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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해고노동자와 연대하는 이들은 있지만 정작 해고노동자 가족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많지 않다. 내 페이스북 지인들이 자발적으로 '기저귀 통장', '파스 통장', '봄봄 통장', 'T-머니 통장' 등을 만들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아내,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의 아내, 장애여성단체 등을 후원하고 있다.

소박하게 시작한 십시일반 통장이 네 개로 불어나 매달 15만 원씩 60만 원을 보내고 있다.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이들도 있고,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보고 비정기적으로 소액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이런 작고 소박한 연대의 마음이 곳곳에 희망의 꽃을 피우기에 '사람은 희망'이 되는 것이리라.

네 개의 통장 살림꾼 이강희에게 통장이 탄생하게 된 이유를 물어봤다.

"소액 후원자들이라도 노조원이나 단체에 관심을 갖는 경우는 있지만 해고자 가족처럼 무명의 개인에게 관심을 갖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사회적 파업기금 같은 경우도 쌍차, 재능 등 투쟁사업장이나 단체, 활동가의 활동비 등을 후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해고자의 아내와 유족분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힘내시라'는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통장을 만들면서 '최소한 일 년 이상 지속적인 지원을 한다', '일 년 이상 지원할 만큼 여윳돈이 통장 잔고로 남겨지면 통장을 늘려 분양하는 것'으로 원칙을 정했어요.

2012년 4월에 만든 '기저귀 통장'을 시작으로 장애여성과 비장애 여성들이 함께하는 '상상행동 장애와 여성 마실'의 자원봉사자 차비를 지원하는 'T-머니 통장'까지 총 네 군데에 매달 15만 원씩 지원하고 있어요."

해고노동자의 네 번째 아기 탄생과 함께 시작된 '기저귀 통장'

기저귀 값을 십시일반 모아 보내는 것으로 기저귀 통장이 시작됐다.
▲ 기저귀 통장 기저귀 값을 십시일반 모아 보내는 것으로 기저귀 통장이 시작됐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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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쌍용차 스물두 번째 희생자가 생겨났다. 이강희씨는 페이스북 친구 몇 명과 김밥을 싸가지고 쌍용차 평택 분향소로 지지 방문을 갔다. 비정규지회 해고자 네 명이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10살, 5살, 1살 아이의 아빠인데 그해 5월 네 번째 아기가 세상에 태어난다고 했다. 그의 수입은 90여만 원. 여섯 식구가 살기엔 턱없이 적었다.

돌아오는 길에 이강희씨와 지인들은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는 마음을 전할 길이 없을까 궁리하다 '기저귀 통장'을 만들어 십시일반으로 기저귀 값을 보태기로 했다. 그렇게 마련한 기저귀를 차고 자란 장군이의 돌 사진은 '기저귀 통장' 가족에게 기쁨을 안겨줬다.

기저귀 통장의 주인공 돌사진
▲ 장군이의 돌사진 기저귀 통장의 주인공 돌사진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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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장군이의 돌 사진입니다.
사실 6월6일이 장군이의 돌이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며칠 전에야
가족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답니다.
그럼 이제 17개월이 되었네요.
(산수하느라 손가락 다섯 개를 다 썼어요^^;;)

심장 구멍의 크기는 3.3 그대로지만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크고 있답니다.
내년 3월에 재검사를 할 예정인데
그때까지 건강한 세포들이 쑥쑥 생겨
구멍 크기를 더 많이 좁혀주길 기원합니다.

해고노동자 아내의 파스가 되고 싶어 만든 <파스 통장>

쌍용차 비정규직해고노동자 복기성의 아내 '민중이 엄마'를 만난 것은 2012년 5월 5일 와락(평택에 만들어진 심리치유센터)에서였다. 어린이 날이라 함께 간 페이스북 친구들과  페이스 페인팅 물감을 꺼내 놓고 아이들 얼굴에 손등에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기 시작했다.

유독 한 남자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뭐 그려줄까?" 몇 번이나 물어도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 우리 곁을 잠시 맴돌다 사라진 아이였다. 그 아이는 한참 놀다가 들어오니 "응응응…"하며 팔을 잡아 당겼다. 또래에 비해 언어표현이 좀 늦은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는 계속 쥐고 있던 붓을 가리켰다. 붓을 쥐어 주니 물감을 푹푹 찍어 손등에 색을 덧입히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때 "민중이, 그만 해. 이제 집에 가자!"라는 아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더 있고 싶어 하는데 엄마는 더 이상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피곤해 보였다. 그녀가 바로 복기성의 아내, 민중이의 엄마였다.

그녀의 남편 복기성은 2003년 쌍용자동차 사내하청에 입사하여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맡아 하다가 2009년 정리해고되었다. 이후 남편은 홀로 계신 어머니, 사랑하는 아내, 딸, 아들에게 생활비를 한 번도 갖다 주지 못했다. 

집 담보대출, 보험해약, 적금해지도 모자라 친지들에게 진 빚이 6000만 원이 넘었다. 지금도 그녀의 남편은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천막농성으로, 서명운동으로 평일을 보내고 주말엔 간간이 공사현장 일을 하러 간다.

복기성의 이름은 지역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어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남편은 포기할 수가 없다고 했다. 노동자가 소모품처럼 사용되다가 버려지는 세상에서 아이들의 미래는 없다는 생각에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이런 남편의 뜻을 존중하는 가장 강력한 조력자가 바로 아내였다. 남편 대신 생계를 해결하느라 허리가 아파 늘 파스를 붙여야 했다.그 파스 값이라도  담당해 보면 어떨까 싶어 만든 통장이 '파스 통장'이란다.

'그림 그리고 싶어 하는 아이를 억지로 집에 데리고 갈 수 밖에 없었던 건 아마도 바로 그녀의 아픈 허리를 빨리 누이고 싶었기 때문이라 생각됐습니다.

그녀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기저귀 통장'을 만들면서 가까워진 페이스북 친구들과 의논을 해보았습니다. 고관절 앓고 있는 딸, 언어치료가 필요한 아들, 분명히 빠듯할 생계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 어려우면 또 한 푼 보태는 남편의 오지랖 등을 따져보다가 이번엔 '파스 통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새발의 피' 일지언정 매달 적은 금액이라도 마음을 보내주면 그녀에게 조금쯤 격려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녀 허리에 착 달라붙어 통증을 조금쯤 시원하게 해주는 그런 통장이 되지 않을까요?'(이강희씨 페이스북)

최강서 열사 부인에게 전하는 마음의 온기 '봄봄 통장'

매달 네 개의 통장으로 사람과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
▲ 사랑과 희망을 담은 통장 매달 네 개의 통장으로 사람과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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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사를 증오한다. 자본 아니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심장이 터지는 것 같다. 내가 못 가진 것이 한이 된다. 민주노조사수 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죽어라고 밀어내는 한진 악질자본 박근혜가 대통령되고 5년을 또…. 못하겠다 지회로 돌아오세요. 동지들 여지껏 어떻게 지켜낸 민주노조 입니까? 꼭 돌아와서 승리해 주십시오.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
- 최강서 열사 유서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이 회사의 158억 원 손해배상 청구 및 민주노조 탄압에 항거해 지난 2012년 12월  21일 오전 8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봄봄 통장'은 최강서 열사의 부인 이선희씨에게 전하는 마음이다.

'가까스로 복직한 노동조합 간부 한 분이 또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리고…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나치게 현실적인지 몰라도 어제 저는 남은 사람들이 먼저 생각났습니다.

이제 다섯 살, 여섯 살 된 두 아들과 그 미망인에게 어떻게든 또 마음을 전하고 싶은 생각에 일회성 지원이 아닌 1년 정도라도 지속적인 지원이 가능한지 통장을 놓고 계산을 뽑아보았습니다. '봄봄 통장' 분양이 가능하겠더군요.' (이강희씨 페이스북)

그들의 또 다른 제안, 'T-머니 통장'

'T-머니 통장'은 '상상행동 장애와 여성 마실'에 후원되는 통장이다. '상상행동 장애와 여성 마실'은 장애, 비장애 여성이 함께 살 수 있는 장벽 없는 세상을 꿈꾸며  경험을 나누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이 많아 상근자가 필요하지만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운영하다 보니 교통비도 지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고 지원을 하게 됐다.

'일이 많으니 상근자가 절실하여 정부의 지원을 받을까 유혹도 받지만 그럴 경우 부작용으로 따르는 활동의 제약을 염려하여 주변인들의 지원으로만 운영하다 보니 일하는 사람들 교통비도 못 준다 한숨을 쉬더군요.

'마실'에 'T-머니 통장'을 제안했습니다. 제안을 들은 분은 빨갛게 달아오른 볼로 거듭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수락의 의미로 그동안 해온 일을 메일로 보내주셨습니다.

이번 달부터 다른 통장들과 동일하게 매달 15만 원씩 송금하겠습니다.'(이강희씨 페이스북)

통장 운영 방식과 분양 방식, 모두 자발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한다. 통장을 만들어 함께하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얼마씩 넣는 금액을 한 달에 한 번 15만 원씩 통장으로 이체해 준다. 통장의 잔고가 일 년 정도 다른 곳을 후원할 만큼 남아 있으면 의견을 모아 적절한 곳에 통장을 만들어 분양한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따뜻하게 연대하는 이들의 손길이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힘이 되는 이유는 단지 돈 때문이 아닐 것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 소외된 그들을 잊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고 함께 하는 이들이 있다는 그 사실이 더없이 따뜻한 희망이 되는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함께 마음을 나누고 싶은 분은 이강희 살림꾼 페이스북으로 연락하세요.
https://www.facebook.com/email/unreachable/#!/ganghee.lee.5



태그:#기저귀 통장, #파스 통장, #봄봄 통장, #해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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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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