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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집과 윗집, 너와 내가 아름답게 관계 맺는, 



삶이 새뜻한 헤이리를 꿈꾸고 있습니다.
 아랫집과 윗집, 너와 내가 아름답게 관계 맺는, 삶이 새뜻한 헤이리를 꿈꾸고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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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주 토요일(3월 8일) 동네 마실을 가다가 크레타 1층의 빈티지샵 GU(지유)에 들렸습니다.

이 가게 안에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빼곡했습니다.

이이들이 천국으로 느끼는 곳이 결국, 샹그릴라이리라. 오래된 것들이 그득한 빈티지샵은 아이들에게 신기한 동화속 나라입니다.
 이이들이 천국으로 느끼는 곳이 결국, 샹그릴라이리라. 오래된 것들이 그득한 빈티지샵은 아이들에게 신기한 동화속 나라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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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의 젊은 부부의 모습은 대체 요즘 대다수 젊은 부부의 모습과는 닮은 구석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꾀가 많거나 그렇다고 눈치가 빠른 것 하고도 거리가 먼, 보람씨. 이 분이 유독 허술해 보이는 것이 어눌한 한국말 때문만은 아닙니다. 삼십 여년전 한국인의 심성으로 박제(剝製)되었기 때문입니다.

보람씨는 다섯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필라델피아에 자리 잡은 부모님 밑에서 바쁠 것 없이 자란 그는 지난 30여년간 한국이 압축 성장을 하면서 겪었던 또래 세대의 성급한 심성이 자리 잡을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보람씨는 뉴욕의 명문 사립종합예술대학인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영화를 전공했습니다.

매해튼 광고회사에서의 규칙적인 생활보다는 어쩐지 필라델피아에서 아버지가 꾸리는 빈티지사업에 더 관심이 갔습니다. 버려진 것에서 쓸모를 찾아 다시 가치를 부여하는 이 빈티지사업이 마치 도시에서 금을 캐는 현대판 금광 같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버림받은 것을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었습니다.

같은 학교에서 부인을 만났습니다. 같은 대학에서 인테리어디자인을 전공한 박혜주씨입니다.

혜주씨 또한 얼굴 익스테리어(exterior)에 열중인 요즘 풍토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 사는 사람입니다. 수수한 모습이 마치 제 누님(?)의 성품 같습니다. 맨얼굴, 고무장갑이나 면장갑을 낀 모습, 먼지를 뒤집어 쓴 옷차림……. 무엇이든 숨김없이 드러냅니다. 

GU는 아이들도 어른들로 문턱 낮은 곳입니다.  이곳에서 어떻게 관계 맺고 살아야할 지에 대해 희망을 봅니다.
 GU는 아이들도 어른들로 문턱 낮은 곳입니다. 이곳에서 어떻게 관계 맺고 살아야할 지에 대해 희망을 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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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부는 애초에 아르바이트로 2006년부터 뉴욕 맨해튼 첼시의 벼룩시장인 에넥스와 헬스키친에 딜러로 참가합니다. 2006년입니다. 매력을 느낀 이 부부는 다시 2009년 필라델피아에서 첫 리테일 샵을 오픈합니다.

혜주씨의 미국생활 10년이 될 때, 이 부부가 한국으로 장소를 옮깁니다. 자리를 다시 편 곳이 헤이리의 크레타 1층입니다.

'지유'에는 미국에서 컨테이너로 들어오는 오래된, 그러나 새것이 갖지 못한 가치 즉 추억이 서린 빈티지 물건들이 가득합니다.

오래된 것에서 숨겨진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빈티지샵, GU
 오래된 것에서 숨겨진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빈티지샵, GU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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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게에는 빈티지 물건뿐이 아닙니다. 선천적으로 사람, 특히 아이들을 좋아하는 이 부부의 품성 탓에 자신의 두 아들뿐만 아니라 옆집 원투커피 정희욱 부부의 아이들, 길 가던 이웃동네 아이들까지 모두 거두어들입니다. 

이 가게안의 모든 것은 아이들 눈으로 보면 신기한 장난감 천국입니다. 이 가게 안에서 아이들은 누구나 동화나라의 성주(城主)가 됩니다. 

진실로 이 가게보다 더 멋진 아이들 놀이터를 보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어지른 장난감들은 뉴욕에서 함께 대학 다니고 매해튼에서 함께 일했던 혜주씨의 예쁜 후배가 앞치마를 두르고 치웁니다.

나는 오래된 물건들이 겹겹이 쌓인 이곳에서 헤이리가 지향해야할 문명의 가치를 채굴합니다.

#2 

그제(3월 12일) 헤이리에서 제일 작은 집을 짓고 사는 가을이 어머님으로 부터 카톡 문자를 받았습니다.

"선생님 아현동 이야기 참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마을 만들기가 시작되셨던 곳이더군요. 저도 그 시절 아현동 꽤나 드나들었답니다. 저희들 아지트가 거기에 있었거든요. 90년 찬안문 민주화운동에 대한 관점을 정리하고 그리스 철학부터 다시 보았던 시절입니다. 다음에 더 들려주세욤."

필경 작년에 아현동에 살았던 8년의 기억을 더듬어 쓴 '아현동 85번지의 추억'을 읽으신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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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아현동85번지의 추억
 이제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아현동85번지의 추억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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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첨부해주신 사진은 정말 가슴 먹먹한 아현동 골목 풍경이었습니다. 

김기찬이라는 분이 1989년에 찍은 것으로 동네아이들이 길바닥에 돗자리를 펴고 숙제를 하는 모습입니다. 행인이 오가는 길을 반 이상 차지만 아이들 옆에 배를 깔고 자기 일에 몰두한 엄마의 모습도 시골 동네에서나 가능한 풍경입니다.

가을이 어머님이 보내주신 80년대 말의 아현동 풍경.
 가을이 어머님이 보내주신 80년대 말의 아현동 풍경.
ⓒ 장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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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서울에 처음 건설된 고가도로인 아현고가도로 옆 서서울아파트 입구의 도로모습입니다. 아내가 그 아파트에 살아보는 것이 꿈이었기에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골목입니다. 그 작은 두 동짜리 아파트는 재개발지역 천막 덮은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꿈의 대상이었지요. 1995년에 삼성중공업에 의해 고층으로 재건축되어 옛 이름앞에 '삼성'을 수식으로 더 달았습니다. 

아현고가도로도 46년간의 역할을 마치고 철거에 들어갔다는 소식입니다. 이제 모든 것이 단지 몇몇의 기억세포속에만 존재하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이곳 헤이리에서 아현동에서의 삶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게 된 가을이 엄마와는 정서적으로 한결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한묵청연(翰墨淸緣). 선비들은 글을 통해 아름다운 인연의 고리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지필묵조차 가까이 할 틈이 없는 서민들은 단지 장소와 시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오달진 정의 끈이 만들어졌습니다.

가을이네 집은 얼음과 눈으로 만든 이누이트족의 이글루 같은 모양입니다. 벽돌을 쌓은 모양도 얼음조각을 쌓은 이글루의 돔 모양이지만 내부 공간도 이글루처럼 통합된 공간구조입니다. 이층의 돔 속 모습도 마치 거미줄 선처럼 최소한으로만 공간을 구획해서 함께 사는 가족을 배려했을 뿐입니다.

헤이리에서 가장 작은, 가을이네의 이글루집
 헤이리에서 가장 작은, 가을이네의 이글루집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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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그 주인의 생각을 담기마련입니다. 가을이네집을 방문할 때마다 가을이 아빠와 엄마가 '더불어'사는 관계형 삶에 얼마나 큰 가치를 두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가을이와 얘기를 나누어보아도 그 부모의 철학이 내림되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습니다.

각기 다른 시대를 산 사람과 같은 장소를 공유하는 것, 혹은 다른 곳에서 같은 시대를 사는 시간을 공유하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각별한 인연이지만 가을이 어머님과 저는 이곳 헤이리에서 장소와 시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으니 이곳, 이시간의 티끌하나도 소중하다는 것을 가을이 어머님의 카톡메시지로 새삼 절실해집니다.

가을이 어머님은 다양한 활동으로 커뮤니티를 풍요롭게 합니다.
 가을이 어머님은 다양한 활동으로 커뮤니티를 풍요롭게 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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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의 지금 모습은 GU에서 성의 주인 노릇을 했던 시간을 산 그 아이들에게, 이미 이곳에서 자라 헤이리를 떠난 나의 아들에게는 언젠가 가을이 어머님과 저의 머릿속에 담긴 아현동의 추억으로 되살아 날 것입니다.  

나는 헤이리에서 'there and then'이 아니라 'here and now'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더 많은 것을 희생해서라도 '비싼 집'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들들에게 아름답게 기억될 삶의 풍경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그 헤이리에서의 시간이 희망이고 용기였다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런 삶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정녕…….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헤이리, #가을이네, #GU, #지유, #장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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