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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이 한 줄이 세월호 사태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대한민국은 배의 침몰을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하면서 고립된 탑승객 전원을 차가운 바다에 수장시켰다.

국격은 곤두박질치고 국민은 집단 멘붕(멘탈 붕괴의 줄임말)에 빠졌고 세계는 비난을 쏟아냈다. 참사 20여 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수습하지 못한 안타까운 죽음들이 바닷속에 갇혀있다. 탄식과 실망은 분노로 바뀐다. 참사를 야기한 추악한 진실들이 양파 껍질 벗겨지듯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늘은 또 무슨 아연실색할 사실이 밝혀질까. 욕을 하고 화를 토해내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든 날들이 이어졌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민영화'한 대가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국가의 위기관리시스템은 처참하리만큼 엉망이었다. 구조당국이 우왕좌왕하며 허송세월하는 사이에 배는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민관군이 총동원돼 사력을 다한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고 요란하게 떠들어댔지만 거짓이었다.

초기대응부터 무능력과 무책임으로 일관했던 해경과 구조당국이 써주는 보도자료를 앵무새처럼 언론이 읽어냈다. 팽목항에 내려와 실종자 명단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장관이라는 사람이 실종자 가족들 옆에서 떡하니 컵라면 먹는 사진이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뜬금없이 '실종자 가족들 가운데 있는 좌파를 색출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거나, 죽어간 이들을 애도하는 집회에 '일당을 받고 사람들이 동원됐다'는 황당한 루머를 퍼뜨린 것도 정치인들이었다.

총체적인 난국, 국제적인 망신, 말 그대로 대한민국호의 침몰이다. 세 모녀의 자살을 비롯한 잇따른 죽음의 행렬, 경주 리조트 붕괴 사고, 세월호 참사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비극은 우리 사회의 위기가 '임계점'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뼈아픈 경고다. 외국언론은 경제는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이 위기 대처에서는 후진국 면모를 보였다고 꼬집었다. 인간성을 상실한 '성장을 위한 성장'으로 내달리는 사이, 우리 사회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마저도 지켜주지 못하는 '위험사회'가 되고 말았다.

"미국 패권주의와 월 가의 룰이면서 주주 가치 극대화와 글로벌 경쟁 규범을 선도하는 국제 금융 자본과 이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재벌간의 자본 연합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이런 경제의 변화는 공유해야 할 자원을 사유화한다는 점에서 공공성의 기반을 무너뜨린다."(<공공성> 95쪽)

<공공성> 표지. 공공성은 개인과 사회가 시민의 삶을 지속해나갈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자 가치이다
 <공공성> 표지. 공공성은 개인과 사회가 시민의 삶을 지속해나갈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자 가치이다
ⓒ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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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는 저서 <공공성>에서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세계 경제 흐름은 공적인 문제를 사적인 문제로 전환하면서 사적인 삶의 자율성을 잠식한다"라면서 "공적인 간섭이 사라지면 사생활의 자유가 늘어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권력이 아니라 화폐라는 또 다른 힘의 규율을 받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과 인권, 사회권의 무덤위에 세워 올린 '욕망'과 '성장'의 바벨탑은 곧 허물어질 태세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대가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대담에서 '성장을 위한 성장, 돈이 좌지우지하는 사회'를 세월호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정의가 실종되고 인간의 존엄성 대신 돈의 가치가 더 귀하게 대접받는 비극의 정점에 세월호 사태가 있다.

영혼이 없는 관료는 '공공의 적'

이번 세월호 사태에서 국민적 분노의 대상으로 떠오른 집단이 '관료'다. 선박회사와 해수부의 유착관계는 세월호의 부실 증축과 불법 과적을 가능케 한 근본적인 원인이다. 구조 과정에서는 해경과 민간 잠수부 회사 언딘의 석연치 않은 관계가 도마위에 올랐고, 이들은 구조 관련 정보를 독점한 채 사실 은폐와 왜곡으로 국민을 분노케했다.

공공성의 개념은 첫째, 국가에 관련된 공적인 것(official)이라는 의미. 둘째, 모든 사람들과 관계된 공통적인 것(common)이라는 의미. 셋째,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open)는 의미를 가진다(<공공성> 82쪽에서 인용).

이렇게 본다면 공무원, 즉 관료는 공공사업이나 공적투자와 같이 국가에 관련된 공적인 것을 담당하면서 '공공성' 확립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공무원을 더 '공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번 세월호 사태를 비롯해 부패하고 무능력한 관료 집단이 국가적 손실을 야기하고 '공공의 적'이 된 사례는 많다. 

"행정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지닌 공무원이 지휘체계에 따라 자신의 권한에 속하는 사무를 집행하고 정치적인 결정을 내리는 체계를 관료제라고 부른다. 일견 매우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관료제를 두고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쇠창살'(iron cage)이라 불렀다. 베버는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관료제의 합리성이 다른 가치나 윤리를 압도하면서 기계적인 계산과 영혼 없는 통제가 사회를 지배할 것으로 내다봤다. 심지어 민주주의로써도 이런 도구적 합리성은 극복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외려 관료제가 민주주의를 압도할 것이라 그는 믿었다."(본문 55쪽)

이 책에서 하승우는 '독점'의 문제를 지적한다. 공공성은 공무원이나 관료조직이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공성은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된 성질이다. 정부 기관이 독점하는 공공성은 '다리 없는 경주마'처럼 모순된 말(본문 57쪽)이다. 공공성은 어느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규정해서는 안되며, 어떤 사회적 결정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와 관련된 정보를 얻고 그 논의나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제2, 제3의 세월호 사태... 과연 없을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제2, 제3의 세월호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장 눈길이 가는 곳은 불량 부품 문제와 잦은 고장으로 가동과 재가동을 반복하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들이다. 특히 무리하게 수명을 연장해 가동하고 있는 원전은 안방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 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천만하다.

끔찍한 상상이지만 현재 가동중인 원전들 중 단 하나라도 사고가 난다면 한반도는 어떻게 될까. 이 땅에서 방사능의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월호 참사의 몇백 배, 몇천 배에 달하는 참극이 벌어지고, 오염된 땅은 향후 2~3백년 동안 생명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가까운 시일 안에 한반도에서 후쿠시마의 악몽이 재현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고 경고한다.

세월호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엉망진창인 국가위기관리시스템을 일사분란하게 재정비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근본적인 대비책은 아니다. 역시 근본적 대책의 실마리는 민주적인 공공성의 확보에서 찾아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핵 발전은 그 위험이 치명적이고 광범위하다는 성격 때문에 철저하게 정보가 차단되고 통제된다. 때문에 핵 발전은 근원적으로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밖에 없다. 탈핵과 재생가능 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위해 에너지 공공성 확보를 위한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개입과 노력이 필요하다.

공(共)을 통한 공(公)의 탈환

하승우는 "시민사회운동이 힘을 가져야 공공성을 확보하고 확장하는 일이 가능한데, 관료제가 공공성을 독점하는 상황에서는 이런 변화가 어렵다"고 진단한다. 그는  "그동안 시민사회 운동이 중앙, 지방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힘겹게 활동을 이어왔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건 관료제의 공공성 독점을 무너뜨릴 대안을 시민들과 함께 구성하지 못했기 때문"(본문 141쪽)이라고 본다.

"누가 내게 무언가를 보장해준다는 시혜적 관점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우리 스스로 논의하고 결정하겠다는 자치(自治)의 관점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국가가 공공성을 담보할 유일한 주체일 수 없기 때문에, 그동안 국가에게 요구하는 방식으로 공공성 운동이 진행돼왔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 시대에 공공성은 공적인 것만이 아니라 공동성(the common)의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성의 반대말이 민영화(民營化)보다 사유화(私有化)에 가깝듯, 공적인 대안도 국유화(國有化)가 아닌 공유화(共有化)에 가깝다."(본문 12~13쪽)

앞으로 '공공성'은 더욱 중요한 사회적 화두가 될 것이다. 자본과 국가가 힘겨루기를 하는 과정에서 재화와 서비스의 공적인 성격이 더 강해질수도 약해질수도 있다. 철도·전력·수도 등 주요한 공공재가 사유화되지 않도록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함은 물론, 언제 닥칠지 모르는 파국을 함께 대비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에너지 위기, 먹거리 위기 같은 사안은 결코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공공성 자체가 그런 다양한 사안을 해결하는 모범 답안은 아니다"라면서도 "공공성은 우리가 같은 세계에 살고 있음을 자각하고 같은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안을 함께 논의하며 민주적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본문 160쪽)라고 설명한다.

민주주의 없이도 공공사업의 진행은 가능하지만 공공의 이익은 민주주의 없이 확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총체적인 난국에 직면한 지금이야말로 공(共)을 통한 공(公)의 탈환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공공성>(하승우 씀 / 책세상 / 2014.3.30. / 9,500원)



공공성

하승우 지음, 책세상(2014)


태그:#공공성, #민영화, #국가, #시민사회,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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