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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구 수미르공원에 있는 해양경찰 창설 기념비. 해양경찰은 1953년 12월 23일 부산에서 창설했다. 이 기념비는 2013년 창설 60주년을 기념해 세웠다.
 부산 중구 수미르공원에 있는 해양경찰 창설 기념비. 해양경찰은 1953년 12월 23일 부산에서 창설했다. 이 기념비는 2013년 창설 60주년을 기념해 세웠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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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경찰 여기서 태어나다'

부산 중구 중앙동의 수미르 공원에는 조형물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다. 해경(해양경찰)의 창설지를 나타내는 기념비다. 지난해 60주년을 맞은 해경이 자축하는 의미에서 세운 기념비는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성장의 상징물이다.

해경은 1953년 이곳에서 발대식을 열었다. 처음 문을 열었던 당시 해경은 지금에 비해 보잘 것 없었다. 해군으로부터 넘겨받은 경비함 6척과 650여 명의 인력이 해경의 전부였다. 이후 해경은 경비함정 300여 척, 직원 1만여 명에 이르는 종합 법집행 기관으로 거듭 났다.

지난해 7월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은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해 "더욱 강하고 사랑받는 해양경찰로 거듭나는 데 앞장 설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1년 전의 바람과는 달리 그는 마지막 해양경찰청장으로 기록될지도 모르게 됐다.

출범 61년을 맞은 대한민국 해경은 조직 해체를 앞두고 있다. 분위기는 침울하다. 대통령의 조직해체 발표가 나온 지 사흘째인 21일 해경 내부의 분위기는 여전히 뒤숭숭했다. 해양경찰 창설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남해지방해양경찰청이 있다. 통상 이곳의 경찰관들은 일반 경찰을 '육경'(육지경찰)이라 부른다.

그만큼 해경과 육경은 다른 점이 많다. 육경은 안전행정부 소속, 해경은 해양수산부 소속이다. 경찰의 날은 10월 21일, 해경의 날은 9월 10일로 다르다. 긴급신고전화도 해경(122)과 육경(112)은 다르다. 복장도 다르고, 경찰차 디자인도 다르다. 시험을 치르고 교육을 받는 곳도 다르다. 해양경찰특공대는 SSAT, 육지경찰특공대는 SWAT. 해경에게 뭍에 있는 육경은 '유관기관'에 불과하다.

허탈한 해경 직원들... "지휘부 쳐다보는 내 자신 부끄럽다"

21일 오후 부산 남해지방해양경찰청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굳게 닫혀있다.
 21일 오후 부산 남해지방해양경찰청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굳게 닫혀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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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아침에 조직이 두 동강 나게 된 해경 직원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은 해경이 하던 경비업무를 신설하는 국가안전처로, 정보와 수사업무는 경찰청으로 이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경 직원들은 그 파장을 걱정하고 있다.

한 해경 직원은 "세월호 참사에서 해경이 보여준 모습이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가져다 준 것은 인정하지만 해경의 업무는 구조만이 아니라 해상 치안과 영해 수호 등 헤아릴 수 없는데 조직을 구조에만 적합하게 바꾸면 다른 기능에 허점이 생길까봐 걱정스럽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같은 우려는 해경 내부망에서도 터져나오고 있다. 일선 경찰관들은 이례적으로 김석균 청장을 비롯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글까지 올리고 있다. 상명하복이 원칙인 경찰 공무원에게는 좀처럼 찾기 힘든 모습이다.

한 해경은 조직 해체까지 몰고 간 지휘부를 향해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겼다"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휘부를 쳐다보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럽다"는 원망도 있다. 이를 두고 한 경찰관은 "억눌렸던 게 터져나오는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더 큰 우려는 해경 해체가 설익은 급조성 대책이 아니냐는 데 있다. 우리 해역을 침범하는 외국 어선을 나포해도 수사권이 없다면 불법 어업 단속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지적은 해체 발표 직후부터 제기됐다. 2021년까지 육군의 해양경계 임무를 해경으로 이관하는 대신 군 병력을 11만여 명 감축한다는 국방개혁 시나리오도 수정이 불가피한 상태다.

전직 해경 "대통령 혼자 나라를 만드는 것이 아닌데..."

'세월호 침몰사건' 2일째를 맞았던 4월 17일 한 해양경찰이 선수만 보이는 세월호를 바라보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건' 2일째를 맞았던 4월 17일 한 해양경찰이 선수만 보이는 세월호를 바라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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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해경들도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34년간 해경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천봉도 부산해경 경우회장(70)은 "해경 요원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평생을 가꿔온 조직이 하루아침에 해체된다고 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라며 "다른 경우회원들도 비슷한 기분"이라고 전했다.

천 회장은 "대통령 혼자 나라는 만드는 것은 아니지 않냐"며 "국민이 모여 국가가 되는 건데 여론수렴 과정도 없이 청와대에서 몇 분이 모여 결정한 것"이라고 해경 해체를 비판했다. 그는 "해경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경찰과 소방을 함께 묶는 종합 안전 부처를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인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개혁은 필요하지만 해경의 기본 기능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은방 한국해양대 해양경찰학과 교수는 "해경의 경찰문화를 개혁하는 것은 좋지만 해경의 기능이나 업무는 오히려 더 강화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부분을 보고 해체를 결정했지만 순기능을 잘 키워야 한다는 차원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모든 수사권을 경찰이 가져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해상 관련 수사권한은 해경에 있어야 한다"면서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해안경비대나 일본의 해상보안청과 같은 조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태그:#해양경찰, #세월호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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