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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삶과 인권이야기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책표지
 박래군의 삶과 인권이야기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책표지
ⓒ 퍼블리싱 컴퍼니 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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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하고 멋쩍은 웃음을 짓는 까무잡잡한 남자, 인권재단 사람의 박래군 소장이다. 한때 소설가를 꿈꾸던 문학도 박래군, 그는 왜 그토록 원했던 문학에의 꿈을 접고 열한 번의 전과 경력을 가진 인권운동가로 살고 있을까. 시인을 꿈꾸던 동생 박래전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박래군을 그저 소설가로 만났을지도 모른다.

책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은 인권운동가 박래군이 자신의 삶과 인권 이야기를 기록한 글모음집이다. 1부는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 씹었던 가난한 어린 시절부터, 국가의 폭력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학생운동에 뛰어든 자전적 이야기. 2부는 인권운동 현장 이야기. 3부는 용산 참사와 관련된 이야기. 마지막 4부는 인권운동에 대한 미래를 가늠해보는 글들로 엮여있다.

인권운동가 박래군이 노동운동·인권운동을 하며 접한 국가폭력과 그에 맞서 온 과정 그리고 그가 만난 인권 사각지대 사람들 삶이 씨실과 날실로 엮여 척박한 인권 불모지대의 부끄러운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

눈보라 몰아치는 나라에서 몸 비틀며 피어나는 꽃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는 세상을  위하여.
▲ 박래군과 박경석 전장연 대표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는 세상을 위하여.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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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에는 박래군의 동생 박래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변 어른들은 박래군-박래전 형제를 보며 '창자가 이어진 형제'라고 했단다. 그렇게 우애가 남달랐던 동생을 잃은 박래군의 마음은 어땠을까.

"내 동생, 박래전. 스물여섯 나이에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세상을 서둘러 떠난 청년. 26년 전의 일이지만 오늘도 생생하게 그때가 생각난다. 1988년 5월 15일 서울대생 조성만이 명동성당 가톨릭회관에서 할복 후 투신했고, 5월 18일에는 천안 단국대생 최덕수가 분신한 뒤, 6월 4일 동생이 숭실대학교 학생회관 옥상에서 몸에 시너를 붓고 불을 댕겼다. 온몸은 숯덩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틀 뒤인 6월 6일 그는 숨쉬기를 멈추었다."(본문 중에서)

동생을 땅에 묻으며 "민중의 새 세상을 위해 동생의 몫까지 싸우겠다" "그날이 올 때까지 절대 울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라는 박래군 소장, 그는 사실 눈물 많은 울보다. 그런 그가 절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희망을 찾아 웃으며 사람들 곁에 서기 위해 속울음 삼키는 극기의 시간들이 얼마나 많이 필요했을까.

당신들이 제게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아는 까닭에
저는 당신들의 코끝이나 간질이는
가을꽃일 수 없습니다.

제게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아는 까닭에
저는 풍성한 가을에도 뜨거운 여름에도
따사로운 봄에도 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떠나지 못하는 건
그래도 꽃을 피워야 하는 건
내 발의 사슬 때문이지요.

겨울꽃이 되어버린 지금
피기도 전에 시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향기를 위해
내 이름을 동화(冬花)라고 합니다.

세찬 눈보라만이 몰아치는
당신들의 나라에서
그래도 몸을 비틀며 피어나는 꽃입니다.
- 박래전 <동화>(冬花) 전문

2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피눈물이 마르지 않고 인권이 실종된 거리에서, 소외된 이들과 함께 울고 울어야 하는 박래군의 심정은 어떨까. 여전히 '겨울공화국'인, 인권도 사람도 실종된 대한민국에서는 '몸을 비틀며 피어나는 겨울꽃'으로 살기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박래군은 1986년 10월 말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고 복역한다. 이 나라의 양심수들에 대한 악행은 끔찍했다. 교도소 내에서 전태일 열사의 추모일을 맞아 묵념과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고 악질 보안과장의 진두지휘 하에 양심수 전원이 보안과 지하실에 끌려가 '비녀 꽂기'라는 고문과 '돼지묶음'을 당했다고 한다.

'돼지묶음'이란 손과 발을 뒤로 묶어 배만 땅에 대고 버둥거리게 만드는 지독한 형벌이다. 일제시대부터 정치범을 다뤄온 대전교도소 교도관은 혀를 깨물어 핏물이 교도소 바닥 여기저기 뱉어져 있는 것을 보고도 포승줄을 풀어주기는커녕 오히려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입에 방성구(防聲具)를 씌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장기수들과의 만남

박래군이 운동을 포기하지 않도록 만든 또 하나의 사건은 장기수들과의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절망의 시간들을 지나오면서 여전히 운동권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대전교도소에서 만난 장기수 양심수들 덕분이었다.

"전향 공작으로 죽어간 이들도 있었다고 하는데, 남아 있는 그곳의 장기수들은 그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꿋꿋이 이겨낸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사상이나 신념을 자세히 들을 기회를 그때는 갖지 못했다. 다만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그들의 생활이 눈에 들어왔다. 새벽 4시면 일어나서 냉수마찰을 하고 앉아 묵상을 한다. 그러고는 걸레로 깨끗이 청소를 한다. 정좌를 한 채 독서를 하고, 아침 먹고 또 조용히 독서를 한다.

그러다가 운동 때는 각 방의 선생들과 함께 빗자루 등을 들고서 민족무예를 익힌다. 그런 모습이 은근히 감동적이었다. 아랫사람에게 하대하지도 않았다. 소지(청소하는 사람)나 교도관에게도 깍듯했다. 우리처럼 걸핏하면 화내고 욕하고 하는 모습도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다. 티내는 일도 없지만 누구라도 그들 앞에 주눅이 들게 하는 기품이 있는 사람들. 죄수복을 입은 그들에게서 그런 풍모를 발견한다는 건 상상 밖의 일이었다.

나는 장기수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많은 반성을 했다. 당시 운동을 좀 한다는 사람들은 혁명이란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나도 그런 부류였다. '혁명을 위해서'라는 말을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혁명을 남발해 왔던 나의 가벼운 모습이 거울을 보는 것처럼 환하게 보였다. 얼마나 어쭙잖았던가. 겨우 몇 시간 묶였던 것도 이겨내지 못한, 입으로만 혁명하는 게 내 모습이었다. 나의 운동은 너무도 오만했다. 그들의 조용한 모습 앞에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본문 중에서)

양심수였던 장기수들의 삶은 그 자체로 박래군에게 커다란 깨우침과 교훈이 됐다. 장기수들과 함께 했던 1개월여의 대전교도소 생활은 박래군이 운동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반성과 성찰의 토대를 만들어줬다.

박래군은 인권운동가로  장애인 시설  에바다 복지회와 양지마을, 대추리 미군기지 건설 반대 현장, 용산 참사 현장,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반대 현장에서 장애인·이주노동자·성소수자·비정규직 노동자·해고노동자 등과 인간의 실종된 권리·박탈된 자유·실종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

이제, 그를 소설가로 만나고 싶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했던 H-20000만 프로잭트는  2만개의 부품을 시민들에게 후원받아  세상에서 하나 박에 없는 자동차를 만드는  일이었고 멋지게 성공했다.
▲ H-20000 프로젝트 후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했던 H-20000만 프로잭트는 2만개의 부품을 시민들에게 후원받아 세상에서 하나 박에 없는 자동차를 만드는 일이었고 멋지게 성공했다.
ⓒ 박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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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정국으로 되돌아간 지금 인권운동가로 사람 곁에서 손잡아 주며 그가 걸어가는 길은 여전히 가시밭길이다. 하지만 30년 넘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든든한 지원군이 돼 준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이 있기에 그 외로운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간다고 고백한다.

30년을 하루같이 사람 곁에서 늘 손을 잡아주는  남자 박래군. 그가 현장에서 물러나기 전 꼭 바꿔내고 싶은 것은 국가보안법 폐지다. 국가보안법으로 가짜 간첩과 빨갱이 가족이 돼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들이 생겨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 남자가 꿈꾸는 인생 3막의 꿈은 소설가다. 이제는 그 남자 곁에 잡은 손 놓지 않고 가는 사람들이 자꾸 많아져서 그가 인생 3막을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의 꿈대로 그가 예순이 되면 인권운동 현장에서 물러나서 후배들을 격려해 주는 멋진 선배로 남았으면 한다. 대학 1학년 때 학내 문학상에서 소설 <땅강아지>로 수상했던 문학청년 박래군. 소설가 박래군을 꼭 만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박래군 지음/ 퍼블리싱 컴퍼니 클/ 15,000원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 인권운동가 박래군의 삶과 인권 이야기

박래군 지음, 클(2014)


태그:#박래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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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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