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으로, 동남아시아로 빠져나간 탓입니다. 한국 제조업은 이대로 끝나는 걸까요? <오마이뉴스>는 창간 14주년을 맞아 '메이드 인 코리아'의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현장과 강소기업들을 찾아갑니다. 이번에 소개할 기업은 화장품 ODM 전문업체 '한국콜마' 입니다. [편집자말]
28일 오후 충남 세종시 한국콜마 신정공장에서 한 직원이 화장품의 유화과정을 확인하고 있다.
 28일 오후 충남 세종시 한국콜마 신정공장에서 한 직원이 화장품의 유화과정을 확인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한국콜마 신정공장의 제품 충전 과정.
 한국콜마 신정공장의 제품 충전 과정.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저희는 경제가 안 좋을수록 더 연구개발에 신경을 씁니다. 올해 1월 공채 80명 중 50명 이상이 연구인력이에요. 어려울 때일수록 사람이 중요하니까요."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국콜마 서울지점 4층 회의실. 앉자마자 던진 '사람 좀 뽑으셨느냐'는 질문에 최현규 한국콜마 화장품부문 대표의 망설임 없는 대답이 나온다. 그의 뒤편으로는 회의실 한 면을 털어 만든 장식장에 갖가지 브랜드명이 찍힌 화장품들이 칸칸이 들어차 있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웅진코웨이 등 국내 대형 화장품 브랜드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미샤, 더페이스샵, 이니스프리, 네이처리퍼블릭 등 2000년대 이후 급격히 시장점유율을 높여가는 브랜드샵들도 마찬가지. 바로 한국콜마에서 상당수의 제품이 생산된다는 점이다.

지난 1990년 국내 화장품 업계 최초로 제조업자 개발 생산방식(ODM, 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을 도입한 이 업체는 창업 이후 연평균 20% 이상씩 고성장 중이다. 보유하고 있는 화장품 처방만 해도 2만여 가지. 비결은 '연구개발(R&D) 집중'이다. 한국콜마는 전체 임직원 중 연구인력 비중이 30%에 달하는 흔치 않은 기업이다.

"화장품 제조는 '고급 기술'... 중국에선 생산 어렵죠"

ODM이란 주문자의 상품을 연구·개발해서 상품을 만들고 생산된 제품에 주문자의 상표를 부착해 납품하는 생산방식을 말한다. 위탁생산에 그치지 않고 시장조사, 구체적인 제품 콘셉트 제안까지도 맡는 제품 컨설팅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ODM은 제조사에서 완제품이 만들어져 나오기 때문에 고객사 입장에서는 개발 및 생산 비용 없이 마케팅·판매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업계 수요도 빠르게 증가해 최근에는 '대세'로 자리 잡는 추세다. 지난해 현대증권 조사에 따르면, 국내 화장품 시장은 연평균 3% 증가할 전망이지만 ODM 시장은 그보다 높은 연 7% 성장이 예상된다.

연구개발 기반 생산이다 보니 주문자 상표 부착방식(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에 비해 부가가치가 현격히 높을 것 같지만, 시장 경쟁이 있어 그렇지는 않다.

최현규 한국콜마 화장품부문 대표.
 최현규 한국콜마 화장품부문 대표.
ⓒ 김동환

관련사진보기


최현규 대표는 "ODM 단가는 OEM 단가에 연구개발비 정도가 더 붙는 정도"라면서 "그보다는 생산성 확보나 공장 운영에 매우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제품 개발에서 생산까지가 '원스톱'으로 갖춰진 체제가 단순 위탁생산보다 '주문 따내기'와 재고관리가 더 수월하다는 것이다.

28일 방문한 한국콜마 신정공장에서도 이런 풍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한국콜마에서 제조하는 수십 종의 기초 화장품들이 월 180만 개씩 생산된다. 스킨, 로션, 크림은 물론 여성용 청결제도 만든다.

이곳의 충진·포장 라인에서 일하는 주부 노동자는 총 80명. 작업복 위에 방진복과 헤어캡을 착용하고 주간과 야간으로 나눠 40명씩 조를 짜서 일하는데 매일 취급하는 제품이 다르다. 오전에 선크림 제품 마감을 하던 노동자들이 오후에는 기능성 스킨을 포장하는 식이다. 공장 관계자는 "워낙 다양한 브랜드를 다루기 때문에 주문이 들어오면 들어오는 제품과 수량에 따라 그날그날 조를 짠다"고 설명했다.

한국콜마는 이런 식으로 국내에서 생산된 내수시장 제품 중 40~50% 정도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 5년 동안에는 매출액이 24% 늘었다. 최현규 대표는 "지금은 ODM 비중이 전체의 95% 정도"라며 "국내 업체들은 거의 다 ODM을 요구하고 해외 브랜드들도 자체 연구소가 없으면 ODM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토종' 업체들의 점유율이 높으니 대중들의 일상 속에 퍼져 있는 '메이드인 차이나' 흐름에서도 유독 화장품은 예외다. 최 대표는 "화장품이 워낙 고급 기술이 필요한 업종이라 그렇다"면서 "중국에서 만들어서 들여오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화장품은 생산능력과 처방 하나에 따라서 제품 질이 현격히 달라집니다. 한국은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시장이 원하는 제품 수준도 점점 높아지고 있지요. 게다가 주 고객인 여성들은 피부 타입이 아주 복잡하거든요. 현지가 아니면 맞춤 제품을 내놓기 어렵지요. 반면 우리나라 제품에 대한 중국 선호도는 매우 높습니다."

"작지만 강한 기업... 직원들 경쟁력 높이려 책 읽혀"
28일 오후 충남 세종시 한국콜마 신정공장에서 한 직원이 생산 된 제품의 불량 확인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 불량품 찾아내는 작업자 28일 오후 충남 세종시 한국콜마 신정공장에서 한 직원이 생산 된 제품의 불량 확인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한국콜마가 자사 R&D 수준에 대해 자신감을 내보이는 이유는 그동안 그만큼 투자를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콜마는 창립 이후 꾸준히 매출의 6% 이상을 연구 및 개발에 써 왔다. 국내 중소기업의 매출대비 R&D 투자 비율 평균이 3%대, 중견기업 평균이 1%대인 것에 비하면 상당한 수치다.

최 대표는 "소재와 제형기술, 안정화 기술 등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면서 "요즘 사용자들은 유분기가 없고 가벼우면서도 보습이 좋은 기능성 화장품을 좋아하는데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런 건 만들 수가 없다"고 말했다.

독자적인 기술이 있으니 설비투자도 과감하다. 한국콜마는 올해 5월에 세종시에 아시아 최대인 1만7419㎡ 규모의 기초 화장품 공장을 완공한다. 제약 수준의 품질관리를 하면서 연간 2억4000만 개의 화장품을 생산하는 게 목표다.

이 회사의 독특한 '기술 제일주의'는 제품뿐만 아니라 임직원들에게도 적용된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콜마 특유의 사내 독서프로그램이다. 설립자인 윤동한 회장이 책을 읽어야 미래를 계획하고 앞서나갈 수 있다는 취지로 만든 것인데, 1년에 6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지 않으면 인사고과에 감점 요인으로 작용한다.

생산, 영업, 연구직 구분 없이 적용되며 회사에는 독후감을 평가하는 전담 직원이 따로 있을 정도다. 회사 도서관 장서는 6800여 권. 사원들이 결혼하면 떡을 돌리는 게 아니라 책을 사서 선물하기도 하는 경우도 있다. 최 대표는 "직원들과 소통하는데도 책이 유용하게 쓰일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유기농 농산물은 재배하기가 어렵지만 가격이 비싸서 이익이 많이 남잖아요? 이걸 기업 경영에 적용해서 작지만 강한 기업을 만들고 직원들 스스로 경쟁력을 갖게끔 하자는 취지지요. 한국콜마의 경영 철학입니다."

충남 세종시에 있는 한국콜마 신정공장
 충남 세종시에 있는 한국콜마 신정공장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한국에서 만들면 경쟁력이 없다는 편견을 깨다
<오마이뉴스> 창간 14주년 기획 '메이드 인 코리아'를 마치며
숨어 있는 '메이드 인 코리아'는 많이 찾으셨나요? 지난 2월 21일 첫 기사에서 모바일 독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한국산 제품을 '4개 이상' 가진 분이 103명(58%)으로, '4개 미만' 75명(42%)보다 많았습니다. 오마이뉴스 직원 평균 3.8개는 넘어섰지만 한국산이 전혀 없거나 고작해야 1~3개 가진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 수 있었죠.

그 사이 <오마이뉴스> 취재팀은 사라져가는 '한국산'을 부산 녹산공단부터 판교 테크노밸리, 이틀 걸려 전자악기 한 대를 만드는 서울 구산동 작은 공방부터 매달 화장품 수백 만 개를 생산하는 세종시 대형 공장까지 전국 곳곳을 누볐습니다. 1980~90년대와 달리 '한국산'의 의미도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한국콜마처럼 종업원 수백 명이 일하는 큰 업체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 값싼 인건비를 찾아 외국으로 빠져나간 지 오래였습니다. 대신 고부가가치 상품이나 '맞춤 생산'에 주력하는 소규모 업체들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죠.

특수 소재 기술을 기반으로 신발업체로 커가고 있는 '나노텍세라믹스'부터 디자인회사로 출발해 자체 브랜드 제품을 만든 '이노디자인', 유명 뮤지션이 찾는 전자 악기를 맞춤 생산하는 '물론'까지. 화장품 R&D를 통해 'ODM'이란 새로운 가치를 만든 한국콜마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바로 인건비가 비싼 한국에서 만들면 경쟁력이 없다는 편견을 깨는 사례들입니다. 생산단가 경쟁에서 '공장' 위치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한국의 독창적인 기술과 고급 인력으로 만든 경쟁력 있는 제품이 늘고 있는 것을 보면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는 그렇게 어둡지 않을 듯합니다.

[1편] '한국산' 없인 살아도 '중국산' 없인 못 살아
[2편] 나노텍세라믹스 "전세계 신발에 우리 제품 1그램씩 넣는 게 목표"
[3편]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 퍼스트'... 창조경제 핵심에 디자인이 없다"
[4편] '셀린 디온' 프로듀서는 왜 이 물건에 반했나
[5편] 화장품 제조업체 한국콜마

당신이 갖고 있는 '메이드 인 코리아'는? 지난 21일부터 오마이뉴스 모바일 독자 대상으로 보다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3월 4일 현재 한국산 제품을 '4개 이상' 가졌다는 응답이 103명(58%)으로, '4개 미만' 75명(42%)보다 많았다.
 당신이 갖고 있는 '메이드 인 코리아'는? 지난 21일부터 오마이뉴스 모바일 독자 대상으로 보다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3월 4일 현재 한국산 제품을 '4개 이상' 가졌다는 응답이 103명(58%)으로, '4개 미만' 75명(42%)보다 많았다.
ⓒ 오마이뉴스·보다폴

관련사진보기





태그:#한국콜마, #메이드인코리아, #화장품, #고부가가치, #ODM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