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1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후, 지금까지 매년 600여 명이 감옥에 갇혔다. 참여정부 때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2009년 이후 법제화는 멈춘 상태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10년이 넘어 특별할 것이 없는 이슈이지만, 여전히 개인들은 평화와 병역거부를 고민하며 감옥으로 향하고 있다.

필자는 한 사람이 어떻게 병역거부자가 되고 감옥으로 가는지 궁금했다. '원래부터 특별한 기질이 있었을까, 무엇을 계기로 병역거부에 대한 생각이 생겨났을까' 알아보고 싶었다. 지난해 11월 18일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4월 23일에 재판이 예정된 김성민(29)씨를 3월 중순경 만났다. 아래는 김씨와의 일문일답.

휴학을 계기로 생각의 전환을 맞게 돼

2008년 촛불집회를 계기로 휴학을 하고 거리로 나오다(왼쪽에서 세 번째 뒤쪽이 김성민씨).
 2008년 촛불집회를 계기로 휴학을 하고 거리로 나오다(왼쪽에서 세 번째 뒤쪽이 김성민씨).
ⓒ 이상엽

관련사진보기


- 원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나.
"대학교 3학년까지는 평범하다면 평범했다. 사회 문제에 어느 정도 관심은 있었지만, 시위에 참여하는 건 운동권이나 '전문 시위꾼'이나 하는 거라 생각했다. 기독교 동아리와 농구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학과 공부는 그렇게 열심히 하진 않았다. 생명과학을 전공했고 계속 공부하고 싶어서 1학년 때부터 연구실에 들어갔다. 주변에 친구들도 그렇고 나도 군의관이나 전문 연구원으로 복무할 생각이어서 군대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 병역거부를 언제 처음 접했나.
"2008년 촛불집회를 겪고 휴학을 하면서 삶이 좀 달라졌다. 원래는 한 학기 정도 쉬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3년을 내리 쉬게 됐다. 2009년에 국제앰네스티라는 인권 단체 활동을 하며 병역거부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2004년에 병역거부로 수감되었던 임성환씨였다. 밥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자리였는데, 그 분이 농담으로 나한테 병역거부를 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자기가 다 책임진다면서(웃음). 그 때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 어렴풋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촛불집회와 노무현의 죽음, 병역거부 고민하게 해

- 병역거부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한 건 언제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나에게 끼친 영향이 컸다. 그의 죽음으로 제도 정치에 대한 회의감, '사회를 바꾼다는 것'에 대한 회의를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이 사회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까'하는 고민이 시작됐다. 무엇보다 소위 '노빠'였던 내게 그의 죽음은 내가 딛고 있던 가치관의 붕괴였고 난 큰 충격에 슬럼프를 겪게 됐다. 몸도 많이 아파서 하고 있던 활동과 관계들을 접고 방구석에 박혔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군대 문제가 나에게 왔다. 한 달 동안 잠이 잘 오지 않았고 '내가 병역거부를 하면 어떻게 될까'하는 고민을 하며 밤새 뒤척였다. 그때 '전쟁없는세상'이라는 평화단체를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활동하며 병역거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갔다."

- 아직 노무현을 지지하나.
"그러기에는 많은 정치적 변화가 있었다. '리버럴'에서 나아가 '래디컬'해졌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을 인간적으로는 좋아하지만 평화에 대한 인식(이라크 파병이나 신자유주의에 관한 문제의식)을 비롯해 다양한 견해 차이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좋아할 수 없게 되었다. 2008년에 친구들과 토론할 때 나는 이라크 파병이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하곤 했다. 한국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것도 아니니까. 그 때의 나는 '이라크 파병은 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나'하는 생각을 했다. 몇 년 사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시민운동을 비롯한 여러 활동과 독서를 하고, 여행을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호흡이 좀 길어졌다. 여성주의, 생태주의, 역사 등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시각도 더 복잡해졌다."

- 5년 사이 정치적 성향이 많이 변했는데.
"2008년에는 당장 내가 어떻게 변화를 만들까 고민했다면, 이제는 평생을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에 대해 고민한다. 무엇에 대해 함부로 입장을 가지고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주저하기 시작했다. 나는 평범한 기독교 청년에서 몇 년 사이 병역거부자로 빠르게 바뀌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어떻게 바뀔지 스스로도 알 수 없다는 불안함이 있었다.

병역거부를 마음먹은 이후에도 스스로 몇 년간 지켜보고 병역거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기까지 5년이 걸렸다. 사실 병역거부를 결정한다고 여기에 100%의 확신 같은 게 있지는 않다. 이것은 평생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넘기기 전에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젊은이에게 강요되는 이 고민이 가혹하다고 느끼지만, 어쨌든 현재 상황에서 결정은 내렸다. 나는 이 선택에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2008년 8월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다.
 2008년 8월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다.
ⓒ 김성민씨 제공

관련사진보기


합당한 대체복무제가 있었더라면 감옥 가지 않았을 것

-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나라는 누가 지키나.
"한국도 이미 상당수가 다양한 대체복무제를 사실상 하고 있다. 단지,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가 없는 것이다. 입대를 앞둔 사람들은 기간이나 혜택, 조건들을 따져서 복무형태를 선택한다. 형평성은 기간이나 대체복무제의 강도로 조절할 수 있는 문제다.

안보상황이 유사했던 다른 나라들에서도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기 전에 여러 우려가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시행됐다. 대체복무제를 한다고 모두가 대체복무제를 하는 것이 아니다. 특혜적인 예외를 만들어달라는 것도 아니다. 꼭 가야만 하기에 문제시되지 않았던 군인권이 개선되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 지금의 군대는 내부의 많은 문제는 가리면서, 군가산점도입이나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관심을 돌리려 한다."

- 대체복무제가 있었더라면 감옥에 가지 않았을까. 
"그건 어떤 대체복무제냐에 따라 다르다. 5년 정도 복무하는 징벌적 성격의 대체복무제라면 당연히 반대했을 것이다. UN기준으로 봤을 때 합당한 수준이고 전투와 전혀 연관성이 없는 대체복무제라면 받아 들였을 수도 있다. 예컨대 내가 학교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을 한다고 해서 당장 학교를 부수라고 하는 건 아니니까. 지금 한국의 상황과 내 삶의 맥락에서 감옥에 가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현실주의자에 가까운 면도 있다."

-한국에 대체복무제가 곧 도입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나.
"시간 문제다. 2009년에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는 줄 알았다. 정부에서도 준비를 다 해놨었다. 하지만 정치 상황의 변화로 대체복무제가 뒤집어졌다. 이것이 한국사회에서 군대와 병역거부가 안보 문제, 행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결국 정치적 상황에 따라 도입 시기가 달라질 것이다.

인권이나 민주주의를 중요시 여기는 정권이나 여당이 들어서면 대체복무제가 제일 시급하게 도입될 제도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후보의 10대 공약이기도 했고, 새누리당을 제외한 거의 모든 당이 합의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인권문제를 여론으로 결정할 순 없겠지만 여론조사 결과도 우호적으로 나왔다. 몇 년일지는 모르겠지만 대체복무제 도입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물론 그 몇 년 동안 사람들은 꾸준히 감옥으로 향하겠지만." 

병역거부도 오히려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일 수 있어


- 꼭 병역거부를 해야만 했나. 군대에 가서 내부를 바꾸는 노력도 할 수 있지 않나.
"이런 질문은 군대는 반드시 모두가 가야 하는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나온다. 나는 반대로 군대를 꼭 가야 하느냐고 묻게 됐다. 물론 한국의 현행법 하에선 가야 한다. 하지만 법에 우선하는 가치 혹은 권리로서 병역거부를 알게 됐다. 선택이 내게 주어졌고 병역거부에 대한 긴 고민이 시작됐다.

고민을 거듭하면서 군인이 됨으로써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가치들을 점점 더 받아들일 수 없게 됐다. 그것이 누군가에겐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이 될 수 있겠지만 내게는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 되었다. 군대를 반드시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군대 문제가 변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 군대를 가지 않을 수 있어야 군대가 변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질문을 들을 때 질문을 하는 이에게 같이 군대를 바꾸는 노력을 하자고 한다. 한 개인이 군대에 간다고 해서 군대를 바꿀 수 없다는 걸 군인들이 더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위치에서 서로 손을 잡아야 한다. 또 군대를 가지 않는다고 군대를 바꾸지 못하는 건 아니다. 요새 군대인권개선에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군인권센터나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 활동을 하는 병역거부자들도 있다." 

여행과 사진을 좋아하며, 사진으로 돈을 벌기도 한다.
 여행과 사진을 좋아하며, 사진으로 돈을 벌기도 한다.
ⓒ 김성민씨 제공

관련사진보기

- 병역거부는 권리만 주장하면서 의무는 지키려 하지 않는 것 아닌가.
"나는 한국에 살면서 다양한 권리를 가지고 있고 또 의무도 있다. 군대의 경우엔 그 권리와 의무가 충돌한다. 나는 이 의무가 무조건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것인지, 누구를 위한 의무인지 고민해왔다. 이러한 질문이 없다면 많은 것들이 의무라는 이유로 강제되어 쉽게 국가폭력이나 전체주의로 기울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어떠한 이유로 병역거부권을 지켜주지 못하는지 몇 년간 세심히 지켜봤지만 납득할 수 없었다. 의무가 부당하지 않은지, 대안은 없는지 질문해야 한다. 병역거부권은 세계적으로 가장 핵심적인 권리 중 하나이다. 이런 권리를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가 어떤 권리로 국민에게 의무를 요구할 수 있을까."

- 권리와 의무를 분리시켜 생각하자는 건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다고 해서 권리가 배제되는 것은 병역거부자뿐 아니라 여성이나 장애인의 권리를 배제하는 효과를 낳는다. 얼마 전 함익병씨가 한 '여자는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았으니 권리도 3/4만 행사해야 한다'는 발언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의무를 다해야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에서 벗어나야만 한국사회에서 자유와 평등에 대해 더 깊게 성찰을 할 수 있다.

이제 의무로 강제하는 시대는 지났고, 보다 합리적이고 협력적인 논의를 하며 국가와 시민,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살펴야 한다. 내가 받아왔던 것은 추상적인 국가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이다. 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를 이야기하거나 사회에 대한 복무를 요구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그런 질문은 사회를 맥락 없이 단순하게 볼 위험이 있다. 전쟁이 막상 일어나면 개인이 전쟁을 비판하고 안하고는 크게 의미가 없다. 물론 개인의 선택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 전쟁의 연결고리들을 미리 차단하는 게 더 중요하다. 전쟁을 막을 수 있도록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해나가자는 것 이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금 여기'의 고민이라고 보진 않는다."

아시아를 여행하며 네트워크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

- 작년에 1년 동안 여행을 갔던데 감옥에 가기 전에 정리하는 시간이었나.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200만 원을 모았는데 그 돈으로 여행이나 갈까 생각했다. 이제껏 활동하면서 알게 된 문제를 직접 가서 만나보고 엮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무기제로(무기산업으로 이익을 얻는 전쟁수혜자들을 감시하는 시민단체)' 활동할 때 확산탄(cluster bomb) 관련해서 캄보디아 활동가들이 왔었는데 거기를 가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국제앰네스티가 다음 캠페인으로 캄보디아의 강제퇴거 문제를 다룬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인도의 포스코 문제와 네팔의 이주노동자 문제까지 몇 가지 관심주제를 잡고 여행을 갔다."

-사람들이 하는 일반적인 여행과는 다른데.
"알고 있던 지식과 여행의 경험들을 이어지게 하고 싶었다. 내가 주로 한 게 인권 활동과 평화 활동인데 둘 다 국경을 넘어야 가능하다고 느꼈다. 여행은 아시아의 경계를 넘으며 살아가는 한국인과 현지인들을 만나 볼 기회였다. 네팔에 가서 한국어학원 선생도 해보고, 한국에서 살다 온 이주노동자들을 만나 인터뷰도 했다. 캄보디아에서는 강제철거지역 영상을 찍어 국제앰네스티에 보냈다. 인도에서는 포스코 반대 활동가들을 만나 글을 썼다. 우연히 한 방송국 다큐멘터리의 현지 코디네이터로 일하기도 하며 원래 6개월 계획했던 여행이 1년이 되었다."

- 출소 후에는 어떤 일을 하고 싶나.
"일단은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이나 역사학을 공부하고 싶기도 하고, 관련된 시민단체 활동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그 후에 여행을 하면서 사는 걸 생각하고 있다. 작년의 인도, 동남아 여행이 그런 삶을 실험해보는 측면도 있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관심사는 분명하다. 서로 다른 문화와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다. 아시아의 갈등지역과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그곳의 소식을 한국에 전하고, 네트워크를 만드는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감옥에 갔다 오면 생각이 많이 바뀌니까 계획을 많이 세워놓지 말라고들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스스로 평범하다고 생각지 않고, 특별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병역거부를 해야 한다거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병역거부를 할 수 있었던 건 여러 상황들이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인권, 평화운동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며 영향을 받았다. 나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게 된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출소 후에는 아시아를 여행하며 살고 싶다는 김성민씨.
 출소 후에는 아시아를 여행하며 살고 싶다는 김성민씨.
ⓒ 김성민씨 제공

관련사진보기


성민씨는 호기심이 많고,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일본식 우동을 먹으러 가서는 주문도 하지 않은 채 한국음식과 일본음식의 문화적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잘 모르는 분야에 관한 논문을 읽는 것이 취미라고 했다.

호기심이 한국에서는 독이 되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 권위로 억누르려는 선생님들과 부딪히는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왜 머리를 짧게 깎고, 기숙사에서는 점호를 해야 하지?'하는 궁금증이 항상 있었단다. 그 질문은 몇 년이 지나 '왜 군대를 가야 할까?'로 바뀌었다. 질문의 대가로 성민씨는 이제 1년6개월의 징역을 살아야 한다.  


태그:#병역거부자, #양심적 병역거부, #김성민, #들깨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