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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해역의 날씨 상황이 어제(28일)보다는 오늘 더 좋아진다고는 하지만, 점점 빨라지고 있는 유속이 문제입니다. 오늘도 잠수요원들의 수중 수색 여건이 좋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새벽에 시신 4구가 수습되면서, 사망자는 193명이 됐습니다. 오늘부터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공식 합동분향소에서는 잠시 뒤 10시부터 조문객을 받습니다. 그럼 먼저, 진도 팽목항부터 연결해서 현장 상황 들어보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14일째인 오늘 아침도 눈뜨자마자 TV부터 켜고, 혹시라도 지난 밤 내가 잠든 사이 실종된 아이들 중 어느 한 녀석이라도 기적처럼 구조되지는 않았을까? 기대감을 갖고 뉴스를 지켜보지만 지난 밤 사이 늘어난 건 사망자뿐입니다. 기적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실종자 가족들의 애간장 녹는 피울음에 우리 마음도 새까맣게 타들어 갑니다.

그저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엄마들이 모였습니다. 우리(서울진보연대, 전국여성연대 등이 모인 세월호 촛불 시민모임)는 지난 20일 오후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였고 그날 저녁부터 촛불을 들었습니다.

"저희는 오늘부터 저녁 7시 서울을 비롯한 전국각지에서 촛불을 들겠습니다. 단원고 엄마들이 다른 것 신경 쓰지 않고 아이만을 생각할 수 있도록 우리 엄마들이 촛불을 듭시다."

맨발로 청와대 향한 엄마의 절규 "조금이라도 멀쩡할 때 꺼내달라"

세월호 침몰사건 1주일째인 22일 오후 경기도 안산문화광장에서 열린 실종자 무사귀환과 희생자 추모를 위한 촛불문화제에서 한 참가자가 촛불을 건내 받고 있다.
▲ 건내 받는 촛불 "이 것 밖에 해줄 수 있는게 없다" 세월호 침몰사건 1주일째인 22일 오후 경기도 안산문화광장에서 열린 실종자 무사귀환과 희생자 추모를 위한 촛불문화제에서 한 참가자가 촛불을 건내 받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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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5일째인 20일,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들이 나섰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안 되는 갑갑한 상황에서 천리길을 걸어서라도 청와대로 가겠다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길을 나섰습니다.

변변한 옷도 걸치지 못했습니다. 슬리퍼를 신고 달려 나온 엄마의 발이 한참을 걷자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옆을 따르던 딸은 자신의 운동화를 벗어 엄마에게 신겨줬습니다. 딸은 맨발이 돼 버렸습니다. 그리고 울부짖습니다.

"내, 꺼내온 내 아이 얼굴도 알아볼 수 없으면 평생 못 산다. 조금이라도 멀쩡할 때 꺼내줘라. 한번이라도 얼굴 알아볼 때 안아보고 떠내 보내야 해."

총리가 말합니다. "10시에 봅시다." 그 10시에 총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론 앞에 선 범정부 사고대책본부 대변인은 "외부민간인의 불필요한 소동 유발 행위나 거액의 인양자금 요구 등 악덕행위를 근절", "실내 공기 환기, 샤워실, 화장실 추가설치, 의료지원을 실시, 셔틀버스 운행단축" 같은 얘기만 했습니다.

천금보다 귀한 아이를 물 속에 둔 엄마들이, 맨발로 천리길을 가겠다는 엄마들이 샤워실이 절실할까요? 외부 민간인들의 불필요한 소동 유발행위라니요? 거액의 인양자금 요구행위라니요? 언론인 여러분, 기자 여러분! 진짜 이런 일이 있기는 했나요? 정부는 재난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한 민심을 억누르는 데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한 엄마는 말합니다.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그냥 애들 부패만 안 됐으면 했다. 띵띵 시신 불고 그러지 않게 빨리 꺼내줬으면 했다. 딱 한번이라도 내 새끼 품어주고 보내줘야지. 엄마가 어떻게 그냥 보내."

안전한 대한민국은 없습니다. 안전을 위한 규제마저 암덩어리라며, 없애야 할 것으로 취급한 대통령 덕분에 돈벌이를 위해서는 온갖 안전 장치도 다 무시한 악덕기업 때문에 세월호는 침몰했습니다.

침몰한 세월호를 두고, 아이들이 갇혀있는 그 세월호의 뱃머리를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세월만 보내고 있었습니다. 정부의 재난관리도 침몰했습니다. 뱃머리가 떠 있을 때는 못했던 선내진입이 완전히 물에 잠긴 후에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잠이 오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엄마니까요

전국여성연대 주최로 지난 21일 저녁 서울 세종대로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세월호 실종자 무사생환 기원 시민 촛불 행사에서 한 시민이 아이와 함께 기원 메시지를 들고 있다.
 전국여성연대 주최로 지난 21일 저녁 서울 세종대로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세월호 실종자 무사생환 기원 시민 촛불 행사에서 한 시민이 아이와 함께 기원 메시지를 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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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엄마들의 절규에 잠이 오지 않습니다. 모든 엄마들이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오죽하면 비를 맞으며 맨발로 길을 나섰을까요? 저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우리가 촛불을 듭시다. 단원고 엄마들이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한 엄마의 말처럼 딱 한 번이라도 내새끼 품어주고 보내줄 수 있도록. 현장을 지킬 수 있도록 서울의 엄마들이, 부산의 엄마들이, 광주의 엄마들이 촛불을 듭시다.

그렇게 시작된 촛불이 오늘로 10일째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아직까지 단 한명의 생명도 구하지 못한단 말입니까? 어찌하여 대통령은 호통과 질책과 책임자 처벌만을 운운하지 단 한 명의 생명도 구하지 못한단 말입니까? 어찌하여 경찰은 실종자들의 무사생환을 기원하는 촛불모임의 침묵행진을 가로 막습니까.

아침에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고 나간 아이들이 저녁에 "다녀왔습니다" 인사하며 돌아오는 그 소소한 일상이 어찌하여 이리도 무참히 깨진단 말입니까? 우리 엄마들이 바라는 건 평화롭고 안전한 나라에서 건강하게 아이들을 키우는 것입니다. 대단할 것 없는 이 바람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선 어찌하여 이리도 대단한 바람인지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습니다.

지난 14일 동안 우리가 본 것은 세월호 침몰만이 아닙니다. 거짓과 무능, 무책임으로 일관한 박근혜호의 침몰도 함께 보았습니다. 슬픔을 넘어 분노로, 분노를 넘어 행동으로. 정부가 못한다면 우리가 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 엄마들은 전국에서 촛불을 밝힐 것입니다.
안전하지 못한 나라, 침몰하는 대한민국, 우리 국민들이 구해내야만 합니다.

"촛불 든 엄마들과 같이 걸어요"
서울진보연대, 전국여성연대 등이 모인 세월호 촛불 시민모임은 27일 청계광장에서 촛불집회를 마친 뒤 처음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빌며 5월 21일까지 매일 오후 8시 광화문 동화면세점에서부터 북인사동마당까지 약 1.7km를 행진할 것입니다. 우리 촛불모임은 평화롭고 질서있게 촛불과 침묵행진을 진행해 나갈 것입니다. 함께 해주세요.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최진미씨는 전국여성연대 집행위원장입니다.
* 이 내용은 비슷한 내용으로 30일자 미디어오늘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단원고, #세월호 침몰 사고, #촛불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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