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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민이던 솔로몬 노섭이라는 흑인남성은 1841년 워싱턴에서 납치된다. 남부의 목화농장에서 플랫이라는 이름의 노예로 12년이나 살게 된다.
▲ <노예12년> 책표지 뉴욕시민이던 솔로몬 노섭이라는 흑인남성은 1841년 워싱턴에서 납치된다. 남부의 목화농장에서 플랫이라는 이름의 노예로 12년이나 살게 된다.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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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스 주인의 노예로 10년을 살았던 나는 그의 노예 가운데 사치스러운 생활에 따른 통풍으로 고생할 노예는 한 명도 없다고 장담한다. 엡스의 돼지들은 <껍질 벗긴>옥수수를 먹었다 – (그러나 인간인) 그의 <깜둥이>들에게는 옥수수가 이삭 째 던져졌다. 그는 껍질을 벗겨 물에 불린 옥수수를 먹이면 돼지들이 빨리 살찔 것이라 생각했다 – 그러나 노예들에게도 똑같이 한다면 너무 살이 올라 일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이었다. 약삭빠르고 계산에 빈틈이 없는 엡스는 술에 취하든 제정신이든 간에 자기 동물들을 관리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뉴욕 시민이던 솔로몬 노섭이라는 한 흑인이 1841년 어느 날, (흑인)인신매매범들에게 납치되어 노예상인에 팔린다. 두어 번의 농장주들을 거쳐 엡스라는 잔인하고 항상 술에 절어 있으며, 광기에 젖은 체 살아가는 주인을 위해 십 년을 노예로 생활한 노섭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노예 12년, 2014년 2월 22일, 열린책들>의 한 대목이다. 제목은 그가 납치되어 노예로 생활한 기간을 의미한다. 그는 기적적으로 1853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가위에 눌린다. 노예라는 지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흑인 노예의 기원, 특히 북아메리카에서는 500여 년전 정확히는 1492년 콜럼버스의 서인도제도 발견이라는 사건과 관련있다. 흑인 노예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미국민중사>의 저자 하워드 진의 설명에 따르면, 아메리카 대륙에는 콜럼버스가 도착할 당시 인디언이 7500만 명이 살고 있었다고 전한다. 북아메리카에만 2500만 명이 수백 개의 부족을 이루고 있었으며, 옥수수를 비롯해 땅콩, 초콜릿, 담배, 고무뿐 아니라 여러 종류의 채소와 과일을 독창적으로 개발하여 지극히 인간적인 문명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디언들은 백인들의 노예가 될 수 없었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자신들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권리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독립정신으로 무장된 이들은 백인들에 의해 희생당한다. 따라서 미대륙을 위한 노동력(노예)의 수요는 아프리카의 흑인들의 공급으로 충족된다. 혹독한 환경의 노예선에 몇 달씩 시달리며 죽음의 문턱을 간신히 넘어선 흑인들은 아메리카에서의 노예생활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저항은 곧 죽음을 의미했으므로.

'1637년 아메리카 최초의 노예선 디자이어 호가 마블헤드를 출항했는데 배의 짐칸은 족쇄와 빗장이 달린 가로 60센티미터 세로 180센티미터의 선반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1800년에 이르면 1500만 명의 흑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노예로 수송됐는데, 이 숫자는 아프리카에서 원래 잡은 수의 3분의 1정도였다.' <미국민중사1> 본문 인용

노예들이 인간 짐짝처럼 빼곡하게 실린 채 아메리카로 향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노예제 반대론자였던 영국의 윌리엄 윌버포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 그림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5천만 명이 아프리카대륙을 빠져나갔다.
▲ 노예선의 세부 그림(출처 미국민중사) 노예들이 인간 짐짝처럼 빼곡하게 실린 채 아메리카로 향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노예제 반대론자였던 영국의 윌리엄 윌버포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 그림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5천만 명이 아프리카대륙을 빠져나갔다.
ⓒ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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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이유로 아메리카로의 노예수입은 1808년 금지된다. <노예 12년>의 저자이자 책 속 주인공 솔로몬 노섭이 사기꾼들에게 속아 노예로 전락한 그 순간은 미국이 노예수입을 법으로 금지한 지 30년도 더 지났을 때다. 그리고 북부는 상공업의 발달로 노예제도가 폐지된 덕분에 상당수의 흑인이 자유인이 된데다가, 노섭이 노예생활을 하던 당시엔 미국은 전쟁을 통해 아리조나와 텍사스를 멕시코로부터 빼앗게 되면서, 더욱 광활해진 남부지역은 목화와 사탕수수농사를 위해 흑인 노예의 공급이 절대적으로 달렸을 것이다.

그러니 당시의 지각 없고 파렴치한 협잡꾼들의 눈에는 어떤 흑인이든 건장하기만 하면 높은 값에 팔아 치울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개척시대의 허술한 법망을 뚫고 흑인들을 노리는 범죄가 기승을 부렸던 모양이다. 참혹한 매질 끝에 노예로 신분이 세탁된 흑인들에게 인권은 없다. 이름과 출신이 바뀐 이들은 남녀가 한 공간에서 벗은 체 몸을 닦고, 옷이 갈아 입혀진 체 경매장으로 진열된다. 구매를 희망하는 예비 주인들은 흑인들의 몸 구석구석을 검사하고 입을 벌려 구강상태까지 살핀다. 소나 말을 매입하는 과정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

영화에서 패치가 엡스의 채찍에 맞아 등의 살점이 떨어지거나 피와 함께 벌겋게 드러나도록 상처입은 속살은 위 사진 속 노예처럼 흔적을 남기게 되는데 이렇게 등에 상처가 많은 노예는 반항심이 있을 거란 이유로 잘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 목화농장의 노예(출처 미국민중사) 영화에서 패치가 엡스의 채찍에 맞아 등의 살점이 떨어지거나 피와 함께 벌겋게 드러나도록 상처입은 속살은 위 사진 속 노예처럼 흔적을 남기게 되는데 이렇게 등에 상처가 많은 노예는 반항심이 있을 거란 이유로 잘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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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노섭이 10년간 주인으로 모신(?) 엡스라는 인간은 '패치'라는 여자 노예를 노동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적으로도 유린한다. 그의 아내는 패치에게 질투를 느껴 얼굴에 장작을 던지거나 깨진 병을 던지는 등 형용하기 어렵도록 잔인한 테러를 가한다. 패치는 육체적으로도 처절하게 고통을 겪지만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진 나머지 절망한다. 노예들을 소유한 주인 엡스 가족이라고 해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섭의 독백을 들어 보자.

'이런 잔인무도한 행동이 노예 소유주들의 가정에 미치는 효과는 분명하다. 엡스의 큰아들은 열 살에서 열두 살 정도의 영리한 소년이었다. 때로는 그 소년이, 이를테면 인자한 엉클 에이브럼을 호되게 혼내는 장면을 보면 가슴이 아팠다. 어린 소년은 그 노인을 혼내면서, 어린 마음에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특정 횟수의 채찍질을 선언하고는, 매우 진지하고 신중하게 채찍질을 가했다….중략….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다> 그들 사이에서 인도적이고 관대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조차, 이 극악무도한 체제의 영향으로 필연적으로 무감하고 잔인해진다.'

노예의 삶을 사는 동안 솔로몬 노섭은 죽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어쩌면 죽는 것 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할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주인 부부에게 시달리던 패치가 솔로몬에게 돈을 내밀며 자신을 늪으로 끌고가 죽여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나, 책 속에서 엡스의 아내가 솔로몬에게 패치를 죽이라고 명령하는 장면은, 흑인과 백인 모두 서로에게 속박된 노예적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원작에서는 플랫(솔로몬노섭)에게 엡스의 부인이 패치를 살해하라고 명령한다. 물론 플랫은 둘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패치 원작에서는 플랫(솔로몬노섭)에게 엡스의 부인이 패치를 살해하라고 명령한다. 물론 플랫은 둘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 판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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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도 인디언과 흑인들의 역사만큼 비극적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21세기의 한복판에서 갑자기 백 오십 년 전에 납치 됐다가 12년만에 풀려난 한 흑인의 이야기가 제법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뭘까 생각해 보게 된다. 설마 살점을 뜯어내는 채찍이나 블러드하운드의 날카로운 이빨의 표적이 되지 않으려면 순한 양처럼 주인의 말에 복종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노예의 짐승만도 못한 속박된 삶을 통해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우려는 것일테다.

<노예 12년>이 영화나 책으로 '잘 팔린다'는 사실은 또 다른 방향으로 해석될 수 도 있을 것 같다. 보는 것이나 읽는 것이 하나도 즐겁지 않고 고통스럽기만 한데,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굳이 이 작품을 보고 읽는다는 것은 작품이 지금 우리 삶을 반추하게 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많은 수의 사람들, 혹시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나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중고등학생들, 저소득과 빈곤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극빈자들이, 21세기 형 노예로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다면, (물론,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래서 그들이 솔로몬 노섭의 다큐멘타리에 등장하는 패치처럼 인생의 시소가 희망보다는 절망쪽으로 기울어 있다고 믿고 있다면, 이 작품의 주인공, 솔로몬 노섭의 의지와 인내 그리고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는 실천을 통해 마음을 고쳐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노예 12년 - 19세기 한 자유인의 기구한 노예생활과 탈출기

솔로몬 노섭 지음, 데이비드 윌슨 엮음, 박우정 옮김, 글항아리(2014)


태그:#솔로몬노섭, #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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