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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일 서울 대학로 눈빛극장에서 개막되어 두 달 가까이 쉼 없이 달려온 서사치유연극 <상처꽃-울릉도 1974>(아래 상처꽃)가 오는 31일 폐막을 앞두고 있다.

<상처꽃>은 1974년 유신 치하에서 발생한 소위 '울릉도 간첩단 조작사건'을 토대로 제작되었다. 알려진 바대로, 울릉도 간첩단 조작사건은 1974년 1월 유신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이 확산되자, 박정희 독재정권의 하수인 중앙정보부가 울릉도 섬 주민들과 전북대 교수 등 47명을 중앙정보부 지하밀실에 강제 구금한 후, 온갖 고문 가혹행위를 가해 '간첩' 혹은 '간첩과 내통했다'는 허위사실을 자백 받아, 간첩죄 등으로 32명을 기소 처벌한 사건이다.

그 중 세 명은 사형이 집행되어 사법살인을 당했으나 같은 해에 발생한 '민청학련-인혁당 사건'과는 달리 세간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역사 속에 묻히고 말았던 가슴 아픈 사건이었다. 

2014년 서울고법 울릉도 사건 무죄선고
 2014년 서울고법 울릉도 사건 무죄선고
ⓒ 인권의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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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이 흐른 뒤 우여곡절 끝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울릉도 간첩단 조작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하면서 이 사건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사건 피해자들은 2010년경 인권의학연구소에서 고문 트라우마 치유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2012년 겨울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이 진행되는 가운데 울릉도 간첩단 조작사건 피해자들을 처음으로 다룬 르포르타주 <울릉도 1974>(최창남 저, 도서출판 뿌리와이파리)가 출판되었다.

연극 <상처꽃>은 2013년 가을 이 책을 접한 임진택 선생이 연극 제작을 결심하면서 시작됐다. 연극 <직녀에게>의 극작가 양정순 선생이 치유프로그램에 직접 참가하면서 극본을 쓰고, 화가 김봉준 선생이 미술감독을 직접 맡았다. 일본 현대연극의 중추가 되는 재일동포 김수진 선생이 연출을 담당하고 마당극의 대가 임진택 선생이 직접 예술감독 겸 연극 제작 전반을 조율해나갔다. 연극 제작 중 2014년 1월 10일과 2월 14일 법원은 재심을 신청한 울릉도 간첩단 조작사건 관련자 18명의 간첩죄에 대해 무죄 판결을 하였다.

임진택 예술감독은 "서사치유연극 <상처꽃>은 독재정권 하에서 국가폭력에 짓밟혀 상처받았지만, 여지껏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의 연극이자, 함께 살아왔고 함께 살아나갈 사람들에게 보내는 꽃다발 같은 연극이다"라고 말한다. 일본에서 '신주쿠양산박'이라는 극단을 이끄는 김수진 연출가는 "이번 작품이 100번째 연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아마 제 연극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라고 밝힌다. 

왼쪽부터 김수진 연출가, 함세웅 신부, 임진택 예술감독
 왼쪽부터 김수진 연출가, 함세웅 신부, 임진택 예술감독
ⓒ 임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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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일간의 장정 동안 연극 <상처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얘깃거리를 낳고 있다. 소극장 공연임에도 매일 평균 100여 명, 총 5천여 명이 이 연극을 관람했다.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층이 객석에 앉았다.

그 중에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 고문과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층도 있었지만, 학생과 주부, 회사원, 종교인, 문화예술 종사자 등 이러한 문제를 처음 접하는 관객도 많았다. 관객들은 연극을 보고 난 후 '한 줄 소감'을 써서 극장 벽에 붙여 놓았다. 송경동 시인은 "진실은 언젠가 꼭 밝혀진다는 그 아픔, 그 서러움, 그러나 그 기쁨"이라는 글귀를 남겼다.

<상처꽃> 관람객
 <상처꽃> 관람객
ⓒ 인권의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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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거운 마음을 가눌 곳이 없어 이 연극을 보러왔습니다. 보는 내내 아팠지만 동시에 위로받았고 위로를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어요. 꼭 !
* 음악, 그림, 연기 그 모두가 어우러져 아픔을 이야기하고 치유하는 연극입니다.
* 참 아프고 시원하다.
* 원래 눈물이 없는 편인데 보면서 몇 번의 눈물을 참았는지 모르겠다. 배우들의 연기도 너무 소름 돋을 정도로 좋았고 마지막 실제 인물을 소개할 때는 정말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다들 힘내세요.
* 세월호로 마른 내 눈물, 꾹꾹 짜내서 다 쏟고 갑니다.
* 모르고 못 들은 척 살아온 시간이 부끄럽습니다.
* 인간에 의한 상처는 오직 인간으로부터 치유받는다.
* 크나큰 아픔도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 치유가 됩니다. 고맙습니다. - 용산 유가족
* 울릉도 간첩단 조작사건으로 고통당하신 분들에게 법원에서 무죄라고 판결내리는 것보다 그 말도 못할 고통들을 스스로 끄집어내고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죽은 날을 이겨내고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 쌍용차 해고자

관람객들의 한줄 소감
 관람객들의 한줄 소감
ⓒ 인권의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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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길라잡이의 연기경력 20년차 남녀배우 여덟 명의 호소력 있는 연기도 공연 기간 내내 관객들의 화제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들 배우의 현재 연령이 피해자들이 당시 고초를 당하던 때의 나이와 같아 연극의 사실감이 더했다. 담담하게, 때로 절규하면서 내뿜는 혼연의 연기에 막이 내린 후에도 관객들은 잠시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뒷줄 왼쪽부터 배우 배정미, 강왕수, 고기혁, 성형진 앞줄 왼쪽부터 손경원, 정연심, 조승욱 배우
 뒷줄 왼쪽부터 배우 배정미, 강왕수, 고기혁, 성형진 앞줄 왼쪽부터 손경원, 정연심, 조승욱 배우
ⓒ 인권의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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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연하는 배우
▲ 배익두 역 배우 손경원 열연하는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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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극은 아마도 특별 출연자(까메오)가 가장 많은 작품으로 기록될 듯하다. 총 60회 공연에서 매회 3명의 각계 인사가 극중 '재심 판사' 역을 수행했다. 특별 출연자는 국가폭력 피해자이거나 울릉도 사건과 같은 불행한 과거사 청산운동에 앞장서왔던 인사들이었다. 특별출연자들과 초대 관객들도 짧은 관람 소감을 남겼다.

울릉도 사건 피해자들의 특별 출연
 울릉도 사건 피해자들의 특별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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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는 저 분들의 고통을 타고 여기에 이르고 있습니다. 잊지 맙시다. 저들의 아픔을! - 김상근 목사
* 상처꽃! 아름다운 꽃!  불의와 부패를 쫓는 정의로운 꽃! 활짝 피어라! 아멘. - 함세웅 신부
* 아픔의 역사!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아픔! 연극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니 내가 사회에 얼마나 무관심한 사람인지 느끼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맹봉학 배우
* 마음 아픕니다. 내가, 우리가,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함께 힘을 모아야지요. - 문성근
* 유신과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 분단과 일제 식민주의가 지속되는 세상을 엎어 새로운 세계로 나가야지. - 서승
* 감동 그 자체였다. 시대의 아픔을 압축한 연극은 우리의 감성을 발동케했다. 우리의 서러움을 짧고 굵게 깊이 있게 다루어 우리의 병소를 도려내버리게 한 아주 훌륭한 극이었다. 이에 함께했다는 나의 입장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 양희철
* 민가협 어머니들. 자식들의 모진 고문…. 어머니들은 아직도 끔찍한 그날을 잊지 못한다. - 조순덕
* 고문과 조작이 없는 세상이어야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좋은 연극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심재환
* 너무 생생한 상황을 간결하게 잘 구성하셨습니다. 너무 슬픈 상황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박석운
* 좋은 연극 감사합니다. 진실은 승리하고 널리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동참합니다. - 유우성
* 엉엉엉 울고 갑니다. 마지막에는 힘냈습니다. - 김인국 신부
* 세월호 때문에 흘린 눈물보다 많은 눈물 흘렸네. 나도 같은 고통을 당했기 때문일까. - 강종건
* 많이 울고 치료받고 갑니다. 내 가족이 봤으면! - 양길승
* 소중한 모든 생명, 존엄한 평화 정의의 꽃으로 활짝 피어라. - 문규현 신부

5월 31일 60일간의 장정 마치는 서사치유연극 <상처꽃>
 5월 31일 60일간의 장정 마치는 서사치유연극 <상처꽃>
ⓒ 인권의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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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 31일 토요일 3시, 7시 마지막 공연으로 연극 <상처꽃-울릉도 1974>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러나 5천여 명의 관객과 180명의 카메오, 한국과 일본의 극 예술가들, 8명의 중견 배우가 피운 상처꽃은 어딘가에서 아직도 숨죽여 살아가는 고문·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희망과 용기의 꽃씨로 다시 살아날 것임을 믿는다.


태그:#울릉도 간첩단조작사건, #상처꽃, #치유연극, #인권의학연구소,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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