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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정부가 환자-의사 간 원격의료 허용을 추진하겠다고 했을 때 대한의사협회는 반대입장을 표명하며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공언하였습니다. 마침내 3월 의사파업이 현실화 된 지금까지 원격의료에 대한 정부와 의료계·시민사회단체들의 주장은 상반됩니다. 보건복지부는 도서, 벽지에 사는 환자들의 의료 접근성 향상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반면,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대형 병원과 IT 기업들의 돈벌이에 불과하다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원격의료가 과연 대면진료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전국 산간벽지·오지, 낙도 특수지 등지의 보건소와 보건지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중보건의들의 생생한 현장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답을 찾아가는 릴레이 기고입니다. [편집자말]
저는 2012년 2월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교정시설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3년차 새내기 의사입니다. 지난 2년간 진료 경험이 조금이나마 쌓이고 경험 많은 선배 의사 선생님들과 함께 근무하고 있어 지금은 부담감이 많이 줄어든 상황이지만, 처음 1년은 의학적 판단을 내리고 환자를 진료하는 데 상당한 부담감과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일은 환자를 문진하고 신체 진찰을 통해 혹시라도 있을 위험을 미리 감지해내는 것이었습니다. 의과대학 시절 교수님들께서는 혈액이나 영상 검사에 의존하지 말고 문진과 신체 진찰을 열심히 하라고 누차 강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 나름의 기준을 정하고 진료를 해온 지 2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정부가 원격의료를 입법화하고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하니, 나중에 진료를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많은 걱정이 됩니다. 물론 보건복지부는 가벼운 경증·만성 질환만 원격의료 대상으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가벼운 경증·만성 질환으로 의원을 찾았다가 중한 질병을 진단받은 경우는 없을까요?

짧은 경험이지만 진료를 하며 느낀 점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소화 안 되고 상복부 아프다던 환자, 알고보니...

처음 몇 주 동안 환자를 보면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신체진찰이 환자와의 좋은 관계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몇 주 동안 환자를 보면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신체진찰이 환자와의 좋은 관계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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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례는 재작년 여름이었습니다. 근무를 마치고 관사에서 쉬는데, 늦은 밤 교도소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수용자 한 명이 소화가 잘 안 되고 상복부가 아프다고 의료과로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평소에도 소화불량과 변비로 투약했던 적이 많은 환자여서 일단 소화제와 진경제를 투여하고 지켜보자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나 환자가 평소와 다르게 상복부가 아프다고 했던 것이 마음에 걸려서 교도소로 들어가 환자를 진료하기로 했습니다. 다시 문진을 해보자 복부 통증이 배꼽 주변에서 우하복부로 옮겨갔다고 했습니다. 복부 진찰을 해보니 우하복부에 압통과 반발통이 존재하는 전형적인 충수염의(맹장 끝에 6~9cm 길이로 달린 충수돌기에 염증이 발생하는 것)
소견을 보였습니다. 수화기 저편으로 들은 말만 믿고 위염약을 처방하고 방치하였다면 환자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돼 복막염까지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또다른 사례는 불과 한 달 전에 있었습니다. 다리가 아프다며 진통제를 투약하고 싶다고 신청한 수용자가 있었습니다. 평소 앓던 질환은 없었으며 특별한 외상도 없었고 운동을 하지도 않았는데 통증이 발생했다고 하였습니다. 환부를 보여 달라는 저의 말에 수용자는 겨울이라 춥고 귀찮다며 그냥 진통제나 달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어떤 원인으로 통증이 생겼는지 환부를 보고 확인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고 다리를 걷고 환부를 보니 정강이가 벌겋게 부어오르고 만져보니 열감도 느껴졌으며 주변에 상처가 보였습니다. 봉와직염(진피와 피하 조직에 나타나는 급성 세균 감염증의 하나로, 세균이 침범한 부위에 홍반, 열감, 부종, 통증이 있는 것이 특징)이 의심되는 상황이었으며 항생제와 진통소염제를 함께 처방하였습니다.

원격의료로 이러한 환자를 진료하여 전화로 들은 환자의 말대로 진통제만 처방했다면 감염이 몸 전체로 번져서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영상장치를 사용했다고 해도 환부를 촉진해서 열감을 느껴보지 못했다면 역시 진단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원격의료 시행, 환자들의 의료접근성 좋아진다고?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원격의료가 시행된다면 과연 환자들의 의료접근성이 좋아질 것인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유명한 의사에게 집에서 편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으니 의료접근성이 좋아진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의료접근성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의과대학 시절 순환기내과와 내분비내과 실습을 돌 때의 경험이 떠오릅니다. 한 교수님의 오전 외래 명단이 100여 명에 이르렀으며 그 중 상당수의 환자가 일반적 고혈압, 당뇨병 환자였던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동네의원에서도 충분히 병을 관리할 수 있는 환자들이 3차병원인 대학병원에서 긴 대기시간과 더 많은 비용을 감수하고 진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의료전달체계의 왜곡과 수도권 편중 현상이 심각한 상태임을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원격의료가 활성화 되면 대형병원 진료 편중은 더욱 심화될 것이며 동네 의원들의 경영 상태는 악화되어 문 닫는 곳이 상당수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이는 문을 닫는 동네 의원의 의사들에게도 문제지만 환자들이 정작 필요할 때 방문할 동네 의원이 없어져 의료접근성에 큰 문제가 생기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지난 2년간 의사로서 환자를 만나 문진하고 진찰하여 치료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던 것이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는 공중보건의사를 마치고 사회에 나가 환자를 진료할 일을 생각하니 걱정부터 앞섭니다. 원격의료가 도입되어 환자들이 제대로 된 신체진찰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많은 동네 병·의원들이 문을 닫는 건 아닐까. 그리하여 정작 환자들이 찾아갈 병·의원이 없어지지는 않을까. 끝으로 마음에 크게 와닿았던 친구의 말 한마디를 인용해 봅니다.

"기술의 발전은 더 중요한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도 얼마든지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


태그:#원격의료, #의료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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