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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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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의 올바른 이름] 사건조차도 될 수 없는, 숫자로만 남은 역사인가

66번째 봄이다. 봉오리째 낙화하는 모양새가 마치 그 시기의 봄날 죽어간 이들을 닮았다 하여, 제주에서 동백꽃은 아픈 꽃이다. 자연의 순리대로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도 누군가의 죽음을 연상하며 모골이 송연해지는 아픈 봄, 올해로 66년째다.

두산백과는 4·3을 이렇게 설명한다. 제주4·3사건이란,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으로, 일본 패망 후 한반도를 통치한 미군정에 의한 친일세력의 재등장과 남한 단독정부수립에 남조선노동당을 중심으로 반대하는 과정에서 많은 제주도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희생자는 있는데 가해자를 서술하는 주어는 없다. 또, 이 텍스트에 따르면 4·3은 사건인데 내용은 민중항쟁이다. 이것은 단순한 모순이 아니라 4·3을 둘러싼 이 사회의 이데올로기와 인식의 극명한 표현이다. 국가와 열강, 친일세력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지만 그건 어쩌다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이다. 가해자가 국가인지, 가스통을 주로 집 밖에서 이용하시는 분들의 표현대로 빨갱이들 짓인지, 사실관계를 가리는 일은 그 자체로 지난하고 치열한 과정이었다.

가해자가 규정되고, 사실관계와 진상이 명확히 규명되어야만 4·3에 올바른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역으로, 4·3의 올바른 이름을 붙이는 것은 가해자와 그에 따른 책임을 묻는 일을 의미했다. 4·3을 사건으로 규정할 것인가 항쟁으로 규정할 것인가는 여전히 이데올로기적 논란을 수반하는 주제다.

하지만 각자의 관점에 따라 수합한 사실들의 조합을 두고 진실이라 해서는 안 된다. 역사는 관점과 해석의 문제고, 희생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한 사회가 어떤 관점을 세우는가는 그 사회의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척도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역대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 사과'한 것으로서, 가해자 규정은 공식적으로 일단락되었다. 남은 것은 진상규명이고, 수 십년 전 봄날의 비극에 올바른 관점의 '이름'을 붙이는 것 역시 우리의 과제로 남았다.

그 과정과 속내가 흔쾌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박근혜 정부가 4·3을 '국가'추념일로 지정하자는 여론에 동의한 것은 역사에 기념비적으로 기록될 일이다. 20년 정도는 거꾸로 되돌아간 줄 알았던 한국사회의 상황을 감안하면, 10여 년 전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를 번복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사실 놀라운 일이기는 했다. (물론 교학사 교과서를 통한 대리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필자는 조금 더 욕심을 내어, 4·3의 정명까지 되찾아 주는 국가추념일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데올로기적 논란거리로 외롭게 놓인 4·3은, '항쟁'은 고사하고 '사건'조차 될 수 없이 그저 숫자로만 남은 66년 전 봄날로 역사에 기록될 위기에 놓였다.

[진정성] 사과할 것인가, 오명을 쓸 것인가 대통령의 선택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과거 정부의 입장을 번복하거나 반박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계승하는 절차를 밟았다면, 공식적인 후속조치를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된다. 4·3 진상규명을 위해 과거의 정부가 설치한 정부기구와 관련 예산에 대해 의지를 보이는 것이, 정통성을 지닌 대한민국 정부의 의무다.

지난 몇 년간의 일처럼, 각종 꼼수로 4·3 관련 예산의 집행을 미루거나 과거사를 왜곡한 교과서 도입을 눈감는 것은 스스로 대한민국 헌법과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일이 아닌가.

예산의 집행을 미루거나, 이미 우리 사회가 합의하고 넘어간 역사적 관점을 부정하고 싶다면, 과거 정부의 관점과 조치에 대해 합당한 근거와 절차를 통해 사회적 합의내용을 번복해야 맞다. 그러나 아직 박근혜 정부는 4·3이 국가폭력에 의해 제주도민이 희생당한 일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번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통령 본인이 스스로 서명하여 국무회의를 통과한 4·3 국가추념일 지정 이후 처음 열리는 추념식에 참석하는 일은 당연하다.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에게 입학식날 출석을 당부하는 일은 무척 겸연쩍은 일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추념식에 참석하여 얻을 제주도민의 표 보다, 4·3을 끌어안음으로서 잃을지도 모르는 보수층의 표를 계산'하여 그 거취를 망설인다면 대통령이 속해 있는 정당을 위해 스스로 선거에 개입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 대선과정에서, 그리고 국정원의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을 통해,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하는 과정을 의혹의 시선으로 지켜보는 고통 속에 놓여 있다. 단 한 번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두 번 일어나는 것은 더더욱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4·3 추념식에 참석해, 정부의 정통성 있는 사과를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선거개입의 오명을 쓸 것인가는 대통령의 선택으로 남았다. 당연한 일을 두고 선택하라 요구해야 하는 국민은 좀 불행하지만 말이다.


태그:#4·3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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