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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예상된 순서대로 돌아갔다. 기초선거 무공천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회동을 제안한 안철수 대표는 청와대를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식적 입장을 밝혀달라고 요청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박준우 청무수석을 국회로 파견해 회동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일은 무공천에 대한 새정치민주연합 (이하 새정치연합)의 결단이고 논란이 더 격화될 것은 역시 예상된 일이다.

지금까지 무공천 반대 인사들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대략 "무공천하면 전멸이다"로 정리된다. 이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무공천을 합리적으로 토론하고 결정하려면 최소한 이런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를 먼저 제대로 검증해 봐야 할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기초선거 무공천의 문제는 대략 네 가지로 요약된다. 1) 기호 2번이 사라진다. 2) 새정치연합 후보가 난립한다. 3) 광역 단체장 선거에도 불리하다. 4) 기초선거 결과가 총선과 대선에 영향을 미친다. 이들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고 분석해 보자

기호 2번이 사라지면 야권이 궤멸한다?

"기호 2번을 뺀 여론조사 결과 참담"이라는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신경민 의원은 한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기호 2번이 사라지면 야권이 궤멸할 수있다고 주장했다. 이 여론조사가 어느 것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지난 3월 11일 강동구민을 상대로 리서치뷰가 실시한 여론조사로 보인다.

이 여론조사는 새누리당 후보에게만 기호 1번을 배정하고 무소속 권태웅 후보와 새정치연합 이해식 구청장을 기호 없이 각각 두번째, 세 번째로 놓고 실시 되었다. 그 결과 새정치연합 지지자들 중 20%가 이해식 후보가 아닌 권태웅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리서치뷰 여론조사 질문지.
 리서치뷰 여론조사 질문지.
ⓒ 리서치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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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론조사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실제 투표용지에는 기호 2번이 사라지고 다른 기호가 배정되는데 설문에서는 기호 없이 권태웅 후보를 두번째로 놓았으니 실질적으로 기호 2번을 권태웅 후보에게 배정한 것이다. 설문 대상자는 답 "2번"을 "기호 2번"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오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설상 답 "2번" 없이 "무소속 권태웅"만 있었더라도 두번째 배치됐으니 실제 투표용지와는 현저히 다르다.

둘째, 새정치연합 지지자들 중 권태웅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은 모두 '실수'를 했다고 가정한 것이다. "그 결과 통합신당 지지층의 약 20~23%가 만주당 소속 이해식 구청장이 아닌 무소속 권태웅 후보에게로 분산"되었다는 말은 20~23% 분산을 권태웅 후보가 두번째로 배치된 결과로 해석한 것이다.

강동구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리서치뷰의 분석.
 강동구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리서치뷰의 분석.
ⓒ 리서치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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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전에 새누리 지지자들 중 20% 이상이 안철수 신당을 지지했다는 여론조사도 있는 만큼 권태웅 후보를 지지한 새정치연합지지자들 중 20%가 모두 실수로 그랬다고 단정할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지지자들이 실수를 한 것인가는 이해식 후보를 두번째로 놓고 한 조사와 비교해 봐야 하는데 이 여론조사는 그러지 않았다.

셋째, 여론조사가 RDD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무작위로 선출된 유권자는 후보가 누군지 모를 확률이 적극 투표자보다 높고 후보가 누군지 모르면 이름이 아닌 기호나 순서에 따라 투표할 확률이 더 높다.

그래서 기호 2번의 실종으로 인한 표 이동은  무작위 유권자가 아닌 적극  투표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어야 했다(적극 투표자란 실제로 투표할 확률이 높은 유권자를 말하는데, 투표할 의사를 물어보거나 이전에 투표한 경력 등을 물어보는 등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마지막으로 리서치뷰 안일원 대표의 의견을 살펴보자. 2010년 서울교육감 선거는 모든 기호가 배제되었으므로 기호 2번만 삭제되는 무공천과는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는 기호 2번이 삭제되었지만 무효표가 많았던 이유는 심상정 후보가 투표 하루 전 사퇴했기 때문이다. 고로, 이 또한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민주통합당이 후보를 내지 않고 박원순 시장이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2011년 서울시 보궐선거는 비교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 선거에는 무효표나 실수로 인한 표 분산 등의 큰 문제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안일원 대표는 잘못 설계된 여론조사의 결과를 잘못 해석한 후 잘못된 선거 사례와 비교해서 "기호 2번이 사라진 투표용지의 후유증이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과장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앞선 번호가 유리하고 고정된 번호가 유리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그 정도는 제대로 된 여론조사 없이는 예측할 수 없다. 기호 2번의 실종이 지방선거에서의 전멸이라고 주장하려면 최소한 사과와 오렌지가 아닌 사과와 사과를 비교하는 제대로 된 여론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새정치연합 후보가 난립한다?

이론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정당에서 공천하지 않으면 어느 후보든 탈당해서 후보로 등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공천이 무대책을 뜻하지 않는다. 후보 난립은 패배를 뜻하는데 야당후보들이 바보가 아닌 한 속수무책으로 난립하겠는가?

대부분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단일화가 이루어질 것이고 아니라면 지구당이 물밑에서 교통정리를 할 수있다. 무공천은 오히려 야권후보들을 경각시켜 단일화를 야기하는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무공천하면 박원순도 위험하다?

"안철수, 박원순도 위험하다 해도 침묵"이라는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은 기초의원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박원순시장의 선거운동을 지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다른 당이나 후보 선거운동을 금지한 선거법 88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박원순 시장도 보궐선거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했었지만 민주통합당과의 협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18대 대선 당시에는 김부겸 민주통합당 선대위 위원장이 민주통합당이 무소속 안철수 후보를 도울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안철수가 입당해야 한다고 압박했었고  이재명 시장의 주장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재명 시장은 또 시의회를 새누리당이 장악하면 박원순 시장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시장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 또한 기초선거 무공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서울시는 광역단체이고 광역단체 의원은 공천 대상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기초단체를 장악하면 다음 총선, 대선도 전멸이다?

얼핏 들으면 사실인 것 같다. 기초단체들이 새누리당 후보를 위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법은 공무원의 선거개입을 금하고 있고 기초단체장이나 의원이 총선이나 대선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총정리 해보자. 새누리당이 기초선거 공천하는데 새정치연합이 안 하면 불리하다는 건 자타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불리함의 정도가 근거 없이 과장되고 있고 이런 과장된 주장들이 아무런 검증이나 반론 없이 난무하고 있다.

이미 결정된 사안을 번복하려면 일반적으로 그만큼 더 확실한 근거가 필요한 법인데 과장된 주장에 휩쓸려 무공천 결정을 번복한다면 신념이 없는 당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무공천을 유지하건  철회하건 결정은 현실을 냉철하게 있는 그대로 파악한 후 실과 득을 제대로 따져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또 그래야 지방선거뿐만 아니라 차기 총선, 대선에도 성공하고 새정치연합이 지향하는 국민을 위한 정치, 약속의 정치를 제대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태그:#무공천, #전멸, #신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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