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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안산지역에서 유일하게 아파트가 없는 동네 '와동'에 난데없는 비수가 꽂혔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다며 흥에 겨워 조잘대고 집을 나선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비보가 날아든 것이다.

와동은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 325명 중 107명이 거주하고 있는 고잔1동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학생 97명이 살고 있던 곳이다. 97명의 학생 중 엄마 아빠의 품에 안긴 학생은 28명이고, 나머지 69명은 주검으로 돌아왔거나 아직 실종 상태다. 

지금 와동은 깊은 침묵과 슬픔에 가라 앉아 있다. 여유롭지는 않지만 옹기종기 모여 따숩게 서로를 보듬으며 단란한 공동체를 꾸려왔던 동네에 내리꽂힌 청천벽력은 한순간에 와동 전체를 상가(喪家)로 만들어 버렸다.

와리마루 도서관에서 동네 어머니들이 단원고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노란리본을 만들고 있다.
 와리마루 도서관에서 동네 어머니들이 단원고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노란리본을 만들고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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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동은 고잔1동과 마찬가지로 공단 노동자 주거지역이다. 희생 당한 학생들의 부모들 중 상당수는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한다. 16일 당일도 현장에서 일을 하느라 참극 소식을 뒤늦게 듣고 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학교로 달려갔다. 일부 학부모는 잔업을 마치고 심야에 팽목항 버스에 올랐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011년 문을 연 와리마루 도서관 어머니들과 희망교회 김은호 목사가 공동체 복원에 나섰다. 와리마루는 와동의 옛 지명 '와리'에 방과 마당을 이어주는 공간 '마루'를 엮어 만든 이름으로, 도서관은 주민들이 함께 만든 곳이다.

기자가 찾은 와리마루 도서관에서는 운영지기 김은호 목사가 어머니들과 함께 단원고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노란리본을 접고 있었다.

김은호 목사가 와리마루 도서관을 찾은 아이들에게 노란리본을 달아주고 있다. 오른편 게시판에 ‘임시봉안소가 설치될 와동체육관을 노란리본으로 물들여 주십시요’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다.
 김은호 목사가 와리마루 도서관을 찾은 아이들에게 노란리본을 달아주고 있다. 오른편 게시판에 ‘임시봉안소가 설치될 와동체육관을 노란리본으로 물들여 주십시요’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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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사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 중 97명이 와동에 살고 있었다"며 "와동은 한 집 건너서 다 관계를 맺고 있는 동네로 피해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근황을 전했다.

이어 김 목사는 "와리마루 어머니들과 노란리본을 만드는 건 와동체육관에 있는 임시봉안소로 오는 우리 학생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라며 "노란리본으로 임시봉안소 주위를 단장해 상처를 치유하고 이웃 주민들에게 나눠드려 함께 공동체 회복에 동행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동네 어린들이 부모와 함께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합동영결식이 거행되는 와동체육관 임시봉안소 옆 철조망에 노란리본을 매달며 언니, 오빠, 형, 누나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
 동네 어린들이 부모와 함께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합동영결식이 거행되는 와동체육관 임시봉안소 옆 철조망에 노란리본을 매달며 언니, 오빠, 형, 누나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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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리마루 도서관이 있는 와동체육공원 옆 와동체육관에는 임시봉안소가 설치되어 있다. 장례와 발인을 마친 단원고 학생들의 유골이 장지인 와동 꽃빛공원으로 가기 전에 잠시 머무는 곳이다.

학생들이 잠들 묘역인 꽃빛공원은 현재 조성 중으로 임시 안치시설인 와동체육관에서 합동 영결식을 거행한 후 꽃빛공원에서 영면하게 된다.

와리마루 도서관은 동네 주민들이 사랑방처럼 드나들며 차를 마시고, 책도 읽고, 담소를 나누는 질그릇처럼 푸근한 둥지 노릇을 해왔다. 

특히 이곳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언제든지 와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데다 매주 토요일이면 어머니들과 자원봉사를 하는 대학생들이 아이들을 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해 '배우며 놀기 딱'인 명소(?)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지난해 10월 와리마루 앞에 물놀이공원까지 완공돼 아이들의 기대는 하늘을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그 기대는 이내 시무룩해졌다. 5월이면 실컷 물놀이를 즐길 줄 알았는데, 단원고에 다녔던 옆집 형과 누나, 오빠와 언니들이 곁을 떠나면서 개장이 무기한 연기됐기 때문이다.

와동체육공원 안에 조성된 물놀이장에 세월호 침몰 사고로 무기한 연장된다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오른쪽 끝에 서서 카메라를 노려보는 아이의 눈빛이 매서웠다.
 와동체육공원 안에 조성된 물놀이장에 세월호 침몰 사고로 무기한 연장된다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오른쪽 끝에 서서 카메라를 노려보는 아이의 눈빛이 매서웠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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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무기한 연장을 알리는 펼치막 곁에 선 아이가 사나운 눈초리로 사진을 촬영하는 기자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동네 형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우리가 물놀이를 못하게 된 것은 아저씨들 때문'이라는 무언의 시위가 담겨 있었다.

그 아이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다시 깃들게 하기 위해, 깊게 패인 상처를 치유하고 예전의 단란한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김 목사와 어머니들은 노란리본을 달며 '새로운 시작'에 나섰다.

와동은 지금 방과 마당을 이어주는 와리마루처럼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상흔을 치유하며 삶과 이야기를 다시 공유하려고 한다. 손에서 손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건네진 노란리본을 희망의 빛줄기로 삼으려고 한다.

시퍼렇게 날이 선 분노를 가슴에 재운 채 4월 16일에 멈춰버린 시계바늘을 힘껏 밀어내며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가꾸어 나가기 위해 노동으로 거칠어진 손을 맞잡으며 '노란리본의 연대'를 다시금 시작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그래스루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안산시 와동 , #단원고 학생, #와리마루 도서관, #단원고 희생자 임시봉안소, #와동 꽃빛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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