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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노입구(脫露入歐 – 일본의 후키자와 유키치가 주장했던 '脫亞入歐(탈아입구-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사회를 지향한다)'를 차용, '러시아를 벗어나 서구사회를 지향한다'는 의미)를 목표로 일어난 '유로마이단(Euromaidan)'의 시위가 친러 성향의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Viktor Yanukovych)를 결국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매스컴의 분석은 다양한지만 주된 화두는 '경제', '문화' 및 '국제정치의 마초남, 푸틴'으로 압축된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경제적 분석은 흑해 및 우크라이나에 매장되어 있는 자원을 둘러싼 서방 – 러시아간의 힘겨루기에 주목한다. 다른 기사들은 민족 및 종교의 상이성을 들어 사태의 원인을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국제정치계의 문제적 인물에 초점을 맞춘 분석기사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기존의 분석들만으로 우크라이나 사태를 완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앞서 제기된 분석과는 달리 거시적 관점으로 이번 사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국제이슈를 분석하는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여전히 유효한 방법이 바로 '지정학(Geopolitics)'을 통한 분석이다. 그 중에서도 과거 미국 – 소련 간의 냉전시절부터 활용된 '림랜드(Rimland)' 이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트랜드 이론은 변화하는 세계환경을 설명하지 못해 스파이크맨이 주장한 림랜드 이론에 자리를 내주었다.
▲ '세계의 섬', 하트랜드를 둘러싼 림랜드 하트랜드 이론은 변화하는 세계환경을 설명하지 못해 스파이크맨이 주장한 림랜드 이론에 자리를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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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랜드 이론을 소개하기에 앞서 하트랜드(Heartland) 이론에 대한 간단한 이해가 필요하다. '지정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할포드 맥킨더(Halford Mackinder)는 세계패권을 획득하기 위한 결정적인 공간으로서 유라시아에 주목했다. 맥킨더는 이 지역을 차지한 국가가 세계패권을 주무를 수 있다고 보았다.

1904년 발표한 <역사의 지리적 추측>이라는 논문을 통해 맥킨더는 '추축지대(Pivot area)'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다. 추축지대란 시베리아 전체와 중앙아시아 지역 대부분을 포함하는 공간 개념이다. 이후 1919년 발표한 서적에서 하트랜드라는 개념을 소개하면서 지리적 범위를 흑해 및 발트해를 포함한 동유럽까지 확장한다. 맥킨더는 "동부유럽을 지배하는 자가 심장지역을 지배하고, 심장지역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섬(World-Island)를 지배하며, 세계섬을 지배하는 자가 전 세계를 지배한다"고 보았다.

지정학의 출발은 유럽(독일, 영국)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지만, 이후 발전은 세계패권국가로 등장한 미국에서 활발히 이루어진다. 그 중에서도 미국 봉쇄정책(Containment)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파이크맨(N.J. Spykman)은 기존의 하트랜드 이론이 더 이상 국제정치 현실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며 림랜드 이론을 제시한다.

스파이크맨은 세계패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유라시아가 아닌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접점에 해당하는 공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전에 맥킨더가 언급한 '내주 또는 연변의 초승달 지대(inner or marginal crescent)'를 스파이크맨은 '림랜드'로 고쳐 불렀다.

스파이크맨의 림랜드 이론에 따르면 미국이 세계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륙에서 해양으로 진출하려는 No.2국가(당시는 소비에트 연방)를 봉쇄해야만 한다. 스파이크맨의 이론에 영향을 받아 탄생한 미국의 전통적 외교정책인 봉쇄정책은 소련의 붕괴를 이끌어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주요한 미국의 외교전술 중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유럽진입을 갈망하는 민족주의자들의 봉기만으로 보기 어렵다. 그리고 기존의 경제, 문화, 개인단위의 분석만으로는 우크라이나라는 공간을 둘러싼 큰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다.

맥킨더의 '하트랜드'이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하트랜드 지역에 포함된다(하지만 1904년에 발표된 추축지대 개념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하트랜드 지역에 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후 미국 봉쇄정책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림랜드 이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림랜드 지역이다.

우크라이나 남쪽, 흑해를 향해 돌출한 크림반도가 갖는 지리적 요건을 고려할 때 우크라이나는 림랜드에 가깝다. 크림반도는 흑해를 지나 유럽의 바다 '지중해'로 이어지는 중요한 해양로의 시발점이다. 러시아는 이곳에 세바스토폴 해군기지를 두고 있다. 최근 개발 중인 북극항로와 더불어 해양진출을 모색 중인 대륙세력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전략적 교두보이다.

반면 No.2국가(중국 혹은 러시아 같은 지역 내 패권국가)의 해양진출을 봉쇄해야 하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에게 우크라이나는 적의 1차 공격을 방어해야 하는 최전방에 해당한다.

유럽이냐, 러시아냐의 문제같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미국과 중국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양국간의 미세한 충돌이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동아시아부터 격랑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신흥패권국vs서방국가 유럽이냐, 러시아냐의 문제같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미국과 중국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양국간의 미세한 충돌이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동아시아부터 격랑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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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랜드 이론으로 바라본 우크라이나 사태의 전개는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동아시아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구체적으로 중국 - 미국 간의 패권다툼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TV조선의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중국의 입장보도는 큰 흐름을 집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지난해 말 중국은 우크라이나에 핵우산 제공을 약속했다. 더불어 군사력 강화를 꾀하는 중국의 입장에서 우크라이나의 과거 소련제 무기가 주는 매력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 을 외교정책 기조로 삼은 오바마 정부는 대륙세력 중국의 해양진출을 문 앞에서부터 철저하게 틀어막고 있다.  일부지역에서 유화정책을 시도하고 있지만 미국외교정책의 중심은 여전히 '봉쇄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서방 -신흥패권국으로 나뉘어 갈등을 빗는다면 안보패러독스에 빠진 동아시아에 안보불안을 증가시킬 것이다. 우크라이나라는 림랜드에서 발생한 갈등의 불씨가 또 다른 림랜드 지역인 동아시아로 확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마침 아베가 시작한 군국주의 도미노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여건이 무르익은 상태이다.

2011년부터 시작된 시리아 내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중재는 답보상태에 빠져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반군과 정부군간의 평화협상은 별 성과 없이 끝났고 이후 회담 재개도 불투명한 상태이다. 시리아 내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극도의 피로감 표출이었다. 더 이상 대화 및 제도를 통한 자유주의적 처방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국제사회가 견딜 수 있는 인내의 임계점에 다다른 모습이다.

이번 사태를 분수령으로 해서 자유주의 해법을 포기하고 현실주의 외교정책으로 돌아서게 된다면 갈등은 다른 림랜드 지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갈 수 있다. 지정학적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접점에 위치한 '림랜드' 동아시아의 현실주의 회귀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남의 집 일만으로 여겨지지 않게 만든다.


태그:#우크라이나, #지정학, #림랜드, #하트랜드,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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