의 절반을 훌쩍 넘는 시간을 월드컵 리포트로 채웠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논란 등 사회 현안들이 즐비했는데도 말이다. SNS에는 "해도 해도 너무 한다"며 '채널을 돌렸다'는 반응이 속출했다. 한편으로, 이날 뉴스는 지상파 3사의 최근 분위기를 한눈에 읽을 수 있게 해 준다. 세월호 참사 후 들려왔던 자성의 목소리가 반영되긴 한 건지... 판단이 쉽지 않아 보인다.

월드컵에 '올인'한 SBS, 누가 축제를 조장하는가

월드컵 뉴스로 도배된 18일자 SBS <8시뉴스> 홈페이지.
 월드컵 뉴스로 도배된 18일자 SBS <8시뉴스> 홈페이지.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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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는 이날 따로 마련된 스포츠뉴스 포함 브라질월드컵 관련 보도를 무려 20 꼭지나 쏟아냈다. 30분 넘게 월드컵 보도만 연이어 내보내는 SBS의 뚝심이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오죽했으면, "MBC 29분, SBS 32분. 오늘 월드컵 뉴스에 할애된 시간. 비겼으니 저 정도지 이겼으면 끔찍 그 자체"라는 SNS 반응이 나왔을까.

기나긴 월드컵 보도가 끝난 뒤에야 박근혜 대통령이 문창극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재가를 해외 순방 뒤로 미뤘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사실상 지명철회 수순을 밟고 있으며 문 후보자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고 전했다. 논란의 파장이나 의미는 축소된 채로.

SBS의 이러한 집중과 선택, 그리고 배제는 '문창극 특종 낙종'을 한 뒤라 더욱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SBS는 지난 10일 '일제 식민 지배가 하느님의 뜻'이란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과거 발언이 담긴 동영상을 입수하고도 보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특종을 길환영 사장 퇴진 뒤 뉴스정상화를 시도 중인 KBS에 빼앗긴 셈이다.

어김없이, SBS 기자협회의 반발이 이어졌다. 이미 SBS는 지난 5월 <그것이 알고 싶다> 세월호 2편 방영을 윗선 지시로 6.4 지방선거 이후로 연기하면서 국민들의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일명 '기레기'라 비판을 받은 세월호 보도 행태를 두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던 일선 기자들과 달리 보도국 간부들의 입장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전국언론노조 SBS본부(본부장 채수현)도 지난 13일 성명을 통해 "세월호 참사의 오보, 이어진 정부 비판 보도의 실종으로 기존 언론들은 시청자의 눈과 마음에서 완전히 멀어졌다"라며 "뼈저린 자기비판과 더 피나는 취재와 보도를 위한 노력만이 언론사 SBS를 되살리는 길"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어지는 보도 누락에 대해 보도국 간부들은 '판단 착오'라거나 '검토와 확인이 필요했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늘(18일) 아침에 터진 환호가 우리는 결코 삼류가 아니라는 자신감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반면 그 환호가 '뭐 지난 일은 훌훌 털고 다 잊어버리자' 이런 정서를 퍼뜨리진 않기 바랍니다. 자신감은 자신감이고 고칠 건 고쳐야 합니다."

김성준 SBS <8시뉴스> 앵커의 18일 클로징 멘트다. 진심으로 되묻고 싶다. SBS가 삼류 언론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길이 30분 넘게 월드컵 보도에 매진하는 것인지. 그것이 총리 후보자 검증 보도를 누락하면서 얻은 자신감인지. 언론사 SBS는 언제 정작 고칠 수 있는 건지. 또 그럴 수는 있는 건지.

'포스트 길환영 시대' KBS, 불안하다

KBS이사회에서 길환영 사장 해임제청안이 가결된 가운데 9일 오전 KBS본관 민주광장에서 열린 양대 노조 공동총회에서 KBS 제1노조와 새노조 조합원들이 성과 발표 후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KBS는 국민의 방송" KBS이사회에서 길환영 사장 해임제청안이 가결된 가운데 9일 오전 KBS본관 민주광장에서 열린 양대 노조 공동총회에서 KBS 제1노조와 새노조 조합원들이 성과 발표 후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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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는 64일째 세월호 소식을 톱뉴스로 전하고 있다. KBS <뉴스9>는 톱뉴스를 비롯해 전체 28개 꼭지 중 15개가 월드컵이다.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것들이 여전하다. 남 탓보다 먼저 할 것들이 널려있다."

18일 <뉴스9> 방송 직후, KBS 한 기자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글이다. 전체 28꼭지 중 15꼭지라니 SBS에 뒤지지 않는 숫자다. 어쩌면 눈치 보지 않고 월드컵에 올인한 SBS가 좀 더 화끈하고 솔직해 보일 수도 있겠다. 뒤이어 문창극 후보자 논란에 대한 여야반응까지 담아낸 KBS는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의 돈뭉치 의혹을 단독 보도했다.

KBS의 이날 보도가 문제적인 것은 이른바 'KBS 사태'가 아직 채 아물지 않은 시점이라는데 있다.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동영상 특종으로 분위기를 쇄신하긴 했지만, 양대 노조가 처음으로 한목소리를 낸 이후 '포스트 길환영' 시대의 KBS가 어디까지 변화할 수 있느냐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김재철 전 사장이 종편화시킨 MBC <뉴스데스크>와 경쟁했던 KBS였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여전히 월드컵 보도에 목을 매는 공영방송 KBS의 미래도 낙관하기 힘들어 보인다. 19일엔 KBS 기자협회, PD협회, 기술인협회, 경영협회 등이 주관한 'KBS의 독립성과 공익성 실현을 위한 대토론회'가 열렸다. 부디, 사장 선출 방식을 비롯해 공영방송 KBS가 환골탈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이 모색되기를 바란다. 

JTBC에 쫓기는 MBC, 월드컵 보도 5일 동안 68건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 소식을 전한 18일 MBC <뉴스데스크>.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 소식을 전한 18일 MBC <뉴스데스크>.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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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와 KBS 못지않은 월드컵 뉴스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18일 MBC <뉴스데스크>의 방점은 '박근혜 뉴스'에 찍힌다. 28분여의 월드컵 뉴스 직후 MBC는 <한-우즈벡 "1400년 교류…경제협력으로 新 실크로드 열자>는 제목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순방 소식을 보도했다. 변화나 자성의 의지조차 없는 MBC의 방향성을 한 눈에 보여주는 대목이다.

MBC <뉴스데스크>는 대한민국이 세월호 참사 한복판에 있던 지난 4월 29일, JTBC <뉴스9>과 같은 시청률 5.4%를 기록하는 수모를 당했다. 손석희 사장을 종편으로 방출한 MBC가 그 손석희 앵커의 JTBC <뉴스9>에 따라잡히는 이 시대의 아이러니.

이미 체감 신뢰도는 종편 수준으로 바닥을 치고 있다. 평소 편향된 보도와 기계적인 균형감을 자랑하는 MBC가 집중하는 분야가 '스포츠'와 '날씨'라는 비아냥거림도 공공연하다. 그런 MBC가 브라질월드컵에 올인하는 것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MBC는 17일을 제외한 14일부터 18일까지 모두 톱뉴스를 브라질월드컵 소식으로 채웠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확인한 숫자만 "5일 동안 총 68건"이었다. 이 와중에 MBC는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실명으로 MBC를 비판한 예능국 막내 권성민 PD에게 정직 6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를 두고 19일 서울 여의도 MBC 정문 앞에선 언론시민단체의 규탄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월드컵 올인'과 '자사 비판 PD' 사이의 간극이 아득하기만 하다.

"방송 3사가 새벽 시간을 할애, 월드컵 전 경기를 생중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재방송까지 하고 있어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국가적인 현안 문제들이 산적한 시점에서 지나치게 스포츠 중계에 열을 올리고 있는 방송사들의 월드컵 경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6월 10일 독일월드컵이 개막되면서 지상파 방송3사의 시청자 권리를 침해하는 '월드컵 올인'이 그야말로 '광적'인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위는 1994년 6월 22일자 <경향신문>의 '월드컵 全(전)경기 생중계 해야하나'란 제목의 기사 중 일부다. 아래는 2006년 6월 13일 민언련의 '시청자 무시한 '월드컵 올인'이 지상파 위기 부른다'란 논평의 첫머리다. 이렇듯, 방송 3사의 '월드컵 올인'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4년에 한 번씩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2002 한일월드컵 이후엔 암묵적인 동의까지 이뤄진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악순환을 반복할 순 없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청자들의 눈이, 국민들의 요구가 달라졌다. 사회 현안에 집중하며 심층보도에 매진하는 JTBC <뉴스9>이 부각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그 반대편엔 종편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MBC에 대한 조롱과 비난이 자리한다. 지상파 3사만이 이 변화된 요구를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태그:#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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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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