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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3년 3월 26일 오전 대전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천안함용사 3주기 추모식에서 천암함 용사 영전에 분향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3년 3월 26일 오전 대전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천안함용사 3주기 추모식에서 천암함 용사 영전에 분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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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 4주기(3월 26일)를 맞아 천안함 이야기를 좀 하려 한다.

자국 영토 내에서 적국의 잠수함이 쏜 어뢰를 맞고 격침되었다고 알려진 천안함, 하지만 아직도 대답이 없는 수많은 질문들이 남아 있다. 적국의 잠수함이 자기 영토 깊숙이 들어 오도록 국군은 무엇 하고 있었으며, 어뢰 한 방에 자국의 함정을 파괴하고 유유히 돌아가는 적국의 잠수함은 왜 그냥 보냈느냐는 등의 이야기는 먼 훗날 하기로 하자. 천안함의 생존자 중에서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들이 있을 테지만, 아직은 여러 가지 점 때문에 이야기 할 수 없음을 이해한다.

어쨌든 천안함 사건과 더불어 지난 4~5년 이내에 세계적으로 비숫하지만 아주 많이 다른 세 사건이 발생한 바, 이들을 함께 이야기해 보려 한다. 2009년의 미국 뉴욕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민간 항공기, 2010년 백령도 해상에서 침몰한 천안함, 그리고 2012년 이탈리아에서 좌초한 코스타 콩코디아 호의 사건들이다.

뉴욕 허드슨강에 불시착한 비행기, 사망자 0명

2009년 1월 15일, 허드슨 강 부근의 뉴욕 날씨는 매섭게 추웠다. 화씨 20도(섭씨 영하 약 7도)에다 바람은 매서웠다. 체슬리 설렌버거가 조종하는 유에스 에어웨이즈(US Airways) 소속 1549호 항공기는 승객과 승무원을 합쳐 155명을 태우고 노스 캐롤라이나의 샬롯으로 가기 위해 뉴욕의 라과디아 공항을 이륙했다. 그러나 잠시 후 이동하던 철새(몸집이 큰 캐나다 거위) 무리가 엔진으로 진입하는 바람에 양쪽 엔진이 다 마비되어 버리고 만다.

관제탑은 설렌버거 기장에게 가까운 뉴저지의 한 공항에 착륙하라고 연락했다. 그러나 기장은 엔진이 완전히 마비된 상태로 다소 거리가 떨어진 그 공항에 다른 항공기를 피해 착륙한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고 판단, 허드슨 강에 불시착했다. 불시착 직전 기장은 기내 방송으로 "충격이 있을 것이니 대비하십시오,이 비행기는 하강합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항공기가 수면에 충돌할 때에 생기는 충격으로 몇몇이 찰과상을 입었고 한 여인이 양쪽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다른 인명피해는 없었다.

강 복판에 불시착한 즉시, 기장은 항공기 문을 열고 승객과 승무원들을 양쪽 날개로 내보냈다. 허드슨 강변의 구조 선박들이 도착하기 한참 전이었다. 탑승객을 내보낸 기장은 가라앉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 물이 무릎까지 찬 통로를 앞에서 뒤쪽 끝까지 세 번을 왕복하면서 승객이 다 대피한 것을 확인했다.

항공기는 가라앉고 있었고, 날개에 선 승객들도 무릎 혹은 허벅지까지 물이 차 올라 있었다. 하지만 차가운 물에 서 있던 승객들은 나중에 병원 치료를 받기도 했으나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 후에  뉴욕 주지사는 이를 "허드슨 강의 기적"이라 불렀다. 미 전역에서 사람들은 설렌버거 기장의 침착하고 용감한 정신을 칭송했다.

2010년 3월 26일, 한국의 백령도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아직 풀리지 않은 많은 의문들과 더불어 서서히 역사에 묻혀 가고 있다.

이 사건 발생 직후 출동한 인천 해양경찰서 소속 해안경비정에 의해 천안함에 탑승하고 있던 승조원 104명 중 58명이 구조되었으며 나머지 46명은 실종됐다. 이후 실종자 수색과 선체 인양이 진행되면서 실종자 46명 중 40명이 사망자로 확인되었으며 6명이 아직도 실종자로 남아 있다.

그런데 사망자와 실종자 가운데 장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이 참 기막히다. 함장과 장교들은 모두 구조된 58명에 포함되어 있었다. 어느 장교가 부하 사병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했다는 보도는 보지 못했다. 천안함에는 설렌버거 기장이 없었던 것이다.

천안함에서 우리가 얘기하지 않는 것

천안함 희생자들의 영결식이 열린 지난 2010년 4월 29일 오전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천안함 추모 사진전'을 찾은 한 시민이 사진과 추모 글귀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천안함 희생자들의 영결식이 열린 지난 2010년 4월 29일 오전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천안함 추모 사진전'을 찾은 한 시민이 사진과 추모 글귀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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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3일, 이탈리아 연안에서 유람선 코스타 콩코디아호가 좌초했다. 유람선의 선장 프란체스코 스케티노가 '기글리오'라고 불리우는 한 섬의 호화 주택을 승객들에게 관람시키기 위해 섬에 너무 가까이 가다가 배 밑바닥이 바위에 긁혀서 큰 구멍이 생겨 좌초된 것이다. 선장 프란체스코 스케티노는 사고 후 배로 복귀해 구조작업을 도우라는 항만당국의 지시에 불응하고 도주해 한 동안 자취를 감추었다.

이탈리아 안사 통신이 보도한 블랙박스 판독 결과에 따르면 항만 관리가 교신으로 "배 안에 승객들이 정확히 몇 명이나 남아 있는지 파악해서 우리에게 알려달라"고 하자 선장은 "탈출을 돕고는 있지만 이미 배를 떠났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라고 무책임하게 답했다. 항만 관리는 "이건 명령이다. 지금 즉시 배로 돌아가라"고 다그쳤으나 선장은 끝내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 선박에는 승객과 승조원을 포함하여 4000명 가량이 타고 있었는데, 사건 발생 한두 시간 후에 한 쪽으로 기울어진 선박에서는3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세 사건은 각기 다른 나라에서, 각기 다른 환경 하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그 항공기나 선박의 지휘, 책임을 맡은 사람들의 태도는 현저히 다르다. 허드슨 강의 항공기 기장은 영웅적이었으며, 코스타 콩코디아의 선장은 비겁했다. 천안함의 함장과 장교들은 무엇을 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이 다 구조되어 살아났으나 설렌버거 기장과 같은 책임감을 보인 사람은 없었다는 점이다.

천안함이 누구의 소행으로 파괴되었는가는 지금 이 시점에서 필자의 관심이 아니다. 그보다는 천안함이 침몰하고 있을 때, 그 배의 정말 귀하고 귀한 장병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장병들을 보호해야 할 장교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고, 그들을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던가 하는 점이다.

천안함을 생각할 때에 우리가 응당 한 번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이것을 이야기 한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태그:#천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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