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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선거의 끝이 보입니다. 선거 당일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으니, 지지를 호소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셈이지요. 각 후보 캠프는 선거 막바지에 더 분주히 돌아가고 사람들은 정신이 없습니다. 이때쯤 되면 전체 판세니 여론조사 결과니 설왕설래합니다. 마지막 공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분주하게 손익을 따집니다. 몇 표 차이가 나는지, 다른 지역 분위기는 어떤지 등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지요. 마지막 48시간! 이기는 캠프와 지는 캠프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요? - 기자 말

대부분의 사람들은 뻔~한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또 다시 뻔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건, 그 만큼 사람들이 불감증에 빠져 있다는 반증입니다. 2002년과 2012년, 판이했던 모습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다들 기억하듯이 2002년 노무현 캠프는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노풍'을 통해 광주에서의 기적을 경험하며 어렵사리 민주당의 후보가 되었지만 김원길, 김영배 등의 '후단협' 흔들기를 경험했습니다. 또 어렵게 정몽준과 후보 단일화를 했지만, 투표 8시간을 앞둔 12월 18일 오후 10시, 정몽준은 선거 공조를 파기했습니다.

정 후보가 공조파기를 선언한 이유는 노무현 후보의 불안한 안보관(노무현 후보는 "미국과 북한과 싸우면 우리가 말린다"라고 이야기 한 바 있었다)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명동 유세에서 노무현 후보가 "다음 대통령이 정몽준만 있느냐, 여기 추미애도 있고 정동영도 있다"라고 하자, 그때부터 낯빛이 바뀐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음날 나온 <조선일보>의 <鄭夢準, 노무현 버렸다>라는 매우 황당한 제목의 사설이 사람들의 마음을 분주하게 했습니다.

조선일보의 이 사설은 역설적으로 노무현 지지자를 결집시켰다
▲ 1997. 12. 19.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의 이 사설은 역설적으로 노무현 지지자를 결집시켰다
ⓒ 조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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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대통령 선거 투표일 아침, 많은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를 돌립니다. 너도 나도 투표를 독려하면서(현행 공직선거법 제 58조 제 1항 제 5호에 따라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 없이 투표참여를 권유하는 행위'를 선거운동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투표일 당일에도 투표참여 권유 행위는 가능하다) 노무현을 구한 것이지요.

같은 시각, 이회창 캠프는 무척 낙관적이었습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진 것은 이해가 될 구석이 있지만 노무현에게 진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기에, 정몽준의 단일화 파기 결정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노무현 캠프는 달랐습니다. 광주대첩, 후단협의 흔들기, 김민석의 탈당, 정몽준 단일화 파기 등에서 캠프와 구성원들이 몸소 체득한 건 '긴장'이었습니다.

2012년의 낙관론과 실패

2012년에 들어서면서 진보 쪽 사람들의 마음은 들떴습니다. 최초로 총선과 대선이 함께 있는 '선거의 해'이자 '정권교체의 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1년 전인 2011년 4월 봄 재·보궐 선거에서 '천당아래 분당'이라는 곳에서 손학규가 국회의원으로, 보수적으로 유명한 강원도에서 최문순이 도지사로 당선되었고, 10월 26일 재·보궐 선거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무소속 '박원순'이 서울시장으로 당선이 됐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청와대 비서관과 국회의원 전·현직 비서들이 재·보궐 선거 전날 만나서 소위 '선관위 디도스 공격' 모의까지 한 것이 다 밝혀진 터라, 2012년 진보진영의 상황은 결코 비관적이지 않았습니다.

4월 총선에서 야당이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12월 정권교체를 이루게 되면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을 비롯해 숱하게 벌어진 비리, 협잡, 음모, 탄압 등 손꼽히는 문제점들을 다 정리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현실을 다시 바로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야당이 승리할 수 있는 기회라며 긍정적인 해석을 했으며 야당 역시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잔뜩 긴장한 여권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전면에 나섰습니다. 광고쟁이 '조동원'을 영입해서 홍보위원장으로 앉히고 당명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로, 당 상징 색깔을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바꾸었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풀어져버린 야당과 긴장한 여당의 대결이 된 것입니다. 결전의 4·11 총선에서 그 결과는 나왔지요. 전국 투표율 54.2%, 새누리 152석 과반 달성, 승! 많은 사람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대선에서의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2012년 12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광화문 대첩' 유세에 안철수 전 후보가 '깜짝 등장'해 문 후보 지원유세를 펼치고 있다.
 2012년 12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광화문 대첩' 유세에 안철수 전 후보가 '깜짝 등장'해 문 후보 지원유세를 펼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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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2012년의 대선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습니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상대방의 공약사항을 내 것으로 소화해서 상대방을 지지할 이유를 없애는 이른바 '중도층 포섭전략(Triangulation Strategy)'을 통해 이미지 변신을 합니다. '경제민주화'와 '국민통합' 어젠다를 내세워 혁신을 이루어내겠다고 열변을 토했습니다.

당시 문재인 캠프는 안철수 후보 사퇴 이후에 승기를 잡았다며 긴장을 풀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았겠지요. 하지만 상대 새누리당에 비해서 낙관론에 빠졌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선거에서 이기는 묘수가 있냐고요?

오랜 기간 수많은 정치인을 만날 때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듣는 이야기는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입니다. 대선후보도, 기초선거 후보도 모두 같은 질문을 합니다. 질문의 의도에는 방법에 대한 것보다는 뭔가 뾰족한 묘수를 내라는 것이지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지금까지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자들이 어떤 신통방통한 묘수와 비법으로 좋은 결과를 냈나요? 물론 좋은 전략과 훌륭한 참모, 선거운동 대오를 갖춰서 드라마틱한 역전승을 한 경우는 종종 있지만 그것은 매우 예외적인 사례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드라마를 연출하기 위해서는 후보자는 최대한 '기본'은 되어 있어야 하고 또 끊임없이 긴장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기본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선거의 묘수를 요구하는 것은 손도 안 대고 코를 풀겠다는 심보이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후보자로서 자세가 안 되어 있는 것이죠. 그런 사람에게는 드라마도 없고 기적도 없습니다.

선거에서 묘수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묘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승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바로 '실수'하지 않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선거판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진용을 짰다고 하더라도 꼭 한두 번은 실수를 합니다. 그 실수를 줄이는 것이 묘수라면 묘수일 수 있겠습니다.

후보자와 참모는 지금 행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실수'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선거법을 꼭 지키시고, 절대로 악수(惡手)를 두지 마십시오. 내가 실수를 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실수를 하는 법입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죠.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의 1인 시위입니다. 새누리당은 체질적으로 시위를 싫어합니다. 집단으로 모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요. 그런 그들이 1인 시위에 나섰습니다.

6.4 지방선거가 3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윤상현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도와주세요" 피켓을 들고 새누리당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광화문 광장에 선 윤상현 "도와주세요" 6.4 지방선거가 3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윤상현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도와주세요" 피켓을 들고 새누리당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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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

이 1인 시위도 새누리당 조동원 홍보위원장의 기획 작품이라고 합니다.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 모습입니다. 뭘 도와달라는 것인지, 어떤 최선을 다 하겠다고 하는 것인지 밑도 끝도 없지만 이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표심을 자극할 만합니다. 이제 하루 남았습니다. 큰 폭으로 지지율 차이를 보이든, 미세한 차이를 보이든 끝까지 긴장하십시오. 긴장하는 쪽이 이깁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아침 가젤이 잠에서 깬다.
가젤은 가장 빠른 사자보다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온 힘을 다해 달린다.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아침 사자가 잠에서 깬다
사자는 가젤을 앞지르지 못하면
굶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온 힘을 다해 달린다.
네가 사자이든 가젤이든 마찬가지이다.
해가 떠오르면 달려야 한다. - <마시멜로우> 중

덧붙이는 글 | 오늘과 내일(3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원순TV(http://www.ustream.tv/wonsoontv)에서 시사개그맨 노정렬, 그리고 저 시사평론가 최요한, 원순캠프 시민경제대변인 조선옥이 함께 '원순C의 의리쇼!'를 생방송으로 진행합니다. 많이 오셔서 댓글도 달아주시고 응원도 해 주십시오.



태그:#착한 정치컨설팅, #긴장, #새누리, #노무현, #최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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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한, 1969년 서울 산(産), 2000년부터 방송에 관심 있어 주변을 맴돌다 2005년 우연히 얻어 걸린 라디오 전화인터뷰부터 시사평론 방송시작, 2014년부터는 경제 Agenda에 집중, 시사경제평론을 하면서 몇몇 경제채널 출연하고 있음, 어떻게 하면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지 종일 고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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