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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 14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법무부·안전행정부·식품의약품안전처·원자력안전위원회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정홍원 국무총리(가운데), 황교안 법무부 장관(왼쪽),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오른쪽) 등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 14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법무부·안전행정부·식품의약품안전처·원자력안전위원회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정홍원 국무총리(가운데), 황교안 법무부 장관(왼쪽),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오른쪽) 등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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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인천시장 선거 출마를 앞둔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에게 했다는 '격려' 발언이 '선거법 위반' 논란으로 번졌다. 5일 유 장관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그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천이 국가적으로 중요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정말 능력있는 사람이 (당선)됐으면 하는 게 (국민의) 바람일 것이다. 결단했으면 잘 되기를 바란다."

친박 핵심인사가 인천시장에 나간다고 하니 '잘 해서 당선되라'고 격려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지자 민주당은 박 대통령의 발언이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며 중앙선관위에 선거법 위반 여부를 공식 질의했다. 이에 청와대는 "그건 정말 덕담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민주당은 호기를 잡은 듯 쟁점화를 시도하고 있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공세의 고삐를 조이고 있는 민주당을 보면서 기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04년'을 떠올렸다. 

선관위도 헌재도 인정한 노 대통령의 '선거개입'

지난 2004년은 한국정치사에서 아주 중요한 해였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고, 그 '탄핵풍'으로 열린우리당은 과반수 의석(152석)을 차지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지속됐던 '여소야대'가 처음으로 '여대야소'로 뒤집어진 것이다. 이렇게 중요했던 정치사건들의 시발점은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개입 논란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개입 논란은 지난 2003년 12월 19일 노사모가 주도한 '리멤버 1219' 행사에서부터 시작됐다. 노 대통령의 팬클럽인 노사모는 한 달 전 창당한 열린우리당의 핵심세력이었다. 그런 노사모에게 노 대통령은 "시민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노사모가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17대 총선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당시 명계남씨는 "노 대통령을 믿는다면 끝까지 그의 지원군, 홍위병이 되어야 한다"라며 "내년 총선에 각 지역구 경선에 출마해 유권자를 설득해야 한다"라고 화답했다.

노 대통령은 며칠 뒤인 12월 24일 측근들과 회동한 자리에서도 "민주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을 돕는다"라고 말했다. 이에 중앙선거관리위는 '선거의 자유와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노 대통령에게 '공명선거 협조'를 요청했다. 이어 12월 31일에는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들과 함께 한 오찬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열린우리당에 입당한다면 대통령이 중립을 지킬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이고 싶다."

이는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당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활동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의지가 표현된 것으로 읽혔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총선 개입 의지가 확연하게 드러났다"고 반발했다.

노 대통령의 선거개입 논란은 17대 총선을 앞둔 2004년에 더욱 커졌다. 노 대통령은 1월 14일 연두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을 '반개혁세력'으로 규정하면서 "개혁을 지지한 사람과 개혁이 불안해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서 갈라졌고, 대선 때 날 지지한 사람들이 열린우리당을 하고 있어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측근이나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만 보였던 '속내'를 국민 앞에서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가장 노골적인 선거개입 발언은 2월 24일 전국에 생중계됐던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나왔다. 노 대통령은 "앞으로 4년 제대로 하게 해줄 것인지 못 견뎌서 내려오게 할 것인지 국민이 (총선에서) 분명하게 해줄 것이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이 무얼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 하고 싶다."

당시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 등 야당의 처지에서 본다면 노 대통령의 발언은 노골적인 선거개입이었다. 결국 중앙선거관리위가 3월 3일 노 대통령에게 '선거 중립 의무 준수'를 공식 요청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공직선거법 제9조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어겼다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이러한 결정을 "현직 대통령이 직무상 위법 행위로 선관위의 경고를 받은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노 대통령의 잇단 총선 개입 발언과 선거법 위반 행위에 대한 강력한 경고"라고 분석했다. (<한국일보> 2004년 3월 4일자)

10년 전 '대통령에게 언론자유 있다'고 해놓고서...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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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반복된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개입 논란은 결국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이어졌다(2004년 3월). 물론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을 기각하긴 했지만,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 등은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고 결정했다(2004년 5월). 헌재는 "대통령은 반복해 특정정당에 대한 자신의 지지를 적극적으로 표명, 나아가 국민들에게 직접 정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고 볼 수 있어 선거에서의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중앙선관위에서 판단한 것처럼 공직선거법 제9조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대통령의 언론자유'와 '야당의 말꼬리 잡기' 등을 내세우며 선거개입을 인정하지 않았다. 유시민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것을 비난하는 건 대통령의 언론자유를 막자는 것이다"며 미국과 프랑스, 독일의 경우를 들었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은 의원들의 모금행사에 불려가는 인기스타이다. 프랑스의 경우 미테랑 대통령 시절 사회당에 유리한 발언을 했다고 문제가 됐던 적이 없다. 독일의 경우 헬무트 콜 전 총리가 기민당을 지원하면서 전화통으로 조직을 관리했지만 문제된 적이 없었다." (<세계일보>, 2004년 1월 13일자)

이병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은 중앙선관위에서 '선거법 위반'이라고 결정한 직후 "현행 선거법은 관권선거시대의 유물이다"며 "선진 민주사회에서 광범위한 정치적 활동이 보장된 대통령의 정치적 의사표시를 선거법 위반으로 재단할 수 없다"라고 반박했다(2004년 3월 4일). 노 대통령도 "대통령은 정치인인데 어디에 나가서 누구를 지지하든, 발언하든 왜 시비를 거느냐"라며 "(대통령에게서) 특권을 다 빼앗아 갔으면 정당한 권리는 돌려줘야 한다"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2004년 3월 <한겨레21>)

현재 새누리당은 '지방선거 총동원체제'다. 장관에서부터 공기업 사장까지 차출해야 할 정도로 이번 지방선거는 아주 중요하다. 통합신당의 힘이 발휘돼 지방선거에 크게 패한다면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은 조기에 진행될 수 있다. 박 대통령도 이러한 사정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친박 핵심인사인 유 장관의 차출에 동의했을 것이고, 그의 결정을 격려한 것이다.

물론 선거관리 주무장관이 지방선거를 석달 앞두고 사퇴하고 선거에 출마한 것은 명백하게 부적절하다. 특히 "공무원의 선거개입을 엄단하겠다"고 천명한 박 대통령이 그의 선거출마에 동의하고 격려함으로써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을 자초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박 대통령이 유 장관에게 했다는 발언은 노 대통령의 선거개입 논란 발언들에 비하면 그 강도가 결코 세지 않다. 박 대통령의 발언에 문제점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노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새누리당을 지지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니지 않나?

그런데도 민주당은 박 대통령의 발언을 '선거개입' 논란으로 키우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언론자유'나 '야당의 말꼬리 잡기' 등 과거에 야당의 선거개입 공세에 방어했던 주장들을 차분하게 성찰한다면 그렇게까지 공세를 펼 만한 발언인지 의문이다. 

여당에서 야당이 됐다고 과거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가만 보면 민주당은 지나치게 '자주' 그리고 '잘' 그들의 과거를 잊는 것 같다.


태그:#노무현, #선거개입, #박근혜, #유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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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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