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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고로쇠 타령을 하느냐 하겠다. 하지만 벚꽃이 해발 400고지를 넘어 해발 1708m 대청봉 정상을 향해 아무리 성급한 걸음 재촉하더라도 여전히 현재형 이야기다. 불과 열흘 전 까지만 해도 이곳에서는 고로쇠수액을 채취했으니 그리 오랜 이야기도 아니다. 그리고 채취한 직후 냉동실에 보관해 꽁꽁 얼린 고로쇠수액을 여전히 즐길 수 있으니 새삼스러울 일도 없다.

얼려두었던 고로쇠수액을 상온에 꺼내 녹기를 기다려 그대로 마셔도 좋지만 이번에 소개할 내용은 그 정도라면 애초 시작하지도 않았다. 당연히 고로쇠수액을 활용한 맛있는 이야기다.

시원하면서도 담콤한 국물 맛이 일품인 고로쇠토종닭백숙. 여기에 함께 넣고 삶은 계란 맛이 좋다는데 그걸 젊은 친구가 먼저 자신의 접시에 가져갔다.
▲ 고로쇠토종닭백숙 시원하면서도 담콤한 국물 맛이 일품인 고로쇠토종닭백숙. 여기에 함께 넣고 삶은 계란 맛이 좋다는데 그걸 젊은 친구가 먼저 자신의 접시에 가져갔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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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로부터 음식을 대접받았다면 응당 제법 맛을 괜찮게 살려내는 음식점에서다. 더러 가정에 초대를 받아 대접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애써 마음 써 준 이에 대한 고마움도 크기에 별도로 다른 이에게 소개까지는 아니더라도 맛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한다. 물론 그렇다고 낯간지러울 정도로 과장된 평가나 맛 좋음에 대한 내용이라도 반복적인 경우엔 도리어 욕됨을 알기에 삼가는 편이다.

이곳 강원도 양양군 관내는 물론이고 동해안을 낀 고성과 속초, 강릉 등 여러 곳을 두루 다니지만 그동안 '맛있는 집'으로 좋은 평가를 해 소개한 경우는 극히 일부다. 심지어 고향인 이곳 오색마을의 수많은 식당도 소개를 한 경우는 극히 적고(단 두 곳), 특별히 안내를 해야 할 경우엔 직접 손님을 모시고 기호에 따라 함께 갈 뿐이다. 맛이란 상대적이고 다분히 개인적인 기호에 따라, 심지어 누가 함께였나에 따라 전혀 다른 평가가 내려지기 때문이다.

이곳 오색마을은 양양군에서 8경과 8미를 선정하는 중인데 그 가운데 두 종류의 음식이 오색지역에 해당될 정도다. 하지만 좋은 음식도 매일 먹으면 질리게 마련이라고, 이 고장에 뿌리를 견고하게 내려 살아가는 입장에서 늘 맛나게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참고로 양양8미란 양양을 대표할 음식에 대한 선호도 조사를 통해 나타난 '섭국(홍합국)과 오색약수 돌솥밥, 산채정식, 송이버섯전골, 뚜거리탕, 물회, 홍합장(메일)칼국수, 메밀국수'다. 오색지역에서는 '오색약수 돌솥밥, 산채정식' 이 두 가지가 해당된다.

선정방식이나 기타 여러 부분에 대해 여기에 가타부타 할 단계는 아니라 생각한다. 다만 객관적으로 평가를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평가를 해야 향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리란 점만큼은 분명히 해 둔다.

이곳 설악산자락에 위치한 오색1리는 국립공원을 벗어난 지역에서 고로쇠작목반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산림청의 허가를 받아 고로쇠수액을 채취한다. 수액채취는 허가를 받은 고로쇠나무에서만 한다.
▲ 고로쇠수액 채취 이곳 설악산자락에 위치한 오색1리는 국립공원을 벗어난 지역에서 고로쇠작목반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산림청의 허가를 받아 고로쇠수액을 채취한다. 수액채취는 허가를 받은 고로쇠나무에서만 한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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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간다. 양양8미에는 들지 않았으나 이번에 맛 본 이 음식은 육식을 즐기지 않는 입장에서도 특별히 소개를 해야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각별했다.

오색이나 약수가 유명한 고장이라면 맛보았을 약수를 붓고 엄나무나 몇 종의 약재를 넣고 삶아내는 백숙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으리라. 심지어 다른 고장에서도 '오색약수토종닭백숙'이라며 음식을 내는 식당도 보았으니 널리 알려지긴 알려진 모양이다. 오색약수닭백숙과 마찬가지로 약수를 대신하여 고로쇠수액을 붓고 삶아내는 토종닭백숙을 지금 소개하고자 한다.

작목반에서 시판되는 고로쇠수액. 눈 덮인 산에서 채취한 수액은 곧장 이렇게 포장된다.
▲ 고로쇠수액 작목반에서 시판되는 고로쇠수액. 눈 덮인 산에서 채취한 수액은 곧장 이렇게 포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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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무릎도 넘게 빠지는 1월 중순부터 산림청의 허락을 받은 지역에서만 채취하는 고로쇠수액은 뼈를 비롯해 몸에 좋다는 소문 덕에 요즘은 수요를 공급이 따르지 못한다. 그렇게 귀한 대접을 받는 고로쇠수액을 냉동고에 꽁꽁 얼려두었다가 맛을 보여준다며 넓은 밭에서 기른 닭을 잡아 준비했다니 그 정성 또한 탄복할 일이다.

사실 고로쇠닭백숙에 대해서는 지난 3월 11일 한 방송국의 취재현장에서 이야기가 나왔었다. 날을 잡아 한 번 준비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정확하게 언제 할 것인지는 확약이 없었다. 특별히 대접을 받을 입장도 아니란 생각에 잊고 있었는데 연락이 왔다. 몇 사람 특별히 하루 날을 잡아 함께 할 예정이니 오라는 전갈을 받고, 육식을 크게 즐기지 않으니 그럴 필요 없다고 할 것을 공연히 가서 폐만 끼치는 것 아닌가 부담도 컸다.

김치와 장아찌가 아직 준비 안 된 상차림이 화사하다.
▲ 프리뮬라가 한 몫! 김치와 장아찌가 아직 준비 안 된 상차림이 화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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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을 하지 않는 입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이동해도 항상 시내버스와 같은 대중교통편을 이용해야 한다. 12시쯤 도착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생각하니 12시 무렵엔 차편이 빨라야 12시 15분 정도 되어야 이용할 수 있다. 결국 10시 40분 무렵 지나는 시내버스로 결정하고 나섰다. 예전 같으면 걸어 다녔을 거리지만 교통편이 발달한 까닭도 있으나 아무리 시골길이라 하더라도 규정 속도를 지키지 않고 질주하는 차량들 탓에 요즘 이곳 도로는 사람이 걷기에 무리다. 버스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아 목적지 근방에 도착했다.

며칠 새 산벚꽃이 꽃망울을 열기 시작해 산 빛은 이미 환해졌다. 산도 하루가 다르게 연초록 이파리들을 내는 나무들 덕에 살이 오른다.

약속한 장소에 들어서니 다른 이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나 봄이 한 상 차려져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재료들이지만 달래간장과 프리뮬라가 반찬그릇마다 곁들여지니 전혀 다른 재료들로 차려낸 것 같은 착각도 무리가 아니다. 김치와 장아찌는 나중에 나왔지만 이 자체만도 그냥 지나치기 아깝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꺼냈다. 과연 고로쇠백숙의 맛은 어떨까 사뭇 기대도 커졌다.

고로쇠를 넣고 토종닭을 삶은 고로쇠토종닭백숙이 나오자 촬영이 우선이라며 방송카메라를 먼저 들이 댄 일행들이 자리에 앉아서는 스마트폰으로 또 다른 이들에게 즉성에서 자랑이다.
▲ 고로쇠백숙과 사람들 고로쇠를 넣고 토종닭을 삶은 고로쇠토종닭백숙이 나오자 촬영이 우선이라며 방송카메라를 먼저 들이 댄 일행들이 자리에 앉아서는 스마트폰으로 또 다른 이들에게 즉성에서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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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고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두 대의 차량이 들어왔다. 주차를 하려고 옆으로 회전하는데 방송국차량임을 알리는 CI가 보였다.

"오늘 어디 촬영을 하나요?"
"아닙니다. 총무님 한 달 전 고로쇠에 대해 촬영했던 기자와 촬영팀입니다. 그때 같이 약속했는데 마침 오늘 약속이 모두 되어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맞다. 그때 촬영 끝자락에 고로쇠수액을 구입해가며 오래 보존하는 방법을 물었을 때 냉동시키는 방법 외엔 장기간 보존이 어렵다고 했고, 냉장을 시켜도 며칠 못 가니 백숙을 해 먹으면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육식을 잘 하지는 않다보니 직접 닭을 삶아 본 적은 없으나 고로쇠수액으로 백숙을 하면 좋다는 이야기는 마을에서 여러 번 들었기에 했던 말이다. 그 대화를 들은 오색1리 마을회 사무국장이 자신이 한 번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단 둘만의 약속이 아닌 그날 현장에서 나오며 여러 사람과 한 약속인 것이다.

인사를 나누고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송팀은 오색 주전골을 촬영하고 돌아오는 길이란다. 주말이고 주중이고 뉴스를 담당하는 기자가 닭백숙을 먹겠다고 별도로 시간을 내 나설 수는 없는 일이고, 봄을 맞은 주전골을 찾으며 약속이 맞아진 모양이다.

두꺼운 소나무를 재제해 만든 상위에 음식점에서 볼 수 있는 비닐이 깔린 까닭이 있었다. 고깃집이나 횟집에서 볼 수 있는 이 비닐은 음식을 먹으며 식탁에 기름기가 떨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사용한다.

도기로 만든 탕기에 잘 익힌 닭 한 마리와 계란 세 개씩 담겨 나왔다. 엄나무도 넣은 걸 보니 국물 맛은 시원하겠다. 찰밥을 넣은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여기에 프리뮬라로 불리는 앵초과의 지중해와 영국 해안이 원산지인 허브 꽃이 곁들여 있으니 식탁위에 준비된 반찬 가운데 김치와 나물무침을 빼 놓고는 모두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밥상이 아니라 이건 말을 조금 보태면 연출을 위해 꽃으로 장식한 줄 알겠다.

"여기 이런 음식엔 항상 꽃이 곁들여지나요?"

음식점에서 글을 쓴다는 사실을 알거나 카메라를 보면 다른 이들에겐 내지 않는 별식을 내거나 모양을 좋게 만들어 내기 때문에 물었다. 주인은 어떤 의미로 한 질문인지 이해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다른 손님들에게도 이렇게 차려서 내느냐는 말입니다. 반찬과 고로쇠백숙에까지 허브도 아닌 꽃을 올려 장식해서 차렸기에 말입니다."
"아, 그건 당연히 똑같이 차립니다. 여기에서는 꽃으로 비빔밥도 하는데요."
"오늘 여기엔 남자들만 모였는데 여성분들은 이렇게 밥상을 받으면 정말 기분 좋아 하겠습니다."
"당연하지요. 자신이 차리지만 않으면 누가 차려주던 여자들은 맛있다고 하지 않나요?"

일행들은 이 대답에 일제히 웃었다.

"O감독. 이거 우리가 먹기 전에 먼저 한 컷 촬영하자고. 나중에 다시 고로쇠수액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필요하겠어. 물론 지금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고."

기자는 역시 기자다. 평소 만나기 어려운 음식을 보고 즉석에서 돌발 취재를 한다. 고로쇠수액으로 삶아낸 닭고기도 닭고기지만 국물이나 찹쌀밥은 가스레인지 위에서 고로쇠수액에 의해 알맞게 퍼져 맛난 닭죽이 됐다. 국물 맛도 달착지근하면서도 엄나무가지에 의해 시원한 맛까지 더해 깊으면서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야~ 이거 달걀 맛이 정말 근사합니다. 이렇게 맛있는 달걀은 처음 먹어봅니다."

기자가 탕기에서 꺼낸 삶은 달걀을 뜨거워 손으로 굴리며 껍질을 벗겨 한 입 베어 물더니 극찬이다. 탕기엔 달걀이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아마도 먼저 하나를 맛보고 두 개째 껍질을 벗기며 말 한 모양이다. 그 말에 젊은 친구가 냉큼 국자로 달걀을 꺼내 자신의 접시에 담았다.

"이거 가족들과 함께 와도 모두 좋아하겠어요."

기자가 아이들을 데리고 와도 좋겠다는 의미로 이야기를 하자 주인이 대답한다.

"부인들은 물론이고 아이들이 한 번 맛을 보면 또 먹자고 한다더군요."
"뭐 부인들이야 자신이 상을 차리지만 않으면 뭐든 맛나다고 하잖아요."

산과 들, 그리고 밭을 누비며 자유롭게 활동하는 산촌의 토종닭
▲ 토종닭 산과 들, 그리고 밭을 누비며 자유롭게 활동하는 산촌의 토종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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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나 닭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에서 토종닭이라고 판매하는 걸 구입해 음식을 내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그건 차마 묻지 못하겠다. 우선 육식을 즐기지 않는 입장에서 맛나게 먹었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다. 식사가 끝나고 다음엔 허브의 잎이 아닌 꽃으로 만든다는 비빔밥에 대해 궁금증을 풀고 싶어 말했다.

"꽃으로 비빔밥을 한다는데 그거 한 번 언제 날 잡아 보여주세요. 블로그나 어디 기사로나 소개 한 번 하겠습니다."
"그거 뭐 어렵습니까. 여기서 바쁘지 않으면 소화도 시킬 겸 한 바퀴 돌아보세요. 소화만 되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소화를 시킬 겸 눈여겨 봐 둔 내를 낀 산자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넓은 농원 양지쪽에 닭들이 흙을 파 뒤집으며 먹이를 찾는 모습이 보였다. 건강하게 기르는 닭이었구나!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http://www.drspark.net/의 ‘한사 정덕수 칼럼’에도 동시 기재됩니다.



태그:#토종닭, #고로쇠토종닭백숙, #고로쇠토종닭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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