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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특징 하나가 때때로 그 사람을 기억하게 한다. 도시나 마을도 마찬가지. 어처구니없는 기억 한 조각이나 사소한 풍경 하나가 그때를 불러낸다. 때론 부분이 전체보다 힘이 세다. 그런 조각들로 도시를 여행하려 한다. - 기자 말

일본에서 만난 국내 프로야구단 깃발, 여기가 한국?

 매년 2월만 되면 오키나와는 야구 도시로 변한다. 우리나라 프로야구팀은 물론 일본 프로야구 1, 2군이 집결한다.
 매년 2월만 되면 오키나와는 야구 도시로 변한다. 우리나라 프로야구팀은 물론 일본 프로야구 1, 2군이 집결한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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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가 개막하기만을 기다렸다. 2013년 11월 1일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겨울은 어찌나 길었던지…. 그야말로 무료하고 심심한 겨울왕국이었다. 긴 겨울잠을 깨는 소식은 오키나와에서 먼저 들려왔다.

시범경기를 앞두고 각 프로구단들이 오키나와에 캠프를 차렸다. 구단들은 팀 내 연습경기를 치르는가 하면, 국내 팀끼리 또는 일본 프로팀과 경기를 벌였다. 그때부터 야구 기사 클릭질을 다시 시작했다.

3월 29일 마침내 프로야구가 시작한다니 자연스레 오키나와가 떠오른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처럼 이제 오키나와 하면 자연스레 '야구'라는 단어가 따라온다.

올해 2월 초 고슴도치만큼이나 추위에 약한 여자친구를 데리고 따뜻하다고 알려진 오키나와로 떠났다. 공항에서 빠져 나오자 '오키나와 리그'라는 말이 실감 났다. 캠프를 차린 국내 프로야구 6개 구단 깃발이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걸려 있었다.

 온도가 달라지면 사람이 사는 모습도, 자연도 달라진다. 아열대 기후인 오키나와에선 나무가 다른 나라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려줬다.
 온도가 달라지면 사람이 사는 모습도, 자연도 달라진다. 아열대 기후인 오키나와에선 나무가 다른 나라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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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열대 기후라는 지역 특징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람들 사이 군데군데 반소매와 반바지 차림이 보였다. 기온은 대략 15도에서 18도 사이. 하와이 명물이라는 반얀 트리(Banian Tree)가 여기서도 흔하다. 역시 따뜻한 곳이다.

평화롭게 보이는 곳이지만 오키나와는 큰 비극을 안은 곳이다. 2차대전 당시 미군이 상륙해 일본군과 전면전을 벌였다. 전쟁에서 오키나와 주민 3분의 1 정도 되는 9만 명 정도가 목숨을 잃었다. 잇따른 공습으로 섬 전체에 온전한 건물은 사라졌다. 폐허란 단어는 이럴 때 어울리는 말이다. 그런 역사를 알고서 봤기에 가장 놀라웠던 건 집집이 있었던 시사(シーサー)였다. '사자'를 오키나와식으로 부르는 이름인 시사는 집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사람과 건물, 집이 사라진 자리에 전통이 다시 자라나긴 쉽지 않다. 새로운 점령군은 과거 문화를 지우고 자기식 문화를 심고자 한다. 류쿠국(琉球國)이란 이름으로 오랫동안 독립국이었던 오키나와는 1879년 일본에 점령당한다. 일본은 류쿠라는 이름을 지우고 오키나와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2차대전 뒤엔 미국이 1972년까지 지배했다. 점령의 역사가 강력한데도 전통이 여전하다는 게 낯설었다. 초가, 장승, 서낭당, 솟대, 물레방아와 같은 전통문화는 민속촌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게 우리나라 아닌가.

 오키나와말로 사자를 뜻하는 시사는 집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입을 벌린 건 수컷, 다문 건 암컷이다.
 오키나와말로 사자를 뜻하는 시사는 집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입을 벌린 건 수컷, 다문 건 암컷이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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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키나와에서 본 집, 가게마다 시사가 어김없이 자리잡고 있었다. 정부가 주도했다면 모두 똑같은 모양이었을 텐데 다 달랐다. 모두 자발적으로 했다는 뜻이다. 일본 점령, 미국 점령 아래서도 이런 전통을 지키는 힘이 놀라웠다.
 오키나와에서 본 집, 가게마다 시사가 어김없이 자리잡고 있었다. 정부가 주도했다면 모두 똑같은 모양이었을 텐데 다 달랐다. 모두 자발적으로 했다는 뜻이다. 일본 점령, 미국 점령 아래서도 이런 전통을 지키는 힘이 놀라웠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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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에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시사를 봤는지 모른다. 거의 빠짐없이 집마다 시사가 있었고, 무엇보다 모양이 다 달랐다. 상점에서 똑같은 상품을 산 게 아니라 직접 만든 듯 보였다. 주민들은 여전히 재앙을 막는 돌인 석감당(石敢當)을 집 앞에 세웠고, 가게나 식당에선 지역 술인 오리온 맥주를 팔았다. 비록 일본에 지배 당했지만, 몸과 마음은 일본이 아니란 말을 들은 게 떠올랐다.

크고 화려한 볼거리는 적었지만 다리가 불편한 사람을 위해 엘리베이터 안에 놔둔 의자, 아이들이 물을 마시기 좋게 설치한 받침대, 공립미술관 입구 바로 옆에 설치한 개 화장실 등 그네들의 마음씨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한 방에 보내버릴 정도로 깜짝 놀란 경험은 과거 류쿠국 궁전인 슈리성(首里城)에서 일어났다.

복잡한 왕궁 내부, 휠체어를 타고 돌다

 오키나와는 1879년 일본에 강제 점령될 때까지 류쿠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독립왕국이었다. 사진 속 정면 건물은 당시 류쿠국 국왕이 머문 슈리성이다. 사진은 과거 류쿠국 시절 매년 설날에 치른 의식을 재현한 모습이다.
 오키나와는 1879년 일본에 강제 점령될 때까지 류쿠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독립왕국이었다. 사진 속 정면 건물은 당시 류쿠국 국왕이 머문 슈리성이다. 사진은 과거 류쿠국 시절 매년 설날에 치른 의식을 재현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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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불편한 여자친구는 짧은 거리는 걷지만 10분 이상 움직일 땐 휠체어를 탄다. 걸어서 다녀야 하는 산이나 넓은 실내 구경은 지금껏 꿈도 꾸지 못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슈리성을 구경하러 갔을 때도 항상 그랬던 것과 같은 대화를 나눴다.

"나는 매표소 쪽에 있을 테니까 천천히 보고 와요. 책 보고 있으면 되니까."
"그래도 갈 수 있는 데까진 가봅시다. 나도 꼭 실내를 보고 싶은 건 아니에요."

표를 끊어서 슈리성 정문까진 갔다. '휴.' 혼자서 실내를 구경할지 건물 외관을 본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설지 결정해야 했다. 그때 입구역 경사로가 보였다. 경사로를 따라 궁전 마당까진 들어가기로 했다. 여자친구는 계속 "괜찮은데…"라 말했고, 나 또한 "괜찮은데"로 응수했다.

우리가 나눈 걱정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 뒤부턴 부드럽게 고민이 풀려 버렸다. 어디선가 직원이 나타나 여자친구 휠체어를 밀며 안내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 어'하면서 뒤를 따라야 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슈리성 왕궁 내부를, 게다가 오로지 계단으로 된 2층 공간을 휠체어를 타고 다닐 수 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슈리성 왕궁 내부를, 게다가 오로지 계단으로 된 2층 공간을 휠체어를 타고 다닐 수 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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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인 만큼 모든 사람은 신발을 벗고 나무를 깐 실내를 걸었다. 여자친구만은 예외. 휠체어를 탄 채로 돌았다. 통로가 넓지는 않았으나 휠체어가 움직일 정도는 됐다. 움직일 때 휠체어에 먼저 우선권을 줬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양보했다. 잘 훈련된 '양보'였다. 눈치를 주거나 볼 필요가 없었다. "실례"라는 말조차 사족이었다.

1층은 잘 구경했으나 마침내 장애물이 나타났다. 2층으로 올라가야 했으나 옛 건물인 만큼 모든 이동로는 계단이었다. 우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지금껏 안내했던 직원은 사라졌다.

'하, 결국 1층만 구경하는 거였구나. 그래도 이게 어디야. 궁궐 실내를 같이 구경한 것도 평생 처음인데.'

알고 보니 장소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안내하기 위한 직원이 배치돼 있었다. 1층부터 2층까지 올라가는 간이승강기를 조종하기 위해 할아버지 직원이 나타났다. 1층과 2층 사이 중간 계단에서 다시 2층으로 올라갈 때는 에스컬레이트형 휠체어를 이용했다. 2층에서는 따로 준비된 휠체어를 탔다. 모든 과정이 워낙 매끄럽게 이어져 기다릴 필요조차 없었다.

2층에서 밖으로 나올 때는 깔판형 경사로 승강기를 이용했다. 한 사람이 이 모든 과정을 처리했다면 무척 서둘러야 했겠지만 구역마다 한 사람씩 전담자가 있어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다. 담당자가 서두르지 않으면 이용자 또한 마음이 느긋해진다.

우리는 휠체어를 타지 않은 사람들과 똑같이 구경했다. 그들이 본 것은 우리도 보았고, 우리가 못 본 것은 그들도 보지 못했다. 처음엔 걱정이 가득했던 여자친구도 어느새 기분이 좋아졌는지 의기양양한 태도로 바뀌었다.

"걱정했는데 별것 아니네. 내년에는 오키나와 리그 할 때 맞춰서 와요. 아예 작정하고 경기장만 돌지 뭐."

우리는 오키나와에 5일을 머물렀고, 경기가 열리기 직전 그곳을 떠났다.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나섰지만, 운전대도 왼쪽, 차선도 왼쪽, 신호도 거꾸로인 곳에서 차를 몰아봤고, 2층 궁전을 휠체어로 돌아봤다. 하나씩 벽을 깨는 게 여행이라면 우리는 또 한 차례 짜릿한 여행을 했다.

자, 다음은 어떤 여행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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