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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육군제15보병사단 신병교육대 퇴소식. 이 많은 장병들 중에 부모들이 참석하지 못한 병사들도 있습니다.
 육군제15보병사단 신병교육대 퇴소식. 이 많은 장병들 중에 부모들이 참석하지 못한 병사들도 있습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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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어렸을 때부터 할머님의 보살핌으로 자랐어요. 입대할 때 그렇게 우시던 할머님이 오늘 꼭 오시기로 했는데, 갑자기 편찮으셔서 못 오신다는 소릴 듣고..."

김아무개 이등병은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더란다. 그 병사의 두 손을 꼭 잡은 오영자 부녀회장(65)은 "내가 네 엄마이고 할머니라고 생각해라"라는 말을 해 주고 싶었지만, 가슴이 먹먹해 결국 그 말을 해주지 못하셨다고.

시민기자? 사람 사는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

내가 매일 아침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 중 하나는 인터넷을 통한 지역뉴스 검색이다. 쭉~ 검색하다 깊이 있는 취재거리가 눈에 띄면 휴일을 이용해 취재에 나선다. 훈훈한 인간 냄새를 좋아하기 때문일까. 유독 사람 사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카메라를 들고 신발을 신는 내게 "오늘은 또 뭐야?"라고 말하며 곱지 않은 아내의 시선을 느끼며 고집스럽게 이 일을 하고 있다.

2월 23일 아침, 인터넷 뉴스를 뒤적이다 보니 화천군 상서면 어느 마을의 부녀회장님이란 분이 지역 사단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는 소식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군부대에 기여한 일이 있겠지'라는 생각에 무심코 클릭을 했는데,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다.

"군인들이 훈련소 수료를 마치면, 부모들이 면회를 오잖아. 그런데 부모들이 돌아가셨거나 어떤 이유로 아무도 오지 않는 병사들도 있다나봐. 얼마나 쓸쓸하겠어. 그 병사들을 대신해서 퇴소식이 끝나면 밥도 사주고 하는 부녀회장님이 있대."

다른 날 같으면 아내는 "휴일인데, 당신은 가정이 먼저야? 아니면 그 잘난 취재가 먼저야?" 라고 따질 만도 한데. 아내는 "아침이나 먹고 가지? 급하면 라면이라도 끓여줄까?"라는 뜻밖의 말을 한다. 아마도 군대에 보내야 할 아들이 있기에 남다르게 받아들인 듯 했다.

"회장님, 제 고집 꺾은 사람 아무도 없거든요"

부모가 없는 장병들의 어머니, 상서면사무소에서 오영자 회장님을 만났습니다.
 부모가 없는 장병들의 어머니, 상서면사무소에서 오영자 회장님을 만났습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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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사실 내가 자발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면장이 아이디어를 내서 우리 15개 마을 부녀회장님들이 같이 어울려서 하는 건데 뭐. 또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취재를 하기전 "인터뷰할 시간 좀 내 달라"라는 말에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오영자 부녀회장님은 '당연한 일을 한 것'이라며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다.

"회장님, 제 고집 꺾은 사람 아무도 없거든요. 또 이런 미담은 숨기는 것 또한 죄라는 것도 아셔야 해요."

협박인지, 칭찬인지 모를 억지에 오 회장도 손을 들었다. "아니, 무슨 공무원이 취재도 해?" 라는 질문은 뻔하다. 이럴 땐 미리 선수 치는 게 최고. "제가 먹고 살기 힘들어서가 아니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소문내는 게 취미이다보니 결국 시민기자가 되었습니다"라는 내 말에 오 회장은 "누가 물어봤냐?"라는 눈치다.

"3년 전인가 그때 상서면장이 지금 군청 재무과장으로 있는 최명수 면장이었을 거요. 입대한 군인의 훈련소 퇴소식에 참석했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병사들이 보이더라는 거야. 그래서 (면 부녀회장을 포함해 15개 리 부녀회장님들은) 다들 어머님 같으시니까, 대신 엄마 역할을 해 주면 안 되겠냐고 말하기에...

농촌에서 어디 그게 쉽나. 처음엔 어렵다고 했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괜히 정말 눈물이 나더라구...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이 일을 하고 있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고개를 떨구고 있는 병사들

때론 면장도 나서 부모가 오지 못한 병사의 아빠 역할도 자처합니다 (사진은 이용재 상서면장이 어느 병사에게 계급장을 달아 주는 장면)
 때론 면장도 나서 부모가 오지 못한 병사의 아빠 역할도 자처합니다 (사진은 이용재 상서면장이 어느 병사에게 계급장을 달아 주는 장면)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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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봉오리 마을엔 육군제15보병사단 신병교육대가 있다. 한달에 두 번 내지는 세 번, 보충대에서 15사단 입소가 결정된 장정들은 이곳 훈련소로 입소한다. 이들에게 붙여진 호칭은 훈련병. 5주간의 훈련을 마치면 비로소 이등병이란 계급장이 붙고 진짜 군인이 되는 순간이다.

신병교육대 퇴소식장. 부모, 친구, 친지 등 훈련병 숫자 보다 많게는 5배 이상 많은 사람들이 연병장에 그득하다. 행사 중 하이라이트는 '개별적으로 호명된 병사들에게 해당 부모들이 (오만촉광으로 빛난다는) 이등병 계급장을 달아주는 시간'이겠다. 그런데 예닐곱 명의 병사들이 한쪽 구석에서 무슨 죄라도 지은 양 고개를 떨구고 있다. '부모 모두 돌아가셔서' 또는 '부모의 이혼으로', '가난 때문에' 등등 참 사연도 다양하겠다. 그 병사들은 뻘쭘한 자세로 먼 산을 바라보거나, 자신의 군화 끝만 뚫어져라 내려 다 보고 서 있다.

3년 전쯤, 이를 가엾이 여긴 (당시 최명수)면장은 부녀회장을 찾아 말하길... "회장님들이 대신 그 아이들 부모 역할 좀 해 달라"고, 그래서 "그 병사들도 그 자리에서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서 있게 해 달라고..."

그 말을 들은 오영자 면 부녀회장을 비롯한 15개리 부녀회장들 모두는 그들의 부모가 되기로 했단다. 농사준비 때문에 바쁘다는 오영자 회장님을 붙들고 간단한 미니 인터뷰를 가졌다.

부모들이 없는 사병들, 멋진 군 생활 응원합니다

- 한번 퇴소식 할 때 부모나 친지 등 아무도 찾지 않는 병사가 얼마나 되나?
"글쎄, 많을 땐 7~8명 정도 되는데, 한 명도 없을 때도 가끔 있다. 그럴 땐 정말 기분이 좋더라. 한번 퇴소식 할 때 전체 인원이 대략 270여 명 되니까, 한 달에 두 번 퇴소식을 개최한다고 보면 연간 6400명 정도? 그중에서 아무도 찾지 않는 병사가 1년에 150명이 넘으니까, 의외로 많은 편이다.

- (부모가 오지 않은 병사들을 위해) 어떤 행사를 갖는지 궁금하다.
"퇴소식 전에 군부대에 연락해서 대상자가 몇 명인지 파악하고, 그 인원만큼 부녀회원들이 나가서 부모를 대신해 (부모와 같이 온 사람들 모르게) 계급장을 달아주고 봉오리 마을로 데리고 나가서 점심을 사 주고 있다."

- 그 병사들 애로사항도 물어 봤을 것 같은데, 기억에 남을만한 이야기도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이 그런 말을 물어보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낄 것 같아. 절대로 묻지 않는다. 그냥 군대생활 할 동안 '내가 니 엄마라고 생각하고 어려운 일 있을 때 연락해라'라고 말하고 먹고 싶은 것만 사주고 (자유롭게 지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자리를 피해 준다."

- 내가 군 생활할 땐 자장면이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요즘 병사들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나?
"그건 옛말이다. 요즘 아이들은 핏자 라든지 통닭... 특히 삼겹살을 무척 좋아한다."

- 그렇다면 그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어떻게 충당하나?
"사실 부녀회라는 게 봉사단체이다 보니 자금이 없다. 다행히 면사무소에서 병사들을 위한 식비를 지원하니까 가능하지. 우리는 그냥 엄마 또는 할머니 역할만 하는 거다."

오영자 회장은 해당 사단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오영자 회장은 해당 사단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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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을 보니까, 회장님께서 사단장님 표창도 받으셨던데...축하드린다.
"사실 안 받는다고 했다. 왜냐면 리별 부녀회장님들 전부가 자신의 일처럼 해 온 건데, 내가 받을 건 아니잖나. 대표성을 띤 사람이 받아야 한다기에 그렇게 하긴 했는데, 리 회장님들께 영광을 돌리고 싶다."

- 마지막으로 부모들이 없는 병사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외로울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우리가 부모로 나섰을 땐 형식적인 일일부모 역할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군 생활이 힘들 때 언제든 찾아와 상담도 하고 때론 투정도 부리는 아들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상서면, #오영자, #신교대, #15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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