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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 관련자의 국가배상금 청구를 제한, '법원이 불법행위를 저지른 국가의 편에 선다'는 비판이 나오게 했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18조 2항이 헌법재판소로 간다. 최근 사법부의 과거청산 노력이 후퇴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헌재가 이 조항의 위헌성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지에 많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19부(부장판사 오재성)는 6월 11일 민주화운동법 18조 2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한 남성의 신청을 받아들여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신청인은 김택춘 전 서강대학교 교지 <서강> 편집장이었다. 그는 편집장 시절인 1974년 5월, 대통령 긴급조치를 비판하는 글을 교지에 실은 혐의(긴급조치 1·4호 위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이 일로 2001년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은 뒤 2005년 9월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생활지원금 1037만여 원을 수령했다. 이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0년 12월과 지난해 5월 긴급조치 1·4호를 각각 위헌·무효라고 판단했다. 그 사이 김씨는 2012년 재심을 청구, 이듬해 7월 무죄확정판결을 받고 두 달 뒤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낸다.

'보상'과 '배상' 구분하지 않은 대법원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대법원 모습.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대법원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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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4년 3월 대법원은 민주화운동 관련자인 '동일방직' 전 노조원 22명의 국가배상금 소송에서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신청인이 보상금 등 지급결정에 동의한 경우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보상금을 받았다면 국가가 따로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보상과 배상은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보상은 국가의 합법행위에 따른 개인의 손실을 갚아주는 것이고 배상은 국가의 불법으로 발생한 손해를 보전하는 제도다. 게다가 민주화운동법에 따른 생활지원금은 가구 소득이 도시근로자 연간 평균가계지출비보다 낮고 공무원이 아닌 사람에게만 지급된다. '저소득층 민주화운동 관련자'는 적은 생활지원금만 받으면 끝인 셈이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받은 사람의 국가배상금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근거가 바로 민주화운동보상법 18조 2항이었다.

"이 법에 의한 보상금 등의 지급 결정은 신청인이 동의한 때에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에 대하여 민사소송법의 규정에 의한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

대법원의 결정으로 자신의 소송이 각하당할 것을 우려한 김씨는 지난 5월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그는 이 조항이 헌법이 정한 평등권과 재판청구권,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하고 과잉금지원칙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중앙지법 "보상과 배상 엄격히 구분되는 개념... 위헌성 의심된다"

김씨의 주장은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재판부는 특히 "손실보상과 손해배상은 엄격히 구분되는 개념"이라며 "이 사건 법률조항은 합리적인 이유없이 국가배상청구권을 제한한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또 민주화보상법 18조 2항이 신속한 보상금 지급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보상금을 받은 사람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이 조항이 국가배상금소송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위헌 여부 판단이 필요하다고도 봤다.

15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긴급조치변호단은 재판부의 결정을 환영하는 논평을 냈다. 이들은 "이번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대법원의 형식적 법 논리를 배격하고 사법부가 우리 근현대사에서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높이 샀다.

반면 대법원의 '동일방직'사건 판결은 "몇몇 형식적 문구를 자의적으로 해석, 과거사 해결에 역행하고 민주주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며 비판했다. 또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정당한 배상과 예우를 받도록 해야 한다"며 헌재의 조속한 위헌 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태그:#과거사, #국가배상, #대법원,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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