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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도 끝났으니 머리나 잘라야 겠어. 이번에도 예쁘게 잘라달라고 해야지."

나는 30대 초반부터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녔다. 그 전에는 긴 머리를 항상 뒤로 질끈 묶고 다녔는데 어느날 갑자기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르기 시작했다. 자르고 나니 훨씬 깔끔하고 세련돼 보인다고 우기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늘 짧은 커트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커트 머리라고 해서 다 같은 커트 머리는 아니다. 내가 원하는 머리는 뒷머리는 아주 짧고 양 옆 머리는 귀와 옆 얼굴을 살짝 덮어준다. 앞머리는 좀 짧게 자르는 편이다. 말로는 이렇게 설명 할 수 있지만 여러 미용실을 다녀 본 결과 가는 미용실 마다 머리 모양이 다르게 나온다. 어떤 미용실은 마음에 드는 머리 모양이 되는데 어떤 미용실은 마음에 들지 않아 속으로 미용사를 흉보기도 한다. 도대체 머리 하나 자르는데 뭐가 그리 복잡한지 원.

얼마전에 목욕탕에 갔다가 같이 등을 밀기로 한 아주머니가 난데없이 물었다.

"그 머리 어디서 잘랐어요? 아주 예쁘네요."
"아, 이 머리요? 요 앞 수정미용실 이라고 있지요? 거기서 잘랐어요. 고맙습니다."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동안 내 머리를 잘라 주었던 미용사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수정 미용실 아주머니도 내 머리를 잘라 주실 때 마다 속으로 욕하지 않았을까? '무슨 모델도 아니고 머리 하나 자르는데 이렇게 까다롭게 굴다니 ...' 하면서 말이다. 거기다 마음에 안 든다고 다음 날 가서 다시 잘라 달라고까지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때 마다 아무말 하지 않고 다시 잘라준 그분에게 은근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목욕을 다 하고 반성하는 마음이 들면서 이 기회에 수정 미용실 아주머니를 인터뷰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기사 쓸 거리도 찾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막상 인터뷰를 하려고 보니 무슨 말부터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계속 내일 가야지, 내일 가야지 하고는 미루기만 하고. 드디어 큰 마음 먹고 찾아 갔다. 마침 미용실 앞에는 먹음직스럽게 생긴 붕어빵을 팔고 있길래 그걸 사 들고서. 아주머니는 미용실 한 켠에서 손님의 머리를 감겨주고 있다. 

붕어빵을 사들고 동네 미용실을 찾아가다

마침 내가 갔을때는 손님이 별로 없는 한가한 시간이었다.
▲ 손님 머리를 자르고 계신 수정 미용실 미용사 마침 내가 갔을때는 손님이 별로 없는 한가한 시간이었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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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 저 오늘은 머리 자르러 온 게 아니고요, 아주머니께 몇 가지 물어 볼 게 있어서 왔어요."
"아, 그래요? 그럼 거기 잠깐 앉아서 기다리세요."

나는 인터뷰의 취지를 설명했다. 미용사의 일이 육체노동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손님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일 일텐데 그 감정 소모가 어느 정도 인지 알고 싶어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먼저, 일은 얼마나 힘든지, 일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때는 언제인지,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 할 것인지, 봉사 활동을 한 적은 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등의 질문을 했다.

"미용사 일을 한 지는 25년쯤 됐어요. 정릉에서만 15년 정도 했고, 처음엔 월급을 받고 일했었죠. 우연한 기회에 가게를 얻게 되어서 그때부터 자영업자가 된거죠. 이 일이 좀 힘든 일이기는 해요. 기억에 남는 진상 손님이 한 명 있는데, 드라이를 해 달라는 손님이었어요. 그런데 다 해주고 나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드라이한 머리에 물을 다 뿌리고는 그냥 나가 버리더라고요. 그날은 그 손님이 가자마자 맥주를 한 캔 따서 마시기도 했어요."

아주머니는 마치 엊그제 일이었던 것처럼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근무 시간은 보통 9~19시 반까지 일해요. 한 달에 두 번 쉬고요. 손님은 하루에 10~15명 정도 오고, 수입은 요샌 경기가 좋지 않아 한 200만 원 쯤 되요. 월세랑 다 빼고 나면요. 그걸로는 식구들 전부 먹고 살기는 힘들죠. 기술이 있으니까 이 기술 썩히기 아까워서 하는 거지 동네 미용실 운영해서 생계를 유지하기는 좀 힘들어요."

우리 동네만 해도 짧게는 10~20m 간격으로 미용실이 있다. 내가 가 본 미용실만 해도 수정 미용실을 포함해서 네 곳이나 된다.

"봉사 활동은 지금은 안 하고 있는데, 한 5년 전까지만 해도 장애인 복지관에서 한 달에 두 번씩 미용봉사를 했지요. 지금은 시간도 잘 안 맞고 나이(59세)도 있다 보니 쉽지 않더라고요. 앞으로 기회가 되면 또 하려고 해요. 봉사활동 할 때 보람을 많이 느끼니까. 아픈 곳을 굳이 말한다면 하루 종일 서서 일하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가위질 하느라 팔을 많이 쓰니 팔도 아프죠. 제시간에 밥도 못 먹고, 가끔 침도 맞고 그래요. 그래도 내가 자른 머리를 마음에 들어 하는 손님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앞으로도 힘 닿는데 까지 이 일을 계속 할 생각이에요."

사랑방 같은 동네 미용실, 이제 투정하면 안 되겠네

인터뷰는 그렇게 끝났다.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고 나는 항상 미용사 본인들의 머리는 어떻게 자를까, 궁금했는데 "서로 아는 미용사끼리 품앗이 하듯이 자른다"고 한다. 미용사라는 직업이 없어서는 안 될 이유 중의 하나가 자기 머리는 자기가 어떻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동네 미용실이다 보니 인테리어가 그리 화려하지 않다.
▲ 수정 미용실의 내부, 동네 미용실이다 보니 인테리어가 그리 화려하지 않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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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직업이 많이 있지만 미용사라는 직업은 그중 제일 친근하게 다가온다. 시골 미용실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기도 하고, 종종 머리하러가서 스트레스 푸는 여성도 보았기 때문이다. 짧은 머리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미용실에 가야 하는 나는 여러 미용실을 전전하며 다녔다.

이곳이 마음에 안 들면 저 곳으로 옮기고 저 곳이 마음에 안 들면 또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때마다 내 머리를 잘랐던 미용사들은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크다.

혹시나 하고 수정 미용실 아주머니께 물어 봤다.

"제 머리 잘라 주실 때도 힘드시죠? 저는 어느 정도 까다로운 사람인가요?"
"뭐, 손님 정도면 그냥 보통이라고 할 수 있지요."

수정 미용실 아주머니는 웃으며 이같이 말했고, 나는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많이 까다롭다고 하면 고치기 힘든 성격부터 고쳐야 하는데 그건 쉽지 않으니까 말이다. 

사실, 한 달에 한 번 미용실 가는 것도 꽤 귀찮은 일이기는 하다. 그래서 '머리를 한 번 길러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는데 '다 늙어서 머리 길러 어디에 쓰게?'라고 중얼거리며  쓸쓸히 웃는다.

남편은 "제발 머리 좀 짧게 자르지 말고 여성스럽게 길러 보라"고 하는데 난 죽을 때 까지 짧은 머리로 지낼 생각이다. '자고로 세련된(?) 여자는 머리가 짧더라'는 내 안의 작은 허영심 때문이리라.

거기다 '나처럼 머리를 자주 잘라야 동네 미용실도 먹고 살 것 아닌가'라면서 고양이가 쥐 생각하는 척 한다. 이번엔 미용실 가면 곧 여름도 오니 좀 더 짧게 잘라달라고 말해야겠다. 남편의 눈초리가 벌써부터 따갑다.   


태그:#짧은 머리, #미용사, #허영심, #감정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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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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