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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6일 진주의료원의 모습. 외부인 출입을 전면 통제하고 있으며 바깥에 울타리를 해놓았다.
 2월 26일 진주의료원의 모습. 외부인 출입을 전면 통제하고 있으며 바깥에 울타리를 해놓았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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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진주의료원은 세상에 없는 병원이다. 지난해 5월 29일 서류상 폐업처리 됐다. 일하는 사람들도, 아파서 입원했던 환자들 모두 쫓겨났다. '쫓겨났다'는 것은 주관적인 표현이지만 객관적인 상황이 그랬다. 갑자기 병원 문을 닫겠다며 환자들을 강제 전원·퇴원조치했고 공공의료기관에 '적자'가 많다며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했다. 병원 한 번 살려보겠다며 이미 수많은 노동자들이 명예퇴직을 감내했다. 그 사이에 환자 40여명이 사망했고, 노동자들은 진주의료원 출신이라는 낙인 탓인지 재취업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지금 진주의료원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병원으로 남아 있다. 아직 진주의료원을 기다리는 사람도, 지키는 사람들도 많다. 진주의료원 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진주의료원지부) 사무실은 빼앗겼지만 조합원들은 병원 옆 빈 건물에 상황실을 꾸리고 여전히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촉구하는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직접 만든 플래카드를 들고 매일 경남도민들을 만나러 나서고, 박석용 지부장은 231일째(4월 29일 기준) 경남도청 앞에서 농성투쟁 중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한 농성이 겨울을 지나 봄을 맞았다. 스티로폼 단열재와 김장비닐, 파라솔 하나로 231번의 낮과 밤을 버텼다. 맨바닥에 비닐 하나 깔고 버틴 농성 초기에 비하면 잠자리가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지만 지금도 비나 눈이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엔 곤란하다. 김장비닐로 김치가 아닌 사람을 온전히 감싸기엔 역부족이다.

최근에는 이 소중한 비닐과 스티로폼, 파라솔마저 빼앗겼다. 지난 14일 진주의료원 폐업의 장본인인 홍준표 현 경남도지사가 6·4 지방선거 새누리당 경남도지사 후보로 선출된 후, 18일 기습적으로 농성장을 치워버린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22일부터 다시 그 자리에 맨 처음에 그랬듯 은색 깔개와 김장비닐 한 장을 깔고 여전히 노숙농성과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홍보전을 이어가고 있다.

노숙농성이 200일을 넘어선 지난 4월 초, 박석용 보건의료노조 진주의료원지부 지부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박석용 진주의료원지부장이 경남도청 앞에서 231일째 노숙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박석용 진주의료원지부장이 경남도청 앞에서 231일째 노숙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 전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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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숙농성 중이다. 이렇게 오래 할 것이라 생각했나.
"끝을 보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내가 지부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되든 홍준표가 자기 잘못 인정하고, 사과하고, 진주의료원 다시 열 때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홍준표 지사가 이 파라솔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 받는다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진주의료원 상기시켜야 하지 않겠나."

- 건강은 어떤가.
"반년 이상 이렇게 지내니 안 쑤신 구석이 없다. 온몸이 종합병원이다. 가장 괴로운 것은 불면이다. 저녁 먹고 자려고 누우면 자동차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 농성장 앞이 바로 넓은 도로라 소음이 바로 귀에 꽂힌다. 농성하는 내내 불면에 시달린다." 

그는 2013년 2월 26일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민주노총 지역지부 수련회 날이었다. 단체사진 찍겠다고 산꼭대기까지 헉헉대며 올라갔다. 사진기 앞에서 포즈 좀 잡아보려니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경남도청이 오늘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했다고 기자회견 했답니다."

박석용 지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예? 폐업은 뭐고 기자회견은 또 뭡니까?"

지금도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에 가면 어정쩡한 포즈와 얼굴로 전화를 받고 있는 박 지부장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진주의료원 폐업 과정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진주의료원 문 닫으면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합니다"라고 말했던 환자들 대부분, 지금까지 집에 방치돼 있다. 돈 안 되는 가난한 환자들 오래 받아주는 병원이 그 지역에서 진주의료원밖에 더 있냐는, 잔혹한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해 4월에는 철탑 위에서, 올해 4월에는 길바닥에서

박석용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진주의료원지부장과 강수동 민주노총 진주지역협의회 의장이 2013년 4월 16일 오후부터 경남도청 신관 옥상에 있는 철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였다.
 박석용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진주의료원지부장과 강수동 민주노총 진주지역협의회 의장이 2013년 4월 16일 오후부터 경남도청 신관 옥상에 있는 철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였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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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4월 16일에 철탑에 올라갔으니 꼭 1년 됐다. 지난해 4월에는 철탑 위에서, 올해 4월에는 길바닥에서. 기구하다.
"그때 직원들 전부 사표 쓰면 진주의료원 폐업 철회할지 말지 생각해보겠다는 말에 성질이 났다. 진주의료원 폐업은 일방적으로 발표했지, 노사대화는 한다는데 그 와중에 홍준표 지사는 일방적으로 휴·폐업 밀어붙이지, 원장직무대행은 '강성노조' 운운하며 전 직원 사표 쓰라고 하지.

이미 그 전에 진주의료원 살리겠다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명예퇴직을 감수했고, 철탑 올라가기 하루 전날에도 65명이나 병원을 그만두겠다고 했는데도 그런 말을 한 거다. 도의회 상임위에서는 진주의료원 폐업 조례안 상정하는 의원들이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 때리고, 밀치고, 감금해가며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철탑 올라가 있는 사이 4월 18일 도의회 본회의에서 폐업 조례안이 또 날치기 통과됐다."

- 철탑에 오르기 전,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뭘 하셨는지 궁금하다.
"올라가기 전에 맛있는 것 한 그릇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오천 원짜리 도가니탕 한 그릇 비웠다. '이제 가자' 하고 앞장서니 수동이(강수동 민주노총 경남본부 진주시지부장)가 '니 면도 좀 하고 온나' 하더라. 그때 면도하고 지금까지 기르고 있다. 수염까지 기르니 산도적 같다고 하는데(웃음)… 진주의료원 재개원 될 때까지 면도 안 하기로 스스로 약속했다."

박 지부장은 그때 1주일 만에 내려온 것이 아쉽다. 조금 더 버텼더라면 이렇게 오래 투쟁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부채의식이 내내 이어졌던 모양인지 도청 앞 노숙농성도 쉽게 그만둘 수가 없다. 하루만 더 버티면, 하룻밤만 더 자면, 내가 여기서 조금 더 버티면 진주의료원 문을 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희망이 여전히 있다.

그러나 그 때 철탑에서 내려오지 않았더라면 이 기사를 볼 수 없었을 수도 있다. 당시 그의 혈당은 280, 혈압은 160/110까지 올랐다. 심장을 관통하는 세 개의 혈관 중 한 개는 사용할 수 없을 만큼 망가졌고 나머지 두 개의 혈관에는 스탠트(금속그물망)를 설치했다. 4월 치고 유난스럽게 추웠다. 철탑농성 하던 8일 중 절반 이상 비가 왔다. '춥고 비 오는 악천후에 계속 철탑 위에 있으면 혈관이 수축해 심장에 무리가 간다', '철탑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사이 죽을 수도 있다'는 의료진의 경고도 잇달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농성 8일차인 4월 23일 유지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과 홍준표 지사가 만나 진주의료원 정상화를 위한 대화를 하기로 합의했고, 그 조건으로 박석용 지부장과 강수동 지부장은 철탑농성을 해제했다. 그 뒤 9차례의 대화가 이어졌지만 홍준표 지사는 그 사이에도 진주의료원 폐업을 위한 모든 과정을 밀어붙였다. 

- 철탑에서 지낸 8일 중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은 언제였나.
"철탑농성 하던 시기에 도청 앞에서 큰 집회가 있었다. 진주의료원 지킨다고 전국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이 정말 감사했다. 집회시간에 딱 맞춰 온 것도 아니고 하루 전날 모여 경남도의회 앞에서 다 같이 새벽 이슬 맞아가며 노숙하고 집회까지 마친 거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집에 안 가고 우리가 있는 철탑 아래 모여서 '박석용 힘내라', '강수동 힘내라'고 소리치는데 눈물이 났다. 미안했다. 나는 그동안 연대투쟁이나 집회 가면 얼굴만 비치고 그늘에 가서 쉬거나 하며 땡땡이쳤다. 이제 다시 그렇게 못하겠다. 진주의료원 재개원 하면 우리 조합원들 데리고 갈 수 있는 집회, 힘 보탤 수 있는 현장엔 항상 같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명퇴 했으면 1억... 그보다 귀한 것 얻으며 싸우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진주의료원지부 조합원들이 21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에 '진주의료원 재개원 농성장'을 설치하려고 하자 경찰과 경남도청 공무원 등이 나와 막으면서 한때 실랑이가 벌어졌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진주의료원지부 조합원들이 21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에 '진주의료원 재개원 농성장'을 설치하려고 하자 경찰과 경남도청 공무원 등이 나와 막으면서 한때 실랑이가 벌어졌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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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의료원에 입사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1992년 7월 1일에 입사했다. 20여 년간 병원 내 구급차며 검진버스 운전했다. 차량정비는 못해도 운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한다고 자부한다. 우리 병원에서 일한 사람들 대부분 그렇듯 자부심으로,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이모냥 이꼴'이다(웃음)."

- '이모냥 이꼴'이란 말은 가당치도 않다. 400일 넘게 투쟁을 이끌어온 사람 아닌가.
"자존심 상하는 일을 제일 싫어한다. 서부경남지역 공공병원이자, 우리들의 일터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폐업되고, 그저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우리가 강성이니 귀족이니 하는 말이나 듣고, 이런 말을 듣고도 싸우지 않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마이크 잡고 대찬 말 한마디 멋지게 할 줄 모르는 지부장이지만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에 빠져야 한다면 내가 빠지고 내 새끼들(조합원들)은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독려하며 여기까지 왔다." 

- 애초에 자신을 노동조합의 '노', 투쟁의 '투'도 모르는 사람이라 소개했는데.
"맞다. 모른다. 홍준표 지사가 말하는 것만큼 그렇게 '대단한' 노동운동가가 아니다(웃음). 노동조합도 그때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형님이자 노조 초대 위원장을 했던 분이 조합 가입원서에 사인하라고 해서, 그냥 무턱대고 믿고 했다. '형님도 합니까, 다른 사내들도 합니까'라고 물었고 '그렇다'는 대답에 '그럼 나도 한다'고 해서 사인 한 게 전부다." 

- 어찌된 일인지 지부장이 됐다.
"3년 전인가 새 집행부를 뽑아야 하는데 아무도 안 나섰다. 그 때 내가 선관위원장을 맡아서 어떻게든 빨리 후보를 세워야 했다. 40명 정도 되는 조합원들 붙잡고 노동조합 맡아달라고 했더니 다들 어렵고 힘들 것 같다고, 안 하겠다고 하더라. 화딱지가 났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힘도 없는 노동조합 뭐하러 하냐. 이럴 거면 그냥 없애버리자!' 했더니 노동조합 없애는 것도 지부장이 있어야 한다나(웃음). '그럼 내가 지부장 할 테니까 나 뽑아라' 하고 나섰다."

그야말로 노동조합의 '노'자도 모르고, 노동조합 명단에 이름만 올려놓고 있었다가 지부장이 된 셈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고 조합원들에게 얘기했는데 오히려 조합원들은 "당신이 감투만 쓰고 있어줘도 좋다"고 많이 밀어줬다. 그에게 처음 노동조합 가입원서를 내밀었던 초대 위원장도 "니 모르는 것 있으면 내가 도와주고, 너 힘들면 지역본부든 본조(보건의료노조)든 다 지원하니까 걱정말라"고 했다.

"처음 지부장 하겠다고 했을 땐, 할 사람이 이렇게 없나 싶어 속이 상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식으로 출마했을 땐 정말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조합원들이 나를 믿어준다고 했다. 실제로 전체 조합원 중 10명인가 빼고 다 찬성해줘서 지부장이 됐다."

그때 아무 힘도 없는 노동조합이었다지만 그가 없었더라면, 그리고 지금의 진주의료원지부가 없었더라면 진주의료원 투쟁은 언감생심이었다. 진주의료원 투쟁은 당사자들은 억울하고, 지켜보고 연대한 이들은 애가 타들어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동안 아무도 몰랐던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현실이 드러났고,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국회 국정조사까지 이뤄졌다(덧붙이자면 우리나라 공공의료 비율은 5.9%에 불과하다. OECD 평균 공공의료비율은 70% 이상, 영리병원의 천국인 미국과 일본도 30% 가까이 된다).

"민주주의 무시한 자 어떤 심판 받을지 6월 4일 판가름 날 것"

보건의료노조 유지현 위원장과 진주의료원지부 조합원들 함께
 보건의료노조 유지현 위원장과 진주의료원지부 조합원들 함께
ⓒ 전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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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회했던 순간이 있었나.
"진작 명예퇴직 했으면 1억 원 정도 받았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마누라는 가끔 하소연 한다. 눈 딱 감고, 욕 잠깐 듣고 나면 1억 원이 생기는데 그걸 못 챙긴다고. 그런데 없어도 사는 게 1억 원이고, 만약에 그 1억 원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나는 4억 원어치 욕을 먹었을 거다. 그럼 인생에서 손해다. 나는 그 1억 원보다 더 귀한 것을 얻으며 싸우고 있는 셈이다."

진주의료원이 다시 문 연다면 박석용 지부장은 이런 것들을 해보고 싶다. 그동안 도움 준 많은 이들에게 하나하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것, 연대의 힘을 느낀 만큼 투쟁하는 현장에 조합원들과 함께 가서 힘 보태는 것, 그리고 병원에서 제대로 된 노동조합 활동을 해보는 것.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주체적인 노동조합, 병원의 발전을 직접 만들어가고 지역주민들의 공공의료를 책임지는 노동조합, 그렇게 진주의료원 노동조합이라면 지역주민 누구나 박수치고 반기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싶다. 3년 전 엉겁결(?)에 지부장을 맡았던 그때와 확실히 다른 각오다.

"아직 우리는 끝났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래서 절망하지도 않는다. 400일 넘는 기간 동안 숱한 좌절, 절망 많았지만 어차피 우리가 해야 할 싸움이면 절망보단 희망 속에서 하는 것이 더 낫다. 그리고 지역 공공의료를 파괴하고, 40명을 비참하게 죽게 내버려둔, 그리고 민주주의를 무시한 자가 지역에서 어떤 심판을 받을지 분명히 6월 4일 선거에서 판가름 날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전아름 기자는 보건의료노조 선전부장입니다.



태그:#진주의료원, #보건의료노조, #공공의료,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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