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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변에 피어난 매화
 섬진강변에 피어난 매화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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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이곳이 어디야? 우리가 지금 알프스에 와있는 건가?"
"어! 정말 그러네, 매화꽃 흐드러지고 산꼭대기는 눈이 하얗게 덮여 있고."

지난 주 금요일(3월 14일) 아침,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일행들이 감탄사를 연발한다. 전날 밤 전북 남원시에서 묵고 섬진강 하구를 향해 달리는 중이었다. 시내를 벗어나자 갑자기 길가의 산 빛깔이 달라졌다. 도로는 비가 내린 듯 젖어 있었다. 그런데 산에는 눈이 내렸는지 하얀 빛깔로 변해 있었다.

우리일행이 섬진강변 화계장터 근처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일행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길가에는 벌써 하얗게 꽃을 피운 매화들이 함초롬히 물기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강 건너 백운산 봉우리들이 조금씩 안개가 걷히면서 새하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일행들의 환호성이 실감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산마을의 매화와 산 위 침엽수림에 내린 눈 풍경
 산마을의 매화와 산 위 침엽수림에 내린 눈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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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하류 쪽으로 내려가자 강 건너 광양시 다압면의 매화마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산자락이 온통 새하얀 풍경이다. 매화가 흐드러져 산 아래 자락을 뒤덮은 것이다. 산 중턱 이상의 눈에 덮인 풍경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흐드러진 매화와 눈에 살짝 덮인 산의 풍경이 조금 다른 빛깔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밤에 내린 눈이 소나무, 잣나무 등 푸른 침엽수를 감싼 빛깔이 속이 비치는 비닐을 덮어씌운 듯한 색감이었다.

아침밥을 먹기 위해 하동까지 내려갔지만 음식점들은 대부분 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물어물어 어렵사리 시장 안에 있는 시래기 해장국집에서 헛헛한 배를 채우고 섬진강 하구로 다시 달렸다. 예전부터 맛보고 싶었던 강굴(벚굴)을 맛보기 위해서였다.

구례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섬진강은 자주 보았지만 정작 섬진강 하구는 처음 길이었다. 그런데 강 하구에 이르자 모두들 입이 딱 벌어진다. 강폭이 바다처럼 넓었기 때문이다. 강의 중상류에서 보았던 풍경과는 너무 달랐다. 더구나 약간의 안개에 휩싸인 풍경이라니~

섬진강 하구 망덕포구 풍경
 섬진강 하구 망덕포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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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판에서 익히는 강굴과 멍게
 풀판에서 익히는 강굴과 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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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처럼 드넓은 섬진강 하류 풍경과 강굴 맛보기

강 하구 망덕포구에 정박해 있는 작은 배들은 대부분 강굴을 채취하는 어선들이었다. 강굴은 이곳 섬진강하구에서만 볼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어패류다. 매화꽃과 산수유꽃이 피어나는 요즘부터 벚꽃이 피어나는 3월 하순, 4월 초순까지 절정을 이루는 것이어서 '벚굴'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망덕포구 도로변에 있는 음식점 앞에는 커다란 수족관 몇 개가 온통 강굴로 채워져 있었다. 평일에 이른 아침 시간이어서인지 손님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음식점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자 곧 간단한 소스, 반찬과 함께 강굴이 나온다. 강굴은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컸다. 한 개가 어른 손만큼이나 커 보였다. 값은 6kg에 4만 원이었다.

주인이 불판 위에 강굴을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하구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강굴은 금방 익었다. 너무 많이 익히면 질겨서 맛이 떨어진다며 빨리 먹으란다. 일행들 앞에 한 개씩 내놓은 강굴의 살집도 보통 크기가 아니다. 일반 바다굴과는 그 크기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여서 두 개를 먹자 금방 질린다.

시래기 해장국으로 아침을 먹은 후여서 그런지 맛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일행 4사람 중 두 사람은 소주를 곁들여 맛있게 먹는다. 멍게 한 접시를 추가로 주문하여 함께 먹었다. 포구에서 바라보이는 섬진강하구의 아름다운 풍경에 젖어들었다가 지리산 산수유 마을로 향했다.

한창 피어나고 있는 홍매화
 한창 피어나고 있는 홍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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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 내리는 섬진강변에서
 함박눈 내리는 섬진강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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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산수유 꽃 위의 함박눈, 나이든 사람의 감성을 깨우다

매화가 흐드러진 매화마을은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매화마을을 지나 산수유 가로수가 활짝 꽃을 피운 길을 달리는데 갑자기 함박눈이 펄펄 내리기 시작한다. 일행들이 잠깐 내려 봄눈에 젖어 보자고 한다. 나이는 들었지만 남도여행 중 꽃길에서 만난 함박눈에 시들었던 감성이 되살아났으리라.

눈발은 거셌다. 섬진강 위에도 매화꽃 위에도, 그리고 샛노란 산수유 꽃 위에도 가리지 않고 눈이 내렸다. 다행이 기온이 낮지 않아 길바닥에 떨어진 눈은 금방 녹아 버렸다. 꽃과 나뭇가지에 내린 눈도 잠깐 사이에 녹아내렸다.

"이번 여행 참으로 멋진 추억이 되겠는걸, 꽃과 함께 눈을 맞다니."
"우리 평생이 이런 눈 처음인 것 같은데 사진으로 남겨야 좋은 추억으로 남겠지?"

일행들이 너도 나도 카메라와 스마트 폰을 꺼내 들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모두들 나이어린 소년이라도 된 것처럼 들뜬 표정이다. 모두들 늘그막에 맛보는 감성여행에 젖어 좋아한다.

남녘의 섬진강변 꽃길에서 함박눈을 뚫고 달리는 기분이 참으로 즐겁다. 모두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좋아한다. 함박눈은 구례가 가까워질 무렵 그쳤다. 잠깐 더 달리자 곧 산수유마을이 나타난다. 이곳도 역시 찾아온 사람들이 별로 없어 고즈넉한 풍경이다.

산수유꽃과 눈
 산수유꽃과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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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핀 산수유와 멀리 눈덮인 지리산 풍경
 활짝핀 산수유와 멀리 눈덮인 지리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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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노란 꽃들과 멀리 지리산의 새하얀 봉우리가 연출한 '알프스'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마당이 역시 축제 준비로 바쁜 모습이다. 나지막한 산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은 군데군데 노란 산수유가 피어난 풍경이 매우 정겹고 포근해 보인다. 여느 산골마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눈길을 붙잡는다. 마을 앞 산수유 단지는 온통 노란색으로 뒤덮였다. 산수유 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모습이 별천지에 온 것 같았다.

"히야! 이곳이 진짜 알프스네, 저기 저 지리산 좀 봐 새하얀 봉우리들."
"정말 그런 걸, 안개가 걷히고 있어서 지리산 하얀 봉우리들이 배경이 되어주니 정말 멋지구먼."

정말 그랬다. 섬진강변의 매화와 눈꽃 산 풍경을 알프스라 하기엔 조금 억지스러웠지만 산수유마을의 노란 꽃들과 새하얀 눈에 덮인 지리산은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풍경이었다. 마치 알프스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기에 충분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산수유마을에서 일행들
 산수유마을에서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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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첫날 둘러본 전남 신안 증도 갯벌 풍경
 여행 첫날 둘러본 전남 신안 증도 갯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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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인 13일 찾은 전남 신안의 증도는 차가운 바닷바람이 조금 을씨년스러웠다. 그래도 소금박물과과 염전을 돌아보며 남도 특유의 풍경에 젖었었다. 그러나 다음날인 14일은 포근한 날씨 속에서 꽃과 함박눈, 그리고 꽃과 눈 덮인 지리산 풍경으로 이국적인 풍치에 젖어 늘그막에 낭만을 찾은 멋진 여행이 되었다.


태그:#매화, #산수유, #지리산, #섬진강, #알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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