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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민원비서관의 '면접'도 큰 문제이나, 그것을 대처하는 청와대의 대응방식은 '엄정'한 선거중립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경향신문 3월 8일자 보도
▲ '엄정'은 어디로 가고... 청와대 민원비서관의 '면접'도 큰 문제이나, 그것을 대처하는 청와대의 대응방식은 '엄정'한 선거중립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경향신문 3월 8일자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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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에서도 개입이 있을지 모른다."
- 3월 7일 <오마이뉴스> 인터뷰 중

문재인 의원의 말은 짧았지만 단호했다. 정부의 선거중립 의지에 일정 부분 불신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지난 달 4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 정부에서 선거중립 훼손사례가 발생할 시에는 절대 용납하지 않고 엄단할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문 의원에게는 진정성 있게 다가가지 못한 듯싶다.

'용서치 않고 엄단할 것'... 그런데 청와대 비서관은?

청와대 임종훈 민원비서관.
 청와대 임종훈 민원비서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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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선자의 인수위 행정실장을 역임하고 청와대 민원비서관(1급)으로 요직에 임명된 임종훈씨가 지난 8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지난 달 22일 경기도 수원 지역에서 새누리당 간판으로 선거에 출마하려는 도의원, 시의원 후보자 면접을 봤다. 이 같은 사실은 '면접 대상자'로 참석했던 김아무개씨가 당원들에게 보낸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알려졌다. 임 비서관은 "조언을 해줬을 뿐"이라고 해명하고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청와대 비서관의 지위는 1급이라는 급수로만 해석할 수 없다. 언론에서 정권의 파워 엘리트로 구분하는 요직은 대략 90여 곳인데 그 중 청와대 비서관 이상이 50여 명이다. 나머지는 장, 차관 등이다. 청와대 비서관의 급수는 1~2급에 해당하지만 장, 차관과 같은 수준의 영향력을 가진다. 그 중에서도 민정수석실이라는 핵심 조직의 비서관인 임 비서관은 박 대통령이 '위반 시에는 절대 용납하지 않고 엄단할 것'이라고 공언한 지 얼마 후에 여당 출마 대상자를 상대로 면접을 본 것이다.

이날 행사에 대해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만난 것 자체도 커다란 선거 개입이지만, 누가 먼저 만나자고 한 것인지 밝혀야 한다.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지, 그리고 참석한 15명과 식사한 식대는 누가, 무슨 돈으로 결제했는지도 확인해야 할 사항이다. 면접 대상자 중 누군가 지불했다면 청와대 고위공직자가 내부 윤리규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혹시 임 비서관이 지불했는지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

위 궁금한 내용은, 그러나 박 대통령의 선거중립 의지가 확고하다면 청와대가 먼저 공개해야 하는 내용이 아닌가. 의지가 확고하다면 이번 사건은 오히려 박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철저하게 조사함으로써 중립의지를 보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처벌할 일이 발생했다면 의법처리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돌아가는 흐름이 묘하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9일 "임 비서관이 선거 개입 의혹이 불거진 것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사표를 제출했으며, 사표는 주말이 지나면 수리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월요일이면 주말이 지났기 때문에 그의 사표는 수리됐을 것이다.

사표가 수리되면 그는 청와대에서 이미 떠난 사람이 된다. 임 비서관 스스로 밝힐 리 없기에, 그 날의 진실은 묻힐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절대 용납하지 않고 엄단할 것'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강경한 선거중립 발언의 결과는 어디에서 확인할 수 있는가. 임 비서관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을 보노라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청와대 현직 비서관이 여당 출마자를 면접 본 해괴한 일이 과거에도 또 있었는가.

정적을 대하는 태도, 채동욱은 보름 동안 사표수리 않고 진상규명

'혼외아들' 의혹을 받고 있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지난 2013년 9월 13일 전격 사의를 표명한 뒤 서초동 대검찰청사를 떠나고 있다.
 '혼외아들' 의혹을 받고 있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지난 2013년 9월 13일 전격 사의를 표명한 뒤 서초동 대검찰청사를 떠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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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9월 13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모든 언론이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에 집중할 때였다. 채 전 총장은 이 날 사의를 표명했다. 임 비서관과 같이 주말이 지나면 수리됐을까? 설령 혼외자가 밝혀지더라도 그것이 공직선거법 위반 등 실정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기에 주말 이전에라도 수리됐어야 이치에 맞을 듯 싶은데, 박근혜 대통령은 무려 15일 동안 수리하지 않았다. 한 나라의 검찰총장 자리가 15일 동안 '유고'된 상태였던 것이다.

채 전 총장은 사의를 표명하고 검찰총장 집무실을 떠난 상태였지만 박 대통령은 "진실 규명이 우선"이라는 입장으로 수리하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평소 공직자 도덕성 논란이 일면 가장 먼저 진상 규명을 주장하던 민주당이 이번에는 진실 규명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며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 다음은 익히 알려진 그대로다. 채 전 총장이 검찰을 떠난 지 반 년이 지나 가지만 검찰은 여전히 채 전 총장 혼외자 의혹을 받고 있는 아이 엄마인 임아무개 여인을 수사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2002년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임아무개 여인의 양수검사 동의서에 보호자 '채동욱'으로 자필 서명한 내용을 밝혀냈다고 언론에서 보도하고 있지만, 검찰에서는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상태다. 

선거는 아직 멀었는데 언론이 너무 일찍 터트렸던 것일까. 지금까지 나왔던 채 전 총장과 임 여인과의 의혹 중 가장 강력해 보이는 '양수검사 동의서 자필서명'에 대한 새누리당의 미지근한 공세는 예상 밖이다. 지방선거가 본격화되면 활용 정도가 정해질 것인지, 다가오는 지방선거 관전 포인트 중 하나로 판단된다.

임종훈과 채동욱, 두 사람의 '사의'를 대하는 이 정권의 태도는 명확하다. 청와대 비서관이라는 고위공직자 신분을 활용해 실정법을 위반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를 받고 있는 임 비서관은 '엄단'에 처해지지 않고 있다. 주말을 활용해 사표가 수리된다고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을 뿐이다. 반면 검찰총장 신분이긴 하나 개인 의혹인 '혼외자 의혹'을 받고 채동욱 검찰총장은 '진상 규명' 명분으로 15일 동안 사표가 수리되지 않았고 그 기간 동안 그는 언론과 호사가들의 도마 위에 올려져야 했다.

그리고 이유있게 들리는 '문재인의 우려'

'친박' 서병수 의원은 부산시장에 출마하면서 "부산은 중요한 곳이니, 하셔야죠"라는 박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누가 듣더라도 지지발언으로 해석된다. 또 다른 친박 유정복 전 장관 역시 인천시장에 출마하면서 "잘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박 대통령의 발언을 공개해 논란을 일으켰다. 역시 명백한 지지발언으로 해석됐고, 야권에서는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여부를 선관위에 문의하기도 했다.

2월 4일 '엄정 중립, 위반 시 엄단' 방침을 밝힌 박 대통령은 위에 언급한 '친박'들을 대거 선거에 전진배치 시키면서 '중립 의지 훼손' 시비를 스스로 불렀다. 같은 시기에 대통령의 수족인 청와대 비서관까지 나서서 여당 출마 대상자들의 '면접'을 보는 상황에 이르렀다.

'친박'의 전진배치와 중진 차출에서는 새누리당의 결기가 느껴진다. '지난 대선의 연장전'으로 규정하며 지방선거에서 압승해 '대선불복'에 쐐기를 박겠다고 새누리당은 벼르고 있다. 정몽준, 남경필 의원 등 현역 의원을 대거 차출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7월 재보궐선거'에 따라서는 과반의석도 아슬아슬할 수도 있는데, 눈 앞의 선거에 '올인'하는 분위기다.

"이번에 드러난 국가기관 대선개입의 폭이나 양상을 보면, 대선뿐 아니라 거의 모든 선거 때마다 개입이 있었다"고 문재인 의원은 밝혔다. 이어 그는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도 개입이 있을지 모른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청와대와 여당에서는 그의 발언에 격분했겠지만 일부 '친박'과 임 비서관의 행동을 보면 그의 우려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어 보인다.

이번처럼 여야가 뜨겁게 맞붙었던 지방선거가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팽팽함이 느껴지는 지방선거 초반이다. 사활을 건 여야의 대결, 선거의 공정성 여부는 선거결과와 함께 지켜보아야 할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태그:#임종훈, #채동욱,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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