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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현이라는 애교 많은 아이에게

보현아. 나는 너의 한 살 많은 오빠 현모를 고등학교 1학년 때 잠시 가르쳤던 선생님이란다. 원래는 수능 끝나고 만나서 맥주 마시기로 약속했는데…. 이제 고3인, 단 하나뿐인 너의 오빠를 생각보다 일찍 만나게 된 게 서글프게도 너를 마지막 배웅하는 날이 되고 말았네.

뉴스에서는 안산에 장례식이 넘쳐난다고 들었는데 네가 있는 병원에는 너뿐이더라. 나는 그게 남은 다른 아이들을 찾는 것이 더뎌지고 있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서 더 암담해졌다.

깊은 고민 끝에 너의 오빠 현모랑 나는 먼 길을 떠나는 너에게 작은 편지를 쓰기로 했단다. (관련 기사 : "착한 내동생, 못된 선장 말 잘 들어서...예쁘단 말 많이 못 해줘서 정말 후회돼") 현모가 사진도, 실명도 그냥 다 써달라고 한다. 심지어 너의 예쁜 사진들은 따로 보내줬어. 그건 아마도 너를 오래 기억하기 위한 네 오빠의 아픈 소망인 것 같아서 이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글을 쓴다.

나는 너를 보러 가기 전에 조의금을 얼마 내야 하나 고민했다. 어른들 사이에는 가까우면 얼마, 그냥 지인이면 얼마, 그런 기준이 있거든. 그런데 그 기준을 모르겠더라. 한참을 생각하다가 장례식에 가면서 허둥대고 있는 내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왜 그런지는 너의 영정사진 앞에서 네 어머니를 봤을 때야 알게 되었어. 낯선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너의 장례식이라는 것을. 장례식의 주인공이 되기에 너는 너무 어린, 아직도 엄마가 손을 꽉 잡고 데리고 다녀야 하는, 초콜릿을 좋아하고 집에서 노래 부르면서 돌아다니기를 좋아하고, 귀여운 척 그만하라고 오빠한테 구박받아도 마냥 즐거운 아이라는 것을.

너희 오빠가 그러는데 너는 참 애교가 많고 노래를 잘하는 예쁜 아이였다고 하더라. 생각은 저렇게 해놓고서 왜 너를 구박했는가는 모르겠다만 진심은 너도 이미 알고 있을 거야. 너희들의 사진을 보면 보이거든. 이건 비밀인데 현모가 딱 그래. 무뚝뚝하게 생긴 거답지 않게 애교도 많고 정도 많다. 너 뭐 좋아했냐고 하니까. 너 고기 좋아했다고 하는데 그래놓고 나중에 쌤이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하니까 자기도 고기 사달라고 한다. 너와 함께 먹지는 못하겠지만 너희 오빠 고기는 꼭 사줄게.

나는 너에게 왜 이렇게 미안한 걸까

보현이와 현모가 찍은 사진
▲ 마지막으로 다정하게 보현이와 현모가 찍은 사진
ⓒ 구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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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모는 평소에 편지 쓰는 거 좋아하면서 너에게는 편지 한 번 못 써주고 오빠로서 여동생하고 데이트 한 번 못 해본 거 너무 미안해하고 있어. 무엇보다 고3인 네 오빠가 지난 한 달 동안 공부한다고 기숙사 학교에서 있어서 집에 안 가는 바람에 너를 한참 동안 못보고 허망하게 보내게 된 것을 무척 슬퍼하는 눈치야.

그래도 지금은 의연하게 잘 버티고 있어서 대견해. 장례식장에 찾아준 친구들한테 과자랑 음식 챙겨가라고 하는데 왜 아무도 안 가져가는지 모르겠다며 씨익 웃기도 하다가, 너를 봤는데 너의 파래진 얼굴을 보니 추운 데서 떨었을 것이 다 보였다면서 눈물이 고이더라. 너의 볼을 꼬집는 걸 항상 좋아했는데 차가워진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면서, 그러면서도 상처 하나 없어 다행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물어봤지. 혹시 대한민국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느냐고. 그런데 네 오빠는 그냥 다시는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다. 그 말만 한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을 텐데.

선생님이 지금 가르치고 있는 너와 동갑 고등학교 2학년 어떤 아이에게 물어봤어. 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너희들이 떠나는 것이 유난히 슬픈 건지. 그랬더니 그러더라. 실컷 놀아보지도 못하고 기다리는 인생만 살아오지 않았냐고. 기껏 해봤자 게임이나 했을 테고 친구들하고 맛있는 거나 먹고 돌아다니는 거. 그런 것 밖에 더 해봤겠냐고. 앞으로 해보고 싶은 거, 할 것들, 너무너무 많은데 그냥 허무하게 떠나보내는 것이 마음이 아픈 거라고.

그래, 정말 하고 싶은 것 많았을 테고 미처 말하지 못 하고 꽁꽁 숨겨온 너만의 꿈도 있었을 텐데… 그리고 또 너와 함께 있던 그 모두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 시간. 이랬다면, 이럴 걸, 아, 정말 이렇게만 했다면. 이런 것들이 너무 많아서 더 아픈 것 같다. 우리는 순식간에 말도 안 되는 상실을 하게 되었고 수천 번을 속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기를 간절하게 빌어보지만 헛될 뿐이구나.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너에게 왜 이렇게 미안한 걸까.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떠오르는 몇 가지를 말하자면 첫째, 마지막 그 시간에 너희들이 끝까지 믿고 기다렸을 어른으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보면서 발만 동동 구른 것 미안해. 두 번째로는 절체절명의 시간에 너희들을 우선으로 생각하지 않는 어른들을 인내해왔던 것도 미안해. 셋째로는 그동안 너희들이 뭘 아냐고 어른들 말 들으라고. 뭐나 되는 듯이 어른 행세한 것도 미안해.

마지막으로 보현아. 모든 것이 미안하다. 너의 마지막을 비탄하고 나의 무력함을 한탄한다. 앞으로는 사회구성원이자 어른으로서 내 인생만 생각하며 걷지 않고, 적당히 할 것 했다고 자만하지 않고, 비난이 두려워 숨지 않는 용감하고 믿을 수 있는 어른이 되도록 할게.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문득 힘들어 견딜 수 없는 날에 너희 가족 곁에 있을게. 너를 기억할게.

네가 먼 길을 떠나는 날이다. 얼마 전 네 오빠가 드라마에서 장례식에 날씨 좋은 날 공원에서 가족끼리 웃으면서 보내주는 걸 봤는데 좋았다고 그러니까. 네가 '그게 뭐야' 그러다가 '그래도 뭐 괜찮네' 그랬다면서.

너를 보내는 날이 화창해야 할 텐데. 네가 '그래도 뭐 괜찮네' 할 수 있게 말이야. 분명히 날이 갠다고 했는데 그 시간이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보현아. 그 어둡고 추운 곳에서 끝까지 의지하고 있던 언니 오빠 아저씨 아줌마들하고 우리를 용서하고 따뜻하고 밝은 곳으로 떠나가렴. 우리는 용서받지 못한 마음으로 살아갈게.

                           2014년 4월 29일
                          너희 오빠 현모가 쓴 편지를 읽고 정리해서 어떤 어른이 씀


태그:#구보현, #구현모, #단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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