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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과 <오마이뉴스> 독자들께 보고를 드립니다.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아직도 제자리 잡지 못한 어느 독립운동가의 묘지(2013.03.06.)라는 글을 기고하여 독립운동가이며 국어학자인 이윤재(李允宰, 1888~1943)선생의 묘소가 국립묘지에 안장되어야 함을 호소하였습니다. 이제야 마무리하였습니다. 결실을 맺기까지의 과정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윤재 선생의 모습
▲ 이윤재 이윤재 선생의 모습
ⓒ 박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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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기고한 이후 필자는 남의 땅에 방치되어 있는 이윤재의 묘소(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동 산 48번지 소재)를 반드시 국립묘지로 옮겨야 한다고 판단하여, 유족을 설득하였다.

필자가 외손자를 만났을 때, 그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우선 국립묘지 안장을 위해 외손자와 외손녀의 협조를 요구하였다. 묘지 이장에 최종 동의를 받기까지 필자는 참으로 어려운 고통을 감내하였다.

필자는 전 생애를 민족을 위해 바친 이윤재 선생을 생각해서라도 어서 빨리 국립묘지 이장에 필요한 서류를 국가보훈처에 제출하라고 설득하였다. 결국 유족들도 가까스로 서류를 제출하였다. 머나먼 길을 돌아 이윤재 선생은 작년 9월 28일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서거하신지 70주년이 지나 제자리를 잡았다.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때 이윤재 선생의 유골함
▲ 유골함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때 이윤재 선생의 유골함
ⓒ 박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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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장식은 한글학회 김종택 회장을 비롯하여 많은 인사들과 유족들이 참여하여 잘 마무리되었다.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이윤재 선생 묘소 앞에서
▲ 안장식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이윤재 선생 묘소 앞에서
ⓒ 박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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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한글학회 회장은 필자에게 이윤재 선생의 묘비문을 작성하라는 말씀을 하셔서, 저는 "최선을 다해 묘비문을 지어 대전현충원에 보내드리겠습니다"라고 답변을 하였다.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묘비문을 작성하였다.

1. 묘비 앞면 윗부분 :
애국지사 이윤재
배위 정달성

2. 묘비 앞면 아랫부분 :
너희들은 틀림없이 독립을 보리라.
-1933 이윤재-

3. 묘비 뒷면 윗부분 :
1888년 12월 24일 김해 출생
1943년 12월 8일 함흥 서거

4. 묘비 뒷면 아랫부분 :
1919 3·1운동 참여로 1년 6개월 옥살이(평양 감옥)
1921∼23 베이징대학 사학과 수학
1929 조선어사전편찬회 위원
1931 저서 <성웅 이순신> 출간
1929~33 연희전문학교 교원
1935~37 조선어학회 간사
1937~38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1년 2개월 옥살이(서대문형무소)
1942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구금
1943. 12. 8. 모진 고문으로 순국(함흥형무소)
1962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부인 정달성
동생 만재
아들 원갑
       원주
딸 순경(사위 김병제)
    무궁화(사위 박종식)
    영애(사위 이혁종)

이 묘비문을 이윤재 선생의 외손자에게 2013년 10월 18일에 보내드려, 어서 빨리 대전현충원에 보내드리라고 말씀을 드렸다.

필자는 올해 5월이면 묘비문이 세워진다는 현충원 담당자의 말을 듣고, 지난 5월 18일 대전현충원을 방문하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묘비가 이윤재 선생의 묘소 옆에 당당히 세워져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경신학교 교원 시절에, 이윤재 선생이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틀림없이 독립을 보리라."라고 말한 글귀가 묘비의 전면에 새겨져 있었다. 필자는 너무도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뻔하였다. 선생의 묘소 앞에서 참배를 하고,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사진을 찍었다.

국립대전현충원에 있음(애국지사 제1-1묘역 499번)
▲ 이윤재의 묘소와 묘비 국립대전현충원에 있음(애국지사 제1-1묘역 499번)
ⓒ 박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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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통해 묘소 사진을 혹시나 북한의 유족들이 본다면, 이분들도 매우 기뻐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작년 9월 28일 안장식 때 유족으로부터 이윤재의 아들과 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받았다. 이윤재의 셋째 딸을 제외하고, 자녀들은 북한에서 보냈다. 이 사진은 몇 해 전 이윤재의 조카 이원홍이 북한을 방문하였을 때, 북쪽의 유족이 전해주었다고 한다. 이윤재 선생과 관련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기에, 소개한다.

왼쪽부터 장녀 이순경, 차녀 이무궁화, 사위 박종식, 장남 이원갑
(이진영 님 사진 제공)
▲ 이무궁화 진갑 때 찍은 이윤재 선생의 가족사진 왼쪽부터 장녀 이순경, 차녀 이무궁화, 사위 박종식, 장남 이원갑 (이진영 님 사진 제공)
ⓒ 박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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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저는 이렇게 애국지사 이윤재 선생을 연구하다가, 유족을 설득하여 그 분의 묘소를 국립묘지에 모셨습니다. 제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이 일을 마무리하는데, 독자 여러분의 성원이 매우 컸습니다. 그 고마움을 이 글을 통해 전합니다. 이윤재 선생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필자가 지은 <우리말·우리역사 보급의 거목 이윤재>(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3)라는 책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아직도 혁혁한 독립운동을 했음에도, 유족이 없거나 서류를 신청하지 못해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태그:#이윤재, #한메 이윤재, #한글학회, #조선어학회, #국립대전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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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한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과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와 한글학회 연구위원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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