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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의 어느 날 늦은 저녁,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평소 알고 지내며 도움을 주고받던 동네 '캣헬퍼'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당혹스럽고 놀란 듯,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집 앞에서 고양이가 죽었어요. 차에 치여서…. 엉망진창이 됐어요. 근데…, 이게 새끼를 뱄던기라. 어미는 엉망진창이 됐는데…, 배에서 새끼 하나가 튀어나와 꼬물꼬물하던데…. 다 죽었어요. 내가 신문지에 싸놨는데... 묻을 수가 없어서…."

비보를 접한 첫 느낌은 놀라움과 두려움이었다. "엉망진창이 됐다"는 어미 고양이가 설상가상으로 새끼를 갖고 있었다는. 뒤이은 감정은 솔직히 말해서 '귀찮음'이었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종일 짐정리를 하고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갈까, 날 밝은 다음날 갈까 고민하는데, 할머니의 말 한마디가 귓전을 계속 맴돌았다.

"배에서 새끼 하나가 튀어나와서 꼬물꼬물…."

"살아있다면 대답해"... 기적이 응답했다

한 시간이 채 안 돼 할머니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자 장독 옆에 두툼한 검정 봉지가 보였다. 곧이어 할머니가 안방에서 나왔다.

"아까 새끼 한 마리 살아있다고 하셨죠? 혹시 확인하셨어요?"
"아니 아니, 나는 못 봐…. 신문지에 싸는 것도 간신히 했어. 죽었어. 못 살아."

결국 직접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울음이 터졌다. 두려움 때문만이 아니다. 물론 축축하고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검정 물체를 보는 것만도 아찔했다. 하지만 그보다 차가운 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 쓴 듯 참담함이 온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겨우 봉지 매듭을 풀었지만 더 이상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봉지 겉면을 톡톡 치며 말하기 시작했다.

"아직 살아 있으면 대답해…. 살아 있으면 대답해…."

그렇게 같은 행동을 열 번쯤 반복했을까. 순간, 분명 눈앞 어디선가 작지만 분명한 "에엥~"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아주 가녀리고도 선명한 풀피리의 그것과 같았다. 귀를 의심하며 몇 번인가 더 두드려보자 '생명의 신호'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

탯줄은 끊어져 있었다... 눈물이 왈칵

어미 뱃속에서 갓 나온 핏덩이 '다니'
 어미 뱃속에서 갓 나온 핏덩이 '다니'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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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지 자명해졌다. 조금 전까지 피하고만 싶었던 눈앞의 것이 더이상 싫지 않았다. 생명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나는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피에 젖은 신문지를 한 장 한 장 뜯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척이나 다행히 조금 전까지 울음으로 제 존재를 알렸던 생명과 마주했다.

격한 감동을 누르며 동물보호단체 전문가의 조언대로 미리 준비해둔 가위로 탯줄을 자르려고 했다. 하지만 들어 올린 새끼는 어미로부터 스르르 떨어져 나왔다. 또 한 번 눈물이 솟았다. 죽은 어미가 제 자식 하나라도 살리고자 연결고리를 끊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울음도 잠시, 얼른 체온을 높이고 수유를 하는 게 급선무였다. 시간을 지체하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터였다. 어미몸 밖으로 나온 생명은 급격히 차가워지고 있었다. 얼른 할머니의 따뜻한 이불 속으로 옮기고, 깨끗한 면수건을 뜨거운 물에 적셔 반복해 닦아줬다.

다음은 초유, 즉 어미젖과 같은 우유가 필요했다. 하지만 자정을 넘은 시각. 몇 번의 다급한 문의 끝에 인근 반려동물용품 가게에서 고맙게도 밤잠을 깨고 나와 초유캔을 내줬다. 이제껏 개와 고양이를 여럿 키워 왔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단 하룻밤의 엄마 노릇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는 '다니'.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는 '다니'.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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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극적으로 한 생명을 만났다. 아직 시집도 안 간 내가 산 사람도 아닌 죽은 동물의 산파가 돼 내 손으로 받아낸 생명체였다. 너무 놀라고 지친 할머니는 당신 집에 새끼 고양이를 두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겨우 정상 체온을 찾은 녀석을 몸에 품고 얼른 내 집으로 옮겼다.

그리고 배운 대로 두 시간에 한 번꼴로 초유를 먹이며 계속해 몸을 닦아 혈액순환을 돕고, 깨끗한 수건으로 생식기를 톡톡 쳐서 배변을 유도했다. 모든 것이 서툴렀다(특히 인공 젖병을 이용한 수유가 그랬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대신 젖을 먹이자 새끼가 입을 쩍 벌려 쪽쪽 빨기 시작했다.

핏기를 닦고 젖은 털이 마르면서 새끼 고양이는 보슬보슬 새하얀 모습을 드러냈다. 흰색 바탕에 등과 꼬리에 노란 얼룩이 있는, 신문지 더미 안에서 봤던 제 어미의 그것과 꼭 닮았다. 녀석은 한 손으로 제지하기 어려울만큼 힘차게 꼼지락대며 밤새 울다 먹다 자다를 반복했다.

다음 날, 두 눈을 꼭 감은 채 투명한 진분홍색 젤리 같은 입을 쩌억 벌리며 하품하던 녀석의 모습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만 하루였지만 운명 같은 만남에 정이 들 대로 들어버렸다. 하지만 당일 오전, 도움을 요청한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로부터 녀석의 대리모를 찾았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부산에서 경기도 가는 기차를 태워야 했다.

서운함이 밀려왔지만 새끼 고양이에겐 더없이 좋은 일. 나는 급히 이름을 생각했다. '기적'? '행운'? '구사일생'을 줄여 '구일'? 그러다 '대다나다'(대단하다)란 최신 유행어가 떠올랐다. 녀석이 보여준 죽음과의 사투, 생의 기적은 진정 대단했으므로! 그래서 불과 몇 시간밖에 부르지 못할 새끼 고양이의 첫 이름은 '다니'가 됐다.

생명 하나하나, 모두가 '대단한 기적'

'다니'를 제 친자식처럼 여긴다는 대리모 고양이.
 '다니'를 제 친자식처럼 여긴다는 대리모 고양이.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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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를 보호중인 곳에서는 계속해서 녀석의 성장 사진을 보내주고 있다. 당시 만삭이었던 대리모 고양이는 출산을 했고, 혹여 우려했던 일 없이 다니를 제 새끼 중 하나로 여겨 극진히 보살펴 준단다. 지난 25일 받은 사진에서 다니는 다정한 엄마뿐 아니라 살가운 형제들과도 함께 있었다.

요즘 생명을 경시해 벌어지는 참혹한 일들이 너무 많다. 사람과 같이 고통과 만족을 느끼는 동물을 부러 잔인하게 죽이는가 하면, 매일 먹으면서도 그것이 생명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결국 동족인 사람끼리도 너무 쉽게 폭력을 가하고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는지.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놀라우며, 사람과 닮았는지. 비록 다니와 같은 극적인 탄생이 아니라도, 모든 생명은 하나하나 전부가 말할 수 없는 기적 그 자체다.

'다니'의 형제들
 '다니'의 형제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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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아래 한 장의 사진을 소개한다. 생(生)과 사(死)가 함께였던 다니를 발견한 첫 순간이다. 녀석을 보낸 날 밤, 서운한 마음에 사진을 들여보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다니의 머리맡에, 또 한 마리 새끼 고양이의 뻗은 두 팔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수십 번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살아있었던 생명이 또 있었을까'를 되물었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더불어 당시 그것이 내 최선이었음도 알았다. 그러나 다니와 함께 한 시간을 되새기며 결국 깨달았다. 더 많은 희생이 있었다 한들, 그 속에서 살아난 한 생명의 가치가 덜할 수 없음을. 그래서 참으로 하찮은 이유로 수없이 많은 생명이 죽임을 당하는 이 세계에서조차, 내 눈길과 손길 닿는 곳에 생명 돌봄을 절대로 놓아서는 안 될 일임을.

울음으로 제 존재를 알린 '다니'
 울음으로 제 존재를 알린 '다니'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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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죽은 다니의 어미와 몇인지 모를 그 형제들은 양지 바른 곳에 잘 묻어주었습니다.



태그:#길고양이, #위탁모, #나비탕, #동물학대, #고양이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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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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