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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틈히 여행을 즐기는 서복남 씨. 지난 겨울 눈 쌓인 덕유산 향적봉에 선 모습이다.
 틈틈히 여행을 즐기는 서복남 씨. 지난 겨울 눈 쌓인 덕유산 향적봉에 선 모습이다.
ⓒ 서복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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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여행을 참 좋아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다. 그녀의 블로그에 여행기가 자주 올라왔기 때문이다. 여행지 선택 폭도 넓었다. 뭍과 섬, 산과 들을 가리지 않았다. 산행기록도 부지기수였다. 국외 여행기도 가끔 올라왔다. 어지간히 부지런하지 않고선 어려운 일이었다. 부러웠다.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은 얘기인데, 이런저런 봉사도 자주 한다는 것이었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하고 발마사지도 해준다고 했다. 혼자 사는 노인에 반찬도 배달해 주고, 조손가정의 안부를 살피는 일도 한다고 했다. 무슨 해설사 교육을 받았다는 얘기도 얼핏 들었다.

여행 다니기도 버거울 텐데, 언제 그런 일을 다 할까 궁금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찾아갈 테니, 점심을 사달라고 했다. 자원봉사를 포함한 일상이 궁금하다고 하면, 방문을 거절할 것 같아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반갑게 맞아주며 언제든지 오란다.

그녀는 서복남(58) 씨다.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자리하고 있는 전라남도 광양시에 살고 있다.

진도 관매도 꽁돌바위로 가는 길에 선 서복남씨(오른쪽). 관매도는 지난해 4월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간 섬이다.
 진도 관매도 꽁돌바위로 가는 길에 선 서복남씨(오른쪽). 관매도는 지난해 4월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간 섬이다.
ⓒ 서복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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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중순 광양에서 만난 서복남씨. 점심 식사를 하기 전에 식당 앞에서 자원봉사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모습이다.
 지난 4월 중순 광양에서 만난 서복남씨. 점심 식사를 하기 전에 식당 앞에서 자원봉사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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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4월 15일) 광양에서 그녀와 만났다.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의 봉사활동에 대한 물음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대화가 갑자기 끊겼다. 그녀의 입술이 잠시 머뭇거렸다. 난감해 하는 표정이었다. 이내 별 것 아니라고 손사래 치면서 얘기하지 않으려는 말길을 겨우 잇는데 성공했다.

그녀의 입을 통해 간략하게나마 봉사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발마사지 봉사는 옥곡보건소에서 정기적으로 한다고 했다. 마을 목욕장에서 목욕을 하고 나오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1시간 정도 한단다. 발관리봉사자 교육을 받은 수료생들과 함께 하는데, 힘이 많이 들어 오래 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노인상담 봉사는 중마노인복지관에서 매주 두 차례 종일 한다고 했다. 일자리 등 노인들의 고민을 다 들어주고 해결책을 함께 찾아본단다. 노인들의 얘기를 들으며 마음으로 함께 울었던 일도 다반사였다고.

부동산 문제 등 해결해주기 어려운 문제는 전문기관과 연결시켜 준다고 했다. 그녀는 "전문적인 상담이라기보다는 노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게 일"이라며 겸손해 했다. 상담사로 옮겨가기 전에는 노인복지관의 주방에서 2년 동안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고.

자원봉사자들이 광양 옥곡보건소에서 어르신들의 발을 마사지해주고 있다. 빨간색 옷을 입은 사람이 서복남 씨다.
 자원봉사자들이 광양 옥곡보건소에서 어르신들의 발을 마사지해주고 있다. 빨간색 옷을 입은 사람이 서복남 씨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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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씨의 봉사활동은 이뿐 아니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손자 세대가 함께 사는 조손가정과 결연을 맺고 정기적으로 상담도 하고 있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 나눔 봉사도 틈틈이 했다. (사)그린스타트 광양네트워크의 그린리더로 활동하며 에너지 절약, 탄소배출량 줄이기 등에 대한 가정방문 교육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무턱대고 하는 게 아니었다. 발관리 자원봉사자, 노후대비 전문 상담사, 상담전문 자원봉사자, 청소년 자살예방교육 지도자 등 관련 교육을 모두 받았다고 했다. 생태해설사, 기후해설사, 자연문화 스토리텔러 교육도 받았단다.

은퇴전문상담사, 발효효소 교육지도사 그리고 즉석에서 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들어 주는 바리스타는 한국능력개발원의 자격증까지 땄다. 취미로 서예를 하며 여러 대회에서 입선과 특선을 받기도 했다고.

서복남 씨의 지역 내 봉사활동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노인복지관 주방에서 식사 당번을 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맨 오른쪽이 서복남 씨다.
 서복남 씨의 지역 내 봉사활동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노인복지관 주방에서 식사 당번을 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맨 오른쪽이 서복남 씨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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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복남 씨와 자원봉사자들의 발 마사지 봉사는 마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행해진다. 봉사자들이 어르신들의 발을 마사지해주고 있는 모습이다.
 서복남 씨와 자원봉사자들의 발 마사지 봉사는 마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행해진다. 봉사자들이 어르신들의 발을 마사지해주고 있는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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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씨가 이렇게 부지런히 여러 가지 교육을 받고 또 봉사활동에 나서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물음에 대한 그녀의 대답이 이어졌다.

"의용소방대원으로 활동할 때였어요. 치매 전문병원에 실습을 가서 청소도 하고, 목욕도 거들어 주고, 로션도 발라주고, 손톱과 발톱도 깎아드렸는데, 그 분들이 너무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하루 동안 온전히 나를 버리고 그 분들을 위해서 봉사를 한다고 했는데, 저의 마음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어요."

그날 이후 그녀의 머리에는 그들의 해맑은 웃음이 자리를 잡았다. 그녀를 기다리는 병원 생활자들의 모습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올랐다. 자연스레 치매병원을 향한 그녀의 발길이 잦아졌고 마음과 눈빛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10년 넘게 치매 전문병원을 오가며 봉사활동을 계속했다.

"처음엔 솔직히 힘들었어요. 그런데 언젠가 나도 저 자리에 가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분들의 모습이 저의 미래 모습이더라고요. 결코 남의 일이 아닌데. 자고 일어나면 그분들의 안부가 궁금해졌어요. 저를 기다리는 환자들을 보면서 나를 다스리는 기회도 됐고요."

서씨가 봉사활동을 일상으로 생각하며 사는 이유였다.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로 여기고 있었다. 봉사활동을 즐겁게 하는 비결이기도 했다.

어르신들과의 상담은 서복남 씨의 봉사활동에서 일상에 속한다. 틈나는 대로 어르신들의 얘기를 듣고 필요한 일을 돕는다.
 어르신들과의 상담은 서복남 씨의 봉사활동에서 일상에 속한다. 틈나는 대로 어르신들의 얘기를 듣고 필요한 일을 돕는다.
ⓒ 서복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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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얼마 전, 아버지를 여읜 뒤부터 치매 전문병원 봉사를 잠시 쉬고 있단다. 허리와 팔목도 많이 아프고 결려서다. 이는 그녀가 등산을 자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제 어머니가 올해 아흔둘이신데요. 어르신들을 뵈면 모두가 내 부모더라고요. 이 분들에게, 아니 내 어머니에게 조금이라도 제가 웃음을 더 드리고 싶어요. 도와드리고 싶고요. 아무런 계산 없이요."

언제까지나 봉사활동을 계속 할 것인지 물은데 대한 그녀의 대답이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차 한 잔을 나누면서 그녀에게 '오늘 얘기한 걸 기사화하겠다'고 했더니 깜짝 놀란다. "절대 과장하지 않고, 이야기 한 그대로만 쓰겠다"며 간곡하게 부탁을 했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이내 자리를 뜬다. "엄마한테 반찬과 간식거리 가져다 드리고, 국도 끓여 드려야 한다"면서. 그녀의 발걸음이 금세 빨라진다.

서복남 씨의 봉사활동은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서 씨는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을 낀 지난 주말 광양시청에 설치된 합동분향소에서 분향 안내 봉사를 했다.
 서복남 씨의 봉사활동은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서 씨는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을 낀 지난 주말 광양시청에 설치된 합동분향소에서 분향 안내 봉사를 했다.
ⓒ 서복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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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서복남, #자원봉사, #발마사지, #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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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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