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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본격적인 선거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40여 일간의 경험과 기억들을 구구절절 적다보면 책 한권 분량은 족히 될 듯하여, 가장 기억에 남는 몇 장면만 스케치하듯 추려내 본다. 원래, 선거든 운동 경기든 떨어진 놈과 진 놈이 더 할 말이 많은 법이다.

[장면①] 출마 포기하게 만들 정도로 힘든 서류 준비 과정

위의 서류는 본 후보 등록시 제출 서류이다. 예비후보 등록및 당 공천 심사용 서류까지 포함하면 일반 시민이 혼자서 준비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 후보 등록시 제출해야 할 서류 위의 서류는 본 후보 등록시 제출 서류이다. 예비후보 등록및 당 공천 심사용 서류까지 포함하면 일반 시민이 혼자서 준비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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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등록을 위한 서류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예비후보 등록 서류, 당 공천심사 제출 서류, 그리고 본 후보 등록 서류. 거의 일 주일간을 시청과 경찰서, 세무서, 동사무소를 오가며 각종 서류를 준비했다. 평범한 직장인이 점심시간을 쪼개어 서류를 준비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아예 2~3일 정도는 월차를 내고 서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나마 대리인의 도움이 없었다면 출마 자체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물론, 그렇게 준비한 서류가 한 번에 통과될 일은 없다. 공직선거용으로 제출하는 서류들은 일반 서류들과 다르다. 병역신고서도 다르고, 재산 신고서, 세금 납입 증명서도 모두 다르다. 아무것도 모르고 번호표 뽑고 기다렸다가 서류를 발급 받았다가 거의 전부를 다시 발급받았다. 일을 두 번 한 셈이다. 서류준비부터 '얼빵 캠프'는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서류 작성하는 일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마감일보다 며칠 앞서서 서류를 제출하라고 당부한다. 그래야 오류를 수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나 재산 신고와 관련해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세세하게 작성한다(자동차 하나만 예로 들면 구입년도, 배기량, 차량 넘버, 취득가액, 현 시세 등을 적어야 한다. 무슨 중고차 매매하는 것도 아니고).

주식도 없고, 땅도 없는, 재산이라고는 층간소음 문제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대출받아 구입한 아파트와 대출뿐인 내가 이렇게 힘들었는데, 많은 재산을 가진 다른 분들은 오죽하랴 싶었다. 일반 시민이 일일이 서류 준비해서 후보 등록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 진입 장벽이 서류 준비에서부터 높다는 말이다. 서류의 간소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장면②] 청심환 들이키며, 길 위에 서다

가방 하나 둘러 메고,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길 위에 서다
▲ 길거리 명함 인사 가방 하나 둘러 메고,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길 위에 서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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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서류 준비를 마감하고, 이제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해야 했다'. 하지만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인지도 제로의 후보를 알리기 위해 길에서 시민들에게 무작정 인사하며 나를 알려야 했다. 낯가림도 심하고 사람 많은 곳을 꺼려 하는 내성적인 성격인 내가 생글생글 웃어가며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 오, 이런. 하지만 다른 후보들에 비해 한참이나 늦게 선거에 뛰어들었기에 머뭇거릴 시간도 없었다.

청심환을 들이키며 길 위에서 명함을 돌리기 시작했다. 처음 명함을 돌리며 인사하던 날도, 피켓 들고 출근길 인사하던 날도, 지역 방송국에서 연설을 녹화하던 날도 청심환 한 병으로 벌렁거리는 심장을 다독였다. 청심환을 영양제처럼 거의 매일 마셔댔다.

생수 한 병과 명함 한 묶음이 들어 있는 가방을 둘러메고,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지역의 주민들을 만나기 시작했다(사실, 내가 박원순 시장님보다 원조다, 하하). 당이나 캠프의 멤버들은 이름이 적힌 점퍼를 입으라고 권유했지만, 기존 정치인들의 그런 모습은 나부터도 거부감이 들었다. 유권자일 때 길에서 그런 후보들을 만나면 일부러 길을 돌아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색했던 며칠이 지나고, 상가마다 방문하여 손님들에게 자연스레 홍보를 하고 있다
▲ 상가 방문 명함 인사 어색했던 며칠이 지나고, 상가마다 방문하여 손님들에게 자연스레 홍보를 하고 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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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젊은 친구가 아르바이트 하느라 고생이 많네"라는 반응부터, 야당의 기호가 찍힌 명함은 뿌리치고 지나가는 분들까지... 당혹스럽기만 했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후보라고 지지를 부탁하니, 명함 사진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하시는 분들이 대다수였다.

그렇게 며칠 동안 점심 시간과 퇴근 후에 길에서 명함을 돌리다 보니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자연스레 말도 몇 마디 건네기도 하고, 건널목에 서서 짧은 연설도 하는 배포가 생겼다.

"가장 젊은 야권 후보입니다."

이 한마디가 내가 내세운 유일한 무기였다. 다행히 지역의 젊은 엄마들이 조금씩 알아보기 시작했고, 아주 가끔 기운 내라며 음료수를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열흘이 지나도록 인지도는 답보 상태였다.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장면③] 한 줄기 희망의 빛... 유명 인사들의 지지 동영상

문재인 의원님과 조국 교수님의 지지 동영상은 무명이었던 나의 인지도를 상당 부분 끌어올렸다.
▲ 선거공보물에 실린 지지글 및 영상 코드 문재인 의원님과 조국 교수님의 지지 동영상은 무명이었던 나의 인지도를 상당 부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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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 출마한지조차 모르는 무명의 후보로서 길거리 홍보는 한계가 있었다. 아이디어 회의 끝에 문재인 의원님께 지지를 부탁하는 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캠프에서 초안을 작성했고, 애절하고 진정성이 철철 넘치도록 수정을 해서, 문 의원에게 메일을 보냈다. 사실, 큰 기대를 했던 건 아니다. 몇 줄짜리 지지 선언이라도 감지덕지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비밀리에 부쳤다가 개소식 때, 문 의원님의 지지 동영상을 공개했다. 참석자들의 반응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나 역시도 그날 처음 보는 동영상이라서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지방의 작은 도시의 일개 시의원 후보에게 3분이 넘는 동영상을 제작해서 보내주신 거다. 캠프와 지지자들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다(이후에 다른 후보자들께도 동영상을 보내주셨으나, 우리 캠프가 최초였다).

이에 탄력을 받아서 조국 교수님께도 부탁을 드렸고, 다 아실 만한 분의 도움으로 조국 교수님께서도 흔쾌히 지지 동영상을 보내주셨다. 유튜브와 SNS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확산 시켰고, 지지 발언이 포함된 선거공보물이 배달되고 나자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먼저 알아보고 말을 건네기 시작한 것이다.

[장면④] 젊은층 공략엔 SNS를 적극 활용하자

선거운동 기간 내내 아침 저녁으로 진행하는 출퇴근길 인사는 딱 하루만 경험해보면 어떤 건지 느낄수 있다. 시민들에게 정중히 인사하는 것은 겉모양 뿐이고, 속으로는 이 고난의 시간이 조금이라도 빨리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아침 저녁으로 진행하는 출퇴근길 인사는 딱 하루만 경험해보면 어떤 건지 느낄수 있다. 시민들에게 정중히 인사하는 것은 겉모양 뿐이고, 속으로는 이 고난의 시간이 조금이라도 빨리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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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프라인에서의 인지도 확장에는 시간적·공간적 제약이 컸다. 또한 비교적 야권 성향을 가진 젊은층을 공략하기 위한 온라인 전략이 필요했다. 우선은 후보가 누군지 알려내야 했고, 시민들의 힘으로 만드는 캠프의 생생한 모습을 전달해야 했으며, 공약에 관한 충실한 설명도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온라인 시리즈가 '네 가지 스토리'이다. '이정혁, 이정혁을 말한다'는 후보자의 성장 배경에 관한 자서전 형식의 스토리였고, '내가 본 시민후보 이정혁'은 주변 사람들이 바라본 후보자의 평소 생활과 인간됨에 관한 자유기고 형식이었다. '친절한 정혁씨'에서는 공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고, 끝으로 '시민캠프 이야기'에서는 선거운동 일련의 과정들을 가감없이 담아냈다.

위의 네 가지 스토리를 페이스북과 카카오 스토리, 그리고 밴드를 통해 널리 퍼뜨렸다. 불과 며칠 사이에 밴드 가입자 수가 200여 명을 넘어서는 등 뜨거운 반응이 나타났다. 캠프에서는 온라인 홍보에 총력을 기울였고, 후보자인 나는 오프라인 홍보에 사력을 다하며 그렇게, 본격 선거운동 기간에 접어 들었다.

[장면⑤] 본격 선거운동 기간... 체력전의 시작

선거 운동 개시 3일만에 체력 고갈과 더운 날씨로 인해 지쳐 쓰러진 상황. 시멘트 바닥위의 돗자리가 유일한 안식처였다.
▲ 선거는 체력이다 선거 운동 개시 3일만에 체력 고갈과 더운 날씨로 인해 지쳐 쓰러진 상황. 시멘트 바닥위의 돗자리가 유일한 안식처였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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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5월 22일 아침이 밝았다. 13일의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된 것이다. 돌아보면 정말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대강의 아침을 먹고(병아리 눈물만큼 먹는 자식의 아침을 차려주기 위해 선거 기간 내내 엄마가 내려와 계셨다. 그 모성애를 생각해서라도 억지로 밥알을 넘겼다. 낙선되고 가장 미안했던 사람들 중 한 분이 바로 엄마다), 출근길 인사를 위해 사무실로 달려간다.

아침 저녁 두 시간씩의 출퇴근길 인사는 사람을 녹초로 만들었다. 더구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추어 기계적으로 인사하는 모습이, 유권자 시절의 내게는 너무 거부감이 들었다. 저게 무슨 인사인가? 마네킹이지, 라는 쓸데없는 결벽주의가 오히려 몸을 더 망가뜨렸다.

다른 후보들과는 다르게 지나가는 차량 한 대에도 모두 인사를 했던 것이다. 오죽하면, 선관위 지역담당 직원이 3일째 되는 날 다가와서는, "이 후보님, 그렇게 인사하면 허리 부러질 겁니다"라는 말을 조용히 해주었을까? 그래도 내 스스로 용납되지 않는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 다음날 부터 전신을 파스로 도배해야 했다.

아침 인사가 끝나면 병원에 들어가서 오전 진료를 하고, 다시 오후부터는 지역을 돌며 명함을 돌리고 상가를 방문했다. 무더운 날씨 탓에 중간 중간 사무실 바닥에 깔린 돗자리에서 잠깐 눈을 붙이는 것이 휴식의 전부였다. 낮에는 담배와 타우린 1000mg짜리 음료로 각성했고, 밤이 되면 지나친 각성으로 인해 잠이 오지 않아 수면제로 잠을 청했다. 선거 운동 기간 내내 반복된 일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정말이지 체력과 정신력을 쥐어짜내는 강행군이었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지지 동영상을 보내주신 문재인 의원님과 조국 교수님께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지역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세심하게 배려해 주신 점, 너무나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태그:#지방선거, #시의원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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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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