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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이 긴급민생대책회의를 주관하고 있는 모습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이 긴급민생대책회의를 주관하고 있는 모습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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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내수경기가 침체할 우려가 있다며 경제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지난 9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 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고 있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긴급민생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회의에서는 국가 재정을 조기에 집행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어 지난 11일에는 긴급관계기관회의를 통해 피해 우려 업종에 대한 자금지원 규모를 늘리기로 했다.

새누리당 역시 경기침체 우려와 그에 따른 대책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12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민간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있어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어려움이 많다"라면서 "국회 차원의 민생경제 활성화 대책을 5월 임시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경제 대책이 필요한 시기임은 맞다. 하지만 지금 시기 정부가 경제위기론을 들고 나오는 것을 두고 '세월호 참사 정국을 빨리 넘어가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시선이 많다. 정부와 여당이 경제위기 상황을 끌어들여 진짜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는 말은 다음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긴급민생대책회의에서 "사회불안이나 분열을 야기 시키는 일들은 국민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즉 '경제가 어려우니 (세월호 문제로 시끄럽게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다.

'경제'는 왜 존재하나

발언에서 드러난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은 여전히 경제논리를 다른 가치보다 우선시한다. 따라서 경제가 어려우니 '사회불안'이나 '분열'을 야기하는 행동이나, 정부를 상대로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내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국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어떠한 행위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사회가 시기마다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다양하다. '경제'라는 범주는 그중 하나일 뿐이다. 경제적 효율성을 다소 포기하더라도 노동문제·인권문제 등을 더 우선시할 수 있다.

현재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국민들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세월호 참사는 경제논리와 효율성을 모든 가치보다 앞세웠기 때문에 일어난 측면이 크다. 따라서 국민들은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의 가치'가 중심이 된 사회를 바라고 있다. 이제는 경제논리를 앞세운 무분별한 비용절감, 구조조정 등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확산되고 있다. 경제논리를 앞세우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아무런 반성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설령 경제논리가 현재 상황에서 중요하다 하더라도 '세월호 참사로 한국 경제 성장률이 몇 퍼센트 떨어질 것이다' 등의 소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이미 서민 경제는 추락할 대로 추락해 있기 때문이다. 극심한 양극화 속에서 '일반 지표상의 경제성장'과 '서민 경제활성화'는 한국 경제와 거리가 먼 이야기가 됐다. 지금과 같은 한국 경제 구조 속에서 경기를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푼다고 해서 '서민경제'와 '민생'이 자연스럽게 좋아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지금은 '경제가 어려우니 가만히 있어야' 하는 시기가 아니라 진정한 '경제'를 위해서라도 기존의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의문을 제기해야 하는 시기다. 또 한국 사회의 새로운 방향에 대한 토론들이 광범위하게 펼쳐져야 한다. 한국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사회불안'(?)이 필요한 것이다.

경기침체가 세월호 참사 탓인가

세월호 참사 한달째인 16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인간리본 만들기 플래시몹에 참여하고 있다.
▲ 한마음으로 만든 인간 노란리본 세월호 참사 한달째인 16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인간리본 만들기 플래시몹에 참여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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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주장대로 세월호 참사로 식당이나 마트, 여행·숙박업 등의 내수 부문은 일정 정도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가 꼭 세월호 때문에 나빠진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원인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미 이전부터 대다수 사람들은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2008년 세계적 경제위기 이후 경제가 회복됐다는 말들을 하지만, 그것은 몇몇 소수의 재벌과 부자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의 경제위기를 세월호 문제로 환원하려고 애쓰는 듯한 모양새다. 정부는 긴급민생대책회의 자료에서 올해 초부터 계속됐던 농산물 가격의 하락도 세월호 사고로 요식업 수요가 줄어서 나타난 현상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또수십 년째 부진한 전남 지역의 기업 현황도 세월호 사고와 연관 짓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소비심리 악화를 강조하면서 한국은행 4월 소비자동향조사의 몇몇 항목들(소비지출전망, 향후경기전망)을 그 근거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소비자동향조사는 쉽게 말해 소비자들에게 지금의 경기 여건이 어떤 것 같은지를 물어서 지수화한 것이다.

한국은행 4월 소비자동향조사는 4월 11일에서 18일까지 진행됐다. 세월호 참사는 4월 16일에 발생했다. 초반에는 전원 구조됐다는 오보가 나오고, 구조에 대한 희망이 컸던 상황이라 지금과 같이 전 국민이 참혹한 심정을 가지고 있던 때는 아니었다. 따라서 4월 소비자동향지수는 세월호 영향을 반영했다고 볼 수 없음에도 정부는 세월호 영향을 근거로 제시했다.

나아가 한국 경제의 구조와 기초여건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급작스러운 사고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 등은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일례로 삼풍백화점 참사(사망자 502명)는 1995년 6월 29일에 발생했는데, 당시 소매판매액 지수(계절조정 기준)는 5월 51.8에서 6월 53.1, 7월 54.3으로 상승세를 지속했다. 1995년 3분기(7~9월) 민간소비 증가율도 전기 대비 1.2%로 1995년 1분기 4.3%나 2분기 2.0%보다 낮았지만, 전년 동기 대비로는 3분기 증가율이 11.1%로 1979년 1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연합뉴스>, 2014년 4월 27일 보도).

결국 정부는 지금의 경제위기를 세월호 문제와 연관 지어 '세월호 문제로 사회가 시끄러워 지면 안 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소비심리를 위축시키는 것은 누구인가

안산의 엄마들이 주축이 된 인터넷 카페 '엄마의 노란 손수건' 회원들이 지난 5일 오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아 세월호 침몰사고 특검 도입과 정부의 철저한 수사,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는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안산의 엄마들이 주축이 된 인터넷 카페 '엄마의 노란 손수건' 회원들이 지난 5일 오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아 세월호 침몰사고 특검 도입과 정부의 철저한 수사,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는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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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말대로 경제에서 소비자들의 심리는 중요한 문제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소비를 하지 않으면 경제는 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왜 소비심리가 불안정해졌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현재 소비심리가 불안정하고 내수가 얼어붙어 있는 것은 단순히 세월호 참사로 소비심리가 위축돼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사람들의 소비가 늘어나지 않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사회적으로 불안심리가 커진 데는 정부의 책임이 일차적으로 존재한다. 최근 사람들의 불안감이 더욱 커져 있는 것은 단순히 세월호 참사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 자체뿐만 아니라 정부가 보여준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불신까지 겹쳐졌기 때문이다.

만일 세월호가 침몰했을 당시 제대로 구조를 했거나, 정부가 신속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다면 정부가 우려하는 소비심리 불안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 자체에 있지 않다.

초기에 왜 제대로 구조를 못했는지, 해경이 왜 선장과 선원들만 먼저 구조했는지, 실종자 수색을 왜 언딘(언딘 마린 인더스트리)에만 의존하려 했는지 등 각종 의문이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즉 정부를, 한국이라는 사회를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고 경제불안과 사회불안만을 이야기한다.

둘째, 사회적으로 불안심리가 커진 데는 주거불안·고용불안 등 사람들의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민들이 빚에 짓눌려 있가 때문이기도 하다. 대다수 서민들은 2년마다 새로 살 집과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오르는 전세금을 고민해야 한다. 제대로 된 일자리는 줄어들고 노후대책 역시 불안하다. '가계부채 1000조 원 시대'가 말해주듯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빚을 끌어다 쓸 수밖에 없는데, 더 이상 빚을 끌어다 쓰기도 힘든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미래의 불안함을 대비하기 위해 돈을 쓰기가 어려워진다. 전반적인 소비심리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내수와 소비를 살리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한국 경제의 새 판짜기가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도 규제완화·비정규직 문제 등이 사회의 안전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근본적인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고 있다. 표면적인 소비심리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이러한 정부의 인식 아래 아무리 돈을 많이 풀어봐야 바뀌는 것은 없다.

따라서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나 세월호 사건의 의혹에 대한 해명 없이 '세월호 사고 때문에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있다'고 진단하는 것은 하나의 편향된 정치적 주장일 뿐이다. 오히려 '경기 활성화'와 민생 대책을 앞세워 문제의 진짜 원인을 어물쩍 덮고 지나가려는 태도다. 이런 태도는 사회적 갈등을 부추겨 경제적 불안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

더군다나 정부는 '사회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규제완화에는 여전히 적극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긴급민생경제대책회의 공간에서조차 "우리 경제의 체질개선을 위한 경제혁신과 규제개혁 노력은 흔들림 없이 지속돼야 한다"라면서 규제완화 정책을 중단 없이 추진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물론 안정 등과 관련된 '좋은' 규제는 강화한다고 했지만, 박근혜 정부에게 철도 관련 규제 등은 '나쁜' 규제일 뿐이다.

소리만 요란한 정부의 대응책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로 국내 소비가 위축된다며 정부가 내놓고 있는 대책이란 어떤 것인가? 크게는 ▲ 7조8000억 원가량의 예산을 2분기에 조기 집행 ▲ 소비 위축이 우려되는 업종에 500억 원 규모의 저리융자 지원 ▲ 소상공인 피해 최소화를 위해 1000억 원 규모의 특별자금 저리융자 지원 ▲ 피해지역 어민·영세사업자의 조세납부 시기 연장 ▲ 전남에 20억 원, 경기도에 25억 원의 특별교부세 지원 등이다.

호들갑에 비해 정부가 내놓은 경기부양책은 초라하다. 정부가 우려 업종에 대해 마련한 자금 지원을 모두 합치면 1500억 원 가량이다. 피해업종을 지원하고 경기 흐름을 바꿔놓기에는 턱없이 적은 액수다. 더군다나 실제 재정집행규모 대부분은 직접 돈을 지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은행에서 빌려주는 대출 형태다. 오히려 부채를 더 늘려 향후 소비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

7조8000억 원 가량의 예산을 조기집행하는 부분은 일반적인 경기부양 대책이지 피해업종에게 혜택이 모두 돌아가는 방안은 아니다. 이후 써야 할 돈을 앞당겨 쓰는 것일 뿐이다. 또한 단순히 돈을 푼다고 그 혜택이 서민들에게, 민생을 위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전남과 경기도에 지원한다는 45억 원의 특별교부세 역시 미흡하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특별교부세 총액은 1조3149억 원이었다. 현행법규는 이중 50%를 재난 및 안전관리에 쓰도록 하고 있다. 1조3149억원의 50%면 6574억 원이다. 이중 45억 원이면 0.68%에 불과하다(<프레시안>, 2014년 5월 12일 보도)

현재 우리 경제가 어려운 것을 세월호 참사와 연관시키고, 위기론을 부각시키며 허겁지겁 대책을 발표하는 것은 정책의 순수성을 의심케 한다.

대통령은 '사회불안'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혹여나 경제가 어렵다는 논리를 내세워 세월호 관련 의혹들을 덮으려 한다면 사회적 불신은 더욱 커질 것이고, 사회는 더욱 불안해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사회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태그:#세월호 , #경제위기, #긴급민생대책회의,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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